소설리스트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253화 (253/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53화

“나름대로는 우릴 속이기 위해 이런 은신처에 환영까지 설치해 둔 모양이지만, 애석하게도 너의 존재 자체를 숨기는 건 불가능했나 보군.”

아후라 마즈다가 헬의 목을 움켜쥔 채 말했다.

“컥, 컥……. 이거…… 놔.”

“원한다면.”

툭.

그는 아무런 조건 없이 손을 풀어주었다.

덕분에 헬은 바닥에 떨어져 주저앉았고, 그 순간.

우우웅.

그녀의 양손에서 마력이 발산되기 시작하더니, 빠른 주문 시전으로 순식간에 탈출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

“그건 안 되지.”

서걱.

그러나 그녀의 주문이 아무리 빠르다 하더라도 아후라 마즈다의 예측된 칼놀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아아악!”

헬은 그대로 양손과 양 다리가 잘려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잘린 부위에서는 시커먼 냉기의 기운이 새어나왔다.

그녀의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근원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원래 불멸자에게 사지가 절단되는 것 정도는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하는 일이었지만, 아후라 마즈다의 검이 남긴 상처는 달랐다.

헬의 마법 사용을 봉쇄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힘까지 빼앗는 참격.

그걸 그대로 둔다면, 헬은 곧 영혼이 붕괴되어 요르문간드와 같은 꼴이 될지도 모른다.

“크윽…… 이 힘…… 너…… 너지?”

그녀는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투로 말했다.

그러자 아후라 마즈다는 굳이 숨길 것도 없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요르문간드를 그렇게 만든 것 말인가?”

“…….”

“그래. 나다. 펜리르가 한 행동들도 전부 내 계획과 의도에 따른 것뿐.”

“……큭.”

“하지만 한 가지 오해하고 있는 게 있군.”

아후라 마즈다는 쓰러져 있는 헬의 얼굴 바로 앞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고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난 널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야. 손을 잡으려고 온 거다.”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아후라 마즈다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헬은 여전히 적대적인 태도였다.

“200년 전 요르문간드 오빠에게도 똑같이 말했지. 함께 지상에 나가서 세상을 다스리자고. 그런데 그렇게 말해놓고서 너희들이 한 짓이 뭐였는지 기억 안 나?”

그녀는 이 대목에서 아후라 마즈다의 뒤에 서 있는 펜리르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시에는 아후라 마즈다가 직접적으로 현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때라, 실질적으로 행동을 취한 건 펜리르 혼자였기 때문이다.

“육신의 뼈와 살, 내장을 모조리 적출해 하계의 마물들을 강화하는 데에 사용했잖아. 그것도 무려 100년 동안이나!”

헬은 그 기억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갑자기 강력한 마물과 마수들이 나타나, 이전까지 형성되었던 대륙의 문명이 모두 파괴되었던 사건.

1세기 전의 암흑기는 바로, 아후라 마즈다의 명령을 받은 펜리르가 요르문간드를 희생시켜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그 암흑기에서 살아남은 드워프, 다크엘프, 트롤, 인간들은 다행히 문명을 재건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이전의 역사는 거의 대부분 잃어버리고 말았다.

펜리르가 저지른 짓은 하계에 그만큼이나 큰 영향을 준 사건이었던 것이다.

“난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 ……차라리 스스로 영멸하고 말겠어.”

헬은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

불멸자에게 있어 존재의 영원한 소멸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두려운 공포였다.

물론 죽음은 필멸자들에게도 두려운 일이긴 하지만, 언젠간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사는 이들에 비해, 영원한 삶을 당연시하는 불멸자들이 ‘진정한 죽음’에 대해 느끼는 공포는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럼에도 그런 말을 쉽게 입 밖으로 낼 정도로, 헬은 요르문간드가 당한 일만큼은 꼭 피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영리한 마녀가 바보 같은 짓을 하려 하는군.”

“……뭐?”

“난 널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그 말을 들은 헬의 눈동자에 절망이 떠올랐다.

자기 생사여탈의 결정권이 전적으로 타인에게 달려 있다는 비참함.

죽지 못한 채로 죽은 것보다 더한 상태가 되는 것에 대한 공포.

그러나 아후라 마즈다가 한 말의 의미는 적어도 후자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또한 널 네 오빠처럼 미쳐버리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 대체 뭘 위해……?”

“내게는 강력한 마법을 다루는 참모가 필요하다.”

그는 헬의 머리 위에 손을 가만히 얹었다.

그러자 새하얀 빛이 그녀의 전신을 휘감더니, 곧 잘려 나간 사지에서 팔과 다리가 돋아났다.

마법 사용 각성자 따위가 사용하는 신체 재생 마법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의 고속 회복 권능.

불멸자들이 근원 에너지를 소모해 자기 육신을 재구축하는 것과도 또 다른 종류의 능력이었다.

그건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그 분야에 있어서 너의 도움이 꼭 필요하단 말이지.”

“나를…… 참모로?”

“물론 네가 거절한다고 해도 난 너를 내 것으로 만들 것이다. 너 같은 불멸자 하나쯤, 움직이는 꼭두각시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야.”

헬은 그 말을 듣고선 바닥에 주저앉은 채 움찔하며 뒤로 상체를 내뺐다.

“하지만 모름지기 참모라면 그보다는 스스로 움직이고 판단할 줄 아는 존재여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네가 스스로 내 밑으로 들어와 줬으면 좋겠군.”

그건 분명 협박이었다.

어차피 죽지도 못한 채 살아 움직이는 좀비 같은 게 되고 싶지 않다면 당장 내게 복종하라는 협박.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아후라 마즈다에게선 같은 신조차 머리를 조아리게 만드는 비범함이 한껏 뿜어져 나왔다.

펜리르가 니플헤임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를 ‘주신’이라 부르며 신들의 왕으로 취급하는 것도, 그 압도적인 카리스마에서 기인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결국 헬 역시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건 어찌 보면 차후를 도모하기 위한 기만책이기도 했다.

적어도 자유 의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상태라면 나중에 언제든 아후라 마즈다가 방심했을 때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지금 당장은 그보다는 아후라 마즈다의 카리스마에 매료된 부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래. 앞으로 세상은 저자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될 거야.’

‘자신이 누구의 편을 들어야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는가’라는 계산상의 선택.

걱정했던 대로 자신이 요르문간드와 같은 꼴을 당하지 않는 한, 이 선택은 옳은 선택이 될 것이다.

헬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럼, 참모로서 너에게 첫 번째 명령을 내리도록 하지.”

“말씀하십시오.”

“이곳 하멜 평원을 황폐화시킨 건 네가 펼친 ‘삭풍의 저주’ 때문이겠지?”

“저주를 풀면 되겠습니까?”

아후라 마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헬은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 오두막 은신처의 문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허공에 손을 한번 휘젓자, 어두컴컴하던 주변 환경이 사라지고 탁 트인 들판이 펼쳐졌다.

외부와 은신처를 차단하는 결계 마법을 해제한 것이다.

스슥.

그러고는 검지로 허공에 큰 원을 그리고, 그 안에 각종 복잡한 문양과 룬 문자들을 새겨 넣기 시작했다.

손의 움직임이 매우 빠름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은 거의 몇 분이나 걸릴 만큼 복잡했다.

아무튼 그렇게 술식이 완성되자.

파아앗.

원과 원 안의 문양, 문자들이 한꺼번에 푸른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헬이 한 손을 위로 치켜들자 술식이 하늘 위로 치솟았고, 그 상태에서 양팔을 벌린 자세를 취하자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로 확대되었다.

쿠구궁.

이윽고 지상을 그림자로 뒤덮었던 먹구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들판 위를 스쳐 지나가던 바람들이 한순간에 고공으로 상승하며 거센 돌풍을 일으켰다.

잠시 후,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청명함이 가득한 쪽빛을 머금은 모습이 되었다.

말라비틀어졌던 지상의 녹음은 다시 원 상태로 복구되었다.

저주가 걷혀 나가자, 하멜 평원의 땅에 깃들어 있는 강력한 생명력이 죽은 풀들을 모두 되살려낸 것이다.

“저주를 해제했습니다.”

헬이 모든 작업을 끝마치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후라 마즈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묵묵히 눈을 감은 채 한쪽 다리를 꿇고 앉아 손으로 바닥을 짚고 있을 뿐이었다.

“저…….”

“쉿.”

헬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옆에 서 있던 펜리르가 그녀를 제지하며 검지로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뭘 하려는 거지?’

그녀는 아후라 마즈다의 이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권능이나 마법을 사용하는 거라면 마나 파장이 뿜어져 나오는 게 느껴졌을 터인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땅과 교감이라도 하려는 건가?’

헬이 이 기이한 상황에 의문을 가지고 고개를 갸우뚱하던 찰나.

쿠구구궁.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온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대규모의 지진이 평원을 강타했다.

“윽……!”

헬은 흔들리는 땅 아래에서 무언가 엄청난 것이 급격히 빠른 속도로 치솟아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힘의 크기는 마치, 이전 세대의 거인 신들을 연상케 했다.

‘이 아래에 숨겨져 있는 병기라도 꺼내려는 건가?’

쩌적. 쩌저적.

지진에 이어서 땅이 갈라졌다.

지반이 무너지고 표면의 땅들이 아래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위로 솟아 나온 것은.

“탑? 아니…….”

성채와 탑, 마을, 성벽.

이 세상 그 어느 대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그 자체로 하나의 국가라 해도 좋을 규모의 거대한 성이었다.

아후라 마즈다가 가호를 내리던 전성기의 찬란한 문명을 간직한 신화시대의 도시.

제도(帝都) 예루살렘이 이 땅에 현신한 것이다.

* * *

쿠구구궁.

거대한 도시가 하나의 플랫폼 위에 얹힌 채 초대형 부양 장치로 지상을 호버링하며 이동한다.

스사노오의 도움을 받아 발동시킨, 움직이는 타카마 시티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었다.

“움직이는 동안은 전력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움직이는 동안은 물론이고 그 이후 며칠 간은 도시 전체가 정전이다. 가용한 전력은 공성 보호막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에너지밖에 없어.”

사실 생각했던 것에 비해서는 많이 실망스러웠다.

난 이 말도 안 되는 규모의 거대한 지상전함이 이동하면서 마력 대포를 뻥뻥 쏘는 광경을 상상했지만, 실제로는 정말 말 그대로 ‘움직이는’ 수준에 그쳤다.

자체적인 무장 같은 건 없고, 이동 중에 접근하는 마물들은 도시 안에 상주하고 있는 전투원들이 직접 격퇴해야 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이 커다란 도시를 통째로 옮기는 데 사용되는 에너지는 적은 양이 아닐 터.

당연히 마나를 사용하는 다른 공격무기를 운용하는 건 턱도 없는 이야기일 것이고, 간신히 공성 보호막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기적의 테크놀로지인 셈이다.

“어쨌든 라바예스 고원에 자리를 잡고 나면 한동안 이동 기능은 다시 못 쓸 거다.”

“제약이 참 많군.”

“도시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거라고. 시간을 벌었잖아.”

“그건 그렇지.”

스사노오의 말대로, 타카마 시티의 이 이동 기능 덕분에 우린 그나마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원래부터 마물들의 개체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라바예스 고원’에 도시를 통째로 옮김으로써 방어 부담은 확실히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자리를 잡으면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되는 존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원흉은 물론 아후라 마즈다일 테고 말이다.

“신우. 나랑 잠깐 얘기 좀 하자.”

그런데 그때, 레아가 나와 스사노오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난 빠져 주도록 하지.”

스사노오는 그녀가 나와 독대하길 원한다는 걸 알아챘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

레아는 그가 나가고 난 뒤에 닫힌 문을 한참 동안 지켜보고서,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는 걸 확인한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너한테 할 말이 있어.”

“급한 얘기야?”

“지금 상황에 관한 거.”

나는 흔쾌히 뭐든 말해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전략적 판단에 능한 그녀라면, 묘수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녀는 잠시 우물쭈물하며 뜸을 들이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여길 버리고 동 대륙으로 돌아가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