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52화
모든 풀들이 바싹 말라 버린 초원 위로 아후라 마즈다와 그의 뒤를 따르는 거대한 무리가 계속해서 나아간다.
“여긴 왜 이렇게 황폐화된 거지?”
살만은 이 지역에 도착했을 때 의문이 들었다.
원래 이곳, 하벨 평야는 대륙에서도 드물게 푸른 초목이 우거진 아름다운 들판으로 가득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모래와 바위로만 가득 찬 황무지의 세상에서 그나마 숨이 트이는 지대였던 것이다.
물론 그런 아름다운 환경과는 달리 강력한 마물들이 가득해서 정작 아인종들은 누릴 수 없었지만.
어쨌든 이런저런 일로 비행 차량을 타고서 근처를 지나갈 때에 깊은 인상을 남겼던, 살만도 잘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초원 지대였다.
그랬던 곳이, 지금은 마치 지역 전체가 생기를 잃은 듯한 지대로 변해 있었다.
풀들은 메말라 적갈색이 되었다.
나무는 잎이 떨어져 싸늘한 가지만을 남겨 두었다.
온통 푸른색으로 가득하던 이곳이, 회색과 갈색으로 뒤덮인 죽음의 땅으로 바뀐 것이다.
“여긴 사람의 손길이 닿지도 않았을 텐데, 왜 이렇게 된 거지?”
“보나 마나 무시무시한 악마 같은 게 이곳에 나타났을 게 빤하지.”
살만의 근처에 있던 트롤이 대답했다.
“하, 원래도 마물들로 가득한 이곳에 그깟 악마 하나쯤 더 나타난다고 달라질 게 있나?”
“다르지. 마물이라면 몰라도, 악마들은 원래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거든.”
“뭐?”
트롤은 묘한 말만 남겨 놓고서는 먼저 앞으로 나아갔다.
악마들이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거야 새삼스러울 일이 아니지만, 대체 그게 이 지역이 이렇게 된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게다가 그 말을 듣고 나니, ‘진짜 다른 세계에서 온 듯한’ 아후라 마즈다의 정체가 더욱 의심스러워졌다.
그 트롤의 말대로라면, 가장 수상한 건 다름 아닌 구세주라 불리는 그였기 때문이다.
‘이 많은 마물들을 몰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물론 그 모든 의심도 결국엔 추측에 불과했다.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당장 모든 걸 잃은 그에겐 이 무리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갈 만한 상황이 아니었고 말이다.
“마물들이다!”
“모두 안쪽으로 모여!”
얼마 지나지 않아, 역시나 들판에 상주하고 있는 마물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겁먹거나 당황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행렬의 안쪽으로 단단하게 뭉쳐서 자신들을 보호하는 아군 마물들이 훨씬 더 편히 싸울 수 있도록 돕는 모습을 보였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겪었던 수많은 전투에서 저절로 익힌, 약속된 단체 행동이었다.
아우우!
곧이어 하울링 소리가 들렸다.
이다음은 계속 그래왔던 것처럼 늑대인간들이 뛰쳐나가 압도적인 힘과 머릿수로 적을 마구 분쇄하는 장면이 나타날 것이다.
……라고 살만은 예상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적이 너무 많아!’
생각해 보면, 원래도 이 들판에는 다른 필드보다도 마물의 개체 수가 많은 지역이었다.
사람이 살기 좋지만 너무 위험하다는 아이러니를 가진 곳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지금은 전 대륙 모든 지역에서 그때보다 마물들이 훨씬 더 흉포해지고 숫자도 많아진 상황.
그러니 원래부터 다른 곳보다 위험했던 이곳은 지금까지완 차원이 다른 수준의 공세가 펼쳐질 수밖에 없다.
“저게 다…… 마물들이라고?”
“세상에.”
여태까지는 어지간한 마물들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던 사람들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애물 없이 탁 트인 들판.
아주 먼 곳까지 너무나 잘 보이는 여기서, 지금 저 지평선을 가득 메운 새까만 점들이, 흙먼지를 듬뿍 일으키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괜찮은 거 맞……지?”
“으아아…….”
그 위압적인 광경 앞에서 모두들 겁에 질려 있던 바로 그때.
“백의 구세주님이시다!”
누군가가 그렇게 소리쳤다.
그러자 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그곳엔 정말로 언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슬쩍 모습을 드러낸 하얀 갑옷의 아후라 마즈다가 거대한 늑대를 탄 채로 서 있었다.
“방패병!”
콰드드득.
그가 손에 든 검을 높이 들고 소리치자, 기괴하게 뒤틀린 인간형 마물들이 땅 속으로부터 튀어나와 횡대로 길게 늘어섰다.
그 마물들은 몸을 다 가릴 정도로 커다란 방패를 장착하고 있었다.
“창병!”
그리고 그 뒤로 다시 같은 종류의 마물들이 장창을 든 채로 나타나 제2 오를 형성했다.
이어서 아후라 마즈다의 호명에 따라, 궁병과 마술사, 치유사까지, 완벽에 가까운 조합으로 하나의 방진을 이루었고.
그것들은 이내 완벽한 태세로 다가오는 마물들에 맞서 등 뒤의 사람들을 보호했다.
“오오! 구세주께서!”
“저분이 우리를 구해주실 거야!”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모두 환호했다.
눈앞에 단단한 진형이 형성되어 자신들을 보호하는 형국이 되자 다들 안도한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을 치유하거나 끌어들이는 모습 외에는 별다른 능력을 보여주지 않던 아후라 마즈다가,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직접 전투를 지휘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그러니 다들 그 모습에 더욱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 * *
“사격!”
피피핑!
아후라 마즈다의 명령에 따라 3번째 줄에 서 있는 궁병들이 화살을 날렸다.
그 뒷줄에 선 마술사들은 날아가는 화살에 마법을 걸었고.
펑! 퍼펑!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화살들은 착탄 지점에서 푸른색의 마력 폭발을 일으키며 마물들을 휩쓸었다.
폭발은 새까맣게 몰려오던 마물 무리 사이사이에 커다란 구멍들을 만들 정도로 강력했다.
카아아악!
쾅! 콰쾅!
그러나 그런 피해에도 불구하고 적은 더더욱 맹렬하게 돌진해 끝끝내 방패병들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는 데에 성공했다.
아후라 마즈다가 불러낸 망자 병사들은 그것들에 맞서 방진을 유지하며 버티려 했지만, 압도적으로 거대한 체급을 자랑하는 몇몇 마물들에 의해 군데군데 진형이 붕괴되고 말았다.
물론 그럼에도 치유사들이 방패병을 치유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며 병력을 유지하기는 했다.
완벽하게 막아내는 건 불가능해도, 최전방의 덩치 큰 마물들의 발을 묶는 데에는 성공한 것이다.
“주신이시여.”
그 상황에서 아후라 마즈다가 타고 있던 하얀 늑대, 펜리르가 입을 열었다.
“왜 저와 제 아이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리지 않으시는 겁니까?”
“망자 병사들이 가진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에 비해서 훨씬 실망이군.”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것들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
아후라 마즈다는 전방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보며, 고심에 빠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
“제가 직접 가서 처리하겠습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뿐이었군. 하긴 너는 언제나 싸움에 목말라 있었으니까.”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다. 네가 그러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돼. 난 너를 믿고 있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가자. 저것들에게 네 힘을 보여주자꾸나.”
“알겠습니다.”
아후라 마즈다는 한 손으로 고삐를 붙잡은 채 펜리르가 앞으로 뛰쳐나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고는 그 등 위에서 자신의 수족이 하는 싸움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콰아아아!
펜리르는 먼저 입을 벌려 입안에서 눈보라를 내뱉었다.
겉보기엔 단순한 바람일 뿐이었지만, 그건 닿는 모든 액체를 얼려서 결정화시켜버리는 강렬한 눈보라였다.
퍼퍽! 파삭!
마물들은 눈보라에 닿자마자 몸이 살짝 부풀어 오르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 사지 곳곳이 떨어져 나가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온몸의 체세포가 얼어붙으면서 팽창함과 동시에 날카로운 결정으로 변해 서로를 베고 찌르는 형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로 인해 몸이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로 변해 사지가 떨어져 나갔다.
광대한 영역의 눈보라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시체만이 쌓여 있을 뿐.
그 한 번의 공격으로 대규모 마물 무리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부채꼴의 공간이 생길 정도였다.
터엉!
곧이어 그가 땅을 박차고 하늘로 높이 날아올랐다.
방금 전의 공격으로 마물들의 주의를 잔뜩 끈 탓인지, 지상에서 수많은 공격적인 투사체들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모든 투사체들은 펜리르의 주변으로 날아오자마자 얼어붙으면서 산산 조각났다.
마력탄과 같은 비실체 투사체도 예외는 없었다.
쐐애애액!
쾅!
곧이어 하늘로 날아오른 펜리르가 땅으로 빠르게 떨어져 지상의 마물 무리 한가운데를 내리찍었다.
그 충격파만으로 무수히 많은 마물들을 찢어버리기엔 충분.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쩌적!
발 아래의 땅이 갈라지는가 싶더니.
콰르릉!
지반이 가라앉으면서 주변 수 킬로미터에 해당하는 영역을 한꺼번에 매몰시켰다.
게다가 그 아래에서 용암이 터져 나올 정도로 깊이도 깊었다.
펜리르는 그 한 번의 공격으로 만 단위의 마물들을 모조리 용암 속에 파묻어버린 것이다.
크르르…….
이 공격 이후에 남은 적 마물의 개체 수는 채 수백이 되지 않는 규모.
이 압도적인 공격 앞에서, 그것들은 겁에 질려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최전방에서 망자 병사와 뒤엉켜 있던 것들 역시 마찬가지.
“꺼져.”
크허엉!
그 긴장감 넘치는 대치 상황에서, 펜리르가 내뱉은 한마디로 이 지역의 모든 마물들은 모두 도주해 버렸다.
그걸로 전투 상황은 종료.
“힘이 넘치는군.”
“오랜만이라 너무 과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과한 것이 모자란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후라 마즈다는 그의 등 위에서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 * *
아후라 마즈다가 이 드넓은 하멜 초원에 자신을 따르는 아인종들을 이끌고 온 것은, 이곳을 개척해 사람들이 살 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마물들만 없다면 너무나도 완벽한, 풍요로운 땅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막상 이 풍요롭던 땅에 와보자, 이곳은 황무지보다도 더한 죽음의 땅으로 변해 있었다.
그건 이 지역을 장악한 어느 존재 때문이었다.
“헬라.”
니플헤임 삼남매 중 막내, 삭풍의 헬.
펜리르가 자신의 여동생인 그녀의 애칭을 불렀다.
“…….”
그녀는 마치 시체와 같다고 할 정도로 차갑고 푸른빛이 감도는 창백한 피부의 소유자.
그럼에도 그 외형 자체는 아름다워서, 매력과 거북함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묘한 기운의 마녀였다.
“우린 하나가 돼야 한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거야.”
“그 하나라는 게, 나를 미쳐 버리도록 만드는 걸 의미하는 거라면 난 거절하겠어.”
덩치가 거인과 난쟁이라고 해도 모자랄 만큼 큰 차이가 나는 두 사람.
그러나 헬은 거대한 덩치를 가진 펜리르의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하멜 평원 어딘가에 숨겨 놓은 자신의 은신처까지 찾아내 들어왔음에도 말이다.
“그건 그저 사고였을 뿐이다.”
“거짓말하지 마. 니플헤임 전역에 부는 바람이 모두 내게 보고 들은 것을 전해주는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펜리르가 말하는 ‘사고’란 바로 요르문간드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의 영혼이 세 조각으로 쪼개어지고 정신이 붕괴된 것은 모두 펜리르 때문이었다.
헬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를 믿지 않았다.
“난 절대 오빠와 한배를 타지 않을 거야.”
“헬라. 네가 이렇게 나온다면 난 강압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어.”
“어디 한번 해봐.”
펜리르는 그녀를 슬픈 눈으로 쳐다보았다.
또다시 자기 손으로 가족을 해치게 되다니.
촤악! 투쾅!
……라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펜리르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빠르게 자신의 손톱을 휘둘러 헬의 육신을 찢어발겼다.
“환영이군.”
그러나 그가 없애버린 건 그저 헬이 남긴 신기루에 불과했을 뿐.
펜리르의 뒤에 서 있던 아후라 마즈다는 이미 그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젠장.”
“영리한 마녀다. 너 같은 무투파가 손쓰기 어려운 게 당연하지.”
“……큭.”
“보아하니 설득에는 실패한 것 같구나.”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지. 이제 내 마음대로 해도 되겠느냐? 네 여동생을.”
아후라 마즈다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예.”
어차피 무력으로 해치겠다고 마음 먹은 이상, 펜리르가 그 말에 거부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대답을 들은 아후라 마즈다는 빙긋 웃었다.
“좋다.”
화악!
그러곤 검을 휘둘러 허공을 베어내더니.
콱.
그 베어낸 공간의 틈으로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아악!”
꺼내 든 것은 다른 공간에 숨어 있던 헬의 본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