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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251화 (251/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51화

안개의 융합체를 쓰러뜨리고 레아를 구출해 낸 직후, 우리는 마물들을 도시 바깥으로 몰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공성 보호막의 깨진 부분을 재생시키는 데에는 당장 시간이 걸리겠지만…… 일단 이거라면 임시방편은 될 거예요.”

유메미가 마물들이 침입해 온 입구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엔 그녀가 형성시킨 다중 결계가 깨진 부분을 막고 있었다.

아까 전 전투가 시작되었던 시점부터 영창하고 있던 마법의 정체가 바로 저것.

마물들을 바깥으로 몰아내자마자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입구를 막은 것이다.

“덕지덕지 이어붙인 게 꼭 누더기 같긴 하지만…… 그래도 방어력 하나는 믿을 만할 거예요.”

“수고했어. 유메미.”

“아니에요. 저보다 신우 씨나 다른 사람들이 더 고생했는걸요.”

그녀는 잠시 내 눈치를 보며 뜸을 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레아 씨는 어때요?”

“자고 있어. 몸에는 이상이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휴. 다행이에요. 정말.”

그녀 역시 내심 걱정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나보다 먼저 인연을 맺어 온 관계이기도 하고, 또 이번에 한 번 더 죽기라도 하면 다시 되살리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았다.

“윤아 씨도 찾았고……. 다행히 우리 일행은 모두 무사하네요.”

레아와 함께 움직였던 최윤아는 이곳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건물 옥상에 기절해 있었다.

모종의 이유로 인해 체내의 마나가 전부 소진된 상태로 말이다.

아무래도 안개의 융합체가 나타난 것과 관련이 있을 거라 추측된다.

다행히 거리가 먼 덕에 직접적인 위해를 받은 건 아닌 듯하지만.

“그나저나 마나링크가 두절된 게 걱정이군.”

한편, 나는 전투 도중에 보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소재가 아직 파악되지 않은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혹시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 중에 네 감각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나?”

“전혀요. 사실 마나를 감지하는 능력은 이제 저보다 신우 씨가 더 뛰어날 걸요? 몸 안에 머금고 있는 양 자체가 압도적이니……. 그런 신우 씨조차 사람들의 흔적을 느끼지 못한다면, 저도 알 수 없어요.”

“영혼을 찾아내는 방법은?”

“권능을 사용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긴 하지만, 확실한 건 한계가 있다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한꺼번에 추적하는 건 불가능해요. 물론 그렇다고 아예 손 놓고 있지만은 않을 거지만.”

“그런가. ……뭐, 일단 한 명은 찾아낸 것 같군.”

나는 오른쪽에서 익숙한 기운을 가진 자가 다가오는 걸 느끼고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백호를 탄 스사노오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왼팔이 잘려 있었고, 전신에 상처가 가득한 채였다.

타고 있는 백호마저 절뚝거릴 정도.

게다가 그 뒤로 쫓아오는 백호 기병 또한 겨우 열댓 기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뭔가 큰 전투를 치르고 왔던 모양이다.

“지금까지 어디에 있다가 온 거지? 그 상처는 또 뭐야?”

그는 도시 안에 있었던 것은 아닌 게 확실했기에 그렇게 물었다.

수비전을 펼치는 동안 전선 전반에 걸쳐서 그의 모습이 목격된 것도, 마력이 느껴지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바깥에 있었다. 나 말고 다른 녀석들도 곧 복귀할 거다. 안쪽의 상황을 돕지 못한 건…… 미안하군.”

“아니야.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네가 이곳에 오지 못한 데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겠지.”

“……나를 신뢰하는 건가. 고맙군.”

“이제 와서 뭘 새삼스럽게. 그나저나 상처가 좀 심각해 보이는데.”

스사노오는 중상을 입은 상태였음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언제나 몸을 사리지 않고 전선에 뛰어드는 걸 보면, 기본적인 정신력 자체가 뛰어난 것 같았다.

“이봐. 내 얘기 잘 들어.”

“음?”

“이 도시가 여기에 있으면, 반드시 마물에게 함락당할 거다.”

그가 갑자기 묘한 소리를 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밖에는 이 안에 들어왔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많은 숫자의 마물들이 있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신화시대가 시작된다는 메시지가 나타난 이후 세상의 환경이 급격하게 변한 것 같다.

스사노오가 직접 눈으로 본 광경을 얘기해 준 덕에 더 강한 확신이 생겼다.

“그것들과 싸우고 온 건가?”

“싸움? 당치도 않은 소리.”

“그럼?”

“도망친 거다. 그것들로부터. 내 힘으로는 맞서 싸운다는 게 성립할 수가 없는 이야기야.”

“……그 정도라고?”

스사노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어딜 가서도 결코 주눅 들지 않던 대장군 같던 그가 오늘따라 유난히 왜소해 보인다.

원래는 덩치가 작은 드워프임에도 불구하고 발산하는 기운만큼은 거인의 그것과 같았지만.

지금은 그저 한 명의 패잔병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게다가 시스템이 미쳐 날뛰고 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이전에는 있지도 않은 퀘스트들이 마구 나타나기 시작했다. 손실과 희생을 강요하는, 악랄하기 짝이 없는 조건을 갖춘 퀘스트들이 말이다. 그건 마치…… 세상이 나를 절망으로 몰아넣으려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스사노오 역시 나와 같은 현상을 겪었던 모양이다.

다시 그 뒤를 따르는 기병들을 보자, 대강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 것 같았다.

그 대단한 기동력을 가진 백호 기병대를 이끌고 싸우지도 않고서 도망만 쳤는데 이만큼이나 피해를 입었다는 건…….

뭔가 불가피한 함정에 빠졌던 게 분명하다.

“우린 여기서 도망쳐야 한다. 만약 그 마물 무리가 이쪽 도시로 다가오기라도 한다면, 우린 전부 끝장이다.”

“지금 여기서 나가자는 얘길 하는 건가?”

난 그의 주장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바깥에 그렇게 위험한 적들이 많다면, 차라리 이곳에서 공성 보호막에 보호를 받으며 다가오는 놈들을 상대로 농성전을 벌이는 게 낫다.

괜히 외부에 나갔다가 공격을 당하면, 각성자들이야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릴 따르는 비각성자들의 피해는 훨씬 커질 것이다.

심지어 각성자들 역시 스사노오의 말대로 ‘미쳐 돌아가는 시스템’에 의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고 말이다.

“그건 말도 안 돼. 차라리 그럴 거라면…….”

그런데 스사노오는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도시 전체를 이동시킨다.”

“……음?”

“이런 때가 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지만……. 아무튼 비상 사태를 대비해 미리 건설해 둔 이동 플랫폼이 있다. 그걸 가동시키면 공성 보호막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도시를 움직일 수 있을 거야.”

이 말도 안 되는 발상이 실제로 현실화 가능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러니까, 이 도시를 통째로 움직인다고?”

“그래. 그렇게 해서 최대한 마물들이 적은 곳으로 이동하는 거다. 거기서 재정비를 하고, 향후의 대책을 세우면 될 거다.”

확실히 가능하기만 하다면 이상적인 대책이긴 했다.

‘고정된 요새가 아니라 움직이는 요새에서 수성전을 벌인다.’

그런 논리가 발전하며 만들어낸 무기가 바로 현대전의 전차임을 생각해 보면, 꽤나 유효한 전략이다.

도시 전체가 움직인다면 내부의 사람들을 보호하면서 생산 수단은 거의 그대로 유지해 전투 지속력이 보장되고,

동시에 상황에 따라 방어에 유리한 지역을 고를 수 있다는 이점까지 챙기는 것이다.

“좋아. 그래서 그걸 하려면 어디로 가서 뭘 해야 하지?”

“칠지도를 들고 날 따라와라.”

“알겠어.”

난 스사노오를 따라, 그가 인도해 주는 길로 움직였다.

* * *

인간, 다크엘프, 트롤로 이루어진 거대한 아인종 행렬이 평원에 길게 늘어섰다.

무수한 마물들이 도사리는 필드에 무장조차 하지 않은 비각성자들이 돌아다니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지만, 여기서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저, 저쪽에 마물들이!”

누군가가 행렬의 왼쪽 지평선으로부터 달려오는 마물 무리를 보고서 기겁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혀를 차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받아들였다.

“쯧쯧. 저 다크엘프, 태어나서 마물 처음 보는 녀석인가 보네.”

“보나마나 평생 바깥에 나가 본 적도 없는 어디 대단한 집안 금수저 녀석이겠지. 다크엘프 놈들이란.”

“큭큭큭.”

트롤과 인간들이 그를 보며 비웃자, 그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져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이, 이봐! 그냥 보고만 있지 말고 어떻게든 좀 해봐! 총 같은 거 없어?”

“총이 있으면 잡을 수나 있고?”

“뭐?”

“우리 같은 비각성자들은 그냥 보고만 있으면 된다고. 나머지는 ‘그분’께서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그게 무슨…….”

아우우우!

두두두두!

그 순간, 행렬 뒤편에서 소름끼치는 하울링이 들리며 다수의 늑대인간들이 튀어나왔다.

“히이익!”

방금 마물을 목격한 다크엘프 남자, ‘살만’은 아주 가까이 와 있는 그것들을 보고서 거의 기절할 듯이 놀라 바닥에 주저앉았으나.

막상 늑대인간들의 목표는 이쪽이 아니었다.

투콱! 콰악! 쾅!

그것들의 공격 대상은 다름 아닌 맞은 편에서 다가오던 마물 무리.

늑대인간들은 달려가면서 송곳니와 손톱을 더욱 흉포한 톱날처럼 변형시켰고, 그 날카로운 무기를 사용해 이쪽으로 접근하는 마물들을 모조리 찢어발겼다.

“어째서…… 마물들끼리?”

“봤지?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슈. 우리에게는 더 센 마물들이 있으니까.”

살만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늑대인간들은 다가오는 적들을 모두 죽이고 다시 행렬 쪽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은 마치 아인종 행렬을 보호하는 호위병들의 모습이었다.

“마물이…… 우리를…… 보호한다고?”

같은 마물들 간에 영역 다툼이 일어나거나 해서 서로 싸우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마물이 사람을 보호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몇몇 각성자들은 권능이나 스킬 등으로 이와 비슷한 상황을 연출해 낼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규모가 너무 컸다.

거의 수천, 아니, 수만 마리의 마물들이 이 거대한 행렬 전반에 걸쳐서 사람들을 호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허어…….”

살만은 알 수 없게 변해버린 세상 앞에서 넋을 놓고 말았다.

지금껏 어떠한 위협도 없이 잘 살고 있던 도시에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숫자의 마물들이 나타나더니.

각성자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고, 제아무리 대단한 무기도 전혀 먹히질 않았다.

그렇게 마물들의 눈을 피해 고층 건물에 고립되어 있던 어느 날, 하얀 갑옷의 사내와 수많은 아인종 행렬이 나타났고.

보금자리를 잃게 되어버린 그는 얼떨결에 여기에 합류해 무작정 알지도 못하는 길을 걸어 나가고 있다.

이런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사람을 지키는 마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장면을 목격하니 머리가 더욱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아앗!”

콰당.

그렇게 머리가 복잡해진 와중, 옆에 있던 조그만 인간 여자 아이가 바닥에 쓰러졌다.

겨우 열 살이나 될까 말까 한 어린 애였지만, 그녀를 보호해 주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이 난리통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생기는 건 꽤 흔한 일이었다.

“아으으…….”

“얘야, 괜찮…….”

살만이 그 아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려고 했다.

그런데.

“괜찮은가?”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얗게 빛나는 백금 건틀릿이 그의 손보다 먼저 불쑥 나타났다.

그건 이 거대한 행렬을 이끄는 리더, 아후라 마즈다의 손이었다.

‘어느 사이에……?’

저런 눈에 띄는 갑옷을 입은 자가 다가온다면 분명 알아챘어야 하겠지만, 살만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조차 그제야 아후라 마즈다의 모습을 보고서 놀라워했다.

“오오! 백의 구세주이시여!”

“구세주님이!”

“이럴 수가!”

사람들은 그를 ‘백의 구세주’라 불렀다.

혼란스럽게 변해버린 세상에서 갑자기 나타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고 어딘가에 있을 ‘낙원’으로 데려가는 존재.

그를 보고 있으면, 절로 머리를 숙여야 할 것 같은 경외심이 들었다.

“상처가 났구나. 이리 와 내 손을 잡거라.”

“……네.”

여자 아이는 홀린 듯 아후라 마즈다의 건틀릿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하얀 빛무리가 소녀의 몸을 감싸더니, 금세 상처가 아물었다.

“자. 이제 아픈 곳은 없을 거다.”

“고, 고마워요!”

아후라 마즈다는 감사 인사를 건네는 소녀에게 빙긋, 눈웃음을 건넸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두 그의 매력에 매료되었다.

“그분께서 기적을 일으키셨다!”

“오오! 구세주님!”

인간, 다크엘프, 트롤.

종족을 가릴 것 없이 모든 자들이 아후라 마즈다를 찬양했다.

하얀 늑대에 올라타고 행렬의 맨 앞으로 돌아가는 그의 뒤를 향해, 사람들은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정작 살만은 그 장면에서 형용할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지만 말이다.

‘정말 이상하군.’

그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이곳에서 오직 그밖에 없는 것 같았다.

‘……하필 세상이 흉악하게 변하자마자 구세주처럼 나타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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