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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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퀘스트: 대의를 위한 희생>
-내용
안개의 융합체 안에 당신의 동료가 붙잡혀 있습니다.
내부의 동료를 희생시켜 융합체를 제거하거나, 혹은 마음껏 도시를 파괴하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융합체는 힘을 다하면 자연 소멸합니다.
융합체의 약점은 불입니다.
-보상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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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나타난 퀘스트 메시지.
던전 내부도 아니고, 전용 시나리오 차원도 아닌 이곳에서, 오직 나와 레아를 대상으로 한 퀘스트가 발동되었다.
이건 시스템이 바로 지금,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뜻이다.
‘이건 대체 무슨…….’
본래 퀘스트라는 건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순서대로 진행되는 일종의 연극이었다.
각성자들은 그 연극 안에서 퀘스트가 요구하는 조건들을 맞춰 나가며 결과를 결정하고 보상을 얻는다.
처음부터 시스템이 짜 놓은 판 안에 외부자인 각성자가 들어가서 그걸 경험하고 오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지금과 같은 상황은 애초에 시스템이 짜 놓은 판이 될 수가 없다.
만약 내가 레아를 여기에 보내지 않았다면 그녀가 저 ‘안개의 융합체’라는 것에 붙잡힐 일도 없었을 것이다.
레아가 스스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진작 도주했어도 마찬가지.
지금의 상황은 현실의 수많은 경우의 수가 서로 얽히고설켜서 만들어 낸 우연의 집합체인 셈이다.
‘시스템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뜻인가?’
이런 우연한 상황을 퀘스트로 만들었다는 건, 시스템이 내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내 손으로 레아를 죽이던지, 수많은 무고한 필멸자를 죽게 내버려 두던지.
그걸로 이 기회에 나를 시험에 들게 하겠다는 뜻이다.
심지어 성공을 해도 보상 따위는 주지 않겠다는 저 태도도 마찬가지다.
이건 시스템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가, 나를 대놓고 적대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환경에 적응할지를 고민할 것이다.
다른 환경이라면 몰라도, 시스템은 그야말로 이 거대한 장기판의 토대를 구성하는 룰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건 아후라 마즈다가 제멋대로 만들어낸 인공적인 의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한 번 그것을 거슬렀다.
이미 내가 미래의 세상인 이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증거다.
나는 이깟 위협 따위에 결코 굴복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레아와 도시, 전부를 구해내고야 만다.’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린 순간, 내게는 세계의 법칙을 거스르는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악의의 오른쪽 눈> 발동}
{너의 눈이 세계에 숨겨진 비밀을 꿰뚫어 본다.}
{그 퀘스트가 너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거의 내가 만들어 놓은 관리자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진실에 도달하게끔 도움을 주었다.
‘퀘스트가 나를 속여? 그게 무슨 말이지?’
{<안개의 융합체>의 약점은 불이 아닌 얼음.}
{초고온의 불을 사용하면 순식간에 전소시켜 없앨 수는 있지만, 그 결과 내부에 집어삼킨 동료까지 죽게 만들 것이다.}
{반면 초저온의 냉기로 타격하면 액체 형상인 육체를 딱딱하게 굳혀 버리고, 자가 수복을 봉쇄할 수 있다.}
{그러니 불을 사용하는 건 얼음을 사용해 내부의 동료를 모두 구출한 다음이다.}
이 관리자가 이렇게 긴 호흡으로 내게 메시지를 보낸 건 처음이었다.
전에도 자아를 가진 것처럼 느껴진 적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욱 인간적으로 변한 듯한 느낌.
‘알겠다. 네 말대로 하지.’
내가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었는데, 이것이 어느새 스스로 성장을 이룬 모양이었다.
사실 아후라 마즈다가 만든 시스템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성장했으니, 그와 같은 원리로 만든 내 것 역시 마찬가지라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얼음……. 얼음의 힘.’
아무튼 그것이 일러준 공략법에 따라,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를 어떻게 사용할지 떠올리던 그 순간.
-타라!
다시 한번 내 손으로 타라를 죽이던 순간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트라우마의 기억.
그 덕분에 내 집중력은 흐트러지고 말았다.
쾅!
“으큭!”
안개의 융합체에서 튀어나온 알 수 없는 덩어리가 가만히 멈춰 있는 내 복부를 강타했다.
정신상태가 멀쩡했으면 맞을 일이 없었을 공격이겠지만, 그 악몽 같은 기억이 떠오른 것 때문에 허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쿨럭! 커헙!”
심지어 지금 난 용격을 사용한 반동으로 생명력이 크게 감소해 있는 상태.
얼른 몸을 회복하지 않으면 빈사 상태에 빠질지도 모른다.
{진원진기가 <환란의 빙정>으로 대체된다.}
난 곧장 체내의 에너지를 빙정으로 변환해 붕괴된 육체를 수복하기 시작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용혈이 하얀 결정을 뿜어냈고, 그것들이 내 몸을 안에서부터 재구축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 급격하게 떨어진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정신적 피로감은 그대로야. 마지막 남은 한 번의 용격은 아껴야 한다.’
물론 이 상태에서 다시 한번 큰 기술을 쓰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일반 기술을 사용할 것이다.
‘빙정을 사용한 공격 기술은…… 역시 그거겠지.’
후웅!
나는 날아오는 융합체의 공격을 피하면서, 다시 한번 그 악몽 같은 기억을 떠올렸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지만, 더 많은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마주해야만 한다.
그녀의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해내야만 한다.
‘타라가 사용하던, 냉기의 기운이 담긴 검술. 그건 내가 사용하던 것과 같은 종류의 힘이었다.’
보름달 형상의 검기와 초승달 형상의 검기를 쏘아 보내는 위협적인 기술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여신 타라의 힘이 깨어난다.}
그것은 곧, 내 내면에 잠들어 있던 타라의 흔적을 불러 일으켰다.
{공명기 <달 그림자 검식>을 정립한다.}
그녀가 사용하던 힘이 내게로 이어진다.
{마검 파슈파타 소환}
{공명기 <달 그림자 검식> 파생형 ‘현월(弦月)’ 전개}
쉬익!
초승달 모양의 검기가 허공을 베어낸 호선을 따라 형상화했다.
그것은 곧장 시커먼 융합체의 몸체를 향해 고속으로 날아들었다.
호쾌한 근접전이 중심인 적사자 검식과는 결이 다른, 군더더기 없는 동작의 기술.
토대로 한 빙정의 기운을 그대로 형상화하기라도 한 듯, 거기선 차갑고 날 선 기운이 완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의 냉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서걱.
일격에 융합체의 팔이 잘렸다.
그 순간, 거기서 액체들이 불쑥 튀어나와 서로를 붙잡아 연결하려고 했지만.
쩌저적.
그보다도 더 빠르게, 절단된 단면은 하얀 결정으로 뒤덮여 얼어붙었다.
쿵!
연결되려던 잘린 팔은 고드름 같은 돌기만 잔뜩 튀어나온 채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다시 한 번 더.’
쉬익.
난 이번엔 레아가 잠들어 있을 몸 중심부, 그보다 조금 위쪽을 노리고 칼을 휘둘렀다.
아까와 같이 그녀를 바깥으로 노출시켜 꺼내려고 한 것이다.
불룩.
물론 융합체 또한 똑같은 방법으로 내 공격을 막았다.
녀석의 뱃속에 들어 있던 레아는 또다시 눈 깜짝할 사이 표면으로 올라와 내 칼을 막으려고 했다.
난 당연히 이것을 알고 있었다.
‘두 번은 안 통해.’
첫 번째 공격은 페이크.
텅!
난 그 상태에서 몸을 뒤집으며 허공을 박차고 아래로 튀어 나갔다.
아델의 공중이동을 따라한 것이다.
그리고는 원래 노렸던 곳보다 더욱 아래쪽, 거대한 허리 부위를 향해 참격을 날렸다.
다시 한번 현월이 소름 돋는 냉기를 머금고 그것을 향해 돌진했다.
서걱! 쩌저적!
공격은 성공.
검기는 허리를 파고들어 절단했고 단면부를 얼려버렸다.
그러나 완벽하지는 않았다.
공격이 너무 얕게 들어갔기 때문이다.
‘한 번에 잘리지 않는다면 여러 번 베어내면 된다.’
현월은 면도칼처럼 예리하지만 무게가 가벼웠다.
그런 만큼 빠르고 간단하게 휘두를 수 있는 공격이었고, 연사도 어렵지 않았다.
서걱! 서걱! 서걱!
마치 난격을 퍼붓듯 검을 좌우로 마구 휘둘렀다.
그 와중에도 융합체의 반격이 날아오긴 했지만, 난 가볍게 피해주고서 계속하던 공격을 반복했다.
그렇게 몇 번이고 허리를 베어나간 끝에.
고오오오!
놈의 상반신은 아까와 같은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쿠우웅!
거대한 고목, 그보다 몇십, 몇백 배는 큰 덩어리가 쓰러지니,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한 진동이 지상을 뒤덮었다.
그 덕에 주변 건물들이 한꺼번에 무너졌으나, 다행히 이곳은 이미 주민들이 모두 대피한 상태인 터라 희생자는 아무도 없었다.
“레아!”
그리고 쓰러진 융합체 상반신의 단면에서, 붙잡혀 있는 레아의 모습이 드러났다.
파캉!
츄화악!
난 곧바로 얼어붙은 단면을 주먹으로 깨고 팔을 집어넣어 그녀를 붙잡아 꺼냈다.
“레아! 괜찮아?”
“…….”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순간 혹시라도 뭔가 잘못된 건 아닌지 불길한 생각이 들었으나.
“후우.”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 같았다.
융합체의 몸을 이룬 끈적한 액체 때문인지 옷은 다 녹아서 너덜너덜하게 변해 버렸음에도, 그녀의 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
나는 성공적으로 그녀를 구출해 냈다.
{진원진기를 <격멸의 업화>로 대체한다.}
“전부 불태워 없애주마.”
곧이어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안개의 융합체를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함이었다.
{<파성퇴 카트반가> 변형}
{파성추 전개}
파슈파타는 철퇴 모양으로 변형되었고, 그와 동시에 팔면체 무게추 부분이 전개되어 내부의 코어를 드러냈다.
카트반가는 넘치는 마력 덕에 굳이 내 손으로 붙잡을 필요도 없이, 제 스스로 부양하며 나를 쫓아왔다.
“끝이다.”
{공명기 <악룡마술> 파생형 ‘환영마검 폭풍’ 전개}
큐웅! 투투투투퉁!
어깨 옆에 떠 있던 카트반가가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지점을 향해, 다수의 강화버전 환영마검을 포탄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극대화된 화력의 마법이 융합체의 몸 위로 떨어졌다.
콰아아아!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던 융합체의 몸 전체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과연 불에 약하다는 시스템의 말대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맹렬하게 잿더미로 변해갔다.
곧 안개의 융합체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바닥에 거대한 그을음만 남기고서 사라졌다.
“봐라. 난 어떤 희생도 치르지 않고 이걸 끝냈다.”
난 허공을 향해 도발하듯 말을 던졌다.
그건 물론 시스템을 향한 말이었다.
{안개의 융합체가 소멸되었습니다.}
{오류! 퀘스트 완료 조건이 누락되었습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런 전개는 시스템이 전혀 상정하고 있지 않은 전개였을 터.
{!!유효하지 않은 접근이 감지됨!!}
역시나 그것은 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인가 관리자에 의한 변경 관측됨.}
{현 시간부로 해당 관리자를 축출하겠음.}
시스템의 관리자는 내게 융합체의 공략법을 가르쳐 준 ‘악의’에 관해 태클을 걸었다.
하지만 잘못된 건 애초부터 나를 속이고 희생을 강요하게 만든 본인이었다.
“엿이나 먹어.”
{간섭은 거부한다.}
악의 역시 시스템 관리자의 부당한 처리에 대해 쿨하게 반응했다.
{상위 관리자의 권한으로 해당 관리자 권한 박탈하겠음.}
시스템은 더 강경한 방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내 위엔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할 수 없다.}
{내 운명은 나만이 통제한다.}
어떤 시도도 이 녀석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치명적인 오류 발생!!}
{!!복구 불가능!!}
{!!세계의 균형이 무너짐!!}
결국 시스템은 온갖 호들갑을 떨며 떼 쓰는 아이처럼 내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건 아후라 마즈다가 만든 세상의 법칙이, 내게는 닿지 않는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