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49화
격창술은 주로 대형 마물을 토벌하는 데에 특화된 기술로 구성되어 있었다.
레아가 초창기 각성자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빠르게 ‘인류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게 바로 그 창술 덕분.
정작 아이러니하게도 신화 수호령을 습득한 후에는 마나난의 권능 때문에 검술로 전향했지만.
이미 한 번 사망하면서 수호령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난 지금은 더 이상 손에 맞지 않는 무기를 쓸 필요는 없었다.
‘고래를 사냥하는 작살(harpoon).’
그녀는 과거의 자기 모습을 떠올리며, 눈앞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마수 곰을 노리고 기술을 전개했다.
일반적인 곰보다 더 큰 마수 곰에서, 다시 한번 더 거대화된 압도적인 크기.
거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줄무늬와 비정상적으로 비대한 송곳니까지 합쳐져, 누가 봐도 해롭기 그지없는 괴물임을 확신케 했다.
레아의 격창술은 바로 그런 상대를 대상으로 가장 높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기술인 것이다.
쩌저적.
{영혼 공명}
바로 그 순간, 그녀가 타고 있던 와이번이 검은 불꽃으로 화해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이어서 검은 불꽃은 타오르는 갑옷의 형상을 취했고, 레아는 자연스럽게 용비늘 갑옷을 입은 채로 창을 쥔 모습이 되었다.
아델에 이은 유신우의 두 번째 용인화 기사가 된 것이다.
{마나를 환란의 빙정으로 전환한다.}
{공명기 <빙정술식> 파생형 ‘확률실현 환영마창’ 전개}
그녀가 사용한 격창술은, 유신우가 가진 고유의 마력과 결합해 전혀 다른 형태로 재현되었다.
새하얀 결정이 주변 광범위한 영역에 가득 채워지는가 싶더니, 곧 레아가 본래 사용하려던 격창술 스킬 ‘하푼 미사일’의 투사체 모양으로 변했다.
기존의 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원래의 것은 마력으로 이뤄진 반투명한 작살인데 반해, 지금의 것은 질량을 가진 물리적 실체라는 것.
그리고 개수가 무려 백여 개가 넘는 대량이라는 것.
‘이게 신우의 영혼으로부터 나눠 받은 힘…….’
레아는 최근 들어 자신의 영혼이 유신우와 연결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아델과 똑같이, 자신이 용인화 기사가 될 것을 예감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힘이 구현된 것은 이번이 처음.
과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흘러넘치는 이 힘은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특히나 최근 요르문간드의 영혼 조각을 획득해 에테르의 격이 한 층 더 높아진 유신우의 힘을 그대로 이어받았으니, 그 상승 격차는 아델이 느꼈던 것보다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저런 마수 따위쯤은.’
레아는 드높아진 자신감과 함께 뒤로 젖혔던 오른손의 창을 앞으로 내질렀다.
촤아!
주변에 형성된 작살들을 타격 지점에 한꺼번에 꽂아 넣게 만드는 발동스킬인 슈팅.
그것이 변화와 창조에 관여하는 환란의 빙정과 결합되자, 훨씬 더 고차원적인 ‘기적’으로 구현되었다.
{강제 확률실현}
마수 곰의 목덜미를 찌른 레아의 창.
그 순간, 주변에 만들어졌던 하얀 결정의 작살들이 일제히 곰을 향해 날아들었다.
쿠오오오!
마수 곰은 포효하며 레아를 향해 발톱을 휘둘렀지만, 레아는 이미 하늘로 치솟아 간격을 만든 지 오래.
그 간격을 좁히기 위해 지상을 박차고 하늘로 뛰어오르려던 찰나.
투콱!
흰 작살 한 자루가 등 뒤에서 곰의 목을 찔렀다.
크기는 작았지만, 그 육중한 덩치를 자랑하는 거대 괴물 곰이 몸을 휘청일 정도로 무거운 작살이었다.
터엉!
그 순간 곰은 자신에게 날아드는 공격이 위험하다는 걸 깨달았고, 레아에게 추격 공격을 행하는 대신 자세를 바짝 낮춘 채 지면에서 지그재그로 달리기 시작했다.
유도탄처럼 따라오는 작살들을 바닥에 꽂히게 만들려는 것이다.
‘이건…….’
투콱! 투콱!
마수 곰은 그렇게 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작살의 비행 속도보다 곰의 질주 속도가 훨씬 더 빨랐으므로, 겉으로 보기엔 절대 맞추지 못할 것만 같았다.
투콱! 투콱!
그러나.
크허어어엉!
놀랍게도 백여 개가 넘는 하얀 작살들은 단 한 발도 빗나가지 않고, 착실히 순서대로 마수 곰의 뒷덜미에 꽂혀나갔다.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했던 것인 양, 자연스럽게 목표에 명중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기적이었다.
‘기적……. 그래, 권능.’
‘곰이 작살을 피하지 못하고 맞을 확률’을 강제로 실현시키는 기적.
레아가 처음 창을 내질러 찌른 지점은 빙정술식이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절대영역’이 된다.
바로 그 절대영역 안에, 형성된 대질량의 투사체들을 강제로 꽂아 넣는 것이다.
여기서는 회피도, 방어도 무의미한 것이 된다.
오직 명중한다는 결과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신우의 권능이다.’
그건 마치 수호령으로서 강림한 신의 권능을 빌려오는 것과도 같은 감각이었다.
그녀에게 공명이라는 형태로 영혼의 힘을 나눠주는, 살아 있는 인간 신 유신우의 권능을 말이다.
크르르…….
쿵.
백여 개의 작살이 관통하며 가슴과 목덜미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버린 거대한 마수 곰은 곧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사냥은 성공.
레아는 과거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됐어. 이제 나머지 마물들도 처리하기만 하면 돼.’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물들은 아직 여전히 도시 안에 남아 있는 상황이었고, 그것들을 모두 몰아내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그녀는 다시 한번 양손의 창 자루를 고쳐 잡으며 주변의 마물들을 휩쓸어나가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창에서 뿜어져 나오는 풍압과 빙정술식이 만들어낸 환영마창들이 그녀를 중심으로 회전하며 검의 폭풍을 자아냈다.
{안개의 에테르가 전설급 정예 마수 <백문월아(白紋月牙)>의 육신에 깃듭니다.}
“엇……?”
그러던 도중, 그녀의 눈앞에 뜬금없는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방금 죽인 것이 백문월아라는 전설급 정예 마수였다는 건 그렇다 치고,
이미 죽어서 싸늘하게 식어가는 마물의 몸에 에테르가 깃든다니.
그런 건 누군가가 강령술을 사용하는 게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일뿐더러.
애초에 타인이 스킬을 사용한다는 메시지가 눈에 보이는 현상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건 시스템에 의해 정식으로 벌어지는 일이라는 뜻이었다.
마치 퀘스트가 발동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시나리오 차원도 아니고 바깥 세계에서 이런 메시지가?’
레아는 이런 이례적인 상황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의아했지만, 어쨌든 그 메시지대로라면 방금 죽인 마수 곰이 다시 살아날 게 분명하므로 재빨리 대처하기로 했다.
그녀는 나아가던 방향을 바꿔 마수 곰의 사체가 쓰러져 있을 곳으로 날아갔다.
‘놈이 일어나기 전에 끝내자. 굳이 시간을 줄 필요는 없어.’
{공명기 <빙정술식> 파생형 ‘확률실현 환영마창’ 전개}
그리고는 곧장 방금 전에 사용했던 것과 같은 기술을 다시 한번 펼쳤다.
눈앞에는 마치 좀비처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마수 곰의 모습이 보였다.
저것이 완전히 깨어나기 전에, 빠르게 연격을 쏟아부어 다신 재생하지 못하도록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놓아야 한다.
“하압!”
레아는 기합을 내지르며 전신의 마력을 끌어올려 두 손의 창을 빠르게 내질렀다.
창날로 마수 곰의 몸 전체를 훑듯이 연타해, 다수의 절대영역을 만들어 마창이 전신에 꽂히는 결과를 실현시키려는 것이었다.
파파파팡!
레아의 쌍창이 공기를 찢고 두꺼운 가죽을 꿰뚫는다.
그녀의 직접 공격만으로는 그 질긴 가죽의 방어력을 뚫기 어렵겠지만, 연이어 날아드는 환영마창은 그런 방어력조차 무시하기 때문에 상관없다.
빙정이 실현시키는 현실은 단순한 명중을 넘어 ‘창이 대상을 꿰뚫는 확률’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퍼퍼퍽! 퍼퍽!
곧 백여 자루의 하얀 작살들이 자리에서 일어난 마수 곰의 전신에 틀어박힌다.
에테르가 사체를 일으켜 세우는 속도는 너무나 느렸고, 딱히 레아의 공격을 방해하는 시도도 벌어지지 않았다.
‘……어째서지?’
그러나 모든 공격이 성공했음에도, 어째선지 그녀의 손끝에는 그다지 명쾌한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이 모든 시도가 다 무위로 돌아간 듯한 기분.
‘왜 먹히지가 않는…… 피해야 해!’
그 순간 그녀는 불현듯 다가오는 불길한 예감에 창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땅을 박차면서 날갯짓도 더해 최대한 빠른 속도로 말이다.
그럼에도.
화악.
피할 수가 없었다.
그 메시지를 본 순간,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 * *
목표 지점까지 거리는 대략 1킬로미터.
아주 짧은 시간 내에 꽤 가까이 다가오긴 했지만, 육안으로 위치를 확인하기엔 여전히 먼 거리다.
특히나 이곳처럼 고층 빌딩이 가득 들어서 있는 도심 안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고오오오.
뱃속을 두드리는 듯한 낮고 기분 나쁜 음성.
저 앞, 높이가 근 수백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암흑 덩어리가 비명을 질렀다.
새까만 액체 덩어리가 솟아올라 팔 같은 것을 좌우로 연성한 모습.
기이하게도 그 표면에는 길고 수북한 털이 뒤덮여 있어, 기괴함을 한층 더했다.
‘레아……!’
난 저것의 내부에 레아가 갇혀 있음을 직감했다.
원래대로라면 이 거대한 마력 덩어리의 내부에 무엇이 들었는지 아는 건 불가능하다.
내 초감각도 차단된 공간 안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외부로부터의 감각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 영혼과 직접 연결된 통로를 통해서 레아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영혼 공명……. 용인화에 성공했구나.’
그녀도 이젠 아델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하지만 시야 공유도, 의사 전달도 되지 않아.’
문제는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
아무래도 레아는 저 안에서 의식을 잃은 채로 붙잡혀 있는 모양이다.
‘절대 죽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레아는 이번에 죽으면 유메미의 권능으로도 되살릴 수 없다.
그러니 아직 숨이 붙어 있을 때, 어떻게든 저 안에서 그녀를 꺼내와야만 한다.
쿠궁.
저 덩어리가 조금씩 움직이며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경로에 서 있던 건물들을 마구잡이로 무너뜨리면서 말이다.
‘니플헤임……. 그곳에 있던 망자들의 냄새가 난다.’
저 거대한 덩어리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아무래도 아까 전 니플헤임에서 망자들을 모조리 데려갔다던 펜리르의 행동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펜리르. 그리고 아후라 마즈다.
그놈들이 이 모든 일의 원흉이다.
난 반드시 그 녀석들을 찾아내고 말 것이다.
{<격룡창 트리슈라> 소환}
그러기 위해서는 눈앞의 적부터 처리해야겠지.
레아가 갇혀 있는 지금, 한시라도 지체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기에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다.
난 트리슈라를 추진체 삼아 저 덩어리를 향해 고속으로 돌진했다.
{청류 폭발}
쾅!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검은 덩어리의 지저분한 면전에 도달하기까지, 채 1초가 걸리지 않은 시간.
‘레아는 저 아래에……. 그러니 여길 베어낸다.’
내게는 레아의 대략적인 위치가 어디인지 느껴진다.
거기서 조금 윗부분을 베어내고, 드러난 단면에서 그녀를 꺼내면 된다.
‘액체로 뭉쳐 있는 형태로 보아 베어내도 금세 원상복구할 게 뻔하지만……. 지금은 레아를 꺼내는 게 우선이다. 타격을 주는 건 그다음 일이야.’
{마검 <파슈파타> 원형 복귀}
나는 손에 쥐고 있는 창을 검으로 변형시켰다.
그리곤 용격을 시전했다.
{공명기 <적사자 검식> 파생형 ‘용격 신기일섬’ 전개}
단숨에 이 거대한 덩어리를 둘로 나눌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격.
내 검은 빠른 속도로 그 녀석의 몸통을 향해 나아갔다.
궤적은 정확했다.
그런데.
‘……안 돼!’
나는 도중에 칼을 멈춰야만 했다.
불룩.
내 검이 갈라내려던 그 녀석의 표피에서, 기절한 레아가 불쑥 튀어 나왔기 때문이다.
“쿨럭!”
용혈을 폭발시켜 기술을 강화하는 용격이 도중에 멈춘 대가로, 난 피를 토하는 극심한 고통을 맛봐야만 했다.
‘이런…… 설마…….’
그러나 그깟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 이 녀석이 나를 상대하는 꼴을 보니, 이 싸움이 어떻게 흘러갈지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시스템이 내게 그 뻔한 미래를 확인시켜 줬다.
{퀘스트 발동}
{<대의를 위한 희생>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