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48화
한차례 크게 휩쓰는 공격을 행한 후, 마물들의 군세는 잠시 줄어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건 내 착각이었다.
“수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어난 것 같소.”
“이 정도의 물량이 이 도시 근방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었나?”
“없었소. 이 근방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이런 수준의 대규모 마물 무리는 처음 봤소.”
라이진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이건 정말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마물 사냥에 있어서는 드워프 중에서도 굉장히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진 자였으니 말이다.
그만큼 지금의 상황은 서 대륙에서도 이례적인 것이었다.
“전략을 바꿔야겠군.”
나는 파도처럼 밀고 들어오는 마물들을 보며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방금 전처럼 한 번에 휩쓸어버리는 기술을 펼치기보다는, 우직하게 밀어붙여서 마물들을 도시 밖으로 몰아낼 필요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조력자들이 필요하다.
“라이진.”
“말씀하시오.”
“저 앞의 마물들이 점령한 구역에 갇힌 민간인들을 구출해 줘.”
단신으로 고속의 움직임을 펼치는 게 가능한 그라면, 저 적들 사이를 뚫고 사람들을 구해내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구출? 저것들을 내버려 두고서 말이오?”
“여긴 내가 맡는다. 할 수 있겠지?”
“어려운 일은 아니오.”
푸쉬익!
그는 자신감을 내비치고는, 곧바로 기계 신체의 접합부를 전개하더니 그 사이로 스팀을 뿜어냈다.
급격한 움직임을 실행하기 전, 몸의 부하를 줄이기 위해 열을 배출하는 것 같았다.
“그럼.”
파지직!
그러고는 자신의 몸에 수호령인 타케미카즈치를 투영한 채 전기 불꽃을 튀기며 빠른 속도로 튀어 나갔다.
‘아델, 너도 라이진을 도와서 사람들을 구출해.’
‘알겠습니다.’
난 그가 떠나는 걸 보자마자 머릿속으로 아델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녀는 이곳 외에 다른 방향의 구역들에는 적이 없는지 정찰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연결된 시야를 통해 다른 구역은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했고, 그래서 곧바로 구출 작업에 투입시켰다.
아델 또한 단신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데에 특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라이진과는 궁합이 잘 맞을 것이다.
“그럼 이제, 그물을 쳐볼까.”
여기서부터는 내가 힘을 쓸 차례다.
나는 소환된 야차와 나찰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힘을 주입시켰다.
{<환란의 빙정>과 <카트반가의 프라나>를 조합}
{<검은 매 야차>가 <빙벽의 회색곰 야차>로 변형된다.}
기껏 해봐야 사람의 상반신 크기였던 검은 매 야차들이, 제각기 덩치를 급격하게 불리더니 거대한 마수 곰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 크기는 어지간한 2층 주택만큼 크고, 상체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해 일견 웨어베어(werebear)처럼 보이기도 하는.
극도로 흉포한 이빨과 발톱을 가진, 야차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괴물이었다.
‘전방을 반원형으로 감싸며 전진.’
총 45기의 야차들은 내 명령에 따라 1오 횡대로 줄을 맞춰 선 다음, 달려드는 마물들을 감아 안듯이 둘러싸며 전방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쾅! 촤아악!
온갖 종류의 마물들이 그 야차들을 마주하자 공격을 쏟아부었지만, 야차들은 끄떡도 하지 않고 우직하게 나아갈 뿐.
투콱!
이따금 그것들의 근처로 다가온 마물들은 길고 거대한 앞발에 의해 가차 없이 찢어 발겨졌다.
육중한 체질량과 두텁고 단단한 발톱이 합쳐진, 막강한 물리 공격력의 앞발 공격이 연달아 이어졌다.
크르르…….
그러자 용맹하게 달려들던 마물들이 이 괴물들의 기세 앞에서 주춤하며 뒤로 조금씩 물러났다.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놈들은 나름대로 내 야차에 대한 공략법을 찾으려 했다.
제아무리 극도로 호전적인 마물들이라지만, 그것들도 마냥 바보인 것만은 아닌 모양.
화르륵! 퍼엉!
마물들 중에서 원거리 공격을 행할 수 있는 개체들이 불꽃을 뿜었다.
야차들이 형성한 전선을 무너뜨리려는 속셈이었다.
쩌저적!
그러자 공격을 당한 야차는 하얀 결정으로 몸을 경질화시켜 방어력을 극대화했다.
게다가 그건 단순히 몸만 단단해지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전방 넓은 범위에 크고 두꺼운 장막을 펼쳐서 이중 방어 효과를 만들어냈다.
내가 사용하는 빙정술식의 파생형인 강성 차단벽과 비슷한 형상.
야차들은 그 상태로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전진할 수 있었다.
덕분에 마물 무리는 점점 더 거리를 좁혀 오는 그들로부터 피하기 위해 뒤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놈들을 입구까지 몰아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겠지.’
빙벽의 회색곰 야차는 전선을 밀어내는 용도로는 매우 뛰어났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것만은 아니었다.
투화아악!
마물들 사이에서 덩치 큰 마수 멧돼지 하나가 나타났고, 빙벽을 전개하고 있는 야차를 향해 입에서 마나 격류를 쏟아냈다.
그러자 그 커다란 몸집의 야차가 뒤로 밀려나기 시작하더니.
터엉!
급기야는 단단하던 빙벽이 깨지고 말았다.
물론 그러고도 몸의 경질화는 여전히 유지되었기에, 방어력은 건재했다.
문제는 그 무너진 빈틈으로 다른 마물들의 공격도 집중되기 시작했다는 것.
그 포화가 지속되다 보면 결국 저것도 쓰러질 수밖에 없다.
야차의 방어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다.’
하지만 내겐 아직 한 가지 수가 더 남아 있었다.
난 그저 공격을 한곳에 집중하기 위해, 적이 빼곡하게 뭉치는 이 시점을 노리고 있었을 뿐.
{<격멸의 업화>와 <카트반가의 프라나>를 조합}
{<서리폭풍 나찰>이 <마술포격 나찰>로 변형된다.}
9기의 나찰들은 양손에서 빙결이 아닌 화염의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야차의 벽 뒤에서, 전방의 하늘을 향해 손을 뻗더니.
투확!
일제히 검은 불덩어리를 쏘아냈다.
크기는 야구공만 한 크기였지만, 그 안에 담긴 불길의 힘은 보이는 것 이상이었다.
그 불덩어리들은 곡선을 그리며 날아올라 거대한 곰의 머리 위를 넘어 적이 있는 곳으로 떨어졌다.
콰쾅! 콰콰쾅!
각각의 구체들이 폭발을 일으키며 다수의 거대한 화구(火球)를 형성했다.
마물들은 그 공격에 휩쓸려 어찌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카트반가의 고화력이 아홉 마리의 나찰들의 손길을 통해 구현되니, 마치 종이를 조각내는 파쇄기처럼 마물들을 갈아버렸다.
‘경질화 해제. 남은 것들을 처리하며 전진.’
그리고 재차 야차들에게 전진 명령을 내려, 전선을 더욱 앞쪽으로 밀어냈다.
투콱! 츄카각!
야차들은 결정 경질화를 해제한 다음, 압도적인 신체를 내세워 우왕좌왕하고 있는 마물들을 발톱으로 찢으며 나아갔다.
적의 숫자가 줄어들며 진형이 붕괴된 덕에, 야차들은 집중포화를 맞을 걱정 없이 한결 수월하게 근접전을 행할 수 있었다.
“우리도 따라가면서 지원하자!”
“가자!”
그때, 뒤에서 드워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신을 강화복과 화기로 무장하고서 도시를 지키기 위해 나타난 A&A의 병력이었다.
타타타탕!
그들은 야차의 어깨너머로 화력을 투사했다.
드워프들은 그렇게, 움직이는 튼튼한 방벽으로 몸을 보호받으며 사격을 행할 수 있었다.
“저, 저도 돕겠습니다!”
한편, 그 사이엔 마법 지팡이를 쥐고 나타난 고든도 끼어 있었다.
그는 짧은 막대를 사용하던 유메미와는 달리 커다란 스태프 형태의 지팡이를 들고 있었지만.
그 덕분에 전보다 훨씬 더 그럴듯한 마법사처럼 보였다.
그래 봤자 아직 초급 수준이겠지만.
“뭐야? 네가 뭘 할 수…….”
파아앗.
그 순간, 그의 지팡이에서 빛이 퍼져 나오는가 싶더니, 곧 각각 도마뱀, 늑대, 까마귀의 형태를 한 동물형 영체 3마리를 불러냈다.
불, 물, 번개의 속성 마력이 정령들의 외부로 흘러나오는 걸 보아 아직 심화 단계에 불과한 걸로 보이지만.
사실 수련 기간을 생각해 보면 맨땅에서 시작한 그가 벌써 거기까지 도달한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것도 정령을 한 번에 세 개나 소환했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정말 천재가 맞나보군.’
저런 타고난 재능의 각성자가 그런 시골에 처박혀 있던 게 믿기지 않을 정도.
‘좋아. 그럼 이대로 도시 방어를 해낸다.’
아무튼 난 여세를 몰아 마물들을 한꺼번에 바깥으로 밀어내기로 마음먹었다.
‘마스터. 마물들이 습격한 구역의 생존자를 모두 구출했습니다.’
때마침 라이진과 아델이 이 앞에 숨어 있을 생존자들을 모두 구해냈다는 소식도 들렸다.
흘끗.
우우웅.
유메미는 내 옆에서 이다음 수를 위해 제자리에서 눈을 감고 대형 마법을 캐스팅 중이고.
이대로 탄력을 유지한 채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면, 당장 도시를 불어닥친 위기를 타파하기엔 충분할 것이다.
“가자! 이대로 밀고 나간다!”
“예!”
내 뒤에는 복귀한 아델과 용기사들이 따르고 있었다.
난 그들에게서 연결받은 마력을 극한까지 활용해, 야차와 나찰의 힘을 더욱 끌어냈다.
그렇게 전세를 완전히 뒤집어엎는 반격이 시작되려던 찰나.
고오오오.
전방의 먼 곳에서, 귀기 섞인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저절로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곡성이었다.
* * *
“뭐, 뭐야?”
“……귀신인가?”
“그게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여기서 귀신이라니?”
따지고 보면 귀신보다도 더 무서운 것들이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한낱 그런 미신 따위에 겁을 먹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저 소리는 그저 그런 망상을 불러일으키는 음성 같은 게 아니었다.
그 자체에 강제로 공포심을 느끼게 만드는, 마력이 담겨 있는 파장이었다.
그리고 그 파장은 내게 있어서만큼은 아주 친숙한 것이었다.
‘이건…… 니플헤임의?’
불과 몇십 분 전까지 내 피부에 와닿던 그 느낌.
니플헤임의 망자와 악마들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마력이었다.
‘설마…… 펜리르의 군대가 여기에?’
난 그 순간, 요르문간드의 기억에서 엿봤던, 하계로 올라가려는 펜리르의 계획이 떠올랐다.
니플헤임의 망자가 지닌 마력이 여기서 느껴진다는 건, 그의 계획이 실현됐다고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마력의 크기가 극단적으로 크다. 진짜로 그 녀석이 여기에 온 걸지도 몰라.’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낭패다.
그 정도의 강자는 지금 내 힘만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실상 내 홈그라운드나 다름없는 이곳 타카마 시티에선 총력전을 펼쳐 어찌어찌 그 녀석을 잡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될 수많은 아군들을 생각해 보면, 결코 타산이 맞는 싸움이 아닐 것이다.
‘일단 상황을 지켜봐야겠어.’
그러나 다행히도 당장 저 너머에서 펜리르의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와는 다른 종류의, 망자와 마물의 힘이 혼합된 듯한 이질적인 존재가 느껴지긴 하지만.
아직은 진짜 불멸자에 미칠 수준은 아니었기에, 괜스레 섣불리 후퇴할 필요는 없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그 순간, 내 뇌리에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레아, 최윤아.’
아까 전, 내 지시를 받고 정찰을 하러 나간 두 사람.
그들이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마물들의 우두머리를 관측하러 간 그들이 움직였을 방향은 한 군데.
‘설마, 저기에……?’
적의 후방. 즉 지금 저 기괴한 마력이 느껴지는 지점이다.
내 생각이 맞다면, 그 두 사람은 필연적으로 저것과 마주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젠장!”
펄럭!
난 그 자리에서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마스터, 어디 가십니까!”
‘아델, 넌 여기서 전투를 지속해라. 야차와 나찰들의 통제 권한은 너에게 넘긴다.’
‘……알겠습니다!’
여기서 전선을 무너뜨렸다간 마물들 일부가 새어나가 도심 중앙으로 침입할 수도 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모든 병력을 이곳에 둔 채, 나는 홀로 레아와 최윤아가 있는 H구역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