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246화 (246/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46화

“날 죽이지 마…… 제발.”

타라가 내게 애원했다.

하지만 난 두 손으로 그녀의 목을 졸랐다.

으드득.

기분 나쁜 감촉이 손끝을 타고 내 등골로 흘러 들어온다.

그녀는 힘없이 축 늘어져 바닥에 누웠다.

타라의 눈빛이 탁해지고, 이윽고 흰자마저 검게 물들었다.

그녀의 몸이 발끝에서부터 천천히 가루로 변해 소멸되어 가기 시작했다.

“안 돼.”

난 뒤늦게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그녀의 남은 육신을 붙잡으려 했다.

파사삭.

하지만 손이 닿는 부분은 마치 말라 비틀어져 수분이 없는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녀의 몸이 붕괴된다.

“제발……. 죽지 마.”

내 손으로 죽여 놓고, 이제 와 죽지 말라고 애원하다니.

난 바닥에 주저앉아 타라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끝내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스르륵.

손가락 사이로 가루가 되어버린 타라의 육신이 빠져나간다.

마치 흐르는 물처럼 단 한 톨도 남지 않고 모조리 사라졌다.

“내가……. 죽였구나.”

“그래. 네가 죽였지.”

가루 더미 사이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미를 파헤쳐 안을 들여다보자, 거기엔 아주 작은 크기의 이진윤이 있었다.

“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너 때문에 죽게 될 거야.”

그가 나에게 저주를 퍼붓듯이 말했다.

생각해 보면, 그 역시 나 때문에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와 만나지 않았으면 그런 일에 휘말리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차라리……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면.’

아후라 마즈다의 계획대로 신들이 통제하는 세상이 다시 돌아오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면.

그 나름의 질서 안에서 평범하게 살지 않았을까?

계속해서 마음이 약해져 간다.

“너 때문이야. 전부 다. 너만 없었으면 내가 죽을 일도 없었어.”

이진윤이 나를 비난했다.

나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네가 네 사람들을 지키겠다며 죽여간 수많은 이종족들. 이름 모를 인간들. 그들을 희생시키는 것과 필멸자를 희생시키는 신들의 행동이 다를 게 뭐가 있지? 넌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

“이제 그만 포기해. 너도 할 만큼 했잖아.”

그 말을 듣자마자,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앞으로 몸이 기울어져 쓰러진다.

-……씨.

의식이 흐려져 간다.

-……려요.

-신우…… 정신……!

* * *

“아.”

난 어느샌가 푸른 사막 위에 서 있었다.

이곳은 니플헤임.

요르문간드의 영혼 조각을 찾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었지.

이제야 생각났다.

-신우 씨. 괜찮아요?

유메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전 환상의 마지막 부분에서 내게 말을 걸었던 건 그녀였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너무 힘들 것 같으면 오늘은 그냥 쉬세요. 방금 전 그건…….

“……너도 본 건가?”

-네.

그녀도 내 트라우마에 의한 환상을 봤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영혼을 전이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인 접촉이 필요하다 보니 그녀 역시 내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건 신우 씨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리고 신우 씨가 하는 일이 무의미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걸 확신할 수 있지?”

-신들은 존재 그 자체로 세상을 뒤틀어서 사람들을 죽게 만드니까요. 그자들 때문에 희생되는 생명의 숫자가 훨씬 많으니까…….

“생명의 숫자라. 대를 위해 소의 희생은 용인해도 된다는 건가.”

-그건…….

유메미의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저 말은 내가 내뱉고도 실소가 나오는 말이었다.

“……풉. 언제부터 내가 그딴 걸 신경 썼다고.”

내 행동은 어디까지나 복수심에 의거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이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아니라, 소를 위한 대의 희생일지라도 행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그 사람들을 다 지키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신경 쓰지 마. 다 내가 무능해서 그런 거지.”

-신우 씨…….

“더 강해지면 돼. 감히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더 높은 곳에 닿으면 돼.”

나는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만들리라 다짐했다.

그러려면 먼저 이곳에서의 일을 해내야겠지.

요르문간드의 남은 영혼 조각들.

그걸 전부 찾아내서 완전한 ‘격’을 갖춘다.

그러면 과거의 내가 가졌던 그 힘에 도달하기 위한 준비가 완료되는 것이다.

‘모든 불멸자를 제거하고 필멸의 법칙을 바로세운다.’

난 다시금 세상이 내게 속삭였던 사명을 떠올렸다.

솔직히 그게 옳은 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나의 목적과 일치하고 있다.

그로써 시바의 힘을 손에 쥘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따를 것이다.

후우웅.

나는 다시 눈앞의 풍경을 살폈다.

니플헤임은 여전히 춥고 을씨년스러웠다.

‘요르문간드의 남은 영혼 조각……. 우선 망자들로부터 정보를 얻어내야겠지.’

이 넓은 세계에서 보물 찾기를 하려면, 일단은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그러니 이전과 마찬가지로 펜리르가 세운 마을들을 돌면서, 소문을 들을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그 사이에 또다시 뭔가 풍경이 바뀐 모양이군.’

한편, 펜리르의 영토를 거닐던 나는 또 한 번 이곳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걸 알아챘다.

지난번엔 허허벌판에 새로운 성과 마을들이 들어서면서 악마와 망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는데.

오늘은 그때완 반대로 다시 영토에 활기가 사라진 듯한 느낌이었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바깥세상과 이곳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기 때문인 걸까.

내가 현실 세계로 가 있는 동안 이곳에선 또다시 수 년에서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 걸지도 모른다.

‘아무도 없는 건가.’

아무튼 난 망자들의 흔적을 찾아, 텅 빈 마을들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벌써 세 군데를 찾아냈지만 모두 마찬가지였다.

스윽.

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천 조각을 주웠다.

‘찢어진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거기서 느껴지는 미세한 마나의 흔적이 내게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사이코메트리 같은 마법을 쓰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곳에서 어떤 다툼이 있었다는 것이다.

‘혹시 안을 살펴보면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단순히 마을이 텅 비어 있다는 것만 확인하고 떠날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가 흔적들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빠지직.

집 안에 발을 내딛는 순간, 발아래에 유리 조각 같은 것들이 밟혀 으스러졌다.

이 집에 살던 망자들이 쓰던 식기구인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자, 난장판이 된 집안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병과 그릇들이 깨져 있고 가구가 부서져 있군. 전투라도 벌어진 건가?’

상태가 엉망진창인 건 그 집안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다른 집들도 다 마찬가지였고, 그것들을 보고 난 뒤 다시 길거리에 나오자, 이번에는 온갖 다툼의 흔적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망자들의 마을 자체가 더러운 환경이라 잘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았다.

이곳에서 대규모의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전투가 벌어졌다면…… 당연히 거리에 시체가 널려 있어야겠지. 하지만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건, 이곳의 사람들이 모두 어딘가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그것도 강압적으로.’

그제야 여기서 일어났던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장한 병사들이 힘 없는 주민들을 강제로 이끌고 가는 장면.

심지어 그 과정에서 죽거나 다친 자들까지 데려가는 장면들이 말이다.

“날…… 꺼내줘.”

그때, 주변에서 기어 들어가는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존자인가?’

난 그 목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냈다.

위치는 한 주택 뒷마당 한가운데.

손으로 땅을 파내자, 둥그런 항아리 하나가 묻혀 있는 게 보였다.

그 뚜껑을 열어보니.

“……당신은?”

“히익! 사, 살려주세요!”

지난번 내게 겁박을 당해 요르문간드의 위치를 알려줬던 그 망자가 그 안에 숨어 있었다.

* * *

“이게 다 어떻게 된 건지 말해봐.”

난 그를 데리고 나와 의자에 앉혀놓고 이곳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게 했다.

참으로 운 좋게도 아무래도 이전에 나를 한 번 마주쳤던 녀석이라 굳이 힘을 쓸 필요는 없었다.

그냥 내 눈을 보는 것만으로 이미 공포에 떨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그게…….”

“안심해. 여기에 널 해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나 말고는 말이야.”

“헉.”

“그러니까 아는 대로 순순히 말하는 게 좋을걸.”

“네, 넵! 알겠습니다!”

그자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자신이 봤던 것, 들었던 것들을 낱낱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 일주일 전쯤부터, 마을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악마들이 망자들을 강제로 데리고 가서 잡아먹는다는…….”

“악마가 망자를?”

“예. 그런 건 저도 처음 듣는 얘기지만, 진짜로 다른 마을들과 연락이 끊어졌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요.”

사실 악마가 영양가도 없는 망자를 잡아먹어서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적어도 생기라는 게 존재하는 하계의 필멸자들이라면 모를까.

물론 이곳 지옥에선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얘기긴 하다.

그냥 재미로 죽이고 잡아먹었다고 해도 여기선 말이 되니 말이다.

그러나 난 거기에 필연적으로 어떤 의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땅의 악마들이라면 당연히 펜리르에게 충성을 바치는 병사들일 터.

그 악마들이 단체로 망자를 잡아들였다면, 거기엔 당연히 펜리르의 어떤 의도가 들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그때 요르문간드의 기억에서, 펜리르는 군사를 일으켜 하계를 침공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했었지.’

상식적으로, 군사를 양성하려면 생산기반은 최대한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계속 병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풍경을 보면, 펜리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다 털어서 완전히 떠나려고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 니플헤임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을 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건 시스템이 용납하지 않을 텐데……?’

아몬도 그렇고, 마르코시아스도 그렇고, 지옥의 존재가 하계로 나가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설령 균열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시스템에 의해 금세 쫓겨날 것이 분명한데.

대체 뭘 믿고 이런 짓을 저지른 걸까.

“그래서 전 만약을 대비해서 집 뒤에 땅을 파놓고 대피 장소를 만들어 놓았는데, 진짜로 악마들이 들이닥친 겁니다.”

“그 악마들이 사람들을 잡아가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 안에 숨어 있었다. 그게 끝인가?”

“예! ……물론 그뿐만은 아니긴 하지만.”

“뭐가 더 있지? 중요한 게 있으면 전부 말해. 아니, 사소한 것까지도.”

“그게…… 펜리르 님이 이곳에…….”

그는 ‘펜리르’라는 말을 할 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목소리를 작게 낮춰 속삭이듯이 말했다.

“뭐? 펜리르가?”

“으익! 목소리 좀 낮추십시오!”

나는 아랑곳 않고 큰 목소리로 그를 닦달했다.

“그래서, 그 녀석이 여기 와서 무슨 말을 했지? 생각나는 대로 전부 말해봐.”

“그, 그게…… 저기…… 저도 참……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일어났는데.”

“이해가 안 되는 일?”

“펜리르 님이…… 마치 누군가의 명령을 듣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누군가의 명령을 들었다고? 그 펜리르가?”

그건 나도 믿기 힘든 얘기였다.

펜리르는 니플헤임의 삼남매 중 맏이로서, 적어도 이 세계 안에서는 명실상부한 최강자였다.

요르문간드도, 헬도 그를 이길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가 다른 자의 명령을 듣는다니.

“몸집이 작은…… 아, 그래! 선생님과 비슷한 체구의 인간이었습니다!”

“인간?”

“새하얀 갑옷에…… 어, 맞아. 새하얀 빛으로 이뤄진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한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새하얀 빛의 날개.

백선율.

아후라 마즈다.

“그러더니…… 펜리르 님이 늑대 형상으로 모습을 바꿨고, 그 인간은 펜리르 님의 등 위에 올라타고 어딘가로 떠났습니다! 그분의 등에 올라탈 수 있는 자가 있을 줄은…….”

“방향이 어디지?”

“어, 그러니까…….”

그자가 기억을 더듬으며 그들이 떠나간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려 하던 찰나.

내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시스템 개변}

{신화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