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38화
나는 일단의 상황을 종료시키고 옹구스의 수호령을 가진 각성자와 건물 안에서 대면했다.
내부는 곧 쓰러질 것처럼 보이는 허름한 병원.
치유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정보대로, 이곳에서 환자들을 받고 있었던 모양이다.
“저…… 그러니까, 아프신 데가 어디인……?”
남자는 쓰고 있는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는 185㎝ 정도의 큰 키에 마른 체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 안경까지 끼니 더 왜소해 보이는 느낌이 들게 했다.
“…….”
“으음. 말씀하시기 힘드신가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런 분들이 종종 계시거든요. 자신의 환부를 의사한테도 드러내길 꺼리는……. 그게 잘못된 건 아닙니다, 물론. 저는 시간이 많으니, 생각이 정리되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저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하.”
밤늦은 시간에 불쑥 찾아와 진료실 앞에서 양아치들과 시비가 붙은 것도 모자라, 대뜸 안에 들어온 채 말없이 가만히 있는 나를 기다린다니.
아까 전 그 트롤 양아치들도 이 자 앞에서는 고분고분한 어린애처럼 행동하는 걸로 보아, 이 자는 정말 보기 드문 선인임이 틀림없었다.
‘수호령만 아니었어도…….’
보통 때라면 이런 사람을 굳이 건드릴 이유는 없다.
무엇보다도 충돌할 이유가 없으니까.
이쪽 세계에선 어느 정도의 무력을 갖추지 못했으면 경쟁이나 갈등을 치를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실제로 이 자가 이런 깡촌에 틀어박혀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아무도 그가 가진 걸 탐내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나만 빼고 말이다.
‘차라리 영체 투영을 할 수 있거나, 신격에 지배받는 상태가 되었을 정도로 강한 자라면 회유를 하건 협박을 하거나 해서 정보를 얻어내면 될 텐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난감했다.
지금 그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신화시대의 불멸자인 ‘제사장 옹구스’로서의 대답을 내게 해줄 수가 없다.
유메미처럼 바리공주를 영체 투영해서 내게 대신 대답을 하거나.
아니면 그 자체가 옹구스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텐데.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방법은 수호령을 빼앗는 것밖에 없는 건가.’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강압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내겐 혈육을 찾는다는 중요한 목적이 있다.
이건 그저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미안하지만 지금 가진 직장은 그냥 포기해.”
“……예?”
난 곧바로 그의 머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남자는 화들짝 놀라 뒤로 나자빠질 뻔했지만, 그 즉시 반대쪽 손으로 그의 몸을 붙잡아 쓰러지지 않게끔 받쳐주었다.
그러곤 그의 심상세계 속으로 진입했다.
‘이렇게 하면 죽이지 않고 수호령을 빼앗을 수 있어.’
라르스에게 했던 것과 같은 방식.
이건 압도적인 힘의 격차를 가진 상대에게 유효한 방법이었다.
어지간한 상대라면 자기 머리에 적의 손을 닿게 할 정도로 허술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무기보다도 사거리가 짧은 맨손을 닿게 할 정도면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기도 하고.
아무튼 이렇게 함으로써 난 각성자를 죽이지 않고도 수호령을 빼앗을 수 있다.
물론 이러면 그가 가진 이능력을 모두 잃게 되어 치유사로서의 삶은 포기해야 한다.
라르스의 경우엔 이미 영체 투영을 할 수 있는 상태, 그러니까 금제에서 해방된 상태라 능력치는 고스란히 가지고 갈 수 있었지만.
이자에겐 그런 것도 없다.
내게 수호령을 빼앗기는 즉시, 평범한 비각성자와 다름없는 일반인이 되는 것이다.
‘대신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주마.’
사실 나 역시 이런 선인의 밥그릇을 무작정 걷어차는 건 조금 양심에 찔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끝나고 나면 그에게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의 보상을 줄 생각이다.
당연히 이런 보잘것없는 치유사로서의 삶을 사는 것보다, 일확천금을 얻어 편안히 사는 게 더 나을 터다.
따지고 보면 이건 그에게 있어 더 행운인 것이다.
“옹구스. 거기 있군.”
난 곧바로 그자의 심상세계 속에서 잠들어 있는 옹구스의 영혼을 발견했다.
그는 내가 자신에게 다가가고 있는지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아직까지 각성자의 몸에서 깨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터였다.
‘금제 해방도, 신격 지배도 시작되지 않은 각성자의 몸에선 수호령이 이런 상태인가 보군.’
덕분에 난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채 순수한 옹구스의 영혼에 접근할 수 있었다.
로브를 두르고 커다란 스태프를 손에 쥐고 선 채로 잠든 중년의 인간 마법사.
그자는 내가 먼 옛날 아발론에서, 그리고 누아다 아르게틀람의 시나리오 세계에서 마주쳤던.
아발론 신계의 제사장, 드루이드 옹구스의 모습 그대로였다.
{<악의의 오른쪽 눈> 개방}
난 그대로 눈의 심연을 열어젖히고서 그 영혼을 흡수하려 했다.
그런데.
“잠깐! 잠깐만요!”
그 순간, 이 안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이 세계가 누구의 심상세계인지 생각해 보면, 답은 정해져 있다.
“뭘 하려는 거죠? 설마…… 내 수호령을 없애려는 겁니까?”
흰 가운을 입은 인간 남자.
그가 허겁지겁 달려와서 내 옷깃을 붙잡았다.
에테르의 크기 차이 때문인지, 그 손에서 무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넌 걱정할 것 없어. 보상은 얼마든지 해줄 테니까.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지.”
난 이미 생각하고 있던 보상 방안을 그에게 이야기해 줬다.
말로만 하는 걸 믿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수호령을 흡수하고 나서 돈을 준다.
그거면 되는 것이다.
“안 돼! 안 돼요! 제 수호령만은…….”
“100억 골드면 충분하겠지.”
“아뇨! 100억이든 1,000억이든, 1000조든! 아무튼 절대로 안 됩니다!”
“……뭐?”
그런데 남자는 내 파격적인 제안에도 전혀 넘어가질 않았다.
‘내가 그걸 어떻게 믿죠?’ 같은 반응도 아니다.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돈으로는 아예 보상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저한텐 이 수호령이 꼭 필요합니다! 이 권능도!”
“……왜지?”
난 왜 이 남자가 이렇게나 자신의 수호령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신화급 수호령.
각성자들 중에서는 당연히 특출 난 능력자가 될 수밖에 없는 힘의 원천.
차라리 그걸로 5대 세력의 주요 인물이 되어 활동하고 있는 거라면 이런 반응이 이해가 된다.
돈보다 명예와 능력, 순수한 힘을 훨씬 더 중시하는 자는 충분히 있을법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 남자는 그런 것도 아니다.
이 강력한 수호령을 가지고도 이런 허름한 시골 의원에 틀어박혀 가난한 의사 행세나 하고 있다.
이런 역할이라면 굳이 옹구스를 가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치유사로서의 삶? 그걸 지키고 싶은 건가? 그렇다면 걱정하지 마라. 널 어떻게든 마법 사용자로 만들어 줄 테니까.”
내게 수호령을 빼앗기면 이 남자는 아무 능력도 가지지 못한 비각성자가 된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모든 기계장치들이 마력을 기반으로 작동되는 이 세계에서는 그런 비각성자조차도 마법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니 말이다.
뭣하면 아예 ‘사이버웨어(cyberware)’ 수술을 해서 마법 발현 장치를 몸에다 직접 심어버리는 수도 있다.
라이진처럼 말이다.
“아뇨! 그런 게 아닙니다!”
하지만 남자는 그조차도 부정했다.
“그럼 대체 뭘 원하는 거냐? 내게 말해봐.”
“전…… 권능이 필요합니다.”
“권능?”
“정령을 불러내는…… 권능이요.”
“정령이라니? 어떤 정령?”
“제 아들…… 리안.”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도시의 치유사가 사고로 중상을 입은 제 아들에게 잘못된 마법을 사용하는 바람에……. 에테르의 거의 대부분이 소실되고 사망하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상황을 절박한 표정으로 구구절절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내 자비심에 기대보려는 시도였다.
“그 후로 절망한 채 지내던 제게 전설 수호령이 나타났고, 운 좋게 신화 수호령까지 얻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옹구스라는 수호령이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던 권능. 그것 하나만 믿고서 말입니다.”
이렇게 약해빠진 몸으로 신화 수호령 획득 시나리오는 어떻게 클리어했을지 의문이지만, 시나리오의 조건이 꼭 전투로 해결해야 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니.
게다가 제사장 역할을 맡는 옹구스의 시나리오라면 더더욱 그럴 법도 하다.
아무튼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가진 권능과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 수호령이 제공하는 권능……. 이건 에테르의 손실이 심각한 영혼을 일시적으로 복구해 정령으로 소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아다 수호령 획득 시나리오에서 봤던 장면.
오하드의 아내이자 자신의 여동생인 브리이드를 정령 소환하던 게 떠올랐다.
그곳에도 정령 소환이 가능한 드루이드들이 많이 있었지만, 루 라바다에 의해 손상된 영혼을 소환해 내는 게 가능했던 건 제사장인 옹구스가 유일했었다.
그야말로 그만의 특기라는 것이다.
“물론 저도 ‘정령마술’이나 심지어 ‘강령술’도 찾아봤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에테르 자체가 손상된 존재를 되살릴 방법은 없었습니다. 오직 옹구스의 권능. 이것만이 지금 제가 제 아들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말입니다.”
유일한 방법.
그 말은 확실했다.
왜냐하면 유메미의 혼살이꽃으로도 에테르가 손상된 영혼을 불러내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오색꽃은 사람을 아예 ‘부활’시킨다는 장점이 있긴 했지만, 옹구스의 권능처럼 소실된 에테르를 복구시켜 불러내는 건 불가능했다.
한마디로 영혼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 두 신들은 각기 다른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셈.
그렇다고 옹구스의 영혼을 흡수한 다음, 그 권능을 대신 사용해 이 자의 아들을 불러줄 수도 없다.
보통 한 번 정령으로 소환된 영체는 다른 주인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그로부터 옹구스를 빼앗는 순간, 그의 아들은 영원히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젠장.’
결국 난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지금 내게 옹구스가 필요한 이유는 단 하나.
내 아들인 야드가르를 구해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러려면 다른 자의 아이를 빼앗아야만 한다.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생각하면, 남이 어떤 불행을 겪든 내가 필요한 것만 얻으면 그만이다.
내가 지금까지 딱히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무수한 목숨을 빼앗아 온 내가 이제 와서 타인의 사정을 생각하는 게 모순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와 완전히 같은 사정을 가진 사람 앞에서는 도저히 그렇게 행동할 수가 없었다.
야드가르를 구해내는 건 철저하게 내 개인적인 사정이었기에, ‘대의를 위한 희생’ 같은 걸 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후우.”
결국 난 이 남자의 유일한 혈육을 빼앗는 비정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의 심상세계에서 빠져나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털썩.
붙잡고 있던 손을 놓자, 남자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아…… 아…….”
그는 넘어진 채로 내 앞에서 벌벌 떨며 식은땀을 흘렸다.
공포가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눈동자가 이리저리 돌아가는 걸 보니, 자신의 스테이터스 창을 열어 수호령과 권능이 멀쩡한지 살펴보는 모양이다.
“휴우…….”
그러고는 모든 게 다 그대로란 걸 확인하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자신의 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안도감이 그의 표정에 드러났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봐주셔서…….”
난 그런 그에게 바짝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는 내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름은?”
“예? 제 이름이요? ……아! 저는 고든입니다. 고-올든.”
“고든.”
눈앞에 옹구스의 수호령을 가진 자가 있다.
난 그 수호령으로부터 대답을 들어야만 한다.
하지만 직접 빼앗아 오는 건 포기.
그렇다면 이제 방법은 하나뿐이다.
“지금부터 지옥훈련 시작이다.”
“……예에?”
그의 몸 안에 잠들어 있는 옹구스를 깨우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