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35화
이 영토의 주인이 요르문간드에서 펜리르로 바뀐 지 200년이 흘렀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지난번 마지막으로 내가 왔을 때로부터 지금까지, 이곳 니플헤임에서는 무려 2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소리다.
‘시간축이 다르게 작용하는 건가?’
물론 1년이라는 시간은 엄밀히 따지면 단순히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시간이므로, 그 주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간격이다.
실제로 본세계의 1년은 지구보다 두 달 더 긴 14개월이었고, 신계의 1년 역시 제각각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얘기인 것이다.
만약 니플헤임의 1년 주기가 본세계보다 훨씬 짧다면 저것도 말이 된다.
‘그렇다고 하기엔 짧아도 너무 짧은데.’
다만 이전에 요르문간드를 만나고서 현실 시간으로 몇 달도 되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니플헤임은 1년이 겨우 몇 시간밖에 안 된다는 의미가 된다.
이어지는 대화를 들어봐도, 그 추측은 확실히 잘못된 것 같았다.
“기억도 안 나는 까마득한 과거 얘길 꺼내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하계였다면 왕조가 몇 번이나 바뀌었을 시간이라고.”
실제 시간으로 불과 수십일 전의 일을 저렇게 표현하진 않을 터다.
저 대화를 주고받는 망자들은 정말 먼 옛날 얘기를 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예 바깥세상과 이곳 지옥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고 봐야 하는 건가.’
결국 내가 낼 수 있는 결론은 하계와 지옥의 시간 흐름이 다르다는 것일 수밖에.
시스템조차 영향을 미치지 못할 만큼 세계의 법칙으로부터 괴리된 이곳이라면 그것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아무튼 결론은 요르문간드가 이곳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저자들은 이전 요르문간드가 이 영토를 통치하던 때의 주민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들이라면 현재 요르문간드의 소재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자고.”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난 곧장 그 두 사람을 쫓아갔다.
그 중에서 특히, 좀 더 오래된 영혼을 가진 걸로 보이는 쪽을 미행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인기척이 없는 골목에 혼자 들어선 순간.
“음……? 헙!”
단숨에 접근해 제압했다.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입에 천조각을 물리고, 영압의 방출을 막기 위해 빙정술식으로 마력의 밀실을 만들었다.
쩌저적.
주변 공간이 하얀 얼음벽들로 둘러싸여 소리와 마력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그러곤 입에 물린 천조각을 빼내어 말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누, 누구, 누구세요?”
망자는 심하게 겁에 질려 온몸을 벌벌 떨었다.
그는 인간으로 치면 사실상 어떠한 전투 능력도 가지지 못한 비각성자나 다름 없다.
내가 아주 살짝만 건드려도 흔적조차 없이 영멸할 만큼 연약한 존재란 뜻이다.
게다가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호전적인 성격을 갖게 된 악마들이라면, 서로 싸우다 영멸하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금 내 앞에 바짝 얼어버린 망자 역시 오랜 기간 생존해오면서 그런 일들을 무수히 목격했을 터였으니, 그만큼 더 큰 공포를 느끼고 있을 터였다.
“요르문간드를 찾고 있다.”
난 그에게 앞뒤 자르고 묻고 싶은 부분만 직설적으로 물었다.
강압적인 분위기를 잔뜩 풍기면서.
“어, 어째서?”
“어디 있는지만 말해.”
그의 되물음에 나는 살기로 응수했다.
그 즉시 그는 숨을 헐떡이며 힘겨워했다.
“허, 허억…… 크리스탈 호수…… 바닥에…….”
“크리스탈 호수? 거긴 어디지?”
“북쪽으로…… 가면…….”
털썩.
그는 내게 멱살을 잡힌 채 시체처럼 늘어졌다.
필요한 정보를 모두 얻자마자 에테르 압력으로 기절시킨 것이다.
물론 굳이 소멸시킬 생각은 없다.
이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깨어날 것이다.
‘북쪽. 크리스탈 호수.’
니플헤임의 지리에 대해서는 나도 정확히는 잘 모른다.
하지만 광범위한 영역을 초감각으로 훑으며 북쪽으로 나아간다면,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반대 방향으로 가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스윽.
누더기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서, 나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 * *
‘경계가 삼엄하군.’
펜리르가 통치한 이후의 이 주변의 영토는 망자와 악마들로 꽤나 북적이는 땅이 되었다.
그에 맞춰 주변을 감시하는 무장 병력 또한 늘어나기도 했고 말이다.
실제로 아까 내가 있던 작은 마을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자, 그보다 훨씬 더 큰 성채 하나가 나타났다.
그 성채에는 굉장히 많은 망자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 규모가 마치 인간계의 도시를 방불케 하는 수준이었다.
또한 안쪽에는 광범위한 영역을 커버하는 방위군이 주둔하고 있었고, 주변으로도 정찰병들이 조를 이뤄 경계를 행했다.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빼곡하게 말이다.
‘나를 찾아다니는 건가.’
물론 아까 전의 일이 있었으니 평시보다 경계 수준이 더욱 올라간 것일 수도 있다.
펜리르는 여전히 내 능력을 탐내고 있을 테고, 어떻게든 찾아내서 포식을 하려 혈안일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가진 역량을 총동원해서 주변을 수색할 수밖에.
‘그렇다곤 해도…… 확실히 요르문간드가 이곳의 주인일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군. 굉장히 작위적이야.’
그럼에도 내가 이상하게 느끼는 부분은, 오히려 이렇게 정리된 분위기였다.
곳곳에 거점처럼 형성된 마을과 성채엔 니플헤임 곳곳에 흩어져 있던 망자들이 몰려든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악마로 양성된다.
악마가 되지 못한 망자들은 그들을 위해 일하는 노예가 된다.
성채 내부를 돌아다니며 살펴본 결과, ‘펜리르의 백성’들은 전형적인 군사국가에서 보일 법한 모습으로 행동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마치 곧 어딘가와 총력전을 벌일 태세로 말이다.
‘총력전……. 여기서 세력이라고 해봐야 요르문간드나 헬밖에 없을 텐데. 남매간에 불화라도 있었던 걸까?’
형제자매간의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지는 일은 신계에서도 흔했다.
지옥의 악마들끼리 군사적 충돌을 빚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이전에 내가 앙그라 마이뉴로서 떨어졌던 지옥, ‘인페르노’가 그랬으니 말이다.
그런데 ‘크리스탈 호수’에 도착하자, 이건 그런 흔한 풍경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왜…… 요르문간드는 전혀 반격을 하지 않는 거지?’
발광하는 자색 수정들이 해초처럼 안쪽까지 가득 자라난 거대한 호수.
요르문간드는 그 밑바닥에서 꼬리를 말고 몸을 웅크리고 있다.
호수 주위는 물론이고 이 안에는 그 어떠한 형태의 망자나 악마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만이 겨울잠이라도 자는 듯 그 안에 숨어 있다.
펜리르에게 영토를 빼앗기고 이런 후미진 곳에 쫓겨났음에도 자신의 형에게 맞설 생각이 일절 없어 보였다.
일반적인 불멸자 간 내전이라 보기엔 너무나도 일방적인 것이다.
‘아무래도 직접 물어봐야겠어.’
모든 게 불명확한 지금, 단순히 요르문간드의 힘을 얻어내는 걸 넘어서 펜리르와 요르문간드의 의중을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래야만 이 지옥의 세 흉신들을 다 잡아먹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 *
-요르문간드.
나는 정신 전이로 요르문간드에게 말을 걸었다.
호수 안, 물속에서는 말을 할 수 없으니, 이렇게 의사소통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그러나 그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길고 거대한 몸을 잔뜩 웅크리고서, 겁먹은 뱀처럼 그저 조용히 있을 뿐이었다.
‘자고 있는 건 아닐 테고.’
물론 강력한 불멸자이자 흉신인인 그가 잠을 잘 리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마법적인 현상으로 인해 산 채로 이곳에 봉인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계속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자기 의지가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했고 말이다.
‘보통이라면 마력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인간형을 유지했을 텐데. 결국 자의가 아니라는 건가.’
요르문간드는 펜리르와의 싸움에서 지고 이곳에 갇혀 버렸다.
그렇게 생각하면 퍼즐이 맞춰진다.
펜리르가 저렇게나 기세등등하게 영역을 확장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저지가 없는 걸 보면 말이다.
투웅.
게다가 호수 안으로 어느 정도 하강하던 도중에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막기까지 했다.
배리어엔 위쪽으로 튕겨내는 성질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외부인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배리어를 형성한 걸로 보인다.
‘이걸 뚫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힘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문제는 내겐 아직 펜리르의 마법을 해제시킬 만한 정도의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요르문간드의 마지막 힘을 얻어낸 이후라면 모를까, 지금의 내 능력으로 그렇게 하기엔 아직 한참 모자라다.
결국 여기까지 와서 막혀버리고 말았다.
‘외통수로군. 펜리르와 싸우려면 요르문간드의 힘이 필요한데, 요르문간드의 힘을 얻으려면 펜리르와 싸울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니.’
뭔가 방법이 없을까.
아니면 여기서 방향을 틀어 니플헤임 삼남매 중 하나인 헬과 접촉해 볼까.
온갖 대안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던 그때.
-인간. 너는…… 인간.
요르문간드의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또렷한 음성으로 말하던 전과는 달리 상당히 어눌한 발음이었다.
하지만 난 개의치 않고 곧장 그에게 대답했다.
-그래. 나다. 오랜만에 보는군.
-어떻게…… 여기에…….
-약속을 이행하러 왔지. 네게 보여줄 것이 있다.
{<정령 소환> 발동}
{<아마테라스>의 영혼을 심연에서 꺼내온다.}
{<츠쿠요미>의 영혼을 심연에서 꺼내온다.}
그러곤 붙잡아 온 신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사실 봉인되어 있는 그가 이걸 본다고 해서 당장 뾰족한 수가 생겨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는 여전히 저 아래에 갇혀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뭔가 방법이 보이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최대한 그의 주의를 끌어보려 했다.
-신들……. 드워프…….
요르문간드는 역시나 이들을 알아보았다.
신들의 전쟁 당시에 이들을 지옥으로 추방시키고 ‘악마’라는 꼬리표를 붙인 건, 종족을 막론하고 모든 신계의 신들이 다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네놈……. 으…….
쿠구구궁.
그런데, 요르문간드에게서 강렬한 마력 파장이 뿜어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호수 전체가 거대한 진동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지? 설마…….’
물결이 크게 일렁인다.
그리고 요르문간드의 몸체가 천천히 위쪽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스스로 봉인을 풀어내는 건가?’
신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초월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것으로 긴 시간동안 자신을 단단히 가둬놓았던 봉인을 깨뜨리고 수면으로 올라온다.
……그런, 만화 같은 일이 벌어지는가 했는데.
쿠구궁. 콰쾅.
‘아니다. 그런 게 아니야.’
호수의 붕괴 현상은 점차 더 커지면서 흙먼지가 자욱하게 떠오르기 시작했고.
이윽고 나와 요르문간드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투명한 벽 너머에, 커다란 그림자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스르륵.
배리어가 사라졌다.
‘요르문간드는…….’
난 그 순간, 애초에 전제부터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봉인된 게 아니었어.’
이 녀석은, 펜리르에 의해 이곳에 갇혀 있는 게 아니었다.
스스로 이 밑바닥으로 내려와, 배리어를 치고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자기 몸을 보호한 채 숨어 있었던 것이다.
콰우우우우.
몸이 찢겨 나갈 듯한 압력이 덮쳐온다.
유수의 요르문간드.
그에겐 너무나도 유리한 공간인 수중에서, 그가 일으킨 물길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벽을 넘어…… 하계를…… 침공하라…….
마치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는 듯한 투로,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