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28화
스사노오와의 정면대결은 확실하게 무리였다.
츠쿠요미 역시 그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스사노오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하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는 않았다.
이 야생과도 같은 각성자의 세계에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그런 정정당당한 대결 같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뒤통수에 총알을 꽂아 넣는 것이 누구인가.
이곳에서 실력에 관해 논할 때에는 오직 그것만이 전부였다.
쉬익.
하늘을 가르는 파공성조차 집어삼키며 내려치는 스사노오의 검이 츠쿠요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 순간의 장면은 마치 슬로우 비디오라도 재생하는 것처럼 아주 느린 속도로 펼쳐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맹렬한 기세의 참격을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감각은 그저 착각이었기 때문이다.
저 위험한 공격 앞에서 죽음을 감지한 육체가 본능적으로 사고를 가속시킨 결과였을 뿐, 실제로 몸은 멈춰 있는 것이다.
‘조금 더.’
츠쿠요미는 그런 순간조차 하나의 전술적 판단을 위한 기회로 사용했다.
그것이 가능한 건 그가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 경험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 상황에서 확실히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콰우우우우!
스사노오의 참격이 지상에 내리꽂히는 순간, 지평선을 가득 뒤덮은 츠쿠요미의 군대는 한 줌 먼지처럼 흩어지며 소멸했다.
그 압도적인 검압은 평평한 황무지를 계곡으로 뒤바꿔 놓을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당연히 거기서 살아남는 건 불가능.
{권능 <그림자 영역 전개> 발동}
그러나 피격 직전 츠쿠요미가 사용한 권능은 그 불가능함을 가능으로 만드는 기적과도 같았다.
단순히 자신을 포함한 몇몇 소수의 각성자들을 넘어, 수천에 달하는 드워프 전부를 그림자 영역 안으로 숨기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지정된 그림자 영역 출구로 모든 아군을 이동시킵니다.}
스르륵.
그리고 참격이 끝난 순간, 스사노오가 전진해 오던 방향의 반대편에서 먼지처럼 흩어졌던 츠쿠요미의 군대가 한꺼번에 나타났다.
“사격 개시!”
쾅! 타타타타탕!
곧이어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모든 드워프들의 총구와 포구에서 불을 뿜기 시작했다.
스사노오를 쫓으며 쏘아 보낸 공격은 모두 페이크.
그의 필살기인 하늘깃 가르기를 한 번 피해낸 후, 후방에서 가하는 이 공격이 진짜였던 것이다.
파파파팡!
츠쿠요미 역시 예의 기관단총을 연사했다.
이번엔 아까처럼 넓은 범위에 탄환을 흩뿌리는 대신, 목표를 정조준한 채 방아쇠를 당겼다.
물론 타깃은 스사노오의 머리였다.
‘이겼다!’
츠쿠요미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아무리 드워프 중 최강의 전사라는 스사노오라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숫자의 병력으로부터 쏟아지는 화력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츠쿠요미조는 특히나 A&A 내부에서도 유달리 고성능 장비로 무장한 세력이었으니 말이다.
설령 여기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중상을 입게 될 것이다.
스사노오조의 중심이자 그 자체로 전력의 상당 부분인 저 녀석이 병실에 누워 있는 한, 저들 세력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츠쿠요미는 그렇게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우오오오오!”
그런데 그 순간, 총탄에 의해 뒤덮여진 스사노오가 괴성을 지르며 내려친 칼날을 다시 반대쪽으로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퍼퍼퍽! 퍽! 퍼퍽!
그와 그의 백호 기병들은 후방에서 비처럼 날아드는 총격을 고스란히 뒤집어썼고.
그로 인해 사방으로 피와 살점을 흩뿌리고 있다.
그런 와중에 온몸의 출혈도 아랑곳 않고 저런 동작을 행한 것이다.
마치 죽기 직전 조금이라도 상대를 물어뜯고 나서 쓰러지려는 마수처럼 말이다.
‘말도 안 돼! 저걸 제비반전으로 사용한다고?’
내려친 일참을 반전시켜 역방향으로 다시 한번 쳐올리는 2연격의 필살기.
단순히 빠르게 두 번 베는 게 아니라,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을 역전시켜 연달아 두 번 시행해야만 ‘제비반전’이라 할 수 있다.
스사노오는 지금, 그 기술을 자신의 최강 권능인 ‘하늘깃 가르기’에 적용시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쉬이이익!
앞으로 칼을 내민 자세에서, 역방향으로 큰 반원을 그리며 후방의 츠쿠요미에게 이르기까지.
그렇게나 터무니없이 큰 동작을.
백호의 등 위에서.
왼팔과 종아리 일부가 통째로 뜯겨 나가는 총상을 입은 채로.
완벽하게 시전해 냈다.
아니, 완벽을 넘어 오히려 첫 1격보다 배는 빨라진 속도로 펼쳤다.
기술과 근력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광경을 실현시킨 것이다.
지평선 위의 모든 세계가, 그의 검이 그린 선을 기준으로 나뉘는 기적을 말이다.
{권능 <그림자 영역 전개> 발동}
{발동이 불가능합니다.}
{과도한 물질계 간섭으로 인해 그림자 영역이 수복 상태에 진입했습니다.}
츠쿠요미는 방금 전의 대규모 이동으로 인해 그림자 영역 권능을 연달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아군은 물론이고, 그 자신마저 숨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틀렸다. 피할 수 없어!’
이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피하기엔 스사노오의 참격이 너무 빠르게 쇄도했고, 막아내기엔 힘이 부족하다.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고서 뒤를 잡아 치명상을 먹이는 데에 성공했건만.
죽어가는 몸뚱이로 저런 비전을 펼쳐낼 줄이야.
육체부터 수호령까지, 타고난 암살자의 혼을 가진 그에게 있어, 타고난 무사의 혼을 가진 스사노오는 그야말로 천적과도 같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임무를 수행해 내고야 마는 실력으로는 자신이 위였겠지만, 이런 싸움은 그와는 다른 영역이었던 것이다.
‘내 불찰이었다. 처음부터 그냥 암습으로 끝장을 냈어야 했어.’
결국, ‘투자자’의 도발에 휘말려 괜한 자존심을 내세운 게 패착이었다.
-왜, 못 이길 것 같습니까?
스사노오가 칼이라도 몇 번 휘둘러 보게 만든 다음 죽여야 인정받는 거라는, 같잖은 욕심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걸 이제 와서 깨달아봤자, 너무 늦어버렸지만.
‘다시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츠쿠요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죽음에 대한 미련과 수용이 동시에 교차한다.
눈을 뜨면 다시 하루 전, 아니, 몇 시간 전으로 되돌아가길 바라면서 말이다.
당연히 그런 기대가 바람만으로 이뤄질 리가 없지만…….
……
……가끔은 이뤄질 때도 있다.
조금은 다른 형태로 말이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나직하게 들려온 목소리.
힘주어 말한 것도, 날카롭게 내지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광활한 평야에 서 있는 모든 드워프들의 귓가에 마법처럼 스며드는 목소리였다.
“아, 아마테라스 님……?”
A&A를 비롯한 이 세상 모든 드워프들의 주인과도 같은 자.
아마테라스가 두 세력의 가운데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같은 식구끼리 총질……. 어지간하면 그냥 눈 감고 넘어가려 했건만.”
스륵. 털썩.
그녀는 조용히 스사노오에게로 다가가 피 흘리는 그의 육신을 바닥에 뉘였다.
그러는 동안, 주변의 백호 기병들은 마치 시간이라도 정지한 것처럼 뻣뻣하게 굳은 상태였다.
그뿐만 아니라 츠쿠요미 측 드워프 부대원들 역시 마찬가지.
지금 이 전장에서 각성자를 제외한 모든 드워프들이, 전원이 꺼진 로봇처럼 움직임을 멈춰 버린 것이다.
덕분에 거의 1만 명에 육박하는 인원이 한 공간에 모여 있음에도 싸늘한 정적이 흐르는, 기묘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이것이 칠지도의 힘…….’
그건 모두 아마테라스가 왼손에 쥐고 있는 나뭇가지 모양의 검, 칠지도의 능력이었다.
금제에 묶인 모든 드워프를 통제하는 신병이기(神兵利器).
이 전장에 참전한 전설급, 신화급 각성자들은 모두 금제에서 해방된 자들이었기에 그 통제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그들이 운용하는 부대원들, 즉 NPC 드워프들은 전부 칠지도의 소유자인 아마테라스의 의지에 따른다.
말과 행동은 물론이고 생사 여부마저도 말이다.
즉, 같은 드워프 각성자라면 그녀의 허락을 받지 않는 한 부대 시스템을 활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파아앗.
그녀가 손수 중상을 입은 스사노오의 몸에 치유 마법을 사용하며 출혈을 막았다.
그러면서도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츠쿠요미에게 물었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된 것이냐?”
“…….”
“나는 네가 사리분별이 날카로운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다 내 착각이었단 말이냐?”
“죄송합니다.”
“실망스럽구나.”
아마테라스의 한마디에 츠쿠요미는 고개를 떨궜다.
“자초지종은 안에서 듣도록 하지. 모두 해산하라.”
이어서 그녀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와 함께 이 공간에 모여 있던 수많은 드워프들은 마치 한 몸과도 같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도시로 복귀했다.
* * *
그 순간에 아마테라스가 나타난 건 정말로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적어도 목숨만은 구제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만약 그녀가 아니었다면, 츠쿠요미는 그대로 하늘깃 가르기의 검압에 짓눌려 형체도 남기지 못한 채 사망했을 것이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죽음 외에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전개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스사노오의 일격에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아마테라스에 의해 구해진 상황.
이렇게 되면 그에게 패배한 거나 다름없는 처지가 된다.
그 순간을 다른 누구도 아닌 아마테라스 본인에게 직접 보여줬고 말이다.
게다가 그를 노리고 있다는 게 발각되었으니, 당분간 스사노오가 완치될 때까지 츠쿠요미는 손발이 완전히 묶여 버리고 말 것이다.
앞으로 영원히 아마테라스에 의해 공식적인 3인자로 찍힌 채 살아가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너는 그 많은 병력을 데리고 스사노오 단 한 명에게 죽을 뻔했다.”
실제로 아마테라스는 그 부분을 날카롭게 짚었다.
“아마테라스 님, 그건…….”
“변명의 여지가 있나?”
“…….”
“툭 까놓고 말해보자꾸나. 사실 나 역시 정정당당한 일대일 대결만이 항상 옳다고 생각지 않는다. 모름지기 싸움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그렇습니다.”
“그래서 너는 너만의 방식으로 스사노오에게 싸움을 걸었다. 스사노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걸 받아줬고. 그 결과가 그거다.”
아마테라스가 검지 손가락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며 츠쿠요미의 이마를 가리켰다.
스사노오의 하늘깃 가르기가 그의 머리 위에 떨어지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었다.
“나는 심판이고, 선수인 너를 보호하기 위해 경기를 중단시킨 거다. 그걸로 승부가 났음에 이의는 없겠지?”
“……예.”
“그래. 그리고.”
아마테라스는 거기에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조직의 기강을 바로잡으려면 네게 징계를 내려야 할 것 같다. 물론 이건 승패의 문제와는 별개다.”
물론 그건 이미 예상한 바였다.
실제로는 A&A 내부에서도 무수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고, 또한 아마테라스 역시 그걸 장려하고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이런 내부 분란 조장 행위들이 금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징계의 수위.
“현시간부로 츠쿠요미조는 해산한다.”
“……예?”
“네 휘하의 하부 조직들은 각각 다른 조로 영입될 것이다. 너는 당분간 내 직속으로 있을 거고.”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언이었다.
사실상 츠쿠요미의 팔다리를 전부 찢어놓겠다는 소리.
스사노오가 부상을 입은 지금, 그사이 일을 벌이지 못하게 만들 거란 예상은 얼마든지 하고 있었지만.
아예 조직 자체를 해체시켜 버릴 줄이야.
츠쿠요미는 순간, 자신이 누구 앞에 선 것인지도 모르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마테라스 님…….”
“왜?”
물론 여기서 뭘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아마테라스는 이 거대한 드워프 사회의 정점에 있는 자.
스사노오와도 격이 다른 존재였다.
“……아닙니다.”
결국 그는 꼬리를 내려야만 했다.
한순간에 모든 걸 다 잃은 처지가 되어버린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 * *
“젠장. 젠장…….”
그 대단하던 위엄은 사라진 채, 욕지거리나 내뱉으며 더러운 골목 위를 터덜터덜 걸어가는 그 모습은.
날개가 꺾인 채 속수무책으로 추락하는 새 같았다.
내 눈에 보인 츠쿠요미의 처지가 말이다.
난 그런 그에게 다가가.
“괜찮으십니까?”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