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12화
프리드웬이 출항하기 직전.
“넌 로마노프와 함께 너희 종족의 물건들을 재현하는 것을 도와라.”
유신우는 듀엔데에게 온갖 엘프제 장비들의 구현을 돕는 역할을 맡겼다.
딱히 뭔가 능력을 가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프리드웬 내에서 유일하게 실제 엘프 사회에서 살았던.
그것도 군 지휘관으로서 복무한 경험도 있는 그라면 꽤나 도움이 될 터였기에 유신우는 그 역시 프리드웬에 태웠다.
그런데 그에게 잠재된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그가 가지고 있던 알 수 없는 물건.
원로원의 지시에 따라 건네받았던, 프리드웬을 탈취하려는 목적으로 소지한 바로 그 물건이었다.
크기는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올 만큼 작고, 모양은 둥그런 황금색 금속으로 만들어진, 조금 커다란 동전 같은 형태의 장치.
‘프리드웬 안에 들어가면 이걸 꺼내라고 했지.’
겉으로 보기엔 대체 어떤 원리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메를리온은 그에게 이걸 프리드웬 안에서 ‘꺼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이것을 프리드웬 안에 가지고 타는 행동 자체가 상당히 위험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내버려 둘 순 없지.’
듀엔데는 분명 얼마 전까지 원로원에 충성하는 전형적인 엘프였으나, 이제 와서는 인간에게 몸을 의탁한 변절자에 불과할 뿐.
유신우의 말에 따르면 지금 엘프계는 완전히 끝장이 나고 있는 상황이고, 꼭 그게 아니더라도 그는 자기 종족으로부터 버려진 입장이었다.
이미 인간 측 외에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된 이상 이제 그가 유신우에게 해가 될 일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유신우.”
“음?”
“지금 내 몸에 상당히 위험한 게 들어 있다.”
그래서 그는 배에 탑승하기 전에 곧장 그러한 사실을 유신우에게 알렸다.
그 물건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혼자 처리할 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굳이 숨길 것도 없었기에 미리 그 위험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같이 해결하면 될 일.
“위험한 거라니, 그게 뭔데?”
“그건 나도 잘 모른다.”
문제는 그 물건이 정말로 정체불명의 도구였기 때문에 어떻게 다뤄야 할지는 듀엔데조차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자는 배에 탄 후에 꺼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이것에 관련되어 원로 메를리온의 지시를 포함해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니 배를 타기 전에 그걸 처리하자는 건가?”
“그래.”
얘기를 들은 유신우의 얼굴에는 수심이 깊어졌다.
“으음……. 그저 배 안에서 꺼내기만 하면 된다라…….”
“그자가 그렇게 말했다는 건, 이걸 내 갑옷 수납공간 바깥으로 꺼내 드는 순간 어떤 효과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지금 함부로 꺼내서 조치를 취할 수는 없겠지.”
“맥락으로 따져 본다면 무력으로 날 제압하는 용도는 아닌 것 같고,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배의 통제권을 빼앗는 데에 사용되는 장치일 것 같은데. ……혹시 작동 방식에 대해 짚이는 거라도 있나?”
“전혀.”
유신우의 물음에 듀엔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겠는데?”
“어떤……?”
“지금 네가 입고 있는 갑옷 안에 그게 수납되어 있는 거 아닌가?”
“그렇지.”
“그러면 그 갑옷을 통째로 부숴버리는 수밖에.”
그 순간 듀엔데가 흠칫하며 뒷걸음질 치려 했다.
물론 유신우가 한 말은 그를 해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 그 수납 부위만 뜯어내서 부수겠다는 말이니까.”
“……그런가.”
“원한다면 지금 입고 있는 갑옷 대신 새로운 걸 줄 수도 있어. 이제 우린 얼마든지 너희 종족의 기술력을 구현해 낼 수 있으니까 말이야. 뭐 조금 디자인 같은 부분은 다를 수 있겠지만.”
“좋아. 이제 나도 너희의 일원이 됐으니 그에 걸맞은 도구를 써야지. 갑옷은 완전 파괴해도 괜찮다.”
듀엔데는 아예 자신이 입고 온 황금 갑옷을 통째로 폐기하라는 뜻을 내비쳤다.
그건 위험물의 제거를 넘어서 자신이 가진 과거의 청산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이제 완전히 인간 종족의 일원이 되겠다는 뜻인 셈이다.
화르륵.
바닥에 벗어 놓은 갑옷에, 유신우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검은 불꽃이 들러붙었다.
격멸의 업화에 의해 형체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꼼꼼하게 녹아내리는 황금 갑옷과 함께.
듀엔데의 엘프로서의 기억은 이로써 완전히 녹아내리며 사그라져 갔다.
* * *
강철의 함선은 대륙의 하늘을 가로질러 서쪽 바다로 곧장 항행했다.
이곳이 동 대륙이니, 당연히 서 대륙은 여기서 서쪽의 대양을 건너면 나오는 셈이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서쪽 바다에는 신계 아발론의 입구가 존재하고, 서 대륙은 그 너머에 있다.’
신계 아발론.
신의 선택을 받은 탑승자가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이 배, 프리드웬을 몰아야 비로소 접근할 수 있는 곳.
그런데 서 대륙은 그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동 대륙과 서 대륙은 필멸자가 신들이 사는 곳에 가는 것보다 통행이 더 어려울 만큼 엄격하게 격리된 세상이라는 뜻이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필멸자들의 세상을 나눠 두었나, 싶은 의문도 들겠지만.
실은 거기엔 어떤 목적이나 필요성 같은 게 있는 게 아니었다.
태초부터 세상은 그렇게 나뉘어 있었고, 각 신계의 신들이 그 나누어진 하계에 각각 자신들을 추종하는 필멸자를 보냈을 뿐인 것이다.
신계는 하계의 필멸자와 소통하거나 접촉할 필요가 있었기에 제한적인 방법으로나마 접근이 가능하게 되어 있지만.
서로 갈라진 두 하계는 신들의 입장에선 굳이 통해야 할 필요성이 없었기에 연결 통로도 형성되지 않았다.
지금 난 그렇게나 갈라져 있는 두 세상을 가로질러 억지로 건너가려 하고 있는 셈이다.
‘테세우스의 배에 탑재되어 있던 차원 엔진이라면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 차원 전이가 가능한 건, 프리드웬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강력한 차원 항행 장치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도 어디까지나 아발론 신계에 접근한다는 용도에 한정된 장치이긴 하지만, 어쨌든 기본은 갖춘 셈이다.
거기다 시대를 초월한 오버 테크놀로지인 차원 엔진까지 결합되었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차원 엔진이 가동됩니다.}
{목적지는……. *$%#<62&;91₩…… 오류.}
시스템은 이 항행에 오류 메시지를 출력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동 대륙과 서 대륙은 이어지지 않은 세계이니 말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언젠가는 시스템에 의해 두 하계가 이어지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도 알 수 없을뿐더러 그 실현가능성 자체도 불확실한 미래다.
한시라도 빨리 옹구스를 만나 야드가르를 거울세계에서 꺼낼 방법을 찾아야 하는 난 강행돌파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류에 의해 차원 전이가 불가능합니다.}
“강제 차원 항행을 실행한다.”
{오류에 의해 차원 전이가 불}
{오류를 무시하고 차원 전이를 강제 발동한다.}
{차원 전이는 저속 항행모드로 이행}
그러나 이 세계에, 아니 적어도 나에게만은 시스템 관리자가 하나가 아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두 번째 관리자.
그것이 오류를 무시하고 프리드웬을 움직였다.
쿠궁.
이윽고, 바다 위에 떠 있던 배는 강렬한 파공음과 동시에 마치 대포알처럼 전방으로 튀어 나갔다.
물살을 세차게 가로질러 앞으로 나아가자, 파도치는 바다와 화창한 하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주변은 어느샌가 보라색 빛줄기들이 스쳐 지나가는 검은 바탕으로 물들었다.
현실과는 유리된, 일그러진 아공간에 진입한 것이다.
‘성공했다.’
나는 곧 이곳이 서 대륙으로의 차원 이동을 하기 위한 중간 통로임을 파악했다.
프리드웬은 이 통로를 지나,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나를 데려다 놓을 것이다.
{문제 발생. 동력부에 이상 있음. 목적지 도착 가능성 급격히 저하.}
“음……?”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것도 애초에 규칙을 거스르는 항해 경로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배를 움직이는 동력부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대체 무슨?”
난 곧장 동력실로 달려가 차원 엔진을 살펴봤다.
지지직. 지이익.
아니나 다를까, 차원 엔진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게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본래는 정순한 마력의 스펙트럼인 푸른빛을 띄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어째서인지 명멸하는 주황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유메미!”
난 곧바로 유메미를 불러왔다.
엘프들의 지식을 받아들인 후 마법의 원리와 그 응용에 관해 전보다 더 높은 소양을 갖춘 그녀라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동력부에 문제가 생겼다고요?”
“푸른빛이 아니라 주황빛으로 깜빡거리는데, 왜 그런지 파악할 수 있겠나?”
“주황빛이라니, 아티팩트에서 그런 빛이 난다는 건…….”
그녀가 동력실 안에 들어와 코어를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말도 안 돼요.”
“많이 위험한 건가? 마력원이 다른 색깔의 빛을 내는 게?”
“물론 그건 원한다면 얼마든지 인위적으로 만들 수는 있어요. 신우 씨와 아델 씨가 검을 쓸 때 붉은 기운이 퍼져 나오는 것만 봐도 그렇고.”
“그럼 뭐가 문제지?”
“문제는…… 보통 그런 적색 계통의 마력 색깔은 빠르게 강하게 발산하려는 성질이 있어서 제어가 어려운 대신 공격 용도로 쓰기 좋다는 건데…….”
“공격 용도? 그럼 설마?”
내 물음에 유메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력원으로 사용되는 아티팩트는 이런 빛을 낼 리가 없어요. 이 상태가 그대로 이어지면 분명히 제어 불능에 빠질 수도 있다구요.”
“젠장, 하필 지금…….”
난 이마를 짚었다.
차라리 이 현상이 처음 출항했을 때부터 나타났던 거라면 모를까, 하필 아공간에 진입해 있을 때 나와버렸다.
가장 최악의 타이밍에 위기가 닥쳐 온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항행 도중에도 문제가 생길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 바로 이런 때를 대비해 인벤토리에도 넣지 못하는 그 수많은 물자들을 실어온 것이니 말이다.
“유메미, 혹시 뭣 때문에 이렇게 된 건 파악할 수 있겠어?”
“잠시만요. 지금 하고 있어요.”
유메미는 마법 막대를 꺼내 코어를 겨누고 마력을 발산했다.
그러자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실이 나타나 서로를 연결했고.
곧 그녀와 차원 엔진은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에너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잠시 후, 유메미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원인을 발견했나?”
“네. 그런데…… 뭔가 이상해요.”
“뜸 들이지 말고 얼른 말해줘.”
“이건 차원 엔진의 자체적인 결함이 아니에요. 외부 아공간의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럼?”
“무언가 알 수 없는 이물질이 이 안에 개입되어 있어요. 술식으로 이뤄진, 아주 작은 세균 같은 무언가……. 그것도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거예요.”
“세균이라니? 그것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무슨…….”
그 순간, 내 머릿속엔 출항 전에 불태워 버렸던 듀엔데의 갑옷이 떠올랐다.
나로부터 프리드웬을 빼앗기 위해 건넸다는 그 미지의 물건이 들어 있던 갑옷 말이다.
“어떻게 이런 정교한 걸 만들어낸 거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세균 같은 것들이 스스로 이 배의 동력원을 찾아 침투하도록 조작…….”
그 순간.
덜컹.
“읏?”
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콰앙!
곧이어 귓가에 벼락이라도 떨어진 듯한 요란한 굉음이 들려왔다.
그 즉시 프리드웬과 연결되어 있는 내 감각에 선체의 어느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갔음이 느껴졌다.
{목적지 도착 가능성 급격히 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