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10화
“그래서, 결국 듀엔데 총독 혼자서 그곳을 탈출해 돌아왔단 말인가?”
젊은 민의회 의원인 엘가르가 듀엔데를 몰아세웠다.
그러자 듀엔데는 미리 생각해 왔던 말들을 늘어놓으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시스템의 오류로 악마들이 비집고 나온 차원의 균열을 통해 테세우스의 배가 없이도…….”
“그 이야기는 차후에 듣도록 하고. 어쨌든 결국 총독은 아군을 버리고 혼자서 도주했다는 말이군.”
엘가르는 끝까지 그에게 잘못이 있다는 듯 추궁했다.
듀엔데는 그 말을 가만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저라도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이에 관한 소식은 아무도 전하러 오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 변명으로 적전도주가 무마될 수 있다면, 어떤 군인도 처벌받지 못하겠지. 기억하게. 그대는 총독이기 이전에 군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네.”
엘가르는 어떻게든 그를 처벌하려 했다.
물론 실제로 듀엔데가 저지른 죄에 비하면 적전도주가 그리 중한 죄가 아니다.
어차피 재판 과정에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는 게 다 밝혀지고, 그렇게 되면 여러모로 정상 참작이 가해져 처벌은 약해질 터다.
하나 바벨탑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를 얻은 그에게는, 그런 명목상의 처벌조차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지금 그런 작은 흠결이라도 생기게 된다면, 그의 최종 목표인 명예로운 관직을 얻는 과정에 차질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명은 그만. ‘하지만’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군. 자기 변호는 법정에 가서 하도록.”
엘가르가 단호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
듀엔데의 표정이 순간, 크게 일그러졌다.
‘개자식……. 어떻게든 나를 끌어내리려고…….’
지난번에도 이랬다.
바벨탑의 공로를 인정받는 과정에서 가장 강력한 태클을 건 자가 바로 엘가르였던 것이다.
그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공이 명확해서 결국 그의 의견은 묵살되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의원들 역시 그의 말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결국 듀엔데는 어떤 방식으로든 흠집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엘가르의 발언이 민의회를 대변하는 의견이라면, 나는 거기에 찬성할 수가 없겠군.”
그런데 그때, 의사당의 북쪽 의석에서 나이 든 엘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은 바로 원로원의 자리.
백발의 엘프인 메를리온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연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원로께서 반대하셔도 이 사안은…….”
“애초에 전제부터가 잘못되었다는 뜻이지.”
메를리온의 느릿하지만 명료한 말에 좌중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노년의 엘프는 사람들의 표정을 한 번 쓱 훑어보고는,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애초에 이번 원정의 총 책임자는 다름 아닌 집정관이었네. 총독은 그저 저쪽 세계에 건설된 식민지를 통치하는 역할을 부여받았을 뿐, 실질적인 군사행동에 대한 권한은 집정관 질호른이 가지고 있었단 말이네.”
“그 말씀은…….”
“알아들은 것 같으니 다행이군. 처벌은 총독이 아닌 집정관이 받아야 한다는 뜻일세.”
“하지만 집정관은 이미 사망했습니다. 그에게 죄를 묻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의원은 책임자가 죽었으니 처벌은 그 하급자가 대신 받아야 된다는 논리인가?”
“그런 말이 아닙니다. 이건 그와는 별개의 사안인, 적전도주에 관한 사안입니다. 게다가 군에서 상급자가 죽으면 하급자에게 권한이 이양된다는 것,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자네 말대로 총독은 집정관의 권한을 이양받아 퇴각이라는 전술적 행동을 한 것이군. 그렇지 않은가?”
“…….”
“반면 집정관은 테세우스의 배라는 최강의 병기를 침몰시킨 것도 모자라 지휘관으로서 무책임하게 사망했다. 그는 죽었지만 명예를 박탈당해 마땅할 걸세.”
“원로님, 그건 너무 과한……!”
엘가르와 메를리온의 설전이 이어지며 의회의 분위기는 몹시 험악해졌다.
민의회의 의원들은 메를리온의 발언에 크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대로 원로원의 원로들은 메를리온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찬동했다.
그 사이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듀엔데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집정관에 대한 두 집단의 시각차. 여기서 난…….’
원로원은 온갖 편법으로 규율을 어기고 정적을 짓밟는 젊은 권력자, 질호른과 사이가 나빴다.
반면 그와 비슷한 세대에, 동일한 엘리트 코스를 거쳐 각종 인맥으로 연결된 민의회 의원들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두 집단은 이번 일에 대한 상반된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원로원 쪽에 줄을 대어야만 한다.’
듀엔데는 살기 위해 자신이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금세 파악했다.
원래라면 전도유망한 젊은 정치인들인 민의회 의원들과 친하게 지내는 게 정석이겠지만.
지금 당장 더 큰 권한을 가진 원로원이 그에게는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었다.
미래의 일이야, 당장의 입지를 확고히 한 후에 걱정해도 늦지 않다.
‘원로원에 정보를 줘야겠군.’
그는 유신우와 프리드웬에 대한 사항을 원로원에게 알리기로 했다.
* * *
유신우의 목적은 바로 그들이 가진 기술을 최대한 뽑아내는 것.
그런 다음 아몬을 엘프계로 보내 멸망시킨다면, 인간은 이 세상에서 저들의 우월한 기술력을 가진 유일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가 굳이 듀엔데를 죽이지 않고 살려서 돌려보낸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듀엔데 역시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당연하게도 이 관계가 계속 지속되는 게 자신에게 이롭지 않을 거란 사실은 그 역시 알고 있었다.
원로원에 유신우에 대한 사실을 밝히리라 마음먹은 건, 철저히 이해득실을 계산한 후에 나온 결정이었다.
“차원 엔진이 인간들의 손에 넘어갔고, 지금은 테세우스의 배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실은…… 제가 이쪽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그 인간이 저를 전이시켜 준 덕분이었습니다.”
“흐으음.”
메를리온이 책상에 턱을 괴고서 곰곰히 생각했다.
그의 반응은 생각보다 침착했다.
다른 엘프들 같았으면 놀라서 펄쩍 뛰거나 단박에 화를 냈을 이야기인데.
긴 세월의 삶에서 수많은 사건들을 겪어온 이 노련한 엘프는 이런 긴급한 사안에도 불구하고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답은 하나밖에 없군.”
“어떤 답 말씀이십니까?”
“그 배를 되찾아야지.”
“그 자들에게서 배를 빼앗아 오란 말씀이십니까?”
“물론.”
말은 간단하지만,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 많은 엘프 병력도 유신우 한 사람에게 당하고 말았는데, 무슨 수로 그 거대한 배를 빼앗아 온단 말인가.
심지어 현시점에서 차원을 넘어 그가 있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자는 엘프계에서 오직 듀엔데 혼자밖에 없다.
전이의 권한을 가진 유신우가, 무장한 대규모 엘프 병력이 넘어오도록 내버려 둘 리는 당연히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물론 힘으로는 어렵다. 머리를 써야 할 걸세.”
“생각이 있으십니까?”
“일단은 그 인간이 가진 배 안에 들어갈 방법을 찾아야지. 그 인간들이 자네에게 원하는 게 우리의 기술력이라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몇 가지를 넘겨줄 수는 있겠지. 그걸로 그들과 친분을 쌓아서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게.”
“그런 다음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여기.”
파앗.
메를리온은 손을 뻗어 듀엔데가 착용한 갑옷에 표식을 남겼다.
그건 원로원의 권한을 대리행사한다는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그걸로 내가 말한 곳에 가면 물건을 받을 수 있네. 그 물건을 배 안에서 꺼내기만 하면 끝이다.”
메를리온은 그것의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굳이 신뢰할 수 없는 물건을 자신에게 넘길 리가 없다고 생각한 듀엔데는, 무작정 원로의 말을 따르기로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기술 문서는 이거면 되겠지?”
그리고 메를리온은 한 가지를 더 넘겼다.
엘프들 특유의 금속 제련술이 담긴 기억 저장장치.
그건 이종족 입장에선 꽤나 가치 있는 지식일 터였다.
유신우의 신임을 단기간에 확실히 얻어내기 위해, 메를리온 역시 과감하게 베팅한 것이었다.
“……이거면 충분하고도 남을 겁니다.”
“그래. 그럼 지금 당장 움직이게. 시간이 지체되면 곤란하니까.”
“예.”
듀엔데는 그 길로 곧장 메를리온이 말한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여기.”
“수고했다.”
그 이후 듀엔데는 수차례 본세계와 엘프계를 오가며 유신우와 접촉해 기술 문서들을 넘겼다.
“꽤나 순순히 내 말을 따르는군. 혹시 뭔가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니겠지?”
“네가 마음만 먹으면 내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데, 내가 뭘 할 수 있지? 난 그저 살기 위해 시킨 대로 하고 있을 뿐이야.”
겉으로는 그에게 약점을 잡혀 휘둘리고 있을 뿐인 것처럼 위장한 채, 원로원이 시킨 대로 착실하게 그와의 관계를 유지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프리드웬 안에 들어가겠다는 말을 선뜻 꺼내지는 않았다.
‘아직은 이르다. 자칫하면 모든 게 다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어.’
너무 조급하게 움직였다간 일이 실패하는 건 물론이고 자신도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차원 전이는 어디까지나 유신우의 의도대로 행해지는 것이므로 위급할 때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뭐, 그렇긴 하지.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나 또한.”
“음?”
유신우는 듀엔데의 대답에 의문을 보였다.
그 안에 뭔가 다른 뜻이 있음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그러자 듀엔데가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이왕이면 너와 가깝게 지내고 싶다는 뜻이다. 여차하면 아예 엘프계를 버리고 네 쪽에 붙을 일이 오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하하. 그런가.”
의심을 무마하려고 한 말이긴 하지만, 그 안엔 진심도 없지는 않았다.
상황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아서는, 정말로 유신우가 엘프 종족 전체가 어쩌지 못하는 존재가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껏 계속 박쥐같은 행보를 보여온 듀엔데를 그가 받아줄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만하면 된 것 같군. 이제 날 다시 돌려보내 줘.”
“그러도록 하지.”
우우웅.
할 일을 마친 듀엔데는 과도하게 접근하는 시도를 하려다 계획을 그르치기 전에 얼른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조금씩, 유신우가 원하는 것을 주다 보면 언젠가 기회는 오게 되어 있다.
그렇게 알맞은 타이밍이 다가온 순간, 프리드웬을 빼앗고 인류를 파멸시킨다.
그것이 원로원의 계획이었다.
“총독. 거기서 뭘 하고 있지?”
그런데, 이 모든 책략을 가로막는 변수가 하나 있었다.
“의…… 의원님!”
그건 바로 원로원과 극도로 사이가 틀어져 있는 민의회.
그중에서도 듀엔데에게 가장 적대적인, 엘가르가 그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에 쥐고 있는 걸 가져와라.”
“이건…….”
“그게 뭔지는 이미 알고 있다. 더 이상 발뺌할 여지는 없으니 순순히 조사를 받도록.”
엘가르는 이미 기술을 유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그의 뒤로는 무장한 병력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건 명백히 자신을 체포하러 왔다는 뜻이었다.
“이런 일을 원로원과 함께 작당하다니……. 믿을 수가 없군.”
게다가 대체 어떤 경로인지는 몰라도 메를리온과 나눴던 이야기마저 유출된 모양.
이건 더 이상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원로원이라면 치를 떠는 엘가르가 알게 된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사실을 밝히려 할 것이다.
‘젠장……. 그 인간들도 아니고 같은 엘프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듀엔데의 약점은 그 약점을 잡은 당사자인 유신우가 아니라 같은 편이어야 할 엘프들에 의해 드러날 위기에 처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