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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206화 (206/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06화

한 가지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생명력의 소진은 정신력의 소진을 동반한다는 것.

환란의 빙정으로 육체를 즉시 회복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만전의 컨디션으로 되돌아옴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격을 두 번이나 연속으로 사용해 정신을 극한까지 몰아붙였다.

몸은 완벽하게 정상인데, 정신력은 밑바닥에 떨어져 있는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나는 내 상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고.

그 결과, 난 빈사상태인 채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으으…….”

다행스럽게도 이 폐쇄된 공간의 적들을 모두 처리한 후에 쓰러진 거라 무방비로 위협에 노출되는 상황만은 면할 수 있었다.

어쨌든 움직이기 위해선 소진된 생명력을 회복해야 한다.

난 다시 한번 환란의 빙정을 마력 코어에 연결했다.

{진원진기가 <환란의 빙정>으로 대체된다.}

그러자 떨어졌던 기운이 다시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머리는 몽롱하고 좁아진 시야도 그대로였지만, 활력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 이질적인 느낌에 익숙지 않았던 탓에, 내가 너무 무리를 해버렸던 모양이다.

‘이걸로 용격의 제약을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안 되는 건가.’

단순히 몸을 빠르게 회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빈사상태에 들어서고도 소진되지 않을, 불굴의 정신력.

지금 나에겐 그런 능력이 필요했다.

‘정신 방어 특성…… 그런 거라도 찾아봐야겠어.’

사실 그런 특성이나 스킬에 대해서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고려해 본 적이 없었다.

정신 공격은 디스펠로 방어하고, 생명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선 장기간의 치료와 충분한 휴식이 답이었으니 말이다.

마법 공격을 당한 것도 아니면서 정신이 극단적으로 무너지고 몸은 멀쩡한, 이런 기묘한 상황은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난 어떻게든 예외적인 케이스를 만들어내고야 만다.

다른 어떤 수호령을 흡수를 하건, 퀘스트를 깨건, 아니면 그걸 도와주는 물건을 얻어내건.

용격의 제약을 떨쳐낼 방법을 반드시 찾아내야 할 것이다.

이걸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순간, 시바의 재림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거나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 * *

‘그나저나 프리드웬. 이건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한편, 난 다시 이곳에 들어온 처음의 목적을 상기했다.

강철선 프리드웬을 가지고 이곳에서 나간다는 목적을 말이다.

덜컥, 덜컥.

갑판에서 아래쪽의 선실로 내려가는 문은 잠겨 있었다.

선장실도 마찬가지.

무언가 조작을 통해 움직이게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내부로 진입하는 문이 전부 차단되어 있다.

‘이걸 통째로 들고 나가야 하나……?’

이게 평범한 배라면, 이렇게 지하에 처박혀 있는 상태로는 움직이지 않는 게 당연할 것이다.

이걸 가지고 지상으로 올라가서 물에 띄운 다음 돛을 내리든가 노를 저어서 움직이게 만드는 게 정상이겠지.

적어도 겉보기에 중세 시대 범선처럼 보이는 외형을 생각한다면 그렇다.

하지만 이건 그런 평범한 배가 아니다.

신계를 넘나들 수 있는 마법의 함선.

게다가 지금 내 오른쪽 눈에 보이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기만 해도, 그렇게 단순한 메커니즘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강철선 프리드웬>

상태: 비활성(에테르 부족)

───

이 메시지는 다르게 말하자면 활성화를 시켜야 제대로 된 작동법이라는 뜻이다.

적어도 이걸 얻었다고 말하려면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이 배에 관한 몇 마디 언급이라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지금 열리지 않는 이 문 너머에 답이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부수고 들어갈까?’

이 배는 내가 가지고 나가야 할 물건이기에 되도록이면 손상이 가지 않게 해야 하겠지만, 문 정도는 부숴도 되지 않을까란 판단.

{진원진기를 <격멸의 업화>로 대체한다.}

{<파슈파타> 소환}

난 곧바로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체내의 원기를 불로 바꾸고서 검을 치켜들었다.

{공명기 <적사자 검식> 파생형 ‘신기일섬’ 전개}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선장실 문을 향해 깔끔한 일격을 날렸다.

끼기긱!

빠른 참격이 목표한 지점을 가르며 금속을 손톱으로 긁는 소름 도는 소리를 냈다.

되도록이면 다른 부위까지 부서지지 않게끔, 최대한 영역을 좁혀 문만을 노린 공격.

‘뭐야? 안 통해?’

그러나 선장실 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 금속을 긁어내는 소름 돋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자국조차 남지 않은 것이다.

‘강철선이라더니, 진짜 단단하잖아?’

오기가 생긴 난 칼자루를 고쳐 잡고 제대로 된 공격을 준비했다.

아까처럼 용격을 사용할 만한 여유가 생긴 건 아니지만, 좀 더 과격한 기술을 써도 되겠다는 판단이 든 것이었다.

{공명기 <적사자 검식> 파생형 ‘금강염사’ 전개}

{공명기 <적사자 검식> 파생형 ‘흑화륜’ 전개}

선장실 정면에서 사자 형상의 검기를 발출한 다음, 그와 동시에 몸을 날려 체중을 실은 회전격을 실행한다.

콰우우우! 투쾅!

두 가지 기술이 결합되자 강력한 시너지를 일으켰다.

물론 이걸 다 합쳐도 용격 한 번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문을 따는 용도로 쓰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만한 위력.

주변 다른 기물에 대한 피해를 고려하지 않은 공격이었다.

끼이이.

그러나 이번에도 그저 금속을 긁는 소리만 조금 났을 뿐, 어떠한 상처조차 입히지 못했다.

내 공격을 정면에서 얻어맞고 이렇게까지 멀쩡한 물건이 존재할 수 있다니.

과연, 그 테세우스의 배로 변화하기에 충분한 격을 가진 배라는 걸까.

신화시대의 업을 머금었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정말 그냥 통째로 가지고 올라가야 하는 건가?’

이렇게 되자 처음 떠올렸던 판단이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딱히 여기서 배를 움직일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면 답이 생기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난 곧장 프리드웬의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그러곤 선체 하부에 손을 집어넣고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오르려 했다.

펄럭!

“끄으으으!”

그러나 그조차도 여의치 않았다.

배 한 척 정도 옮기는 건 일도 아닌 수준의 근력을 가지고 있는 나였지만.

이건 무게마저도 평범한 배와는 궤를 달리하는 배였다.

온 힘을 다해 들어 올리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웅크려 앉은 자세에서 무릎조차 펴기 힘든데, 이걸 들고 하늘로 날아오른다는 건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힘을 줬을 때 약간이나마 움찔거리는 걸로 봐서는 시스템에 의해 이 공간에 묶여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그냥 무게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무거운 것인 듯했다.

“대체 뭐야?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렇게 되자 난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용암을 뚫는 것에서부터 의식을 잃기까지, 그 고생을 해가며 여기까지 닿았는데, 정작 배를 움직일 방법이 없다니.

그렇다고 딱히 시스템에 의해 어떤 퀘스트가 주어져서 그걸 깨면 되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내가 스스로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오싹.

바로 그 순간, 등골을 타고 내려오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내 오른쪽.

시야를 살짝 벗어난 지점에, 무언가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화륵.

난 그 즉시 다시 파슈파타를 꺼내 들고서 검날에 불꽃을 일으켰다.

그러곤 시야를 돌려 목표를 확인한 순간.

‘……귀신?’

길게 늘어진 검은 머리에 하얀 소복…….

이 아니라, 하얀 실크 원피스를 입은 여성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아까 전 나를 공격하던 프리드웬의 수호자였다.

‘아까 분명 죽었었는데?’

바로 다음 순간에 정신을 잃긴 했지만, 그녀는 분명 내 마지막 일격에 당해 상하체가 분리되며 검은 화염에 타올라 소멸했던 걸 확실하게 목격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의식을 잃은 동안 난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다.

만약 그게 정말로 죽은 게 아니었다면 지금 내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지 못했겠지.

적을 눈앞에 두고 기절한 셈이었으니 말이다.

화악!

{공명기 <적사자 검식> 파생형 ‘금강염사’ 전개}

하지만 난 어쨌든 그녀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강한 적의에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검을 휘둘러 정면으로 뿜어져 나가는 검기를 날렸다.

화르륵!

검은 불꽃으로 이뤄진 사자가 프리드웬의 수호자에게 쇄도한다.

여자는 그 와중에도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고서 달려드는 사자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후웅.

그런데 사자는 그녀를 그냥 꿰뚫고 지나갔다.

아무런 타격도 주지 않고, 서로간의 충돌도 없이 마치 유령을 치고 지나간 것처럼 그냥 통과한 것이다.

‘뭐지……?’

환영이라도 본 것일까.

난 감각을 최대한 키워 저것의 본체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내려 했다.

{<신화 사냥꾼의 본능> 발동}

하지만 내 감각이 해주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저 형체가 본체라는 사실 말이다.

-프리드웬을 움직이고 싶나?

그때, 다시금 그 여자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울렸다.

위협적인 태도는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내놓아라. 너의 영혼을.

곧, 내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 에테르가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 대목에서, 내 머릿속엔 에테르 부족으로 배를 활성화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 * *

파앙!

협곡 안쪽으로 날아들던 와이번 수십마리에게 창격의 돌풍이 휘몰아쳤다.

그 한 번의 공격만으로는 와이번을 완전히 분쇄할 수 없었지만, 그에 이어지는 다음 공격은 달랐다.

퍼퍼퍼퍼퍽!

레아의 등 뒤에 소환되어 있던 수십 개의 관통 작살, 하푼 미사일(harpoon missile)들이 와이번들의 목을 정확하게 관통하며 한꺼번에 절명시킨 것이다.

펑! 펑!

이어 아델이 허공을 박차며 아직 죽지 않고 남아 있는 와이번들에게 적사자 검식을 펼쳤다.

두 사람의 연계 공격으로, 유신우가 들어가 있는 용암 아래쪽의 구역에 접근하는 마수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좋았어.”

“수고하셨습니다, 레아 님.”

아델과 레아는 연계 공격을 마친 후 지상에 착지해 서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팀을 이룬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어느 새 아주 오래 된 동료인 것처럼 호흡이 척척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또 오는 것 같은데?”

“이번엔 좀 큰 것 같군요.”

그들은 협곡 바깥쪽에서 접근하는 거대한 마력을 지닌 개체를 동시에 감지하고서 한 번 더 협공을 가할 태세를 취했다.

지금껏 마주했던 와이번들에 비해 훨씬 더 강한 적.

그렇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음……? 저건?”

“엘프?”

그런데 그렇게 전의를 불태우려던 찰나, 다가오는 존재가 마수가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그건 엘프들이 급하게 타고 왔던 황금 함선이었기 때문이다.

“제때 도착한 것 같군.”

함선이 땅에 정박하고, 그곳에서 질호른과 듀엔데를 비롯한 무장한 엘프들이 내렸다.

거신은 물론이고 중장갑 호버 전차까지 동원된 모습을 보니, 당장이라도 누군가와 싸우러 가기라도 하려는 듯해 보였다.

“뭐죠? 여기엔 왜 온 거죠?”

레아가 와이번을 타고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엘프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답하시는 게 좋을……!”

콰앙!

“아악!”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레아가 창을 들어 올리려 했으나, 곧바로 날아든 전차 포격에 와이번의 날개가 찢어져 아래로 떨어졌다.

“무슨!”

아델이 그걸 보고 엘프들에게 덤벼들려고 했으나.

퍼퍼펑! 펑!

“큿!”

거신과 전차, 지팡이로부터 일제히 쏟아지는 엘프들의 화력투사에 잠시 물러나야만 했다.

그녀는 떨어진 레아와 와이번을 챙겨 다른 용기사들과 함께 엘프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졌다.

“다가오지 마라. 우리가 아무리 약해졌어도 주인도 없는 너희들에게 질 정도는 아니니까.”

질호른은 아델 일행을 보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 전에 도움을 요청하러 왔을 때와는 전혀 달라진 태도였다.

“멍청한……! 너희들이 원하는 배는 마스터와 함께 아래에……!”

“이제 곧 나오겠지. 그 자가 가진 힘이라면 프리드웬을 작동하는 데 성공하고도 남았을 테니까.”

“그걸 알면서도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아델은 이런 짓을 하는 엘프들의 의중이 궁금했다.

애초에 그들을 진심으로 믿은 적은 없었지만.

적어도 유신우가 프리드웬이라는 배를 가지고 나오기 전까지는 협력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질호른 역시 스스로 알고 있듯이 지금의 조난당한 엘프들은 유신우를 이길 수 없다.

그런데 유신우는 지금 바로 이 아래에 있다.

그러니 여기서 이런 짓을 하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왜냐고?”

그럼에도 엘프들은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너희 주인님은 이제 그 배의 일부가 되어서 우리와 함께할 처지거든.”

“뭐라고……?”

듀엔데가 유신우에게 말하지 않은 부분이 하나 있었다.

프리드웬의 수호자, 호수의 여인은, 이곳에서 배를 움직여 줄 ‘연료’가 될 자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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