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99화
검제라는 칭호로 세상에 이름을 날렸던 레아의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네가 창술 스킬을 전수해 준다고?”
“응. 사실 신화 수호령을 얻기 전에…… 내 전설 수호령이 ‘디어머드’였거든.”
디어머드 우어 두브너.
황창 ‘게 비더’와 적창 ‘게 다러그’, 두 자루의 창을 주 투영 무구로 사용하는 전설 수호령.
그게 바로 그녀의 신화 수호령이었던 마나난 막 리르의 아바타였던 것이다.
“그럼……. 원래부터 검술이 주가 아니었던 거야?”
“맞아. 전투 스타일은 신화 수호령을 얻고 난 다음에 바꾼 거야. 물론 투영무구 자체는 그 뒤에도 유지됐지만…… 아무래도 이미지라는 게 그렇잖아.”
레아는 한때 인류 최강의 각성자이자 인류를 뒤에서 좌지우지하던 조직의 우두머리였다.
강함도 강함이지만, 사람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 역시 크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무기마저도 인상을 강하게 어필하는 종류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로 검을 선택한 모양.
도검제일주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만큼 ‘검사’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곤 해도 이런 사소한 부분 때문에 주 무기를 바꾸다니……. 심지어 그렇게 검제라는 칭호까지 얻을 수준으로 강해졌고. 근성 하나는 끝내주는군.’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중요한 사실은 레아가 지금 내게 필요한 창술 스킬을 ‘전수’해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각성자 간에 스킬을 주고받는 <전수 시스템>.
당연한 얘기지만 이건 극히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모든 스킬을 서로 전수하는 것으로 주고받을 수 있다면, 시스템이 만든 퀘스트가 결국엔 다 무용지물이 될 테니 말이다.
‘각성자의 체질이나 능력치 자체를 바꾸는 패시브 스킬은 거의 대부분이 전수가 불가능. 하지만 창술 같은 액티브 스킬은 가능해.’
다행히 적극적인 육체의 동작과 마나의 운용을 통해 시전하는 액티브 스킬, 그중에서도 무기술은 그 운용법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습득하는 게 가능했다.
게다가 각성자 간에 기술을 전수받는 행위를 하면, 해당 스킬의 숙련도 역시 일정 부분 옮겨 받을 수가 있어서 그냥 습득하는 것보다 더 큰 이득을 얻을 수도 있다.
나처럼 권능의 성능이 압도적인 각성자들은 굳이 따로 무기 스킬을 얻을 필요가 없어서 많이 접할 기회가 없었지만.
격이 낮은 수호령을 가진 각성자들에게는 공공연하게 이뤄져 온 행위가 바로 이 전수 시스템.
이번엔 다름 아닌 내가 이 시스템의 효과를 볼 차례가 된 것이다.
‘그나저나 레아는 이제 더 이상 각성자가 아닌데……. 시스템이 작동을 할까?’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녀는 한 번 사망한 후로 비각성자, 아니, NPC가 되어버렸다는 것.
이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지는 나도 모른다.
정 안 되면 처음 계획했던 대로 직접 퀘스트를 클리어하러 다니는 수밖에.
* * *
“오랜만이네, 이 느낌.”
레아가 한 손에 자신의 어깨까지 오는 길이의 창을 쥐고서 빙긋 웃었다.
그녀에게선 왠지 모를 위압감과 신뢰감이 동시에 풍겨왔다.
과연 내게 스킬을 전수해 줄 ‘스승’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한 느낌이다.
“그나저나, 원래는 쌍창을 쓴다고 하지 않았나?”
한편, 난 그녀가 가르쳐 줄 기술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아까 말했던 대로, 레아의 전설 수호령 디어머드가 사용하는 건 두 자루의 창.
하지만 지금 내가 가진 창은 트리슈라 하나뿐이었고, 그녀 역시 지금 창을 단 한 자루만 가지고 와 있었다.
“맞아. 하지만 하나만으로도 충분해. 어차피 기본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레아는 개의치 않았다.
한 자루건 두 자루건 기본적인 이치는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척.
“그럼 시작한다.”
그녀는 곧장 가지고 있는 창 한 자루를 쥐고서 내게 자신의 기술을 보여주었다.
파앙!
첫 기술은 한 손으로 뻗으면서 내지르는 간결한 찌르기.
파공음과 함께 마력이 폭발하며 전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와 함께 불도저처럼 한 방향으로 밀고 나가는 풍압이 수없이 많은 나무와 바위들을 꺾고 밀어버렸다.
“이건 슈팅(Shooting). 모든 기술의 기초야.”
“생각보다 더 생각대로라서 조금 놀랍군.”
“그야 당연하지. 내가 쓰는 창술은 이게 없으면 다른 기술도 무용지물이거든.”
기본기 하나가 다른 기술들의 발동 조건이 되는 스타일의 무기술.
아무래도 레아가 사용하는 창술은 그런 메커니즘인 것 같았다.
‘같은 창술 스킬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겠지만, 한때 인류 최강이었던 그녀가 선택한 거라면 의심할 필요가 없겠지.’
이미 배우기로 시작한 이상, 난 레아를 최대한 믿고 따라야 한다.
어차피 이편이 내게도 속 편한 일이다.
왜냐하면 내 스스로 스킬을 배워 나가게 된다면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기술이 효율성이 높고, 어떤 기술이 상호 간에 연계하기 좋은지, 그런 부분들을 말이다.
레아는 이 과정을 이미 모두 겪었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나름의 정립을 해놓은 상태.
그러니 나는 그녀가 쌓아놓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중요한 건 동작보다 마나 흐름이야. 내 몸에서 이뤄지는 마나 흐름을 잘 봐.”
파앙!
레아는 다시 한번 창을 부여잡았다.
이번에는 찌르기가 아닌 베기.
마찬가지로 극히 단순하기 짝이 없는 동작에 풍압을 날려 보내는 기본 기술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중요한 건 동작이 아닌 마나의 흐름.
난 최대한 감각을 집중해 그녀의 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력의 움직임을 읽어냈다.
‘……뭔가 특이한데?’
그러자 조금 다른 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풍압을 방출하는 단순한 공격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레아의 몸속에선 상당히 복잡한 작용이 벌어지고 있었다.
‘발끝에서 시작해 창끝으로 파도처럼 퍼져 나가는 마나의 흐름. 이건 여느 평범한 무기술과 같다. 그런데 동시에 심장 부근에서 나선을 그리며 회전하는 마나를 그 파도에 실어 보내고 있어. ……왜지?’
동시에 두 가지 프로세스를 행하는 복잡한 기술.
물론 그렇게 함으로써 단순한 타격 이상의 더 강한 공격을 펼칠 수 있긴 하겠지만, 단순히 그 정도의 효과를 노리기에 이건 너무 어렵고 비효율적이다.
“이해했어?”
“뭔지는 알겠는데. 왜 굳이 이런 복잡한 방법을 쓰는 거지?”
난 그 이유에 대해 레아에게 물었다.
“파생 기술 때문에.”
그러자 곧바로 그 이유를 몸소 보여줬다.
파앗!
레아가 손을 뻗자, 그녀의 등 뒤로 마나로 이루어진 십수 개의 짧은 창들이 형성되었다.
그 창들은 제각기 다른 색상과 모양을 가진, 마나의 결정체였다.
그 상태에서 다시 한번 아까와 같은 찌르기를 행하자.
퍼엉!
등 뒤에 형성되어 있던 붉은 창 하나가 날아가 그녀가 찌르기로 조준한 지점에 꽂히며 폭발을 일으켰다.
촤촤촥!
이어서 창을 휘둘러 횡으로 베어내자, 이번에는 청색의 창 세 자루가 한꺼번에 창날의 타격 지점에 내리꽂혔다.
거기까지 보고 나자, 난 이 기술의 메커니즘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이제 이 기술의 이름이 왜 슈팅인지 알겠지?”
마력으로 소환한 특수한 창들을, 슈팅이라는 기본기의 시행으로 날려 보내는 것.
왜 레아가 예전에 이걸 자신의 주력으로 썼는지 이해가 되었다.
또한 동시에 트리슈라의 청류 폭발 기능 위에 ‘얹어 내는’ 기술로 이것만큼 좋은 게 없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 * *
치지지직. 치지직.
동 대륙의 드넓은 평원 한가운데.
그 땅 위의 허공에서 전류 스파크와 함께 광대한 영역의 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뒤틀린 공간은 끝내 장력의 한계를 초과해 버린 천처럼 사정없이 찢어지며 그 사이에서 타 차원의 풍경을 드러냈다.
우우우웅.
비정상적인 공간 굴곡에 의해 발생하는 기괴한 진동음.
그와 함께 이 땅 위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테세우스의 배.
엘프 황금 함대의 기함이었다.
콰우우.
그 뒤로 강렬한 엔진음을 내뿜는 수십 척의 공중전함이 뒤따랐고.
모든 배들이 차원을 뛰어넘어 이 평원 위에 도착한 후에야 찢어진 차원의 균열은 수복되었다.
이로써 제2 엘프계의 엘프들이 본세계의 동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식민지 건설 계획 승인.”
곧이어 집정관 질호른의 명령에 따라, 엘프들은 이 새로운 세계에 자신들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본국의 의회가 결정 내린 ‘이종족들과의 최종적인 평화유지’라는 기조는 유지해야 했으므로.
기존의 인간, 오크, 렙틸리언들이 소유하고 있는 성은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서 식민지를 건설해야만 했다.
어차피 그들의 기술력이라면 맨땅에 도시 하나를 짓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기에 그런 건 별 장애물도 아니긴 했지만 말이다.
“듀엔데 님, 비어 있는 성을 발견했습니다.”
바벨탑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본세계 속주 행정관으로 진급한 듀엔데.
그는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하기에 알맞은 장소를 탐색하던 도중, 어느 종족도 점유하지 않은 빈 성을 발견했다.
“잘됐군. 그곳의 시설을 허물고 도시를 건설하면 되겠어.”
듀엔데가 굳이 그곳에 도시를 건설하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본세계의 땅 대부분은 시도 때도 없이 마물들이 나타나는 던전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엘프들의 기술력이라면 그런 마물쯤은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겠지만.
도시 내부에 계속해서 재생산되는 마물들의 발생지가 존재한다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 세계에서 적어도 마물로부터는 ‘안전한 지대’인 영지에 도시를 건설하는 게 가장 안정적인 것이다.
“제가 직접 가서 건설을 지휘하겠습니다.”
“알겠다.”
곧장 듀엔데는 집정관 질호른에게 해당 내용을 보고한 후, 병력 일부와 건설 장비들을 이끌고 비어 있는 성으로 갔다.
위치는 동 대륙 중부의 한 평원.
종족도 엘프인 데다 과거의 기억조차 없는 듀엔데가 알 리도 없고 알아야 할 이유도 없겠지만.
사실 그 성은 과거 신화시대의 찬란한 역사가 담겨 있는 성이었다.
다름 아닌 예루살렘 왕국의 역사가 말이다.
“이 안에 주민은 아무도 없는 모양이군.”
소유주가 없는 성이긴 하지만, 안에는 어째선지 원래 있어야 할 원주민 NPC조차 없이 한산했다.
원래는 공성전을 통해 인간계, 엘프계, 오크계, 렙틸리언계 중 단 한 차원의 영지만이 존속되어야 하지만.
이런 빈 영지들은 그런 공성전을 거치지 않고서 조기 통합에 의해 급하게 본세계로 넘어와 버린 땅.
그 때문인지, 여기엔 아예 NPC 자체가 존재하질 않았다.
“차라리 잘됐군. 괜히 분란이 생기는 것보다는 낫지.”
듀엔데는 그걸 호재라 생각하고 본래의 목적대로 도시 건설을 추진했다.
지이잉.
건설 장비들이 비어 있는 성에 들어와 광선을 쏘며 벽을 입자 단위로 분해하고, 그 입자를 이용해 더 튼튼하고 기능적인 구조물을 만들기 시작.
그렇게 식민지 건설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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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묘한 메시지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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