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98화
“하하하하! 더! 더 해보거라!”
요르문간드가 광소를 흘려대며 소리쳤다.
그 앞에서 온갖 꼴사나운 짓을 하고도 모자라, 말로 형용하기조차 어려운 잔혹한 고문을 당하는 토르를 보고 있자니, 나조차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정령 <토르>가 당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정령 <토르>에 대한 당신의 영향력이 감소합니다.}
요르문간드의 복수(?)가 워낙 심했던 탓일까.
정령 소환된 토르가 나로부터 벗어나려 한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정령술은 강신술과는 달리 소환체의 격이 높은 대상을 불러내는 마법이라, ‘지배’가 아닌 ‘계약’의 형태가 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시스템상 술자와 정령 사이에 관계가 틀어지면 소환 해제는 물론, 영영 해당 정령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특성 <악의의 오른쪽 눈>이 발동된다.}
{흡수한 영혼에 대한 지배력이 유지된다.}
물론 내 경우와는 무관하지만 말이다.
치직. 치지직.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토르가 자의로 몸에서 전류를 내뿜으려고 했다.
“멈춰.”
하지만 그 시도는 곧 내 명령에 의해 무산되었다.
“어쭈? 이게 감히 나한테 이빨을 드러내?”
물론 그 작은 전류 스파크 하나조차도 요르문간드에게는 심기를 거스르는 반항이었다.
곧, 토르에게 지금껏 해왔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보복이 가해졌다.
콰직! 으드드득! 푸확!
{정령 <토르>의 육신이 파괴되었습니다. 영혼이 물질계에서 에테르계로 돌아갑니다.}
끔찍한 소리와 함께 정령 토르는 정확히 144번째 죽음을 맞이했다.
“다시 소환해 보거라! 다시!”
요르문간드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내게 그를 한 번 더 꺼내기를 요구했다.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전신에 피 칠갑을 하고서 눈을 뒤집어 깐 채 저렇게 말을 하고 있으니, 더 강렬한 광기가 가득히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요르문간드.”
“응?”
“이제 이쯤 하는 게 어때? 너무 한꺼번에 많은 유희를 즐기면 금방 질린다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음미해야지.”
난 그런 그를 달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언제까지고 여기서 기다리고만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렇지. 너무 한꺼번에 많이 즐기면 재미가 없지.”
다행히 내 설득은 먹혀들었다.
“좋아. 네가 원하는 건 내 두 번째 힘이겠지?”
그리고 내가 굳이 꺼내지도 않은 요구를 들어주었다.
요르문간드는 첫 만남부터, 여러모로 말이 잘 통하는 녀석이었다.
‘언젠간 이 관계도 무참히 깨지게 되겠지만.’
물론 그 역시 불멸의 존재였기에 모든 불멸자를 향하는 내 칼날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이야 내 힘이 부족해 그를 꺾을 수 없다지만, 분명 언젠가는 과거의 나, 아니, 그 나조차 뛰어넘어 세계를 리셋시킨 파괴신 ‘시바’에 닿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신들뿐만 아니라 지옥에 있는 모든 악마들도 다 같은 신세.
세상에는 영원히 불멸자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가지고 온 걸 보니 정말 믿을 만한 놈인 것 같군.”
아무튼 요르문간드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금 손을 뻗어 내 머리 위에 얹었다.
“좋아. 그럼 이번엔 제대로 된 걸 주도록 하지.”
“제대로 된 것?”
“내 힘의 핵심. 아마 좀 아플 거다.”
“잠깐-”
그런데 그는 내 생각보다 더 많은 걸 주려는 모양이다.
한꺼번에 너무 과한 힘을 받아들였다간 내가 산산 조각날지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그러면 우리 사이의 계약이고 뭐고 전부 다 먼지처럼 사라진다.
……라는 말을 하려는 순간.
덜컹.
이미 요르문간드의 정수는 내 몸 안으로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무언가 몸 안에서 터지는 소리와 함께 차갑디차가운 기운이 전신의 혈관을 타고 몰아쳤다.
마치 강둑에 가득 차 있던 봇물이라도 터진 듯, 큰 폭음이 머리 쪽에서 울리며.
나는 곧 다시 깊은 심상세계 아래로 떨어졌다.
* * *
‘젠장……. 저 혼자 들떠서는 이게 무슨…….’
아무리 녀석이 바라마지않는 선물을 줬다지만, 이리도 생각 없이 마구 힘을 흘려보낼 줄이야.
나는 지금 내 몸을 완전히 헤집어놓고 있는 이질적인 물의 기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콰우우우. 쏴아아아.
파도가 들썩이는 드넓은 바다.
천둥 번개가 내리치는 먹구름 드리운 하늘.
원래도 거칠었던 내 심상세계의 풍경이었지만, 그 위로 요르문간드의 정수가 뒤섞이자 세상은 더욱 격렬하게 요동쳤다.
쩌적!
“큭.”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당연히 온도.
나의 바다와는 뒤섞이지 않는 푸른 물길은, 이 세계 전체를 마치 극지방으로 만든 것처럼 차갑게 온도를 낮췄다.
덕분에 그 물길에 닿기만 해도 살갗이 얼어 세포가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기존에는 그저 격한 환경 속에 서 있을 뿐인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환경 자체가 나를 찢고 부수기 위해 적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집중하자. 저건 진짜 통증이 아니다. 어떻게든 이걸 통제해야 한다.’
이런 와중에도 정신을 붙잡고 어떻게든 버틴다.
힘을 받아들이고 자시고 하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은 요르문간드가 막무가내로 주입한 이 물길로부터 살아남아야만 한다.
생존의 문제라는 거다.
쏴아! 촤르르륵! 퍼퍽!
물길이 튀어 올라 내 몸에 닿을 때마다 피부 표면이 얼어붙고, 그 부위는 순식간에 팽창해 마치 폭발 마법이라도 발동한 것처럼 터져 나갔다.
극심한 통증이 엄습해 왔지만, 애써 억눌렀다.
이건 진짜 육체의 고통이 아님을 끊임없이 인지하고 되새긴다.
심상세계 속 나의 몸은 내 마음이 만들어낸 일종의 환영에 불과할 뿐.
‘아지다하카.’
화르륵!
나는 고통의 업화를 다루는 힘의 근원인 아지다하카를 불러냈다.
차가운 기운을 불로써 다스린다.
서로 상충되는 성질을 가졌지만, 인위적으로 그 두 성질을 부딪쳐 제어해 내는 과정.
첫 번째와 비교해 그리 다를 것은 없다.
다만 이번은 그 규모가 그때보다 훨씬 더 클 뿐이다.
파캉! 쩌저정!
검은 화염과 푸른 물길이 서로 맞닿을 때마다 폭발을 일으켰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후폭풍의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심상세계 전체가 흔들릴 수준.
그 덕에 나는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아야만 했다.
시야가 흐려짐에도 간신히 버티고 서서 힘의 충돌과 통제에 집중한다.
그런데 그때.
쏴아아아. 콰르릉.
푸른 물길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생명체가 튀어나왔다.
‘수룡……?’
그건 기다란 뱀의 형상을 한 바다의 용이었다.
아지다하카가 날개와 앞, 뒷발이 달린 드래곤(Dragon)이라면, 그것은 날개도, 다리도 없는 웜(Wyrm).
요르문간드와 꽤나 비슷한 생명체였지만, 디테일한 생김새는 확연히 달랐다.
‘아지다하카에 대항이라도 한다는 건가.’
그것이 검은 불꽃을 뿜어대는 아지다하카를 향해 달려들었고, 둘은 곧 이리저리 뒤엉켜 치고받고 싸우기 시작했다.
불길과 물길이 서로 부딪히며 거대한 파동을 일으켰다.
펑. 퍼펑.
난 이 싸움에서 아지다하카가 승리해야 요르문간드의 온전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직감했고, 그 즉시 파슈파타를 뽑아 들고 전투에 가세했다.
‘꺾는 것만이 답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정수를 컨트롤하는 데 집중하자.’
그런 와중에도 계속해서 상황을 살피며 힘의 제어가 가능해지는 기회가 올 때를 노렸다.
그렇게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을까.
수룡은 쌓이는 상처에 점점 더 움직임이 느려졌고, 맹렬히 요동치며 바다를 뒤덮었던 푸른 물길 또한 차츰 고요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지금.’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나는 검을 화염을 사방으로 뿜어 잠잠해진 푸른 물길을 통째로 감쌌다.
그 안에 있는 수룡 또한 마찬가지.
화르륵.
이건 저 녀석을 쓰러뜨리기 위한 공격 행위가 아니다.
에너지를 내 것으로 만들 목적으로 행하는 포용.
그렇기에 최대한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가능한 최대로 정교하게 제어하려 시도했다.
그러자.
쿠구궁.
수룡과 푸른 물길의 표면에 검은 화염이 얇게 뒤덮였다.
아니, 화염이 뒤덮었다기보단, 저것들이 불꽃을 빨아들였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수룡을 중심으로, 불과 물, 두 개의 상반된 기운이 합쳐져 중심으로 빠르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다가온다……?’
그러더니 새까만 화염을 뒤집어쓴 수룡이 빠르게 나를 향해 돌진했다.
순간 나는 그것이 제어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인 줄 알았으나.
‘공격이 아니야.’
수룡의 의도가 그게 아님을 금세 알아챘다.
그 돌진은 내게 해를 가하려는 게 아니라, 내 손아귀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마검 <파슈파타>가 요르문간드의 힘에 반응한다.}
수룡은 곧, 내 오른손에 쥐어진 파슈파타와 결합했고.
마검은 새로운 형태로 변화했다.
내 키와 거의 비슷한 길이의 장병기.
세 개의 날을 가진 삼지창으로 말이다.
{<파슈파타>의 첫 번째 변형, <격룡창 트리슈라>가 개방되었다.}
* * *
{<파슈파타> 개변 <격룡창 트리슈라>}
요르문간드의 힘을 받아들여 얻은 새로운 무기.
검과 창을 넘나드는 무구의 형태를 보고 있자면, 악의의 전당을 구사하던 얼마 전의 내가 기억난다.
‘확실히 여러 종류의 무기를 사용할 수 있으면 좋긴 하지.’
각각의 상황에 따라 장단점에 맞게 사용할 수 있으니 더 유리해졌다고 해야 할까.
물론 지금 내 수준에서 그 장단점이라는 건, 검과 장병기 사이의 차이처럼 일반적인 무기 형태에서 오는 특징과는 거리가 멀긴 하다.
그보다는 이 ‘트리슈라’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능.
거기에서 운영의 묘(妙)를 찾아야 한다.
{<격룡창 트리슈라> 고유기능 ‘청류 폭발’ 발동}
투화아아악!
트리슈라에 마력을 불어넣자, 삼지창의 자루 끝부분에서 예의 푸른 물길이 한순간 강하게 내뿜어졌다.
창을 쥐고 있는 내 몸이 거기에 이끌려 앞으로 튕겨 나갈 정도의 강한 반발력.
쩌렁!
“흡!”
그것은 이미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난 육체의 소유자인 나조차도 아찔할 정도의 속도감을 안겨줬다.
음속은 진작 돌파했기에 사방으로 소닉 붐을 일으키는 건 당연했고.
공기를 찢고 나아가며 만들어내는 충격파가 발동 지점 주변을 휩쓸었다.
그리고 내 몸은 어떠한 추가 추진도 없이 대각선 위쪽을 향해 한참 동안 날아가야만 했다.
휘이이잉.
타앗.
“응? 신우?”
성 밖에서 한참 떨어진 숲 지대에 있던 나는 순식간에 성벽을 넘어 알포드 성안 쪽으로 날아와 레아가 있는 곳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마치 대포알처럼 곡선을 그리며 날아온 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떻게 된 거야? 뭐 하다 여기까지 날아온 거야?”
“새 무기를 시험하고 있었거든.”
“……창?”
레아가 내 트리슈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것 같아. 특히 돌진기를 쓰기에는.”
아무런 기술도 더해지지 않은, 순수한 추진력만으로 이 정도 속도였다.
여기에 적사자 검식 같은 기술이 얹어진다면 얼마나 강해질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정도.
“그래?”
“다만 하나 문제가 있긴 한데…….”
“음? 어떤 문제?”
“창술 스킬을 새로 배워야 한다는 거야.”
사실 지금까지 난 무기 기술을 따로 습득하지 않았다.
이전엔 다른 수호령들의 고유 기술을 개방하는 것으로 충분했고, 용인화를 이룬 후에는 아델의 검술을 이어받아 적사자 검식을 정립했다.
그렇다 보니 굳이 다른 각성자들처럼 따로 무기 스킬을 얻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물론 고유 기능만으로도 충분히 강하긴 하지만, 여기에 기술 하나를 더 얹을 수 있다고 하면 안 할 이유가 없지.”
그래서 난 지금부터 창술 스킬을 습득하기 위해 던전을 돌면서 퀘스트를 클리어해 나가려고 했다.
패치노트는 이미 따로 정리해 둔 과거 자료를 사용하면 되었고, 그중에서 유용해 보이는 스킬들을 골라 얻기만 하면 끝.
조금 번거로운 작업이 되긴 하겠지만, 시간이 나는 대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래? 창술 스킬을 배운다고?”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레아의 눈빛이 묘하게 바뀌었다.
그녀가 뭔가를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있잖아, 신우.”
“음?”
내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런 거라면 나한테 전수받지 않을래? 창술 스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