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95화
시스템상으로 수많은 마법과 스킬, 권능이 존재하긴 하지만.
사용자의 생명력을 직접 깎아 먹는 기술은 거의 없었다.
그 위험한 강신술이나 그와 비슷한 류의 흑마법도, 사용자의 생명력을 깎아 먹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랬다간 죽는 건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일 테니 말이다.
시스템은 게임이 아닌 현실이다.
게임에선 생명력이 줄어들어도 0이 되지만 않으면 괜찮아서, 자기 생명력을 소모하는 기술을 마구 사용하고 어떻게든 다시 회복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여기선 다치면 다친 만큼 사용자의 모든 게 뿌리부터 흔들린다.
마법과 물약으로 어떻게든 치료를 한다고 하더라도, 소모되는 정신력은 어찌할 수가 없고.
중상을 입으면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휴식을 취해줘야 한다.
비단 각성자뿐만이 아니라 NPC들도 마찬가지.
따라서 초인의 경지를 넘어 신격에 다다른 수준의 신화급 각성자들 또한 부상을 입으면 먹고 자는, 지극히 기본적인 생리 행위들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바벨탑 6층에서 그 강력한 용기사들과 유신우조차도 캠핑을 하면서 며칠이라는 시간을 들여 공략을 해야만 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진지를 구축하고 싸우는 공성전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고작 기술을 강화하기 위해 스스로의 생명력을 깎아 먹는다?
그러려면 그 위력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의 곱절로 강화되어야 수지타산이 맞을 것이다.
유신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맞아떨어지는 것 이상, 아니…… 과할 정도야.’
{공명기 <적사자 검식> 파생형 ‘용격 흑화륜’ 전개}
쉬이이익!
콰콰콰콰!
바람을 가르고 그의 몸이 회전한다.
손에 쥐고 있는 실체화 된 마검, 파슈파타에서 새까만 화염이 뻗어나오고.
전방으로 뛰어드는 관성에 칼끝에 실리는 체중이동까지 더해진 고속의 회전 참격은 고통의 업화에 휩싸여 불꽃의 마륜(魔輪)을 자아냈다.
여기까지는 여느 때 펼쳐내던 흑화륜과 별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그 위에 자신의 생명력을 깎아 용혈을 발라내는 <용격>이 얹어지는 순간.
콰르릉!
천지를 울리는 진동과 함께 칼날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이 용머리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화염 차륜의 참격이 용으로써 구현된 것이다.
콰아아아아!
이제 이 내려치는 일격을 막아낼 방해물은 아무것도 없다.
주변에서 날갯짓하며 유신우를 저지하려는 비병도.
아래에서 각종 속성의 마탄을 쏘아 올려 보내는 대공포병도.
하늘을 가득 메운 이 거대한 흑화룡(黑火龍) 앞에선 화톳불 위의 지푸라기에 불과했다.
“끄아악!”
“뜨, 뜨거워!”
다가온 자는 재가 된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자들은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드는 뜨거움에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다.
곧, 회전하는 그의 검에 둘러진 검은 용이 아래쪽 목표물의 표면에 부딪혔다.
공격 대상은 공성 방어막.
흠집하나 나지 않은 채 생생하게 펼쳐져 있는, 오크 종족의 요새를 둘러싼 실드였다.
번쩍.
짧은 순간, 맞부딪힌 표면에서 섬광이 퍼짐과 함께 정적이 흘렀다.
주변 일대가 진공 상태가 되어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상태가 된 것이다.
콰콰콰콰콰쾅!
곧이어 공기가 다시금 충돌 지점으로 빨려들어 오면서 고막을 찢을 기세의 폭음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후폭풍이 따라오는 것은 당연지사.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자욱한 흙먼지가 하늘 높이 치솟아 거대한 요새 전체를 뒤덮었고.
그 덕분에 폭발 사거리 바깥에 서 있는 인류 연합 구성원들은 저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이 불가능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뭔가 번쩍거리긴 했는데, 방금…….”
그저 충돌과 함께 뭔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을 뿐.
콰콰콰콰콰.
“잠깐…… 저기!”
이윽고, 솟아오른 흙먼지가 가라앉고 용격 흑화륜이 만든 파괴의 잔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성벽이…… 무너졌어.”
내부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요새.
아니, 벽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애초에 그게 무너졌다는 소리는 그보다 더 단단한 공성 방어막이 깨졌다는 소리였으니까.
이들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런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닐 만큼 충격적이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야.”
“……응?”
“남아 있는 게…… 내성밖에 없잖아.”
공성전에서, 그 어떤 수를 쓰더라도 무너뜨릴 수 없도록 시스템이 강제로 ‘파괴 불능’ 속성을 부여한 유일한 구조물.
그 구조물인 내성 단 하나만이,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 펼쳐져 있었다.
그 외에 멀쩡히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말이다.
“기술 한 번에 성을 통째로 무너뜨려 버린 건가. ……하, 참.”
유신우는 단 일격, <용격 흑화륜>으로 오크 요새를 말 그대로 무너뜨렸다.
마치 핵폭탄이라도 떨어뜨린 것처럼, 성 하나를 이 공간 내에서 말끔히 삭제해 버린 것이다.
“다들 뭐 해? 점령하러 가야지!”
“아…… 넵! 가, 가자!”
이제 남은 일은 병력들이 내성에 진입해 점령 포인트를 점거하는 것뿐.
이제 공성전은 더 이상 공성전이 아니게 되었다.
* * *
{<비토리노> 성의 소유권이 <제 1인간계>에 귀속됩니다.}
{영지 내부에 남아 있는 <오크계>의 구성원은 아공간으로 축출됩니다.}
“이걸로 103번째……. 오크와 렙틸리언들은 아예 더 이상의 영토 확장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군.”
요르문간드의 힘을 얻고 난 후, 내가 참여하는 공성전은 모두 거의 시작하자마자 끝나는 모양새가 되었다.
오크계의 토르 수호령 각성자인 라르스도 나에게 대항하지 못했고, 주 전력인 케프리-라-아툼을 잃은 렙틸리언계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처음에는 저들 나름대로 대항군을 꾸려서 덤벼들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용격 한 번에 성채와 함께 전부 먼지가 되어버렸다.
그런 탓에 지금은 아예 저항할 생각조차 없는 것인지 영지들을 모조리 방치해 놓는 상황.
이제 공성전이라는 시스템 자체의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엘프는 여전히 영지 점령에 손조차 대지 않는 상황이고, 오크와 렙틸리언들은 지금까지 귀속된 영지들만을 유지한 채로 각자의 세계에 숨어들고 있다.
그저 인류만이 유일하게 계속 영토를 확장해 나가고 있을 뿐인 것이다.
“공성전의 구도가 굳어져 가고 있군……. 이대로라면, 올해가 끝날 때까지 의미 없는 공성 참여만 반복될 것 같은데.”
다리우스는 지금 상황에 대해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다.
계속해서 늘어나는 인류 소속의 영토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부터 해서.
각성자, 비각성자, NPC 사이의 정치적인 입지 문제, 그리고 차후에 벌어질 ‘세계 통합’ 이후 종족 간의 전략적 구도까지.
원래 내가 부재중인 동안 성과 클랜을 관리하는 게 그의 일이었지만, 이제는 일개 마피아 조직원에 불과했던 그가 떠맡기엔 모든 일들이 너무나 막중해지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땅을 늘리는 것보다도 인류 연합 클랜의 내부 기반을 다지는 데에 집중해야 할 것 같아.”
“기반을 다진다라…….”
그래서 그는 내게 ‘새로운 관리 체제’를 만들자는 말을 꺼냈다.
확실히 이제는 단순히 우리끼리 해 먹을 수 있는 시기가 지나기는 했다.
이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를 보유한 연합 내에, 프로페셔널한 정치인과 행정가들도 차고 넘칠 만큼 많았기에 굳이 우리 같은 아마추어가 이런 일을 떠맡을 필요도 없기는 하고.
‘물론 어디까지나 클랜의 수장은 나지만.’
그렇다고 내가 현재 위치한 ‘인간계의 평정자’ 위치에서 물러날 생각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 모든 땅과 돈과 집단의 소유권은 그대로 가진 채, 그걸 대신 관리해 줄 인재를 앉히겠다는 뜻.
말하자면 ‘세계 정부’이자 ‘기업형 국가’의 건립을 의미하는 셈이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의 지배주주이고, 이 안에 소속된 사람들은 내 소유의 자본 위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걸 실행하기 위한 돈은 차고 넘친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지금 내가 가진 골드는 달러로 환산하면 2020년대의 미국을 18조 년간 운영할 수 있는 돈이었으니까.
시스템이 ‘골드’를 화폐로 사용하는 한, 내 지배 하에서의 인류는 영원히 번영할 것이다.
‘여하튼 클랜 상황은 이쯤에서 슬슬 안정화시켜 나가면 될 거 같고……. 요르문간드도 당분간은 잠잠하니, 이제 남은 건…… 엘프들인가.’
결국 이런 모든 준비 행위들의 목표는 하나다.
엘프들로부터 차원 이동 장치를 얻어내 신화 수호령인 드루이드 옹구스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그로부터 거울 봉인에 대해 단서를 얻어 야드가르를 구출해 내는 것.
따라서 지금 해야 할 일은 듀엔데와 질호른, 이 둘을 잘 구워삶아서 내가 갖고자 하는 차원 이동 장치를 털어먹는 일이었다.
“어……? 잠깐만.”
“음?”
그런데 한창 앞으로의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무렵, 갑자기 다리우스가 허공을 응시하며 탄식을 내뱉었다.
“이거…… 뭐지?”
“뭐냐니? 뭘 말하는 거야?”
그는 여전히 허공을 쳐다보며 그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물론 그게 귀신은 아닐 테고.
무엇인지 대충 짐작은 간다.
시스템 메시지.
다리우스는 지금, 눈앞에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너한텐 안 보여? 이게?”
“그게 무슨……. 아.”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간 차가 있었던 모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도 똑같은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시스템 메시지는 다름 아닌, 이 세상의 모든 각성자들에게 보내는 ‘긴급 공지’였다.
───
!!긴급 공지!!
종족 간 공성 토너먼트 시스템이 관리자의 예측보다 훨씬 이른 시간 내에 무력화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제1급 세계 통합의 일정 변경이 불가피해졌다고 판단, 현 시간부로 각 세계에 배포된 모든 패치 노트를 회수하고, 약 7일간의 휴지기 후에 즉시 세계 통합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 * *
갑작스럽게 통보하듯 전해져 온 세계 통합 공지.
시스템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작동해왔기에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번 건은 충격이 여느 때보다도 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불가침의 영역이었던 각 종족의 보금자리가 이제 하나의 차원으로 서로 합쳐지는, 매우 거대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스템의 새로운 방침은 그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패치 노트의 재배포가 없다……?’
원래 세상에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면, 언제나 그랬듯이 내년에 벌어질 일들을 미리 예견해 주는 패치 노트가 다이아 경매로 배포되어야 한다.
이번의 경우에는 예정보다 일찍 세상이 바뀌었으니, 그에 맞춰 새로운 패치 노트가 나와야만 하지만.
어째서인지 기존에 배포된 패치노트를 회수해 간 이후로는 어떠한 소식도 없었다.
그 덕분에 세계 통합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이면세계와 이차원에 존재하는 종족 간에 공유되는 본 세계의 영지들……. 이걸 어떻게 통합시킨다는 거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로서도 알 방도가 없었다.
신격이 각성한 해모수나 유메미의 입을 통해 소통이 가능한 바리공주도 마찬가지.
이건 이 세상이 창조된 이후 사상 처음으로 벌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각 종족들은 7일의 휴지기 동안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모든 외부 활동을 끊고 준비 작업을 해야만 했다.
엘프들도 바벨탑에서 철수했고, 나 또한 다른 일들을 전부 중단한 채 영토와 클랜의 정비에 집중했다.
그렇게 긴급 공지에서 말한 7일이 흘렀다.
{제1급 세계 통합이 진행됩니다.}
{모든 던전 및 영지에서 파괴 불가 오브젝트, 통행 불가 영역이 제거됩니다.}
{<동 대륙>이 완전개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