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94화
요르문간드는 내 당당한 요구에 두 눈을 부릅뜨며 이빨을 드러냈다.
소년의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짙은 노기가 눈에서 뿜어져 나왔다.
다시금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지금…… 너에게 내 힘을 내놓으라, 그 말이로군?
“잘 알아…… 들었군.”
나는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간신히 통제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 나에게 네 힘을 다오……. 그러면…… 너를 이렇게 만든 신들에게…… 내가 대신 복수를 해주겠……다.”
-그 제안에는 별로 마음이 동하지 않는데.
“어째서……지?”
-믿을 수가 없어서.
요르문간드는 계속해서 내게 못마땅함을 드러냈다.
물론 그건 단순히 방금 전에 했던 말처럼 자신을 대하는 내 태도가 불량하거나 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이건 그 이전에 근본적으로, 나라는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 ‘믿음’은 두 가지 측면을 포함하고 있었다.
-우선은 네가 내 힘을 받고 나서 신들에게 복수를 한다는 게 진짜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가 없어.
첫째는 신뢰의 문제.
-만약 그렇게 내 힘을 받아 먹어놓고, 입만 싹 닦은 채 도망쳐 버리면, 난 아무것도 못 하겠지. 네가 무슨 수를 써서 이곳 ‘니플헤임’까지 들어온 건지는 몰라도, 난 바깥으로 나갈 수도, 또 영향을 미치지도 못하니 말이야.
내가 계약한 사항을 제대로 이행할 것인지 자체를 믿지 못한다는 얘기.
물론 이 부분은 얼마든지 설득하는 게 가능했다.
“그런 건…… 어렵지 않지. 네게서…… 힘을 ‘나눠 받으면’ 되는 것이니까.”
이 대목에서 나를 옥죄어 오던 투기가 흩어졌다.
-‘나눠 받는다’?
“……후. 간단해. 계약금을 선급금, 중도금, 잔금으로 나누듯이 네 힘도 처음부터 전부를 주는 게 아니라 나눠서 주면 돼. 만약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가져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되는 거고, 아니면 다음 단계의 힘을 넘겨주지 않는 거지. 그리고 우리의 거래는 거기서 끝나는 거야.”
-흐음……. 계약금이니 뭐니 하는 게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의미는 알겠군.
이건 별로 큰 문제가 되는 부분이 없다.
왜냐하면 애초에 지금 하려는 일 자체가 내 목표에 전혀 어긋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요르문간드와 나, 둘 다 신에게 복수심을 품고 있다.
그러니 그 부분에서 굳이 그를 속일 필요도 없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둘 사이의 계약은 이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뭐,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말이지.
하지만 진짜 문제는 두 번째, 바로 ‘능력의 문제’였다.
-과연 필멸자인 네가 이 몸의 진정한 힘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자는 진짜 요르문간드였다.
각성자의 몸을 통해 되살아난, 열화판 신 같은 존재가 아니라.
나로 인해 무너졌던 세계가 재구축될 당시, 시스템에 의해 완전히 축출되어 오랜 시간 이 지옥에서 단절된 채 그 능력과 권능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진짜 불멸의 존재 말이다.
당연히 그런 그의 힘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 내 몸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제아무리 요르문간드가 우호적인 태도로 나를 대한다 하더라도 이건 그와는 별개의 영역.
따라서 그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힘을 나눠 받겠다는 거다.”
물론 난 그에 대한 대책 또한 이미 다 생각해 두었다.
“너 같은 ‘강대한 불멸자’의 힘을 한꺼번에 받아들이면 이 ‘나약한 필멸자’의 몸뚱이가 부서져 버릴지도 모르니, 조금씩 익숙해지겠다는 거지.”
-호오. 그렇군. 그걸로 한 번에 두 가지의 조건을 다 충족하겠다는 거로군.
요르문간드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시종일관 오만하기 짝이 없던 내가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본인을 치켜세워주는 말을 하자,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런 부분을 보면, 불멸자란 정말 단순하기 짝이 없는 놈들인 것 같다.
‘뭐, 전부 다 이런 건 아니겠지만.’
-좋다. 그럼 어디 내 힘을 받아들여 봐라.
요르문간드는 당장에라도 나에게 자신의 힘을 불어넣을 것처럼 팔을 들어 내 영체의 머리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바라던 바다.’
나는 서슴없이 그가 전해주는 힘을 받아들였다.
콰우우우.
이윽고 온몸을 강타하는 살벌한 추위가 엄습해 왔다.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의 혈관에 주삿바늘을 꽂아 얼음물을 주입하는 듯, 소름 돋는 한기가 전신을 감쌌다.
‘윽……!’
쿠궁.
{신수 요르문간드의 정수가 에테르에 축적된다.}
{위험. 고통의 업화와 상반된 에너지의 진입으로 영혼이 붕괴되려고 한다.}
곧 전신을 울리는 큰 충격과 함께 경고 메시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신이 혼미해져 간다.
‘이게 힘의 일부라고……?’
요르문간드의 힘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난 이미 파슈파타의 불안정한 형태를 안정시킨 빙결의 기운을 지니고 있다.
그 크기는 작지만, 그럼에도 고통의 업화에 밀리지 않고 계속해서 한기를 뿜어낼 만큼 단단한 원천.
‘그래서 이젠 이 ‘차가움’을 다루는 데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촤아아아.
하지만 지금 내 몸에 파고드는 유수(流水)는 그까짓 내성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내 영혼을 마구 헤집었다.
온몸에 흐르는 고통의 업화를 모조리 꺼버릴 것처럼, 사정없이 불꽃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 고통은 전신의 피가 얼어붙어 혈관과 살갗을 찢고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안 돼. 버텨야 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무너지면 전부 무용지물이 된다.
-신우 씨?
유메미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유난히 달콤하게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돌아오세요. 그럼 편해질 수 있어요.]
그녀는 그저 내 안부를 물었을 뿐이지만,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유메미에게 손을 뻗으면, 당장에라도 이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 달콤한 유혹이 나를 쓰다듬었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어!’
빙결의 힘을 얻기 위한 과정의 초석 중에서도 초석.
요르문간드는 그 시작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내 목표는 이곳, 니플헤임에 자리 잡은 ‘신수 3남매’의 힘을 전부 가져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유수(流水)의 요르문간드.
-강설(强雪)의 펜리르.
-삭풍(朔風)의 헬.
그들 전부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진정한 환란의 힘을 각성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요르문간드, 그것도 그 힘의 일부만을 깨우치는 데에 이렇게까지 몰린다?
이래서야, 이 세상의 모든 불멸자를 없애는 것도,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것도, 또 야드가르를 구해내는 것도, 무엇도 해낼 수가 없을 것이다.
난 이 시련을 반드시 돌파해 내야만 한다.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찬찬히 떠올려 가며 난관을 헤쳐나가자.’
{고통의 업화가 거세게 타오른다.}
지금 내가 이 힘을 통제하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불꽃으로 물길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를 위해 고통의 업화를 더 강하게 타오르도록 힘을 끌어올렸다.
{상반된 두 힘이 강하게 부딪치며 더 큰 반발력이 전해져 온다.}
“큭.”
그러자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그런 만큼, 요르문간드의 정수는 내 몸 안에서 전과 같이 함부로 휘저어 다니지는 못했다.
물길의 흐름이 조금씩 안정되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내 것으로 만들고 만다……. 반드시.’
다시금 의지를 굳게 가다듬는다.
몸 안에서 뱀처럼 꿈틀거리는 유수를 불길로 휘어잡으며 정신을 붙잡았다.
콰아아아.
그리고 마침내.
{신규 특성 <요르문간드의 정수>를 습득했다.}
{특성 <악룡혈>에 <요르문간드의 정수>가 병합된다.}
{<악룡혈>이 강화되었다.}
나는 이 녀석의 힘을 받아들이는 데에 성공하고 말았다.
* * *
…….
죽은 줄 알았다.
마지막 순간, 간신히 힘을 받아들이는 데에 성공했다는 메시지를 보고서 정신을 놓아버린 탓에 의식을 잃고 만 것이다.
“신우 씨! 신우 씨!”
하지만 다행히도, 내 상태를 끝까지 지켜봐 준 유메미 덕에 영원히 지옥에 갇혀 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진 않았다.
그녀가 내게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인지하고, 타이밍 좋게 나를 현실 세계로 끌어당긴 것이다.
“……고마……워.”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 짧은 한마디에 목구멍이 찢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욱씬.
아픈 곳은 목구멍뿐만이 아니었다.
팔, 다리, 가슴, 몸통, 어깨, 허벅지, 종아리……. 온몸이 쑤시고 따끔하다.
머리는 어지럽고 시야는 제대로 초점을 잡지 못한다.
누운 채로 고개를 들어 내 몸을 내려다봤다.
난 용인화가 해제되어 비늘 갑주가 사라진 채 알몸이 되어 있었는데, 그 위에 담요가 덮여 있었다.
문제는…… 담요가 시뻘겋게 젖어있다는 것.
그 담요를 젖게 만든 붉은 액체의 정체는 내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피였다.
‘악룡혈 강화로 육체가 재구축되면서 몸이 붕괴된 거구나.’
난 곧바로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것 같았다.
내 영혼이 니플헤임에 가 있는 동안, 물질세계에 머무르던 내 육체는 마치 난도질이라도 당한 것처럼 맨살이 찢겨 나가고 온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을 것이다.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그야말로 호러가 따로 없는 광경이었겠지.
“움직이지 마세요! 말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계세요……!”
{당신은 <그레이터 힐링>에 의해 생명력이 회복됩니다.}
울상이 된 채 두 손으로 치유 마법을 써대는 유메미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옆에 팔짱을 끼고 서서 썩소를 짓고 있는 바리공주의 영체도 그렇고 말이다.
“이젠 괜찮아. ……괜히 힘 빼지 마.”
난 그런 유메미의 손목을 붙잡아 회복 마법의 시전을 멈추게 했다.
“네에……?”
“난 괜찮으니까 마나 낭비하지 말라고.”
“그래도…… 아파 보이는데…….”
“이건 일시적인 거고. ……그냥 조금 시간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정말 괜찮은 거 맞죠?”
“그래.”
유메미는 그제야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내 몸은 완전히 회복된 상태.
정신을 차린 직후에는 새롭게 변한 몸 상태에 적응하지 못해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난 금세 컨디션을 되찾았다.
사방에 낭자한 이 피도, 사실 혈액의 형질이 변화하면서 바깥으로 빠져 나온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악룡혈……. 내 피에 요르문간드의 정수가 들어갔다고 했지.’
난 그 변화한 피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특성창을 열었다.
───
<악룡혈>
-아지다하카의 피에 요르문간드의 정수가 섞여 강화된 용의 혈액.
-차가운 유수의 기운으로 고통의 업화를 더욱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
아주 스펙타클한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빙결의 기운을 내뿜는 원천도 그리 커진 것 같지도 않고.’
내가 얻어낸 건 그래 봐야 진짜 요르문간드가 가진 힘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건…… 뭐지?’
하지만 그 특성란 아래에, 요르문간드와는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문구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건 빙결의 기운과는 별개로 발현된, 악룡혈 그 자체가 가진 새로운 능력이었다.
───
-모든 방출계 기술에 생명력을 소모해 <용격>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용격>이 부여된 기술의 위력은 크게 강화되지만, 강화되는 만큼 많은 양의 생명력이 소모되니 주의.
───
생명력을 소모하는 특성.
심지어 유독 다른 요소들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주의’하라는 문구까지 쓰여 있을 정도로, 위험한 냄새가 풀풀 풍기는 특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