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90화
귀찮은 떨거지들을 떼어낸 후, 시나리오 공략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그놈들도 나름의 능력치가 있어서 우릴 아예 쫓아오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현장에서 거치적거린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럼에도 질호른이 건 ‘반드시 그 세 사람을 살려 둬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었으나.
‘제 발로 떨어져 나간 걸 가지고 태클을 걸진 않겠지.’
그놈들이 저지른 헛짓 덕분에 난 훨씬 더 편해졌다.
그들은 내게서 글레이프니르를 훔치려고 했던 모양이지만, 난 보상 상자에서 얻은 단검에 환영 마법을 걸어 일부러 미끼를 던졌다.
그 결과는 대성공.
세 사람 중 마법에 능한 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게 그들의 가장 큰 패착이었다.
어느 누구도 그것이 가짜로 만든 환영임을 꿰뚫어 보지 못했고, 내가 의도했던 그대로 속아 넘어간 것이다.
처음 글레이프니르를 얻었을 때, 그들로부터 심상치 않은 시선이 느껴진다 싶었는데, 정말 내 생각대로 그걸 노리고 있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론 내게 너무나 좋은 상황이 되긴 했으나.
……다만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 열쇠가 뭔지 어떻게 알고 노린 걸까.’
그 엘프 삼인방은 글레이프니르에 손을 댄 적이 없었다.
즉, 아이템 설명이 표기된 시스템 메시지를 받아본 적이 없고, 따라서 이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것.
물론 금장식으로 된 열쇠이니 척 보기에도 비싸다는 게 느껴지기에 충분한 물건이었지만.
겨우 그런 이유로 나를 배신하고 물건을 훔쳐 달아난다?
그것도 이렇게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이건 상식적으로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행동이다.
‘그렇다는 말은, 그놈들이 글레이프니르가 어떤 물건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뜻밖에 되지 않는데…….’
따라서 그들의 일탈이 말하는 가능성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바로 글레이프니르에 관한 정보를 패치노트에서 획득했다는 것.
그리고 그 패치노트의 주인은…….
‘질호른.’
당연히 엘프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권을 가진 자일 터.
인간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의 정점에 오른 나처럼 말이다.
‘처음부터 그 세 명을 내게 붙인 것도 그렇고, 그놈들이 이런 발칙한 일탈을 저지른 것도 그렇고……. 너무 빤해서 오히려 이상할 정도군.’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인 건, 대체 그 정도의 인물이 왜 글레이프니르 같은 걸 훔치고자 했냐는 것이다.
신수를 봉인하고 자유롭게 그 능력을 꺼내 쓴다?
확실히 각성자 입장에선 굉장히 매력적인 물건임이 틀림없지만, 그 <테세우스의 배> 같은 걸 운용하는 엘프의 최고 권력자에겐 그다지 좋을 것도 없다.
잘만 활용하면 그깟 ‘이단자’ 같은 녀석들보다 훨씬 더 유용할지도 모르는 나와의 관계까지 망쳐가며 얻을 이익치고는 너무나 초라한 전리품인 것이다.
단, 어디까지나 그것의 ‘표면적인 용도’만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설마 그 녀석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사실 난 이 글레이프니르를 시스템에서 허용하는 용도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용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갭을 뛰어넘어서 말이다.
만약 질호른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러한 무모한 수작도 충분히 설명이 된다.
공교롭게도 그 시스템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 엘프들도 마찬가지.
따라서 전혀 가능성이 없는 망상도 아니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오히려 더 잘됐네.’
그리고 그건 도리어 내게 희소식이었다.
여기서 나가면, 우선 듀엔데부터 만나러 가야 할 것 같다.
* * *
<요르문간드의 영토> 시나리오에 진입한 지 나흘째.
우리는 그날 이후로 빠르게 필요한 마물들을 찾아 처치하고, 요르문간드를 토벌할 준비를 끝마쳤다.
용기사들은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무장을 둘렀고, 나 역시 각 마물들의 부속으로부터 각종 석궁 탄환을 얻어낸 상태.
게다가 가장 중요한 코트도 5단계까지 강화했다.
───
<현자의 코트>
-최대 마나량 +5%
-마나 회복률 +5%
-패시브 스킬: 5단계 마법강화
-특성: 견고함, 자가수복, 침묵면역, 포켓 메모라이징
───
5단계 마법강화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고, 추가 특성에 <침묵 면역>과 <포켓 메모라이징>이 붙었다.
전자는 마법 사용을 막는 ‘침묵’ 종류의 모든 디버프를 막는 특성.
그리고 후자는 미리 시전해 놓은 마법을 코트 주머니에 저장하는 특성이다.
사실 난 시전 시간이 아주 긴 마법을 사용할 일이 없어서 메모라이징이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지만, 이 메모라이징은 좀 다르다.
의외의 사용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난 그걸 요르문간드전에서 써먹을 작정이다.
{궁전이 개방됩니다.}
{본 시나리오 영역의 최종 보스, <요르문간드>와 맞닥뜨립니다.}
우우우웅.
짙푸른 음영이 잔뜩 드리운 으스스한 분위기의 거대한 궁전이 낮은음으로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전신을 감싸는 압도적인 마력이 나와 내 일행 전체를 휘감았다.
“으……!”
“숨 막혀…….”
레아와 아델이 동시에 신음을 내뱉었다.
그 둘 정도의 강자조차 저런 반응을 내비칠 정도.
심지어 아델은 그 단단한 용 비늘 갑주를 두르고 있음에도 그랬다.
이 시나리오 영역의 최종 보스, 요르문간드는 그 정도로 격이 높은 존재였다.
‘여기 나오는 녀석은 분명 진짜가 아닐 텐데도 이 정도인가…….’
참고로 저건 진짜 요르문간드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시스템이 만들어 낸 ‘시나리오’ 속 환영과도 같은 존재.
그리고 이곳에 도전하는 도전자가 어떻게든 노력하면 이길 수는 있게끔, ‘바벨탑 6층에 진입할 예정인 각성자’가 충분히 극복할 수 있게끔 난이도를 조정한 마물이다.
신화 수호령 획득 퀘스트에서 내가 만났던 다누 족들의 무력이 진짜 신들의 힘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그 존재를 드러냈을 뿐인데 이런 공포를 느끼게 했다.
‘침착하자. 탄환은 충분하다. 이걸 사용하면 놈을 잡을 수 있다.’
나는 오른쪽 허리춤 뒤에 묶여 있는 화살 통을 만지작거렸다.
거기엔 내가 지금까지 제조해 왔던 각종 석궁 탄환들이 담겨 있었다.
패치노트에서도 언급했던 요르문간드의 공략법.
잘만 사용하면, 아무리 큰 무력 격차도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다.
시스템이 만들어 둔 ‘극복할 수 있는 우회 수단’이 바로 이것이다.
“모두 사방으로 흩어져 저 녀석의 시선을 분산시켜라. 단, 너무 많은 주의는 끌지 않도록 하고, 최대한 공격을 피하는 데에만 집중해. 데미지를 입히는 건 내 역할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컴뱃 레디니스’를 사용했을 때는 절대 움직이지 말고 제자리에 멈춰. 알겠나?”
“넵!”
용기사들은 내 신신당부를 듣고 난 후, 곧장 전투에 돌입했다.
{요르문간드가 당신을 발견했습니다!}
{요르문간드가 당신의 적의를 인지했습니다!}
-필멸자여, 감히 내게 도전하는 건가?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거대한 뱀의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위용은 내가 처음 청룡을 맞닥뜨렸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
다만 청룡은 좀 더 영험한 기운을 내뿜는 용이었고.
지금 내 앞에 나타난 해룡 요르문간드는 괴수였다.
날카로운 이빨과 미끌거리는 비늘 피부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거부감이 들게 하는 외모를 가진 괴물 말이다.
요신(妖神), 혹은 흉신(凶神).
놈을 묘사하는 수식어들은 더없이 그에 알맞았다.
{<속박탄> 장전}
나는 요르문간드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답 없이 조용히 베르그리시의 나무뿌리로 싸인 속박탄을 석궁에 장전했다.
그러고는 그 거대한 몸집의 뱀을 향해 조준했다.
-이놈!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요르문간드는 금세 격노하며 흉측한 이빨을 드러냈다.
저 거대한 뱀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그런 표정을 짓자,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지금 저것은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사방으로 날아드는 용기사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부대원들의 리더가 다름 아닌 나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
역시나 저건 지금까지 맞닥뜨린 단순한 마수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였다.
‘침착하자. 공략법대로만 하면 돼.’
그럼에도 난 당황하지 않고 투지를 더욱 불태웠다.
{<신화 속 전사의 투쟁 본능> 발동}
긴장은 곧 흥분으로 뒤바뀌고, 도전적 고양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강적을 만난 지금, 아레스의 피와 살육을 향한 광기가 내게 강렬한 전의를 불어넣었다.
피잉!
더욱 선명해진 시야 위에 석궁의 조준선을 정렬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장전되어 있던 속박탄이 요르문간드의 몸통을 향해 꽂힌다.
푹! 콰드드득!
원래의 탄종이었던 유수 폭약병이 터지면서, 내부에 들어 있던 수속성 폭약이 잔뜩 퍼져 나왔고.
그걸 감싸고 있던 베르그리시의 나무뿌리에 순간적으로 엄청난 양의 물이 공급되었다.
그러자 뿌리가 순식간에 자라나며 요르문간드의 몸통을 붙잡았다.
-이게 무슨 짓이냐!
콰아아!
놈은 몸부림치며 입에서 물기둥을 내뿜었다.
난 그걸 가볍게 피해내면서 다음 속박탄을 장전.
핑! 피잉!
남아 있는 두 발을 전부 그 녀석의 몸통 곳곳에 꽂아 넣었다.
순식간에 자라나는 뿌리들은 몸부림치는 요르문간드를 묶기에 충분했다.
-이깟 걸로 나를 잡아둘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뿌드드득!
물론 저게 영원할 수는 없다.
요르문간드가 내뱉는 물의 기운은 기본적으로 속박탄 나무뿌리를 더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기에.
저 녀석의 주된 공격 수단인 물 속성 마법으로는 풀 수 없지만 그냥 힘으로 뜯어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러니 그전에 다음 공격을 준비해야 한다.
{<폭약병-극독> 장전}
병 안에 블라르오름의 독을 채워 넣은 석궁탄.
난 그걸 묶여 있는 요르문간드의 비늘에 발사했다.
펑!
명중과 동시에 폭약병이 폭발하며 내부에 있던 푸른 독이 뿜어져 나왔다.
곧, 요르문간드의 단단한 비늘 껍질은 그 엄청난 극독에 의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치이익!
-크아악!
{<청뢰 피뢰침> 장전}
곧이어 한 뼘 길이의 대못과도 같은 화살을 시위에 걸고 방아쇠를 당긴다.
푹!
껍데기가 녹아내린 부위에 날카로운 침이 틀어박혔고.
피잉! 피핑! 피잉!
그렇게 또다시 세 번, 극독 폭약병과 청뢰 피뢰침을 번갈아 가며 같은 사격을 반복했다.
그동안 요르문간드는 나를 견제하기 위해 온갖 마법을 써 댔지만, 그 어떤 공격도 날 맞출 수는 없었다.
제자리에 묶인 채로 발버둥 치듯 쏘아대는 공격은 절대 적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맞출 수 없다.
-크오오오오! 반드시 죽여주마!
‘이제 온다.’
그러니 놈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필살기를 써야만 할 것이다.
정신을 사납게 만드는 주변의 용기사들부터, 정면에서 계속 자신의 약점만 건드리는 나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타격할 수 있는, 회피 불가의 전체 범위 광역 공격 마법.
<타이달 서지(tidal surge)>를 말이다.
{요르문간드가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등골을 오싹하게 할 정도로 강하고 서늘한 기운이 한 지점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3.}
저 강력한 필살기의 시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힘을 모으고 방출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짧은 3초.
그 안에 생존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룬 마법화살 -수정 융기(특수)> 장전}
보라색으로 빛나는 마법 화살을 석궁에 장전한다.
그리고 그걸 내 앞 지면에 발사했다.
피잉!
콰지지직!
{2.}
그러자 화살이 박힌 지점에 마법진이 그려지고, 거기서 여태껏 질리도록 봐왔던 거대한 자색 수정이 융기했다.
무슨 수를 써도 파괴할 수 없는 바로 그 수정 말이다.
{<컴뱃 레디니스> 발동}
이어서 클래스 어빌리티를 사용.
파파파팟.
사방에 흩어져 있던 부대원들이 단숨에 내 곁으로 소환되었다.
{1.}
“모두 절대 움직이지 마!”
혹여나 소환되기 직전 움직이던 관성 때문에 수정 벽 밖으로 튀어 나갈까, 난 다시 한번 소리를 질러 상기시켰다.
다행스럽게도 다들 약간 움찔거리는 수준에서 멈췄다.
{요르문간드가 광역 즉사기 <타이달 서지>를 시전합니다.}
이윽고 요르문간드의 필살기가 시전된다.
피하지 못하면 죽는 마법.
생명력이 높건, 마법 저항력이 높건, 그런 것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저건 시스템이 ‘시나리오상’ 강제로 목숨을 빼앗아 가는 공격이기 때문이다.
콰우우우우!
폭풍과도 같은 해일이 온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이 궁전 안에서 그 물길을 피할 곳은 없다.
지금 내 앞에 융기된 자색 수정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패치노트가 없거나 정보를 제대로 숙지하지 않은 자는 죽는다. ……두 번의 기회 따윈 주지 않겠다는 거겠지.’
경험으로는 얻을 수 없는 정보.
무조건 첫 도전에 클리어해라.
그게 이런 시나리오를 만든 시스템의 의도였다.
고오오.
강력한 해일 폭풍 쇄도가 끝난 후, 주변은 금세 잠잠해졌다.
한 곳에 집중되며 휘몰아치던 마력도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요르문간드의 마력이 바닥났습니다. 힘이 급격히 약해집니다.}
스윽.
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수정 벽 옆으로 몸을 드러냈다.
그리고 코트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양손을 빼면서 동시에 요르문간드를 향해 흩뿌렸다.
{<포켓 메모라이징> 발동}
{공명기 <악룡마술> 파생형 ‘격류 뇌전’ 전개}
{<포켓 메모라이징> 발동}
{공명기 <악룡마술> 파생형 ‘격류 뇌전’ 전개}
파지지직!
주머니에 저장해 두었던 번개 마법이 두 손에서 동시에 사출된다.
이 <포켓 메모라이징> 특성의 진가는, 다름 아닌 두 주머니를 활용한 ‘듀얼 캐스팅’.
콰르릉!
그리고 그 두 줄기의 번개는 요르문간드의 몸에 꽂혀 있던 피뢰침에 닿자마자 맹렬한 전기 불꽃을 일으켰다.
샛노란 뇌격이 새파란 청뢰로 바뀌어 요르문간드의 체내에 직접 타격을 가했다.
-크아아아아아악!
이제 여기서 마지막으로 취할 행동은, 놈이 죽기 전에 ‘그걸’ 꺼내는 것.
{<글레이프니르>를 <요르문간드>에게 사용하시겠습니까?}
신수를 봉인하는 열쇠, 글레이프니르를 사용해 놈을 봉인시킨다.
콰우우우!
마치 허리케인을 연상케 하는 회오리바람과 함께 그 거대한 뱀 괴수가 열쇠 안으로 빨려 들어온다.
이 열쇠는 신수가 빈사 상태일 때만 발동이 가능하지만, 그 조건만 충족하면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이게 그렇게나 대단한 보물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는……! 절대……!
뚝.
끝까지 저항하던 요르문간드는 결국 이 작은 열쇠 안에 갇히고 말았다.
{<글레이프니르(요르문간드)>}
이로써.
내가 하려던 일의 준비 작업이 끝났다.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요르문간드가 아니라.
과거 신화시대에 세계를 뒤흔들었던 ‘진짜 요르문간드’를 만날 준비 작업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