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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187화 (187/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87화

요르문간드의 영토는 자색 수정벽에 의해 마치 미로와도 같은 길로 뒤덮여 있었다.

그 안에서 두 갈래길, 세 갈래길이 무작위로 펼쳐지며 온갖 종류의 마수들이 이 시나리오의 도전자들을 맞이한다.

“레아! 후위를 부탁한다! 용기사들의 지휘는 네가 해!”

“알았어!”

유신우가 두 번째로 지정한 공략 대상은 ‘베르그리시(bergrisi)’.

강력한 수목(樹木)의 기운을 뿜어대는, 나무망치를 든 거인이었다.

“감히 내 앞에서 등을 보이는 것이냐!”

그건 블라르오름과는 달리 말을 할 정도로 지성을 가진 마물.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유신우의 몸에 내재된 고통의 업화는 적을 가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쪽이 아니고 여기야. 이 덩치만 큰 돼지 새끼야.”

“……뭐, 뭐라고? 돼지?”

베르그리시는 그의 도발에 눈을 부릅뜨며 노기를 발산했다.

더군다나 유신우의 손가락이 대놓고 그의 불룩한 뱃살을 가리키고 있었기에, 언행이 결부된 노골적인 모욕은 더욱 주의를 끌 수밖에 없었다.

“우오오오! 한낱 난쟁이 놈이 감히 이 몸을!”

“입만 나불대지 말고 피하는 게 좋을걸.”

{공명기 <악룡마술> 발동}

{공명기 <악룡마술> 파생형 ‘환영마검’ 전개}

유신우는 그것을 향해 가차 없이 공격을 퍼부었고.

쾅! 콰쾅! 콰직!

베르그리시는 거대한 나무망치를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휘두르며 연달아 날아드는 환영마검들을 모조리 쳐냈다.

그렇게 거인과 유신우, 아델 간의 전면 전투가 벌어졌다.

“모두 날 따라와!”

그동안 아델은 유신우가 지시했던 대로 여섯 명의 용기사들을 이끌고 후방을 담당했다.

이번엔 아까 전과는 달리, 뒤쪽에서 불청객들이 개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하악!

드로거(draugr).

피부가 바싹 말라비틀어진 인간형 마물들이 몰려왔다.

그것들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하는 외양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톱과 이빨을 들이밀면서 무작정 달려들지는 않았다.

그 대신 각자 칼과 방패, 혹은 활과 지팡이 등 다양한 무장을 내세워 포지션을 유지한 채 접근했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좀비 따위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다.

“너희는 뒤로 빠져!”

레아는 후방에 뒤처져 있는 엘프들에게 소리치고는 와이번의 고삐를 잡아당기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탄탄한 허벅지로 하체를 안장에 단단히 고정한 채, 손에서 고삐를 놓은 다음 허리춤에 차고 있던 두 자루의 칼을 꺼내 들었다.

그녀는 와이번 위에서 쌍검을 움켜쥐고 몰려오는 드로거 군진 속으로 뛰어들었다.

콰콰콰쾅!

검을 휘두를 때마다 파괴적인 검기가 온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게다가 와이번 본체 역시 위협적인 이빨과 손톱, 몸에서 뿜는 검은 화염으로 적들을 분쇄했다.

“돌격(charge)!”

투두두두두!

그녀의 지시에 따라 뒤에서 여섯 기의 용기사들이 진형을 이루며 함께 달려들었다.

한때 백사자 기병대를 이끌 때의 경험을 살려, 용기사들을 마치 기병처럼 운용한 것이다.

투쾅!

크허어억!

나름대로 방진을 구축한 채 대항하려던 드로거 무리는, 레아를 위시한 용기사들의 정면 돌격에 의해 단숨에 진형이 무너졌다.

숫자로 따지면 레아까지 포함해 겨우 일곱 명일 뿐이지만.

기본적으로 스펙이 막강한 알파 퓨리 와이번에 유신우로부터 전해 받는 고통의 업화까지 더해지자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어졌다.

더욱이 최선두에서 활약하는 레아의 흠 잡을 데 없는 쌍검술은 한창 ‘검제’로서 이름을 날릴 때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수준이었다.

아니, 오히려 유신우의 용기사가 됨으로써 그때보다 더 강해졌다.

‘나도 아델처럼…….’

그녀의 눈앞에는 용인화한 채 유신우와 합을 맞춰 싸우던 아델의 모습이 계속 어른거렸다.

그건 얼마 전 그녀가 아델에게 들었던 말 때문이었다.

-마스터 곁에서 계속 싸우다 보니 저도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제 영혼에 마스터의 ‘업’이 쌓였다더군요.

유신우에게 영향을 받아 얻은 능력.

수호령을 잃은 후 과거의 영광을 되찾길 바라는 그녀의 입장에선, 누구보다도 아델처럼 되길 바랐다.

물론 이미 용기사가 되어 와이번 위에 올라탄 시점에서 예전보다 더 강해진 것은 스스로도 느낄 만큼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대적해야 하는 적의 수준도 함께 높아지고 있는 지금은 여기에 안주해서는 안 되었다.

레아는 지금보다 더욱 강해져야만 했다.

‘사람들을 지키려면…….’

그녀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인류의 수호자인 검제일 것이다.

화륵!

두 자루의 검에서 뻗어 나오는 고통의 업화가 위협적인 참격으로 화해 드로거들을 불살랐다.

날카로움과 뜨거움.

두 속성이 합쳐져 수복할 수 없는 절단면을 자아낸다.

그녀는 곧, 타고 있는 와이번과 마치 한 몸이 된 듯 전신에 업화의 구를 두르고 전장에서 날뛰었다.

* * *

‘아델. 내가 정면에서 맞서는 동안, 넌 후방을 치는 게 어떻겠나?’

‘그렇다면 마스터께서 원거리 공격으로 견제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속 공격을 퍼붓는 대신, 적당한 타이밍에 적사자 검식으로 한 방을 노리겠습니다.’

‘좋은 생각이군. 그럼 최대한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끔 조용히 돌아 들어가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난 사념을 통해 아델과 대화했다.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주종관계가 아니라, 상호 간의 의견 교류를 통해 더 나은 결론을 끌어내는 소통.

내가 떠올려 낸 건 단순한 양동 공격이었지만, 그녀와의 질답을 통해 훨씬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질답은, 영혼 결속으로 공유되는 <승리자의 사고체계> 특성에 의해 눈 깜짝할 시간보다도 더 짧은 찰나에 모두 끝났다.

{공명기 <악룡마술> 파생형 ‘환영마검’ 전개}

화르륵!

결론을 내린 직후, 나는 환영마검의 연사 속도를 더 빠르게 올렸다.

물론 그로 인해 체내에 생성되는 고통의 업화보다 소모되는 업화의 양이 더 많아져 균형이 깨졌지만.

당장 나 혼자서 베르그리시의 시선을 이쪽에 잡아두려면 화력을 순간적으로나마 올릴 필요가 있었다.

아델이 빠진 만큼 그 빈틈을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쾅! 콰콰쾅! 투확!

부지의 마검 형상을 한 칼들이 대상을 가리키고 있는 내 왼손 주변에서 형성되어 연이어 발사되었고.

그것들이 베르그리시에게 적중할 때마다 한 발 한 발 강렬한 충격파와 함께 화염 폭풍을 일으켰다.

“크아아아! 이 고얀 놈이!”

베르그리시 역시 제자리에 선 채로 그 빠른 마검 연사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망치를 휘두르는 속도를 더욱 끌어 올려야 했다.

물론 그러고도 한두 발씩은 꼭 몸에 직격해 조금씩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대로라면 쌓이는 피해에 의해 무너지든지, 힘이 빠져서 쓰러지든지, 아니면 아델에 의해 죽든지, 결국은 우리의 승리가 될 것이다.

상황은 완벽하게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왜지?’

한데 이런 와중에 내 머릿속엔 의문이 떠올랐다.

‘속성 간의 상성이 전혀 먹히지 않는 기분이야.’

베르그리시는 나무 속성.

내가 발산하는 모든 공격은 화염 속성.

물론 기본적으로 화력의 차이가 압도적으로 강하다면 상성은 무시할 수 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속성 간 상성은 어디까지나 강한 적을 상대하기 위한 일종의 우회 타격 수단과 같았으니 말이다.

‘지금 상황은 완전히 반대인데.’

그러나 만약 그런 거라면 지금 베르그리시가 상성 피해를 입지 않고 있는 게 더 말이 되지 않았다.

놈이 우리보다 훨씬 더 강해서 상성조차 무시하는 거라면 모를까,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환영마검 공격에 전혀 피해를 입지 않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적중할 때마다 신체에 물리적인 상처가 나고 있는 게 보였다.

단지 화염 피해만 받지 않는 것이다.

‘마스터. 지금 들어가겠습니다.’

‘알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아델에게서 신호가 왔다.

어느새 놈의 후방에서 빈틈을 포착한 것이다.

{공명기 <적사자 검식> 파생형 ‘신기일섬(蜃氣一閃)’ 전개}

아델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기세도 뿜지 않고, 그저 조용히.

마치 깃털이 바람에 날려 하늘로 치솟듯이 베르그리시의 목 뒤로 접근했다.

빠르고 강렬한 쾌검으로 요란하기 그지없기만 하던 적사자 검식의 기술 중에서도 가장 고요하게 펼쳐지는 파생형.

피잉.

아델이 등 뒤로 숨기듯 젖혀 두었던 장검의 칼날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빛이 번쩍이며 시간이 정지한 듯 허공에 멈춰 선 잔상만을 남긴 채, 그녀의 실체가 사라졌다.

끼기기기긱.

그리곤 듣기 싫은 쇳소리가 좁은 수정 협곡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광범위한 영역의 자색 수정들의 표면이, 아델이 휘두른 일섬에 의해 긁히는 소리였다.

시스템상으로 파괴 불가능하게 설정된 오브젝트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다란 참흔(斬痕)이 남았을 정도.

그만큼이나 강한 일격이었으니, 당연히 그 궤적에 위치한 베르그리시의 머리 또한 잘려 나갔어야 정상이다.

아니, 확실히 잘려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악……!”

섬광과 함께 참격을 남기고 제자리로 돌아왔어야 할 아델이 붙잡혔다.

저 거대한 거인의 잘린 머리통 단면에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들에 의해.

* * *

‘어떻게……?’

그 순간 나는 잠시 사고가 정지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머리가 잘렸는데 살아 있다니.

혹시 약점이 머리가 아닌 다른 곳에 위치한 게 아닐까?

보통 이런 경우라면 심장이 본체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나 저런 지성체형 마물의 경우에는 ‘약점은 머리 아니면 심장’이라는 법칙이 거의 100% 확률로 들어맞았다.

파앙!

난 땅을 박차고 빠르게 뛰어올라 베르그리시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

놈은 지금 머리가 사라진 탓에 움직임이 극히 느려져 있는 상태.

아무래도 생각할 머리와 상황을 받아들일 시야를 잃었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이라면 확실하게 마무리를 할 수 있다.

{공명기 <적사자 검식> 파생형 ‘금강염사’ 전개}

난 이 시점에서 가장 강력한 화력의 기술을 대놓고 구사했다.

두 가지 공명기, 악룡마술과 적사자 검식을 통틀어 한 점에 최대의 위력을 쏟아부을 수 있는 최강의 돌진 검격.

검은 화염의 사자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부지의 마검으로부터 뻗어 나왔다.

콰우우우!

콰쾅!

검기가 거인의 가슴 표면에 닿는 순간, 내장까지 뒤흔들 만큼 맹렬한 파공음이 사방으로 발산됐다.

후웅.

머리가 없는 베르그리시는 뒤늦게 손을 휘저어 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땐 이미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후였다.

난 그 상태에서 허공을 박차면서 재빨리 놈의 몸통을 관통해 등 뒤로 넘어갔다.

‘아직도 움직인다고?’

그러나 베르그리시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관통 부위에서 뻗어 나오는 나뭇가지들이 촉수처럼 늘어나 내 발목을 잡으려 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젠장!’

결국 난 당장 놈을 죽이는 걸 포기하고 아델을 구하기 위해 머리 쪽으로 날아갔다.

목 단면에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들이 빼곡하게 뭉치면서 아델을 통째로 집어삼킬 판이었기 때문이다.

서걱!

‘아델, 괜찮나?’

‘전 괜찮습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빠르게 그녀의 팔다리를 묶은 가지들을 쳐 내곤 품에 안아 든 채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아델이 묶여 있던 곳에선 뭉쳐진 나뭇가지들이 변형되어 거인의 머리통을 거의 다 수복해 가고 있었다.

‘안 되겠다. 일단 후퇴해야겠어. 저 녀석의 진짜 약점을 찾을 때까지.’

나는 베르그리시로부터 멀어지면서 현 상황의 타개책을 고민했다.

뭣하면 아까 만들어 두었던 블라르호른의 맹독이 담긴 폭약병까지 사용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건 사실 요르문간드와의 전투에서 쓸 도구였고, 지급된 폭약병 개수의 한계로 보충도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베르그리시는 꼭 잡아야 할 마물이었기 때문에 차후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그렇게 해야만 했다.

‘마스터,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델이 그런 내 생각을 단번에 일축해 버렸다.

‘응?’

‘저 녀석의 약점……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왜 화염 공격이 통하지 않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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