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85화
6층의 시나리오 세계에 입장한 순간, 각 참여자들에게는 기초 장비를 선택할 권한이 주어진다.
───
{무기를 선택하십시오.}
1. 도검
2. 장병기
3. 둔기
4. 투사병기
5. 투척병기
───
첫 번째는 무기.
현재 내가 구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술은 아델과의 영혼 공명으로 발휘할 수 있는 공명기 <적사자 검식>.
이 적사자 검식을 전개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무기는 단연 도검류의 양손 장검일 것이다.
‘투사병기.’
하지만 난 그와는 전혀 관계없는, 어찌 보면 뜬금없다 싶을 정도로 엉뚱한 무기를 골랐다.
‘석궁.’
그건 내가 지금껏 단 한 번도 써 보지 못한 종류의 무기인 석궁이었다.
사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 각성자에게 있어 석궁만큼 생소한 무기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마나건이라는 막강한 대체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나건이라는 무기 분류 자체가 인간이 개발해 낸 것이기에 투영무구의 매개로 사용할 유니크 무기가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건 석궁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던전이나 퀘스트 보상으로 얻는 석궁은 아무리 강해봐야 사람이 만든 마나건보다 화력이 약했던 것이다.
게다가 신화나 전설급 수호령 중에 석궁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수호령이 없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서 나 또한 지금껏 이 무기를 사용할 기회가 없었지만.
‘이번 던전에서는 꼭 필요하다.’
난 이 던전에서는 이걸 반드시 사용해야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시나리오 영역에서는 ‘탄환’을 발사할 무기가 필요한 구간이 꼭 발생하는데, 기타사항으로 명기된 제약에 따라 마나건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
즉, 꿩 대신 알 격으로 이걸 초기 지급 무기로 선택한 것이다.
‘어차피 내 주 무기는 ‘그것’이니까.’
게다가 얼마 전에 얻은 그 부지(不知)의 마검은 무구 투영 권능과는 달리 매개 대상이 필요하지 않다.
공명기 적사자 검식은 그걸로 구사할 수 있기에 초기 지급 무기를 굳이 양손 장검으로 택할 이유가 없는 것.
여하튼 그런 이유로 무기는 석궁으로 골랐고, 다음은 방어구.
───
{방어구 종류를 선택하십시오.}
1. 천
2. 가죽
3. 강철
4. 판금
───
방어구는 심플하게 재질을 기준으로 네 종류로 구분되었다.
아마 아래 항목으로 내려갈수록 방어력이 올라가는 대신 움직임에 제약이 걸릴 거고.
위로 올라갈수록 그 반대일 것이다.
‘특히나 천 쪽에는 마법 능력을 강화시켜 주는 능력치가 붙었을 가능성이…….’
그런데 그 구분 외에 그 어떠한 부가 설명도 없는 시스템 창에서, 내가 천 갑옷에 대해 추측을 하자 갑자기 그 위에 또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
<천 방어구 상세정보>
- 방어력 없음
- 최대 마나량 + 1%
- 마나 회복률 + 1%
- 1단계 마법강화(모든 마법에 적용)
- 시나리오 진행 중 강화 가능
- 시나리오 종료 후에도 계속 소지 및 착용 가능
- 후드 달린 코트 로브 형태
───
그건 바로 천 방어구에 대한 상세한 정보.
얼마 전에 얻은 ‘악의의 오른쪽 눈’ 4단계 강화에 의한 정보 습득이었다.
‘천 방어구…….’
우선 든 생각은, 능력치 자체는 별것 없다는 사실.
그야말로 내가 예상한 그대로의 구성이었고, 그 수치 또한 매우 낮았다.
‘이거다.’
하지만 그 아래에 붙은 매우 중요한 설명들 때문에 난 바로 이걸 골랐다.
‘여기서 더 강화가 가능한 데다 시나리오 종료 후에도 쓸 수 있다……. 게다가 형태가 코트 로브라면.’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것보다도 그 형태 때문이었다.
사실 지금 나에게 방어력은 용인화 시에 전신을 뒤덮는 용비늘만으로도 충분했다.
굳이 불편하게 그 위에 다른 갑옷을 덧입을 필요도 없고, 또 그렇게 하기도 힘들 거라는 거다.
하지만 코트 로브라면 얼마든지 덧입는 게 가능하다.
그저 그 위에 걸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텍스트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구체적인 형상까지 알려주다니……. 이게 이런 식으로 활용이 되는구나.’
나는 이 눈 특성의 새로운 활용도에 감탄했다.
사실 패치노트 덕분에 온갖 정보들을 꽤나 자세한 부분까지 미리 얻어낼 수 있긴 한데, 그렇다고 해도 각 상황에서 모든 정보를 다 알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내 배경지식에도 한계가 있고 말이다.
하지만 이 특성은 그런 아쉬운 부분을 채워준다.
아주 디테일하고 사소한 영역까지 미리 꿰뚫어 볼 수 있는 힘.
이거라면 난 누구보다도 훨씬 더 앞서서 생각할 수 있다.
심지어 나와 같은 패치노트를 보유한 이종족들보다도 말이다.
* * *
{초기 장비가 지급되었습니다.}
{시나리오 영역 <요르문간드의 영토>에 진입합니다.}
무기와 방어구, 두 가지 장비의 선택이 끝난 후 나는 부대원들과 함께 시나리오 영역으로 들어왔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어둡고 메마른 땅.
새카만 하늘에는 거대한 청월(靑月)이 지상을 온통 파란 빛으로 물들였고.
땅에는 어두운 보랏빛을 내뿜는 수정들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어 주변 시야를 차단했다.
언뜻 보면 굉장히 신비로운 풍경일 수 있으나, 사방이 막혀 있는 데다 조명이라곤 파란빛, 보랏빛밖에 없어서 언제든 귀신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음산한 분위기에 더 가까웠다.
나를 비롯한 일행들은 모두 그런 곳의 한가운데에 떨어진 것이다.
“용기사 여덟에 엘프 셋. 마스터, 모두 흩어지지 않고 제대로 진입한 것 같습니다.”
아델이 나에게 인원 보고를 했다.
난 그런 걸 시키지도 않았지만, 그녀는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도 꼼꼼하고 확실하게 챙겼다.
그야말로 타고난 군인이랄까.
“고맙다. 그럼 바로 목적지로 움직이자.”
“네.”
난 보라색 수정들로 가로막힌 벽 너머, 하늘로 솟구치는 새파란 빛기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은 요르문간드가 거주하고 있는 궁전.
이번 시나리오의 최종 목적은 바로 그곳에 있는 요르문간드를 퇴치하는 것이다.
‘설명에는 퇴치하거나 굴복시키라고 되어 있지만, 굳이 일을 어렵게 만들 필요는 없지.’
난 곧장 그곳으로 가서 요르문간드를 죽일 생각이다.
현시점에서 내 용기사들과 용인화한 나와 아델들이 협공을 퍼부어서 이기지 못할 상대는 없을 것이다.
“이봐, 걸어가는 거야?”
그런데, 요르문간드의 궁전을 향해 나아가던 도중 엘프 3인방 중 하나인 트리온이 내게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걸어간다.”
“……왜? 여기 날개 달린 ‘탈것’들을 두고 굳이?”
찌릿.
그가 와이번들을 두고 ‘탈것’이라 칭한 순간, 용기사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한꺼번에 그에게 쏠렸다.
무수한 전투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파트너를 그저 탑승물 정도로 취급하는 그 태도에 다들 화가 난 것이다.
“아, 아니, 내 말은…….”
트리온은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눈빛이 흔들리며 말을 더듬었다.
“미안, 그렇게 소중한 걸 함부로 타라고 말해서…….”
“그런 문제가 아니야.”
물론 그 말대로 지금 우리가 날아가지 않는 건 소중한 와이번의 체력을 아끼고 본 전투에만 전력을 집중하기 위함도 있다.
하지만 이 구간에서 함부로 비행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응?”
“위를 봐.”
난 그렇게 말하고는 땅에서 사람 몸집만 한 바위를 주워 하늘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콰아아! 투쾅!
그건 빠른 속도로 날아오르다가 시야를 가로막는 수정보다 더 높은 위치로 도달한 순간, 어딘가에서 날아온 마력탄에 의해 요격당하고는 완전히 산산 조각났다.
이 넓은 영토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수많은 대공 포병들.
지상은 파괴 불가능한 수정이 빼곡하게 박혀 있는 탓에 다수 병력을 동원하기 힘들고.
하늘에는 저 맹렬한 대공 공격이 기다리고 있다.
어느 쪽이든 조금이라도 약한 개체가 이 영역에 들어오는 걸 근본적으로 가로막는 일종의 데드라인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억지로 포화를 뚫으면서 비행하며 나아가려면 갈 수야 있겠지만.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지상을 통해 차근차근 적을 정리하며 접근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어어…….”
파괴된 바위를 확인한 트리온이 입을 쩍 벌리고선 식은땀을 흘렸다.
“저렇게 되고 싶으면 너도 하늘로 날아가든가.”
“미, 미안.”
그는 곧장 고분고분하게 자신이 잘못된 생각을 했음을 인정했다.
들어오기 직전에 호되게 당하고선 힘의 격차를 인지했는지, 이젠 태도가 확실히 바뀌었다.
* * *
‘영혼 공명.’
요르문간드의 궁전으로 가는 길목에서 조우한 첫 번째 적.
푸른 뱀, 블라르오름(blarormr)이었다.
‘용인화.’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그 마수 앞에서, 난 우선 아델과 영혼을 공명시켜 신체를 용인화시켰다.
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로브 코트 안쪽에 자동 지급되어 입혀졌던 천 옷이 찢겨 나갔고, 곧 나는 용비늘 갑옷 위에 로브 코트를 걸친 모습이 되었다.
지금은 공중전을 펼칠 생각이 없었기에 꼬리와 날개는 만들어내지 않았다.
{마검 <????> 소환}
{공명기 <적사자 검식> 발동}
나는 곧장 검은 화염으로 타오르는 부지의 마검을 소환하고선 그 거대한 푸른 뱀의 정면을 향해 몸을 날렸다.
퍼펑!
동시에 아델 역시 땅을 박차면서 크게 곡선을 그리며 블라르오름의 측면으로 접근했다.
그녀는 나와는 달리 무기를 무에서 창조할 능력이 없기에 기초 지급되는 양손 장검을 쥔 채였다.
{공명기 <적사자 검식> 파생형, ‘금강염사(金剛炎獅)’ 전개}
나는 정면에서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며 타오르는 고통의 업화를 사자 형태로 내뿜었다.
아델이 항상 사용하던 필살의 검기가 붉은 기운이 아닌 검은 화염으로써 발산된 것이다.
{공명기 <적사자 검식> 파생형, ‘흑화륜’ 전개}
그와 동시에 아델은 빠른 전진 공격인 흑화륜을 구사.
다가가던 속도 그대로, 몸을 띄운 다음 허공에서 차륜처럼 회전하며 그 관성 그대로 종 방향의 연속 베기를 가했다.
그 칼날이 노리는 목표 지점은 블라르오름의 목덜미.
내가 정면에서 내지르는 검은 사자를 막아내는 동안, 아델은 측면에서 빠르게 그것의 목을 치려는 것이다.
콰아아!
화려하지는 않으나 간결하면서 빠르다.
화력이 넓은 영역에 미치진 않으나 일점에 집중된다.
적사자 검식의 두 극의(極意)가 푸른 뱀의 비늘 표면에 닿는 순간.
터엉!
‘뛰었다?’
그 엄청나게 크고 육중한 덩치의 괴수가 채찍처럼 기다란 몸을 꿀렁거리더니 지상을 박차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물론 그 크기와 무게 때문에 너무 높은 곳까지는 닿지 못했지만, 짧은 순간 발휘한 엄청난 민첩성에 그 장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경악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내게서 벗어나진 못한다!’
블라르오름은 나와 아델이 가하는 교차 공격을 상방으로 뜀으로써 한 번에 피해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만들어 놓은 화망 밖으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다.
“지금이다!”
콰콰콰콰!
내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곱 기의 와이번들이 일제히 입에서 마력탄을 내뿜었다.
마력탄은 내 고통의 업화로 짜인 새까만 구체들.
공중에 떠 있는 거대한 몸집의 푸른 뱀은 어떻게 피할 도리도 없이 그 흑화가 밀집된 마력탄을 얻어맞아야만 했다.
퍼퍼퍼펑!
공중에서 새까만 화염들이 거대한 화구(火球)를 형성하며 블라르오름의 몸뚱이를 뒤덮는다.
“해치웠나!?”
그런데 하필 그 타이밍에 뒤에 서 있던 엘프 삼인방 중 하나가 재수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크오오오!
그러자 여지없이 천지에 울려 퍼지는 블라르오름의 포효.
“아오!”
그냥 확 저기다 집어 던져버릴까.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순간이었지만.
그래도 난 침착하게 다음 수를 내밀었다.
{공명기 <악룡마술> 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