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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184화 (184/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84화

바벨탑은 1층부터 5층까지, 내부가 엄청나게 넓고 나름의 자연환경까지 구축되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보통의 던전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수많은 마물들이 곳곳에서 스폰되고, 그들의 몸에서 나오는 각종 부속물들은 온갖 용도로 사용된다.

이곳에서는 딱히 시스템이 각성자들에게 강제하는 최종 목적 같은 게 있지도 않았다.

그저 강화 마력석이라는 이권 하나로, 각 종족끼리, 혹은 같은 종족이더라도 다른 집단끼리 서로 경쟁하고 싸우게끔 자연스러운 갈등 상황을 조장해 놓았을 뿐.

서로 다른 종족끼리 섞어놓기만 해도 이렇게나 피 튀기도록 싸우는데, 굳이 시스템이 다른 방식으로 개입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바벨탑은 5층이 끝이 아니지.’

그런데 6층부터는 그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거기선 시스템이 다시 적극적으로 이곳에 들어온 자들을 위험으로 몰아 넣는다.

바로 다름 아닌 ‘시나리오’를 통해서였다.

“그 어떤 도구도 허용되지 않는, 순수한 각성자의 능력만을 시험하는 6층 시나리오가 엘프분들에겐 굉장히 난관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걸 제가 돕고 싶습니다.”

내 얘길 들은 질호른의 눈썹이 그 순간 살짝 들썩였다.

이건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듀엔데가 그렇게 말하던가?”

“아닙니다. 그냥 저 혼자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패치노트를 통해서 말입니다.”

다이아 경매는 비단 인간계에서만 벌어지는 이벤트가 아니다.

당연히 각 종족의 차원계에서 해당 종족에 맞는 내용의 패치노트를 낙찰품으로 한 경매가 발생할 것이다.

즉, 종족별로 한 명씩 누군가는 나와 똑같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사실.

그리고 그 정보에 따르면, 바벨탑 6층은 시나리오 세계인 ‘요르문간드의 영토’였다.

───

<바벨탑 6층: 요르문간드의 영토(시나리오)>

[개요]

-6층에는 흉신 요르문간드의 영토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의 허락이 없는 한, 해당 층계를 마음껏 누비는 것도, 위 층계로 올라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물론 그 허락이란, 우호적인 방법으로 얻어내는 걸 뜻하지는 않습니다.

[목표]

-요르문간드 토벌 혹은 굴복시키기

[보상]

-바벨탑 6층 자유통행 권한

-6층에 존재하는 모든 보물에 대한 초기 접근권

───

내용 자체는 평범했다.

무수히 많이 겪어왔던 퀘스트, 그리고 신화 수호령 획득 시나리오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방식.

단지 그 안에 들어 있는 디테일한 요소들만이 좀 다를 뿐, 결국 무언가와 싸워서 이기고 보상을 얻는 건 동일했다.

문제는 그 밑에 나와 있는 마지막 항목.

───

[기타사항]

-영역 내에서 개인 무장 및 도구 사용 불가

-인벤토리 봉쇄

-모든 필요 물품은 시나리오 내에서 지급

───

이번 시나리오 영역 내부에서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물품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무기, 탈리스만, 혹은 그 외 수많은 장비들 전부 다 말이다.

즉, 소위 말하는 ‘템빨’을 배제한 채 순수한 개인의 능력치와 기술만 가지고 진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압도적인 기술력을 가졌지만 전적으로 ‘도구’에만 의존하는 엘프들 입장에서 저 제한은 매우 치명적인 요소.

덕분에 1층에서 5층까지를 무력으로 평정해 놓고도, 그 이상의 층으로 올라가질 못하고 있었다.

“꽤나 당돌한 발상이군.”

질호른은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겉으로 보이는 성격이 쾌활한 호인인 만큼, 상대를 찍어 누르는 데에도 거침이 없었다.

“아…… 혹시, 뭔가 거슬리셨다면, 죄송합니다.”

거기에 난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인 것처럼 반응했다.

그러자 그가 다시금 아까처럼 호방하게 웃었다.

“하하핫! 아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 확실히 네 말대로 우린 그것 때문에 애를 먹고 있으니.”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내 의도에 대해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런데, 난 네 말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군.”

“어떤 부분이 말씀이십니까?”

“난 분명 너에게 우릴 도와준 대가로 보상을 주겠다고 했는데, 도리어 네가 우릴 돕겠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야.”

‘보상으로 당신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요구.

당연히 듣는 입장에선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난 이런 반응이 나올 것을 다 예측하고서 한 말이었다.

“물론, 아시겠지만 순수한 호의만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닙니다.”

“그 말은…….”

“당연히, 시나리오 내에서 나오는 것들에 저도 관심이 있을 수밖에요.”

그건 질호른이 나를 믿게 만드는 적절한 이유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솔직한 마음이기도 했다.

요르문간드의 영토에서 나오는 보상 중엔 내가 반드시 얻고 싶은 물건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우릴 도울 겸 거기서 나오는 이 ‘보물’들이라는 것들도 네가 차지하고 싶다는 소리인 건가?”

“그렇습니다.”

“하, 그렇군. 너도 그런 곳에 관심이 있는 타입이라는 거지.”

질호른은 쓰윽,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말을 했다.

‘그런 곳에 관심이 있는 타입? 엘프 세계에도 그런 자들이 존재하는 건가?’

그러고는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해. 너에게 6층 공략의 권한을 주도록 하지. 단.”

다만, 거기에 조건을 붙였다.

“내가 붙여주는 사람과 같이 움직여야 한다.”

* * *

바벨탑 6층부터 적용되는 ‘시나리오 세계’.

5층까지 층계를 오르내리며 벌어지는 전투에서 어느 정도 세력 간 구도의 윤곽이 잡히고 나서부터는 필연적으로 충돌의 양상이 일방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테세우스의 배가 바벨탑 안으로 들어온 뒤부턴 오크와 렙틸리언 둘 다 감히 2층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6층의 진입 조건이 위험한 장소에 개인무장 없이 뛰어들어야 하는 전투 시나리오라니.

이건 마치 시스템이 직접 개입해 바벨탑 내부 상황에 긴장감을 부여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끊임없이 세상이 만들어 내는 위험에 도전한다……. 이거야 원, 마치 불 속에 뛰어드는 불나방 같군.’

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각성자들의 모습이 마치 불나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전진하지 않으면 또다시 뒤쳐지고 말아버리는 붉은 여왕의 영지 같기도 하고.

‘세상이 그러하다면 난 가장 먼저 앞장서서 나아가는 존재가 되어야겠지.’

아무튼 난, 6층에 진입하기 위해 아델을 비롯한 용기사 여덟 명을 데리고 5층의 중앙으로 왔다.

시나리오를 클리어하기 위해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방법도 있지만, 다른 각성자들은 굳이 데리고 오지 않았다.

어차피 그 안에서는 대규모 병력을 움직이기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각개격파 당하기가 쉽고.

그러므로 최대한 기동이 편리한 소수 정예만 데리고 가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신우…… 내가 정말…… 괜찮을까?”

레아가 걱정 가득한 눈초리로 물었다.

그녀는 지금 알파 퓨리 와이번의 고삐를 잡고서 하룡(下龍) 상태로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너라면 얼마든지 믿을 수 있어.”

“하지만 난…… 수호령도 없고.”

“수호령만 없을 뿐이지, 네 힘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야.”

레아는 내게 소속된 용기사가 되었다.

그렇다.

그녀는 부활한 이후, 어째서인지 시스템상으로 NPC 취급을 받고 있었다.

‘금제’가 해제된 후, 쌓은 모든 추가 능력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서 수호령을 잃은 채 NPC의 형식으로 되살아난 레아.

그녀는 권능을 제외하면 여전히 강력한 쌍검술을 구사할 수 있었고, 내 용기사가 되어 와이번과 짝을 이룸으로써 수호령이 없다는 단점까지 커버하게 되었다.

더 이상 미각성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절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알겠어. 좌절하지 않을게.”

“그래. 우리가 같이 싸우면 과거의 넌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 강해질 수 있어.”

“고마워.”

레아는 내게 신뢰의 눈빛을 보내며 단단히 마음을 다잡았다.

“당신이 유신우인가?”

한편, 나와 동행하는 멤버는 용기사들만이 아니었다.

“‘이단자’?”

길호른이 말했던 대로, 그가 나에게 붙여준 사람들.

‘이단자’라 불리는 엘프들이었다.

“너까지 그렇게 부르면 섭섭하지. 우리나 너희들이나 종족만 다를 뿐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니까.”

이들은 다름 아닌 각성자 엘프.

물론 각성자인 건 듀엔데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그런 자들은 말 그대로 시스템이 무작위로 부여한 수호령을 그저 얻었을 뿐이고.

이 ‘이단자’라고 불리는 엘프들은 나처럼 자신에게 부여된 각성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부류들이다.

엘프 세계에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이단자’라는 낙인을 찍어서 배척하는 모양.

그러나 어느 사회가 되었건 간에 그 안에는 빛과 어둠이 있듯, 질호른 역시 이 ‘이단자’들을 자신의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정작 그쪽을 나한테 붙여준 자는 그렇게 칭하던데.”

“뭐, 그분이야 직위가 있으니까. 어딜 가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거 아니겠어? 어쨌든 우린 비공식적인 존재니까.”

‘꽤나 함부로 말하던데.’

“그럼 그냥 이름으로 부르도록 하지.”

난 속마음과는 달리 우호적인 태도로 그들을 대했다.

구태여 사소한 것으로 갈등을 해봤자 나만 손해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엘프들은 곧 통성명을 하기 시작했다.

“트리온.”

{수호령: 헤라클레스(전설)}

“엘딘.”

{수호령: 오디세우스(전설)}

“엔디미온.”

{수호령: 아킬레우스(전설)}

인원은 셋.

동원한 부대는 없었고, 셋 다 전설급 각성자였다.

등급만 따지자면 별 볼 일 없는 전력 수준인 것 같지만, 그 세 명 모두 결코 무시할 수 없을 만한 엘프족의 대영웅들을 수호령으로 가지고 있었다.

뭐, 그래봐야 근본적인 격의 차이를 어쩌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트리온, 엘딘, 엔디미온. 기억하지.”

내 입장에선 괜히 보호해야 할 대상이 더 늘어난 것 같아 귀찮기만 할 뿐이지만.

그럼에도 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이 질호른의 조건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 안에서 나오는 보상은 전부 네가 가져도 좋다. 단, 데려간 이단자들은 모두 살려서 돌아와야 해.

왜냐하면 그 시나리오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은 모두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얻어내야 할 만큼 값진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출발하지.”

난 그들의 이름을 듣고 부대원들과 함께 바벨탑 6층으로 올라가는 문에 손을 올리려고 했다.

척.

그런데 그때, 뒤에서 그 이단자 엘프 중 하나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잠깐만.”

“응?”

그는 자신을 ‘트리온’이라 소개한 헤라클레스 수호령의 엘프.

과연 전 세계 모든 전설을 통틀어 최강의 근력을 가진 반신(半神) 영웅으로 일컬어지는 수호령을 가진 만큼, 그 힘은 보통이 아니었다.

꽈악.

‘아니……. 그 정도를 넘은 것 같은데.’

그는 내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이미 각성한 신의 영역조차 뛰어넘은 내가 압력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수호령의 격의 차이를 한참 뛰어넘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근력치가 이자에게 주어져 있는 것 같았다.

“예의가 없군. 이쪽이 먼저 통성명을 했으면 그쪽도 예를 갖춰서 소개를 해야지.”

트리온은 나에게 기분 나쁘다는 투로 말했다.

“굳이? 이미 당신들은 내 이름을 알고 있잖나.”

꽈아악.

그는 내 대답을 듣곤 손아귀에 더 센 힘을 가했다.

“이딴 식으로 할 거면…….”

“네가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이 엘프들.

확실히 전설급이라는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강하다는 건 인정한다.

그 황금 강화복을 입은 것도 아니고, 아무런 동력조차 없는 평범한 가죽옷을 입고서도 이 정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를 넘보려는 생각을 하면 안 되었다.

자기 세계에선 순수한 힘만으로 이길 사람이 없었나 보지만, 넓디넓은 세상에서 자만은 금물.

휙.

“어어……?”

콰직.

난 내 어깨에 올린 트리온의 손을 잡은 채 다리를 차올려 몸을 위아래로 한 바퀴 회전시킨 다음, 그대로 팔을 끌어내려 머리부터 바닥에 메다꽂았다.

“난 너희들 보호자야. 저 안에서 뒈지기 싫으면 입 다물고 그냥 고분고분하게 따라오기나 하라고, 병아리 새끼들아.”

그는 생전 처음으로 겪는 굴욕에 땅에 틀어박힌 채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멍하니 올려다봤다.

그 표정은 방금 전까지 조소를 짓던 나머지 둘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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