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82화
“이런, 미친……! 유신우 저놈은 도대체 정체가 뭐야……?”
하비는 먼발치에서 키안군과 유신우군의 전투를 지켜보고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연히 신들의 군대가 승리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아니, 애초에 키안은 왜 멍청하게 인질을 이용할 생각을 하지도 않고!”
그건 단순히 전력 차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납치해 온 인질 때문이기도 했다.
인질을 앞에 내세우면 유신우는 무조건 약해질 수밖에 없고, 그러면 아무리 놈이 날뛰어도 이길 수 있다는 판단.
물론 그 판단은 애초에 그가 인질 자체를 잘못 잡아 온 탓에 전제부터가 틀리긴 했지만 말이다.
“젠장, 대체 왜 내가 하는 일은 항상 꼬이기만 하는 거냐고! 이번엔 정말로 완벽하게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하비 스스로는 나름대로 ‘철저한 계획’을 짜고 제대로 움직였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투이렌 건도 그렇고, 유신우에게 신임을 얻기 위해 키안에게 해가 되는 행동도 서슴없이 행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유신우는 그를 의심 없이 믿어줬고, 심지어 아주 중요한 물건인 강화복의 시제품에 마나 개틀링건까지 서슴없이 넘겼다.
그러니 하비 입장에서 유신우는 그야말로 완벽하게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여준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억울해……! 억울하다고!”
자신이 한 일은 모두 너무나도 완벽하게 성공했는데, 외부 환경 때문에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바보 같고 무능한 키안이 떠먹여 준 밥숟가락도 제대로 못 받아먹은 탓에 이렇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이 모든 상황이 억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애초에 그가 유신우의 뒤통수를 치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만.
“하, 그래……. 다시 시작하면 돼. 어차피 지금 나한텐 무기도 있고, 강화복도 있잖아? 이거라면 내 한 몸 건사하기에 충분할 테고. ……그래! 그리고 내년이면 세계가 통합된다고 했으니……. 그때 엘프들에게 붙으면 돼!”
하비 또한 유신우나 키안과 함께 있으면서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들었다.
지금 현재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족 간 공성전의 이유가 ‘세계 통합’ 때문이라고.
물론 그 세계 통합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간에 인간이 아닌 이종족들과 부대끼며 살게 된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니 듣기로 이 강화복과 신형 마나건 기술의 원류가 된, 엄청난 마법 문명을 가진 엘프들에게 몸을 의탁해 살아남겠단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 이기는 게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지. 그렇게 따지면 결국 최종 승자는 나야.”
하비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무한히 부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심지어 되살아나는 장소마저 마음껏 지정할 수 있다.
그러니 어떤 고난이 닥쳐도 그는 버틸 수 있다.
죽지 않고 살려둔 채 영원히 움직이지 못하도록 무한 회복과 마비 기능이 달린 구속구 같은 거라도 채우지 않는 한은 말이다.
{당신은 <그레이터 힐링>에 의해 생명력이 회복됩니다.}
“……응?”
유신우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멀리 떨어지려 날아가던 도중, 뜬금없이 그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뭐, 뭐야? 누구야?”
누군가 그에게 회복 마법을 사용했다는 메시지.
그는 화들짝 놀라 마나 개틀링을 뽑아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탁 트인 프랑스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아서, 구름 속에 숨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그 정도로 높은 고도까지 올라가지도 않았지만.
‘뭐지? 시야 밖에서 쓴 건가?’
하비는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회복 마법은 이로운 것이니 당장 해가 될 것은 없지만,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당신은 <그레이터 힐링>에 의해 생명력이 회복됩니다.}
위잉.
그리고 다시 한번 메시지가 나타나며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육체를 휘감는 상쾌한 기분과 머릿속을 관통하는 불쾌한 기분이 동시에 느껴지는 기묘한 상황.
“도대체 뭐야? 뭐냐고!”
{당신은 <바디 리스토레이션>에 의해 손실된 신체가 재건됩니다.}
{당신은 <큐어 포이즌>에 의해 모든 종류의 중독에서 벗어납니다.}
{당신은 <큐어 디지즈>에 의해 모든 종류의 세균성 질병에서 벗어납니다.}
급기야는 온갖 종류의 회복 마법이 아주 짧은 텀으로 연속해서 시전되기 시작했다.
위잉.
주변엔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가 계속 자신에게 마법을 거는 공포.
그게 저주인 것도 아니고, 회복 마법이어서 오히려 더 소름 끼쳤다.
“으아아아!”
하비는 마치 귀신이라도 맞닥뜨린 것처럼 더 속력을 높여 아무 방향으로나 마구 날아갔다.
위잉.
그런데 그렇게 한참을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도망치던 중.
위잉.
‘뭐지?’
문득 어딘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는 걸 인지했다.
아까부터 계속 들려오던, 이상한 기계음.
“설마……?”
그건 다름 아닌, 그가 입고 있는 강화복의 등 뒤에 달린 동력원이 격렬하게 작동하는 소리였다.
{당신은 <앱솔루트 패럴라이즈>에 의해 육체가 마비됩니다.}
{당신은 <코그니션 사일런스>에 의해 모든 권능 및 마법 사용이 봉쇄됩니다.}
“으…… 읍!”
부활을 통해 도망치는 걸 막기 위해, 자살, 자해, 아사, 병사를 봉쇄하는 모든 종류의 마법들이 지속적으로 시전되는 구속구.
그게 다름 아닌 자신이 입고 있는.
유신우가 선뜻 건네줬던 바로 이 강화복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하비는 이미 추락하고 있었다.
‘저 새끼……!’
추락 지점에서 빙긋 웃으며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유신우를 노려보면서 말이다.
“으으읍……! 으읍!”
그렇게.
하비는 다시는 헛짓거리를 하지 못하도록,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신체가 구속된 채 알포드 성의 지하 감옥에 갇혀야 했다.
언뜻 보면 배신의 대가로는 조금 가혹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상대를 잘못 골라도 너무 잘못 고른 게 화근이라면 화근.
“줄을 설 거면 똑바로 서라고.”
이로써 하비는 크나큰 인생의 교훈을 얻었지만, 그걸 실천하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 * *
드루이드 옹구스.
내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그 이름이 맴돌았다.
‘본 적이 있었지. 누아다의 영혼을 얻기 위해 들어갔던 시나리오 세계에서.’
과거 신화시대에서는 딱히 접점은 없었고, 아발론에서 거주할 때에도 별 충돌이 없었던 자.
그래서 오히려 그 시기보다 훨씬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는 신화 수호령 시나리오 세계에서의 만났던 기억이 더 강렬하게 남아 있다.
‘확실히 아발론 신계에서 마법적으로 가장 뛰어난 역량을 가진 자라는 걸 생각하면……. 야드가르를 가둔 아티팩트를 만들 확률이 가장 높은 자이기도 하고.’
키안이 했던 말이 거짓일 수도 있지만, 그런 정황을 조합해 생각해 보면 일견 타당한 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쨌든 한 번은 꼭 만나봐야 할 신.
‘문제는 그 녀석이 언제 어디에서 각성할지 알 수 없다는 건데…….’
나는 전투 후에 투이렌과 키안의 성채에서 얻은 백산 클랜 잔당에 대한 정보를 꼼꼼히 훑어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옹구스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설마…… 다른 인간계에서 나타난다면?’
그러다 문득,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커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치 노트에서 언급하기로,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제1 인간계.’
그러니까 달리 말하자면, ‘제2 인간계’ 또한 반드시 있을 거라는 뜻이다.
그리고 한창 이종족과 살을 부대끼며 땅따먹기를 하고 있는 우리는 오크, 엘프, 렙틸리언과 함께 ‘동 대륙’이라는 바운더리에 소속되어 있고.
이걸 종합해 보자면, 제2 인간계는 지금껏 내가 전혀 마주한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완전한 미지의 영역에 속해 있는 세계라는 결론이 나온다.
만약 옹구스가 그곳에서 각성해 버리기라도 한다면, 나는 그야말로 야드가르에 관한 단서를 찾는 과정에 있어서 앞길이 막막해져 버리는 것이다.
‘뭘 어쩌라는 건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
단서를 찾았지만 그게 더 막막해져 버렸다.
물론 지금의 종족 공성전이 끝나고 ‘세계 통합’이라는 게 이뤄지면 세상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그 말인즉 결국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앉아서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아니지, 잠깐.’
그런데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차원의 경계를 넘나든다…….’
제1 인간계와 제2 인간계.
현시점, 시스템으로는 이어지지 않는 차원의 경계를 뛰어넘는다는 발상.
그와 비슷한 일을 해낸 자들이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엘프였다.
‘그놈들……. 공성전에서 단 한 번도 승리하지 않고서 바벨탑에 들어갔다고 했지. 그것도 그 어느 종족보다도 빨리.’
엘프들은 ‘한 영지의 최종 승자가 되어야만 바벨탑의 입장 권한을 갖는다’는 규칙을 어기고 그곳에 들어가 있었다.
물론 그런 그들조차도 아예 타 종족의 차원계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들 정도의 기술력이라면 분명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귀쟁이들과 어떻게든 엮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는 건가.’
거신의 동력원을 얻고난 후에도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한다는 선택은 옳았다.
이렇게 직접적인 필요성이 생길 거라고 예상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나름의 보험이었으니 내 생각이 적중한 셈.
어쩌면 듀엔데를 이용해 좀 더 많은 걸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고맙다. 네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듀엔데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얼마 전에 나를 등쳐먹으려던 기억은 이미 잊었는지, 내겐 다시 사람 좋고 자애로운 ‘우성 종족’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상부에서 좋은 평판을 얻은 모양인가 봐?”
난 그런 그를 향해 은근슬쩍 떠보는 말을 했다.
‘내 덕에 승진빨 좀 받았으니 고마워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색을 잔뜩 내비치는 물음.
다행히 듀엔데가 그런 내 의도를 읽지 못할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아, 뭐…… 그렇지. 아무래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의회에서도 인지를 하게 되었으니까 말이야.”
“그래? 그럼 좀 더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겠네?”
“그거야…… 하, 이봐. 나도 곤란하다구. 그 이상 기술을 넘기는 짓을 하면…….”
“쉿. 말조심해. 누가 들을라.”
그의 한탄을 오히려 내 쪽에서 제지하자, 듀엔데는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다음엔 또 무슨 말을 할지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걱정하지 마. 우리 비밀은 절대 밝혀지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나도 너한테 너무 곤란한 요구는 하지 않을 거야.”
“으, 음.”
“서로 윈-윈하는 사이로 남자고. 좋은 게 좋은 거잖아?”
“……무, 물론이지.”
악마의 속삭임을 들은 듀엔데의 눈빛이 반짝였다.
“크흠. 아무튼.”
곧이어 그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표정을 바꾸곤 화제를 돌렸다.
이제 곧 ‘그들’이 올 때가 된 듯하다.
“전에도 말했지만 집정관은 아주 날카로운 사람이야. 말실수 하지 않도록 조심해. 괜히 꼬투리 잡히기 시작하면 큰일 날 수도 있으니까.”
“뭐.”
난 여유 있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봐야 그 수많은 신과 악마들을 속이고 기만해온 나를 꿰뚫어 보는 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봐야 엘프일 뿐이지.’
그렇게 만만히 생각하며 나는 정장 코트의 옷매무새를 만졌다.
내 몸을 뒤덮었던 비늘 갑각과 꼬리, 날개는 어느새 사라졌고, 나는 여느 평범한 인간과 같은 외형으로 돌아와 있었다.
엘프의 높으신 분들이 날 보고 놀라지 않게끔 배려해 용인화를 해제한 것이다.
“온다.”
쿠구구궁.
그렇게 새로운 인물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도중, 지면을 타고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쩌적. 쩌적.
여기저기 땅이 갈라질 정도의 대지진.
이 근방뿐만이 아니라, 바벨탑 전체가 흔들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뭐지……?’
앞으로 벌어질 상황이 무엇인지 대강은 알고 있었다.
‘집정관’이라는 자가 지원 병력을 이끌고 이곳 바벨탑 5층으로 워프해 들어온다는 것.
그런데 이 넓은 땅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대지진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확인하기 위해 나는 모든 감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마나가…… 뒤틀린다.’
저 지평선 너머 아주 먼 곳에서, 엄청난 양의 마나가 극심하게 뒤틀리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 엄청난 양이 어느 정도냐고 한다면…….
‘……내가 가진 총 마나량의 1,000배…… 아니, 그 이상인가?’
아델과의 영혼 공명으로 용인화를 거친 내가 한없이 작게 느껴질 정도로 거대한 규모.
그런 것이 지금, 저 지평선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내고서는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쿠구구궁.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하늘을 날아 다니는 거대한 황금의 배.
물론 어느 정도는 상상하고 있었다.
갑옷, 거신, 그다음은 황금함대…… 뭐 그런 게 아닐까, 하는.
그런데 문제는, 저게 지금까지와 같이 시스템과 전혀 상관 없는 엘프들만의 독자적인 물건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겐 저것의 정체가 시스템 메시지로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세우스의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