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81화
-안 돼!
-제, 제발……! 그것만은!
나락에 빠진 신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나를 보며 제발 목숨만 살려달라고 아우성쳤다.
-영원히 갇혀 있어도 상관없으니 제발 부탁하네! 우리의 의지만큼은 빼앗지 말아주게!
아델과의 영혼 공명으로 용인화가 이뤄진 직후,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바로.
심상세계 저편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신들의 감옥, 악의의 심연이었다.
“너희는 아직도 삶에 미련이 남은 거냐? 여기에 그렇게 갇혀 있고서도?”
이곳에서의 나는 포식자였다.
신들의 영혼을 사정없이 먹어 삼키는 악룡.
너무나도 배가 고파서, 저것들을 다 먹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는 굶주린 짐승.
이제 여기서 그들을 잡아 먹는다면, 저 신들의 영혼은 두 번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된다.
단순히 내 눈에 가둬 놓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문자 그대로의 영멸(永滅)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나 나에게 애원하고 있다.
제발 영혼 포식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당연하지! 이곳이 아무리 괴롭더라도 존재마저 지워지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이런 심연의 나락에 떨어졌으면서도, 끝까지 ‘존재함’에 집착한다.
난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화가 나다 못해 헛웃음이 나왔다.
“그게 그렇게 소중한 걸 알면서…… 네놈들은 내 가족과 동료들을 그렇게 만든 거냐?”
이건 지극히 인간적인 분노였다.
저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필멸자들이, 그리고 나 또한 무수히 많은 타인의 목숨을 빼앗았다.
그렇기에 나 또한 살인에 대한 대가를 치르라거나 하는, 거창한 인류애적 논의를 할 자격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난 적어도 이 신이라는 것들에게 분노할 자격은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건드렸으니까.
-우린 계속 이곳에서 네게 속죄의 마음가짐으로 고통받겠다. 네가 우릴 용서해 줄 때까지…….
-그러면 어, 언젠간 우리도 밖으로…….
-이런 멍청한! 지금 그런 소릴 꺼내면 어쩌잔 말이냐! 영원히 여기에 갇혀 있겠다며 용서를 빌어도 모자랄 것이거늘!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런 과거의 일에 대한 분노보다도 더욱 역겨운 건, 이놈들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거였다.
내게 이렇게 붙잡혀 있다가도, 언젠가 다시 바깥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
난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는데, 내가 자신들을 용서해 줄 거라 믿은 모양이었다.
-이보게 앙그라 마이뉴, 이건 그런 뜻이 아니라…….
“난 앙그라 마이뉴가 아니라 유신우야.”
이젠 저 오래된 이름도 지긋지긋하다.
난 그저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 각성자.
언젠가 다가올 끝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내디뎌가는 ‘사람’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꼬르륵.
배가 고프다.
더 이상 허기를 참을 수는 없었다.
눈앞의 먹잇감, 신들을 향해 나는 거대한 입을 벌렸다.
-아, 안 돼! 제발!
-살려줘!
-이런 엿 같은……! 네놈은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 편히 잠들지 못할 것이다!
비명과 아우성, 저주가 사정없이 교차하며 내 뱃속으로 신들의 영혼이 빨려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내 안에서 불꽃으로 화했다.
{고통의 업화가 더욱 짙은 흑색이 되었다.}
{클리브 솔리쉬가 파괴된다.}
{고통의 업화가 더욱 짙은 흑색이 되었다.}
{아스트라페와 케라우노스가 파괴된다.}
{고통의 업화가 더욱 짙은 흑색이 되었다.}
{미스텔테인이 파괴된다.}
…….
그들이 하나씩 소화될 때마다, 악의의 전당에 축적되었던 무구는 파괴되고 불꽃은 짙어졌다.
흑색의 화염이 맹렬하게 피어오른다.
그리고 그것은 조금씩 한 곳에 뭉쳐져 어떤 형상을 구축했다.
긴 칼날과 손잡이가 달린 장검.
{마검 <????> 구현}
알 수 없는 이름을 가진 그 마검은, 전체가 검은 화염으로 이루어진 불안정하면서도 안정적인, 기묘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을 것 같지만, 손을 뻗으면 내 손에 너무나도 알맞은.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이 몸의 일부였던 것만 같은 그런 화검(火劍)이.
나의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 * *
심상세계에서의 영혼 포식이 끝나지, 내 의식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무, 뭐야?”
나를 붙잡고 매달린 드레이크의 등에 타고 있던 키안이 갑자기 변한 내 모습을 보고 크게 당황했다.
그건 물론 외모 때문이 아니다.
인간이 마수와 융합한 형태의 마물들은 이 세상에 차고 넘치기에 그리 이상할 것도 없으니까.
권능이나 마법으로 외형을 변경한다고 해도 전혀 생소할 것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저렇게나 눈을 휘둥그레 뜨는 이유는, 외형보다도 지금 나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 때문이었다.
화르륵.
손에서 고통의 업화가 뿜어져 나왔다.
체내에서 마나를 대체한 검은 불꽃이, 그저 조금 힘을 가하는 것만으로 마치 폭발할 것처럼 넘쳐흘렀다.
“으윽!”
키안이 손을 들어 올려 얼굴을 가렸다.
아주 뜨거운 불꽃을 바로 코앞에서 마주했을 때의 반응.
크르르.
심지어 내 다리를 물고 있는 드레이크마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내 날개를 물고 있는 또 다른 드레이크 기병 역시 마찬가지였다.
피식.
실소가 흘러나왔다.
화염의 신이라는 작자가.
마수 중 최강이라는 용종 마수가.
불이 뜨거워 저러는 꼴이라니.
그만큼 지금 내게서 흘러나오는 고통의 업화가 강력하다는 방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신화, 전설 수호령들을 잡아먹어 피워낸 불꽃이니, 당연히 그럴 법도 하다.
‘……나와라.’
이제 상황을 종료시킬 차례.
나는 손바닥을 펼쳐, 방금 전 심상세계에서 내 가슴속에 구현된 이름 모를 마검을 불러냈다.
그것이 내 손에 가볍게 쥐어지는 상상을 펼쳤다.
{마검 <????> 소환}
화륵.
일렁이는 화염의 장검.
겉보기엔 뿜어져 나오는 불꽃의 줄기를 잡은 것처럼 불안하기 짝이 없지만, 난 마치 손에 꼭 맞는 신체의 일부가 새로 생긴 것처럼 편안했다.
“……으, 윽! 대체 그건……!”
키안이 더욱 표정을 찌푸렸다.
검에서 뿜어내는 화기 때문에 가까이 있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크헝!
급기야는 내 다리와 날개를 물고 있던 드레이크들조차 너무나도 뜨거워서 다물고 있던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하늘에 떠 있는 나를 놓치고선 그대로 지상에 추락했다.
난 그런 그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하강하며 쫓아갔다.
쐐애액!
‘적과 아군이 뒤섞여 있다. 광역기는 절대 쓰면 안 돼.’
그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나와 함께 용인화(龍人化)한 아델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나에게 종속된 용기사.
의지만으로 의도를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의지 또한 나에게 전해져 왔다.
정정. 이건 시스템에 의한 것이 아니다.
원래는 부대장에 의한 일방적인 명령만이 가능했는데.
아무래도 영혼의 결속을 통해, 이제는 상호 간에 대등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렇게 두 사람이 생각과 의지를 공유할 수 있으니, 사실상 싸움뇌가 두 개가 된 거나 마찬가지인 셈.
이러면 훨씬 더 복잡하고 유연한 판단이 가능해진다.
심지어 그녀의 기술과 경험 또한 나와 공유할 수 있다.
쉬이익!
그동안 그녀가 갈고 닦은 검술이 내 머릿속으로 전해져 들어온다.
아델의 검술은 빠르게 돌진하며 베는 고속 참격기.
파앙! 파팡!
난 그녀와 함께 허공을 박차면서 급가속을 가해 아래로 떨어지는 적들에게 접근했다.
“으앗!”
그러곤 각자 하나씩, 공중에서 두 번 방향을 전환해 교차하면서 드레이크들과 키안, 그리고 그 기수를 베고 지나갔다.
화아악!
검이 닿은 자리에, 맹렬한 고통의 업화가 피어오르며 공간이 일렁였다.
공격의 대상은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기라도 하는 듯, 그 흑화(黑火)에 휘말려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빠르고 간결하지만 위력은 어느 권능에도 비할 데 없는, 쾌속의 검술.
{영혼 결속의 구성원에 의해 행해진 기술이 <공명기>로 정립된다.}
{공명기 <적사자 검식>을 습득했다.}
이는 공명기라는 이름으로 정형화되었다.
이 메시지가 아델에게도 나타난 것인지, 그녀 역시 눈이 동그래지며 허공을 쳐다보는 모습을 보였다.
‘마스터, 이건…….’
‘시스템이 우릴 돕는 것 같군.’
사실 이 메시지를 보낸 주체는 과거의 내가 문자의 권능으로 만들어둔 일종의 백도어 시스템이었지만, 어차피 그런 걸 설명해 봐야 말만 길어질 뿐이므로 난 그 정도로만 말했다.
하지만 그 덕분인지, 아델의 표정에는 더욱 큰 자신감이 드러났다.
‘……역시. 알겠습니다.’
그녀의 시선은 곧장 지상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드레이크와 와이번 기수들을 향했다.
아델의 의지가, 내게 함께 그들을 구하자고 말하고 있었다.
‘가자.’
‘네.’
나는 거기에 응했다.
* * *
두 줄의 붉은 빛줄기가 복잡한 호선을 그리며 전장을 가로지른다.
그 빛줄기에 닿은 병사들은 순식간에 고통의 업화에 집어 삼켜져 잿불로 사라져 갔다.
화륵!
“으……!”
채 비명이 튀어나오기도 전에 흩날리는 불씨로 변해버리는 적들.
적사자 검식은 모든 동작에 빠르고 호쾌한 중심이동이 부여된 동세(動勢)의 극한이었다.
퍼엉! 펑!
{공명기 <적사자 검식> 파생형, ‘흑화륜(黑火輪)’ 전개}
지상과 허공을 딛으며 온몸의 무게중심을 칼끝에 담아, 톱니처럼 몸을 세로로 회전시키며 전방의 드레이크 기병을 향해 날아들었다.
드레이크 기병은 전신에 맹렬한 화염을 두르고 내 공격을 막았지만.
콰콰콰콰쾅!
칼이 닿을 때마다 폭음과 함께 충격파를 일으키며 그 큰 몸뚱이의 드레이크와 기수를 한꺼번에 저 멀리까지 튕겨내 버렸다.
“크……악!”
그자는 그나마 비명이나마 질렀으니 칭찬해 줄 만하다.
지금껏 이 정도의 연속 공격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라도 한 자는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다.
“으으……! 앙그라 마이뉴!”
이번엔 저 멀리서 키안이 나를 향해 잔뜩 마력을 담아 함성을 질렀다.
그는 아까의 공격으로 오른팔이 잘려서는 환부에서 피 대신 불타는 마나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간신히 땅을 딛고 서 있는 것이 매우 불안정해 보였지만, 기세만큼은 죽지 않았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은 반드시……!”
“그 꼴로 뭘 어쩔 건데?”
서걱.
물론 어디까지나 기세는 기세일 뿐.
투콱. 촤악.
“끄아아아악!”
놈이 나의 접근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나와 아델이 앞뒤에서 동시에 검을 휘두르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자세를 한껏 낮춰 거의 슬라이딩을 하듯 키안의 다리를 베고 지나갔고.
아델은 몸을 높이 띄워 방금 전 내가 했던 것처럼 세로로 회전하며 그의 왼쪽 어깨를 타고 넘었다.
철퍽.
결국 키안은 팔다리를 모두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공명기 <적사자 검식> 발동 종료}
그 시점에서 더 이상 우리에게 적의를 내뱉을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내 주위에서 은은하게 빛나며 몸을 한껏 달궈주던 붉은 기운 역시 사라졌다.
전장 한가운데에는, 용의 비늘과 날개, 꼬리로 몸이 뒤덮인 나와 아델.
그리고 사지가 절단된 채 바닥에 엎어진 키안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큭…… 왜…… 얼른 죽이지 그래……? 다른 신들처럼…… 네놈의 눈깔에…….”
놈은 엎드린 채 나를 위로 올려다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벌겋게 충혈된 눈, 엎어져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뚱이.
그야말로 온몸으로 추함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럼에도 자존심은 남았는지 끝까지 반항했다.
“너한테 물어볼 게 있거든.”
“아…… 하하…… 큭큭큭…….”
그는 내 말을 듣는 순간 무슨 질문을 하려는 건지 알아챈 듯 웃기 시작했다.
“혹시…… 그거……? 큭.”
“거울에 대해서 아는 게 있으면 말해라.”
난 그에게 야드가르가 갇혀 있는 거울공간에 대해 물었다.
그 역시 아발론의 신.
특히 키안은 루 라바다의 친부로, 다누 신족 안에서도 꽤나 높은 입지를 가진 신이었다.
그렇기에 아이를 가둬 놓은 그 거울에 대해서도 분명 어느 정도 알고 있음을 확신하고서 물어본 것이었다.
“싫은데……? 내가 왜 말해줘야 하지……? 어차피 넌 날 죽일 텐데 말이지.”
반응은 역시나 예상한 그대로.
모른다고 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저렇게 해야 죽더라도 나를 농락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그래. 다만, 곱게 보내주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흐흐…… 네가 무슨 짓을 하건…….”
화륵.
나는 손끝에 검은 불꽃을 피워 올렸다.
“이 불의 이름이 뭔지 알아?”
“……응?”
“‘고통’의 업화.”
그러곤 그대로 녀석의 이마에 손가락을 갖다 대 화염을 체내에 주입시켰다.
죽지 않을 정도의 아주 극미량만.
체질 자체가 불꽃임을 감안해 적절한 양으로 조절해서.
무수한 세월동안 겪었던 나와 내게 잡아먹힌 신들이 느낀 고통을 그에게 고스란히 전달했다.
“끄아아아아악!”
키안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이따금씩 나를 바라보며 원망의 눈빛을 보내긴 했지만, 그러한 감정은 곧 사그라지고.
대신 그 눈동자엔 ‘제발 멈춰달라’는 애원만이 남았다.
“그, 그만! 그만! 전부 말할게! 그 거울을 만든 자는……!”
“만든 자는?”
“드루이드 옹구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내가 듣고자 했던 것을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