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76화
손을 내밀자 아테나가 나타났다.
아테나는 빛의 방패 아이기스를 들어 라의 화염을 막았다.
거기서 손가락을 한 번 튕기자, 이번엔 루 라바다가 나타났다.
루는 타흘룸을 던져 라의 다리를 짓뭉갰다.
다시 손가락을 튕겨, 제우스를 불러냈고.
나는 제우스의 번개에 몸을 실어 마치 순간이동을 하듯 눈 깜짝할 사이 적 비병 편대의 한가운데에 파고들었다.
거기서 다시 티르를 큐브에 투영.
내 앞에 나타난 외팔의 오크 검객이 주변의 모든 비병들을 베어냈다.
라는 그런 와중에도 마지막 발악을 하며 나에게서 벗어나려 했으나.
아르테미스가 쏘아낸 화살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었다.
털썩.
라의 신격이 각성한 렙틸리언.
그것은 곧 가슴에 구멍이 난 채로 바닥에 추락했다.
{라의 영혼을 흡수한다.}
무수한 신들의 영체를 자유자재로 투영하며 날뛰는 내 앞에서 새로 나타난 이종족의 신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았다.
용기사들과 함께 히트 앤 런으로 치고 빠지려던 초기의 계획이 무색하게, 난 바벨탑에 나타난 그 심각한 위협을 정면 승부로 박살 내버렸다.
“신우.”
그런 내 모습을 본 해모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쩌면 넌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시바’의 재림일지도 모르겠군.”
“시바의 재림?”
“그래. 아주 먼 과거에 한차례 세상을 멸망 직전까지 이끌고 갔던…… 신 중의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
그건 나도 금시초문인 이야기였다.
신화시대의 신들보다 더 격이 높은 존재라니.
“그런 게 있었다고?”
“오래된 이야기다. 나도 잘은 모르는…… 구세대 불멸자들의 이야기.”
해모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표정에선 어떤 회한 같은 게 느껴졌다.
마치 죽음을 앞둔 노인과도 같다 해야 할까.
지금 나와 협력을 하고 있으면서도, 언젠간 나에 의해 영멸하게 될…….
그런 운명을 직감한 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멸자는 사라져야 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난 여전히 그런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영원불멸한 삶은 언뜻 생각하면 그저 좋기만 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건 결코 행운이 아니다.
세계를 인지하며 살아가는 인격체들이 제 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의 길이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점점 진짜 악마화 되어갔던 과거의 내가 바로 그러했고.
지금은 겨우 주변 사람들과 타라, 야드가르의 존재 덕분에 인간성을 유지하고는 있으나, 이것도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해모수나 마나난 같은 예외적 케이스 역시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결국 변할 것이다.
난 그런 쓰레기들과 똑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
난 나 스스로 온전한 나로서 끝을 맞이하고 싶다.
해모수가 나를 보며 시바라는 과거의 존재를 언급한 건, 단순히 내 힘과 신들의 영혼을 흡수하는 능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어쩌면 내가 만들 미래를 내다본 걸지도 모른다.
* * *
“레아.”
“……신우.”
그녀가 되살아났다.
유메미의 오색꽃을 통해.
다행히 그녀는 사망 당시에 혼이 온전한 상태였고, 정신적으로도 멀쩡했다.
육체적 손상은 살살이꽃과 피살이꽃, 뼈살이꽃으로 치유되었으니, 아무런 문제 없이 부활할 수 있었다.
……단지 그녀에게 수호령이 없다는 걸 제외하고서 말이다.
“……난 더 이상 각성자가 아닌가 보네.”
그녀의 눈에서 공허함이 묻어났다.
마치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것 같은 모습.
그도 그럴 것이, 한때 인류 최강이라는 타이틀이 붙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졌던 그녀가 한순간에 모든 걸 잃었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잃은 가수나, 손을 잃은 미술가와 마찬가지인 심정일 것이다.
‘하급 수호령조차 붙지 않는다……. 아예 각성자로서의 자격 자체가 박탈된 것 같군.’
내 눈엔 그녀의 머리 위에 아무런 표시도 나타나지 않는 게 보였다.
그녀가 이제 완전한 일반인, 비각성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제 난…… 가치가 없어졌어.”
“무슨 소리야? 그런 소리 하지 마.”
“그게 내 전부였는걸. 특히나 지금 같은 시대엔…….”
“몸부터 회복해. 수호령이 전부는 아니니까.”
나는 레아에게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 넌 괜찮겠지만 난…….”
“네 안에.”
“응?”
“네 안에 네가 쌓은 마력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건 정말로 수호령이 사라진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겐 레아의 몸속에 흐르는 힘이 여전히 느껴지고 있었다.
수호령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그 자체로서 넘쳐흐르는 오롯한 무력.
그것이 비각성자가 된 그녀에게서 여전히 느껴지고 있었다.
“어떻게……?”
“넌 여전히 전과 다름없이 그대로야. 아직은 수호령이 없는 몸이 이질적으로 느껴지겠지만, 곧 적응할 수 있겠지. 그때까지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에만 전념해.”
난 지금 그녀의 상태를 보고는, 한 가지 머릿속에 떠오른 게 있었다.
그건 바로 ‘금제가 해제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레아가 마나난의 목소리를 듣고서 영체를 투영하게 된 후, 그녀는 스탯상에 아주 중요한 변화가 있었음을 말한 적이 있었다.
그건 바로 ‘추가스탯’이 사라지고, 그 대신 그 양이 모두 ‘순수스탯’으로 바뀌었다는 것.
이를테면, 스테이터스 상에서.
{근력: 1,500 (+ 9,000)}
으로 표시되던 것이.
{근력: 10,500}
……으로 표시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여기엔 아무런 차이도 없다.
둘 다 결국 합치면 스탯이 10,500이라는 거니까.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의미는 현저하게 다르다.
전자가 레아 자체가 가진 근력이 1,500인데 그걸 특성의 힘으로 증폭시켜 10,500까지 도달했다는 뜻이라면.
후자는 특성의 도움 없이 레아 스스로가 근력을 10,500까지 가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스탯을 증폭시키는 특성은 수호령을 획득하자마자 얻는 자체 특성이다.
내가 처음 아지다하카를 얻었을 때 ‘악룡마공’이라는 특성이 그랬듯이 말이다.
즉, 레아는 그때 ‘금제가 해제되었다’는 메시지를 본 이후로 수호령을 통해 쌓은 모든 무력을 스스로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나나 아델……. NPC들이 그랬지.’
그리고 그건 나도 겪었던 일이다.
이진윤, 다리우스, 보그단에 비해 나 혼자서 과도하게 높은 순수스탯 때문에 레이드에 참가하지 못했던 일이 바로 그것.
게다가 아델 등 NPC들도 수호령 도움 없이 그만큼이나 강해졌던 걸 보면.
결국 ‘금제’란 건 현 시대를 살아가는 필멸자들에게 걸려 있는 일종의 ‘성장 한계치’를 뜻하는 것 같았다.
‘설마 나 같은 경우를 방지하려고 그런 건가?’
과거 내가 ‘아흐리만’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때를 기억해 보면.
온전한 인간의 힘만으로 신의 가호를 받는 영웅들을 꺾곤 했었다.
그 결과 나라는 괴물이 탄생한 것이고.
아무래도 아후라 마즈다는 문자의 권능으로 시스템을 창조할 때 바로 나와 같은 케이스를 방지하기 위해 그런 금제를 걸었던 모양이다.
결국 필멸자가 ‘수호령’으로서 존재하는 자신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수작.
‘하지만 전부 실패했군. 나를 축출하는 것도, 사람들을 금제로 묶어두는 것도.’
어쩌면 레아와 같은 케이스가 더 많이 늘어나는 거야말로 아후라 마즈다의 의지에 가장 역행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모든 필멸자가 신의 종속으로부터 벗어나는, 새로운 시대.
그런 때가 필연적으로 오고야 말 것이다.
“신우!”
한창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 다리우스가 다급하게 날 찾아왔다.
“응? 무슨 일이야?”
“타라가 납치됐다!”
“타라가?”
“하비…… 그 재수 없는 놈도 사라졌어!”
기어이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놈이 내 뒤통수를 친 것이다.
* * *
하비는 키안과 몰래 내통하고 있었다.
그 이유엔 아직까지 남아 있는 유신우에 대한 악감정도 있을 터.
하지만 굳이 첩자질까지 하며 키안과 내통한 것은 단순히 그런 감정적인 이유만은 아니었다.
‘신들의 세상……. 그날이 곧 온다!’
그가 숱한 죽음을 맞이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그동안, 그 역시도 수많은 정보를 듣고 또 두 눈으로 보았다.
덕분에 세상의 수많은 각성자들의 몸에 신들이 강림하고 있음을 그도 깨달은 것이다.
‘성황은 죽었지만 신들은 아직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역시, 유신우가 아니라 키안의 편을 드는 쪽이 내 살길이야.’
그리고 그는 자신이 어느 쪽에 붙어야 하는지를 결정했다.
그렇게 지금, 유신우 쪽에 붙은 척 연기를 하다가 그의 가장 큰 ‘약점이 될 만한 사람’을 납치해 키안에게로 가고 있는 것이다.
‘큭큭……. 멍청한 녀석. 날 아무런 의심도 없이 믿다니.’
성안에 꼭꼭 숨겨둔 채 극진하게 대접하며 치료하는 걸 보면, 이 타라라는 여자는 유신우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이런 사람을 키안에게로 데려가 인질로 삼으면 아주 손쉽게 유신우를 몰락시킬 수 있을 터.
현시점 각성한 신들에게 가장 강력한 위협인 유신우를 그런 식으로 무너뜨릴 단초를 제공했으니.
나중에 자신은 그 공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이다.
‘거기다 나한테 이런 선물까지 주고……. 정말 고마운 놈이군.’
“으읍……! 읍……!”
지금 그는 로마노프가 엘프의 기술로 만든 신형 강화복을 입은 채 타라를 둘러업고서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다.
하비는 ‘무한 부활’이라는 엄청난 능력을 얻은 대가로 ‘성장 제한’이라는 뼈아픈 약점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 그가 입고 있는 이 신형 강화복이라면 그런 약점을 보완하는 게 가능하다.
그야말로 유신우에게서 온갖 단물은 다 빼 먹고, 아주 중요한 인질까지 납치한.
완벽한 배신에 성공한 것이다.
‘그놈이 굴복하는 모습을 보고 싶군.’
이전에 자신과 자신의 형이 유신우 한 사람에게 완벽하게 농락당했던 게 기억난다.
모든 상황이 마치 그의 손바닥 위에 있는 듯, 모두가 그 한 사람에 의해 조종당했던 일.
철석같이 믿었건만, 결국 자신은 형을 배신한 패륜아에 모든 걸 다 잃은 빈털터리가 되어 한동안 도망자가 되어야만 했다.
그때만 생각나면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이번엔 입장이 반대가 됐지. 오히려 넌 나한테 무릎 꿇고 빌게 될 거라고.’
하비는 머릿속으로 유신우가 제발 그 여자만은 살려 달라고.
차라리 자신을 죽여 달라고 무릎 꿇고 비는 모습을 떠올렸다.
생각만 해도 통쾌하기 그지없는 장면.
소름이 등골을 타고 오를 정도였다.
그 정도로 지금 상황은 자신에게 너무나도 완벽했다.
너무 완벽해서 의심스러울 만큼이나 말이다.
‘잠깐, 설마…….’
그 순간, 방금 느껴진 그 소름이 기분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불길함 때문인지 분간이 잘되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에이, 아니야. 아니겠지. 아무리 그 교활한 놈이라도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반전시키겠어.’
그러나 하비는 애써 그 찝찝함을 무시했다.
자신의 계획은 완벽하다.
유신우조차 이걸 뒤집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억지로 최면을 걸면서, 그는 목적지를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