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69화
아후라 마즈다가 죽고 난 후, 신들의 각성 빈도가 훨씬 더 잦아졌다.
사실 이건 그의 죽음과는 별개로, 시스템이 나타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힘을 축적한 강자들이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다.
쉽게 말해 세상이 점점 ‘고인물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경험과 기술의 축적으로 강한 힘을 가진 각성자들은 그만큼 다이아를 모으기도 쉬워질 테고.
수호령 재소환을 할 여력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면서 전설급 각성자의 숫자도 늘어난다.
그에 따라서 신화 수호령 획득에 도전하는 케이스도 늘어날 테니.
신들이 각성하기에 아주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동화율 100%를 달성하는 건 역시…….’
물론 그것만으로 신들이 깨어나지는 않는다.
동화율을 99.9%까지 올리는 건 전투와 사냥을 거치면서 높일 수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인간성을 버려야 한다’는 조건을 맞추는 건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 쓰레기가 많다지만, 이 많은 사람들이 전부 인간이기를 포기한 존재가 된다는 건 아무리 봐도 부자연스러워.’
난 투이렌으로부터 얻은 문서의 연락망 명단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키안 본인을 포함해 전 세계에 협력을 유지하고 있는 신의 숫자가 무려 7명.
이 말은 즉, 투이렌이 사망하기 전에는 여덟 명이었다는 뜻이다.
오히려 아후라 마즈다가 살아 있을 때보다도 더, 몇 배로 늘어난 숫자인 것이다.
게다가 듀엔데의 말을 들어보니, 인간계뿐만이 아니라 오크계와 렙틸리언계도 사정이 같은 모양이었다.
그가 묘사했던 적들의 모습은 신이라 하기에 너무나도 명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급격하게 늘어난 신들……. 그 트리거가 되는 이벤트라고는 아후라 마즈다의 죽음 외에는 없겠지.’
결국 이건 단기적인 싸움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아후라 마즈다의 육신이 살아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라면 그를 죽이기만 하면 되겠지만.
그 육신이 죽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라면 이 세상 모든 신들을 다 찾아내 직접 봉인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혹은 아후라 마즈다의 영혼을 찾아내든가……. 그게 더 답이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어찌 됐든 나는 본격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신들과 대적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 했었다.
점점 더 힘겨워지는 싸움에 맞서기 위한 대책을 말이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때마침, 내게 이 상황에 대응하기에 아주 좋은 기회가 굴러들어 왔다.
“거신의 동력원 설계도를 달라고?”
그의 갑작스러운 도움 요청에 대해 내가 요구한 것은 단 하나.
엘프 종족이 가진 마법 문명의 핵심 기술이었다.
“어려울 것 없잖아. 너 정도면 조그만 저장 장치에 그런 문서를 담아 오는 것 정도는…….”
“아니, 아니.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지.”
당연히 그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얘기였을 것이다.
이건 인간 기준으로도 아주 중대한 범죄였으니까 말이다.
내 요구는 외국에 자국의 군사기밀을 넘기라고 종용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이봐, 이건 잘못되면…… 내 목이 날아가는 문제라고.”
“걸리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무책임하게 말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야. 넌 지금 선을 넘고 있어.”
듀엔데가 삿대질까지 하며 노여움을 표했다.
나를 한 대 치기라도 할 기세다.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우리 협상은 이걸로 끝이야.”
난 그런 그를 굳이 붙잡지 않았다.
설령 엘프들이 당장 바벨탑에서 철수한다 하더라도 내가 손해 볼 것은 없다.
원래 내가 그들에게 바랐던 건 오크와 렙틸리언들을 견제해 주는 것뿐이었으니까.
어차피 저들은 강화 마력석을 채취하기 위해서라도 빠른 시일 내에 재진입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상황은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는 셈이다.
그때 대표자가 바뀔 수도 있겠지만, 이제 와서 엘프의 대표자가 굳이 이 듀엔데일 이유도 없다.
“잠깐만.”
그러니 목이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하는 법.
망설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는 나를, 그가 다급히 붙잡았다.
“내가 당신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겠다는 게 아니고……. 당연히 나도 우리 관계가 계속해서 유지되길 바란다고, 인간.”
아까 대뜸 삿대질을 할 때와 비교해서 한참 누그러진 모습이다.
“거신의 동력원 설계는 좀 힘들고……. 야금술은 어떤가? 우리가 사용하는 금속의 추출부터 제련과 가공까지, 전반적인 지식 전부를 말이야.”
그는 나에게 조금 다른 종류의 기술을 넘겨주길 제안했다.
저들이 사용하는 황금색 금속의 비밀에 관련된 지식을 말이다.
물론 그것도 엄청난 제안이긴 하나.
“아니, 안 돼. 내가 원하는 건 거신의 동력원에 관한 기술이야.”
난 끝까지 내 의지를 관철했다.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얻기 위해서였다.
“……하.”
듀엔데가 깊은 한숨을 푹 내쉬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반응 때문에 내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마력의 응축과 생성, 증폭 및 동력 전환 등의 핵심 기술력이 응집된 거신의 동력원 기술이야말로 진정으로 내가 얻어내야 하는 거라는 생각이 말이다.
“잘 생각해 봐. 당신은 손해 볼 게 아무것도 없어. 아무런 위험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이제는 채찍이 아닌 당근으로 그를 구슬릴 차례.
난 그에게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을 건넸다.
“지금 엘프 종족 중에서 인간과 제대로 교류를 한 사람은 너밖에 없어. 그렇지?”
“……그렇긴 하지.”
“그러면 우리가 어느 정도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그건…….”
“그것도 너뿐이야. 여기 있는 네 아랫사람들도 사정을 제대로 모르는 건 마찬가지고.”
듀엔데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도 내가 하는 말의 의도를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럼 답 나오지? 엘프계에 있는 네 윗사람들은 모두 네가 보고한 대로 믿을 수밖에 없어. ‘인간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뛰어난 기술력을 가지고 있더라’라고 보고해 버리면, 넌 어떤 의심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지난번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해 큐브를 받아 간 부분이 설명이 안 되지 않나? 인간이 원래 그 정도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굳이 우리에게 거신을 지원받을 이유가…….”
“바로 그 점이야.”
“음?”
“네가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 말이야.”
내 지적에 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인간들이 자신들의 기술력으로 거신의 동력원 구조에 대해 해석해 내는 데 성공해 버렸다, 라고 한다면?”
“그럼…….”
“그럼 책임의 화살은 네가 아니고 그걸 지원하겠다고 결정을 내린 의회로 돌아가겠지.”
그때 거신을 지원한다는 결정을 내린 건 듀엔데가 아니라 엘프족의 높으신 분들이 직접 내린 판단이었다.
정작 듀엔데는 우리에게 거신이 아니라 좀 더 단순하고 직관적인 도구를 지원하려고 했지만.
이종족에게 기술적 우월성을 어필하기라도 하려던 건지, 의회가 고집을 부려 거신을 지원받은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보안이 완벽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 거신을 어떻게 뜯어보거나 분석할 틈 같은 건 없었다.
작동을 멈춘 거신의 내부 핵심 부품들은 모종의 장치가 발동해 전부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제론 엘프 의회가 잘못한 게 없지만, 알 게 뭐란 말인가?
‘아무튼 인간이 해냈다’고 듀엔데가 우기면 그들은 그걸 믿을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도리어 자기들이 문제의 원흉이 되는 셈이라고.”
난 계속해서 그를 설득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그게 밝혀질 때쯤엔, 넌 이미 엘프족 내에서 이종족에 대해 가장 많은 지식을 보유한 전문가가 되어 있을 거다. 의회는 자기들의 판단 실책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너에게 의존하려 할 테고 말이야.”
여기까지 말하자, 듀엔데의 눈빛은 처음과 매우 달라져 있었다.
불신과 적개심이 떠올라 있던 눈에서, 확신과 욕망에 가득 찬 눈으로.
“네가 살 길은 네 스스로 찾는 거야. 여기서 네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옳을지 잘 생각해 보라고.”
그렇게 난 설득의 종지부를 찍었다.
집단을 배신하는 것이 오히려 개인인 자신에게 거부하기 힘들 정도로 큰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사실.
그 딜레마를 제시함으로써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이건 내가 예전에 기업을 상대로 했던 ‘더러운 일’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단지 지금은 그 상대가 이종족이라는 차이점이 있을 뿐.
“……좋아. 그럼 당장 데이터를 가지고 오도록 하지. 넌 지금부터 날 도와서 오크와 렙틸리언을 막아줘.”
“물론이지.”
그렇게, 나와 듀엔데 사이의 비밀 계약은 처음 생각했던 대로 체결되었다.
* * *
바벨탑 2층, 언덕 위에 목책으로 둘러싸인 성채 한 군데.
그건 오크 종족의 텔레포테이션 비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거점이었다.
그곳으로부터 조금 멀리 떨어진 숲속에서.
지금 난 병력을 동원한 채 공격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우, 진짜 이거 맞아?”
레아가 의문을 표했다.
그녀 역시 이 공격 준비에 함께 동원되어 온 인물들 중 하나였는데.
내 계획을 들었을 때부터 계속 저런 상태였다.
“우린 지금 인간계의 일을 처리하기에도 손이 모자란 상황이라구.”
그녀의 불만은 당장 눈앞에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시급한 와중에 굳이 바벨탑까지 와서 이종족과 싸워야 하냐는 것이었다.
물론 그녀도 왜 내가 이렇게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그 엘프들의 기술을 얻어낼 기회라고는 하지만…… 난 여전히 못 미더워. 그게 이렇게까지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문제는 그 효용성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치는 충분해. 그거라면 인간계의 상황까지 한 번에 정리할 수도 있을 거야.”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믿겠는데…….”
설득에도 불구하고 레아의 표정은 여전히 물음표였다.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녀는 거신을 실제로 보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왔다.”
그때, 목표하고 있던 적이 성채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 보였다.
“일단은 저걸 잡는 것부터 집중하자.”
“알겠어.”
레아는 못내 이해를 못 한 듯 보였지만, 그래도 일단은 나를 믿고 따라와 주기로 했다.
그녀는 검을 고쳐 잡고 공격 태세를 취했다.
{수호령: 오딘(신화)}
지금 목표한 적은 오크 계의 신화급 각성자, 아니, 신.
-지원군을 불러올 수 있을 때까지 우리와 같이 이종족들을 막아다오.
듀엔데가 나에게 기술을 주는 대가로 요구한 것은, 말하자면 방어였다.
어떻게든 엘프가 바벨탑에서 철수하지 않고 버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난 지금, 오히려 적극적인 공격을 계획한 상태였다.
적이 올 때까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게 아니라, 역으로 상대를 기습해서 전력을 줄여 나가는 것.
공성전과는 달리 수비의 이점을 기대할 수 없는 이곳에서는, ‘공격이 곧 최선의 방어’라는 공세적 교리를 따르는 게 옳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리우스, 보그단.”
“예압.”
“공격 개시는 너희들에게 맡긴다. 부탁할게.”
“우리만 믿으라고, 친구.”
난 그 두 사람에게 임무를 맡긴 후, 용기사들을 이끌고 적의 측면으로 이동했다.
물론 미리 상대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날개를 펼치지 않고서 지상으로 달려서 움직였다.
그 뒤에선 사자 기병대를 이끄는 검제가 정면으로 전진 배치되었고.
바다뱀 수병대를 이끄는 최윤아는 후방의 언덕에 자리 잡았다.
공격 준비는 이걸로 끝.
남은 건 다리우스가 초탄을 발사하는 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스르륵.
보그단이 자신 휘하의 레인저들과 함께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곤 순식간에 오크 거점 근처의 나무 그늘 속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의 권능을 레인저들과 공유해 적이 움직일 것으로 예측되는 경로에 무수히 많은 함정들을 깔아놓은 뒤.
다시 그림자 속에 숨은 다음 이번엔 아예 적의 거점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유도 끝. 준비되면 바로 쏴라, 브로.
잠시 후, 보그단으로부터 전음이 들려왔다.
그건 다름 아닌 다리우스에게 하는 말이었다.
-오케이.
포병 병과와 보병 병과의 연계 클래스 어빌리티인 인디렉트 파이어(Indirect fire).
잠입과 침투에 능한 보그단의 레인저 부대가 목표한 지점에 유도 표식을 찍고.
다리우스는 어빌리티가 보여주는 조준선을 따라 쏜다.
그러면 포격은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 그 유도 표식에 정확하게 떨어진다.
콰콰콰쾅!
바로 저 오크들의 거점 안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