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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168화 (168/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68화

난 곧장 해모수와 함께 고공으로 상승해 투이렌의 흰개미부대 포격 사거리 바깥으로 잠시 벗어났다.

그리고 역공을 실행하기 위한 전술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땅속 깊은 곳에 화염을 직접적으로 꽂아 넣는 공격…… 그 방법밖에 없겠군.’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를 최대한으로 사용해 지금 상황을 타파한다.

물론 이 상황에서는 나 또한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도박 수를 내미는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하고 물러설 수는 없다.

‘여길 완전히 끝장내야만, 다른 점조직들의 대응을 늦출 수 있어.’

우리에게 정보를 빼앗긴 원천이 살아있는 한 백산 클랜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비…….’

난 다시 한번 그를 쳐다봤다.

그는 여전히 마나 개틀링 건으로 신나게 투이렌 측의 지상군을 쏘아대고 있다.

그러다 적이 다가오기라도 하면, 곧장 무기와 갑옷을 전부 인벤토리에 넣은 후 자폭.

그리고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부활해 다시 사격하고 있다.

자신의 불멸 능력을 십분 활용해 동서를 오가며 적을 완전 농락하는 중이다.

‘저 녀석에 대한 건 나중에.’

난 그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는 않았지만, 당장의 관심은 접어두었다.

일단 이곳에서는 투이렌을 끝장내는 게 더 시급한 문제였으니 말이다.

“해모수. 나를 엄호해 줘.”

“엄호? 역할을 바꾸자는 건가?”

“좀 힘들겠지만…… 부탁한다.”

그의 부대는 고속으로 움직이는 요격대와 싸우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은 부대다.

지금 상황을 쉽게 예시로 들자면, 전투기가 폭격기의 호위를 받아야 하는 상황.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딱히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지금 저 투이렌의 대공포병대를 침묵시킬 수 있는 기술을 쓸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기 때문이다.

“알았다. 그럼 내가 먼저 하강하도록 하지. 뒤로 따라와라, 유신우!”

해모수는 곧장 그리폰 비병대를 데리고 고공에서 아래쪽으로 하강하며 화염 탄막을 펼쳤다.

투확!

우리를 요격하기 위해 날아오른 적 비병들은 그 광범위한 영역에 흩뿌려지는 탄막을 피하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지는 수밖에 없었다.

콰쾅!

이어서 투이렌의 흰개미 포병들이 발산하는 독액 스프레이에 불꽃이 닿았고.

그 즉시 분진 폭발이 발생하며 주변에 강력한 충격파를 퍼뜨렸다.

그로 인해 해모수를 비롯한 그리폰 비병들이 후폭풍에 휩쓸리며 주위로 튕겨 나가긴 했지만.

덕분에 적 비병들 역시 접근이 불가능해진 건 마찬가지.

게다가 밑에서 그 독액을 흩뿌렸던 투이렌의 흰개미 포병들 역시 폭발로 시야가 가려져 잠깐 동안 빈틈을 노출했다.

바로 그 빈틈.

나는 거길 향해 숨겨둔 카드를 내밀었다.

‘나와라, 아지다하카.’

내 힘의 근원을 직접 현세에 구현한다.

그러고는 가지고 있는 모든 악의의 전당 무구들을 꺼냈다.

거대한 몸집에서 나오는 물리력으로 땅속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질량병기.

난 거기에 화염을 추가했다.

‘업화의 구.’

화아악.

용기사들로부터 내게로, 나로부터 아지다하카로, 다시 아지다하카에게서 모든 무구들로.

새까만 불꽃이 단계를 거쳐 옮겨갈수록 맹렬하게 타올랐다.

부대원들의 탑승물이 아지다하카와 같은 용종이라는 점이 그 화력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렇게 마침내 하늘은 검은 불덩어리로 가득 메워졌다.

쐐애액!

그때, 내 측면에서 뼈로 된 쐐기들이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지금의 나는 아지다하카를 컨트롤하느라 피하거나 방어할 여력이 없다.

이 상태에선 민첩한 대응을 하는 것이 불가능.

“내가 막는다!”

화르륵!

하지만 내게는 나를 호위해 주는 해모수가 있었다.

그가 전신에서 화염을 발산하며 로켓처럼 날아와 전방위로 화룡을 분출해 모든 쐐기를 불태워 없앴다.

끄덕.

난 그를 향해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말조차 꺼낼 여유가 없다.

내 모든 정신력과 마력은 오로지 아지다하카와 악의의 전당 무구에만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낙하.’

그렇게 모든 화력전개 준비를 끝마치고, 나는 마음속으로 시동어를 내뱉었다.

내 의지에 따라 고통의 업화에 둘러싸인 거대 무구들은 지상으로 떨어졌다.

콰콰콰콰쾅!

지표면에서 치솟는 자욱한 흙먼지.

물론 그 순간에 투이렌의 흰개미 부대는 이미 아까 전처럼 땅속으로 숨어 들어간 후였다.

따라서 저 충격력으로는 어떠한 피해도 줄 수 없다.

‘그 안에서 재가 되어라.’

하지만 본 공격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무구들은 지하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었고, 그걸 둘러싸고 있는 고통의 업화가 땅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녹일 테니 말이다.

화아악!

무구가 파고 들어간 자리에 생겨 난 구멍에서 검은 불꽃이 치솟는다.

이어서 땅이 새빨갛게 달궈지는가 싶더니, 급기야 지각이 녹아 마그마화하기 시작했고.

쿠구궁.

그렇게 순식간에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것처럼 고체에서 액체로 변화해 버린 지반은 균형을 잃고 무너졌다.

적어도 저 아래 지역의 지하 만큼은 가히 지상계의 멸망이라 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무시무시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

과거 신계를 붕괴시킬 때가 떠오른다.

거대화 된 칼과 창들이 땅속 깊숙이 틀어박혀 지각을 무너뜨리는 모습이 말이다.

“끄으아아아악!”

이윽고 땅속에서 비명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몸이 반쯤 녹아 없어진 흰개미와 전신에 화상을 입어 새까맣게 그슬린 인간 몇몇이 고통을 참지 못해 결국 바깥으로 나오고 만 것이다.

“찾았다. 투이렌.”

난 그중에서 누가 내 목표인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화상으로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모습이 되었지만, 머리 위에 나타나는 수호령 표시는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앙그라 마이뉴……! 네놈……!”

몸이 엉망진창이 된 와중에도 영락없는 쓰레기 신의 눈빛은 생생하게 살아 있다.

“감히 필멸자 따위가……. 이런 짓을 하고도 천벌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 말을 한 놈들은 전부 내게 영혼을 저당잡힌 ‘불멸의 노예’가 되었지.”

아직도 스스로 뭐라도 된 줄 알면서 천벌 운운하는 이것들의 눈앞에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 하나뿐.

“너도 마찬가지야.”

서걱.

난 아무런 망설임 없이 투이렌의 목을 베어 넘겼다.

* * *

투이렌과의 전투 이후, 난 곧바로 바벨탑 5층의 거점으로 순간이동해 날아갔다.

엘프들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다만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내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 위해서 간 것이 아니었다.

“듀엔데가 나를 불렀다고?”

“엉. 웬일로 엘프 녀석들이 먼저 우릴 찾아왔다니까.”

다리우스가 내게 상황을 설명해 줬다.

그는 이곳의 강화 마력석 채취 상황을 관리하고 있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와 엘프들 사이를 연결하는 연락망 역할도 하고 있었다.

그가 거점 텔레포트 비컨을 이용해 알포드 성과 바벨탑을 오가며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까, 그건 너한테 직접 말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그래?”

저렇게까지 말한 걸 보면 꽤나 상당히 중요한 문제인 듯했다.

“근데 일단 대강 무슨 문제인지는 미리 너한테 언질을 줘야 할 것 같아서 슬쩍 캐물어보긴 했거든.”

“뭐라고 했는데?”

“군사적인 문제로 도움을 요청하는 거라고 하던데?”

“군사적 문제? 그 엘프가?”

“그러니까 말이야.”

다리우스와 나는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금 엘프들이 당면한 문제라면 물론, 내가 저질러 놓은 기만술 때문에 오크와 렙틸리언들이 평화 제안을 거부하고 자신들과 적대하는 문제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외교적인 문제라고 해야겠지.

하지만 군사적인 부분에서 나와 의논할 문제가 생겼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내가 생각하기엔 저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세 종족 전부를 상대로 싸워도 이길 수 있을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의외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엘프들이 약한 걸까?’

급기야는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다.

물론 그때 봤던 황금 거신을 생각해 보면, 그런 수준까진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아무튼 직접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다.

“듀엔데.”

“왔군.”

듀엔데가 중앙의 엘프 거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로 불렀지?”

“일단 앉아서 천천히 얘기하지. 급할 건 없으니까 말이야.”

그는 한껏 여유로운 태도로 나를 맞이했다.

사실 애써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한다는 게 훤히 보였다.

‘초조한가 보군.’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으나, 감정을 완벽히 숨기지는 못한다.

저런 작위적인 행동 때문에 뭔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걸 난 더욱 확실하게 느꼈다.

“빙빙 둘러 가지 말고 본론부터 얘기하자고. 군사적인 문제 때문에 불렀다면서?”

난 곧장 단도직입적인 말로 허를 찔렀다.

듀엔데가 원하는 페이스 대로 이끌려 가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뭐, 그렇지.”

그는 순간 당황한 듯 눈빛이 흔들렸다가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러고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실은 요즘 들어 너희 인간 종족 외에 다른 두 종족이 우릴 상대로 너무 적대적인 포지션을 취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예상했던 대로, 이건 오크와 렙틸리언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래? 그것 참 안됐군. 그렇게 ‘세계 평화’를 원했는데.”

“……뭐, 어느 정도는 예견된 것이기도 한데……. 적어도 진성 종족들은 가상 종족에 비해 훨씬 더 지적일 거라 생각했던 우리 잘못이지.”

이들은 아마도 자기 세계에서 마물로서 만났던 이종족들보다 진짜 각 세계의 주인인 이종족들과 협상하는 게 훨씬 더 수월하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물론 그 판단이 참인지 거짓인지와는 별개로, 결국 나로 인해 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들과 싸우는 데에 우리 인간 종족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건가?”

“엄밀히 따지면…… 그래, 맞아. 난 지금 네 도움이 필요해.”

듀엔데는 결국 내 직설적인 질문에 체념한 듯 있는 그대로 내뱉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서 저들의 저항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강해진 것도 문제고…….”

“최근 들어서 더 강해졌다?”

“이상할 정도로 말이지.”

최근이라고 하는 걸 보니, 저 위기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작용한 것 같았다.

하나는 부대 시스템의 업데이트,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신격이 깨어난 각성자들.

엘프들은 그런 시스템의 변화와 상관 없이 순수한 자신들의 기술력만을 사용하는 자들이니 그걸 더 크게 체감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연히 그게 우리 종족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야.”

이 와중에 듀엔데는, 자기 말에 내가 묻지도 않은 사족을 붙였다.

“음?”

“우리 세계에 있는 정규 병력이 움직이면 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쓸어버릴 수 있거든.”

그가 이런 말을 한 건 처음이다.

지금껏 은근히 나를 아래로 내려다 보는 시선이 있기는 했지만, 저렇게 대놓고 자기 종족의 힘을 과시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의회야.”

“또 그놈의 절차가 문제인가?”

“그래! 추가 지원군이 바벨탑으로 들어오려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해. 하지만 그걸 기다리기까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게 문제지.”

지난번 내게 큐브를 넘겨줄 때와 같은 상황.

엘프들은 그 의회의 승인 절차 때문에 걸리는 제약이 많은 모양이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라는 거지?’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난 오히려 의문이 생겼다.

지난번에야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의회가 걸림돌이 되었다는 게 이해가 가지만.

여기 바벨탑에서 이종족과 대적하는 상황에서는.

엘프 종족 전체 차원으로 봐서는 절차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들 문제가 될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은 탑에서 철수했다가 승인을 받고 정규 병력과 함께 탑에 재진입하면 되지 않나?”

당장 싸우는 게 힘들다면 잠시 여기서 빠지면 그만이다.

그런다고 한들 이종족들이 자기 세계까지 쫓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 바벨탑에서 나는 자원이 한정적이라 자리를 비운 사이 빼앗길 염려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철수해 버리면 ‘높으신 분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지원병력 투입 절차를 더 빠르게 할 가능성이 높아지겠지.’

모로 보나 굳이 나한테까지 도움을 요청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말이지…….”

“뭐가 어렵지? 그냥 포탈로 이동하기만 하면 되는 건데.”

“그…… 저기…… 그러니까.”

듀엔데는 계속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뭔가 말하기 껄끄러운 문제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건 내 위신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고…….”

“……위신?”

‘그거였군.’

난 그 단어 하나를 듣고서, 그제야 이 엘프들이 처한 문제가 뭔지 깨달았다.

아니, 엘프가 아니라 듀엔데 개인이 처한 문제라고 해야겠지.

‘결국 자신의 평가가 떨어지는 게 싫다는 거네.’

듀엔데.

그는 엘프 종족 내에서 이곳 바벨탑에 관한 일에 대해 모든 권한을 가진 책임자다.

그런 그가 강해지는 이종족들을 감당하지 못해 철수한다고 하면.

당연히 본국에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후방의 높으신 분들은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을 테고.

듀엔데가 제아무리 피치 못할 사정을 피력한다 하더라도 그들에겐 핑계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그러니 인간인 나에게 손을 내밀어서라도 자기 개인의 입지를 지키려는 거고.’

“의회의 지원병력 투입 결정이 날 때까지, 일주일 정도만 날 도와주지 않겠나?”

결국 지금 그는 개인적 사정 때문에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일주일?”

솔직히 난 엘프와 오크, 렙틸리언 간의 분쟁에는 끼어들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야 자기들끼리 서로 싸우느라 상처 입고 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말이 달라진다.

“뭐, 좋아. 도와주지.”

이건 듀엔데를 이용해 먹을 절호의 기회.

“……내 요구를 들어주기만 한다면 말이야.”

-대기업의 돈과 기밀을 빼먹으려면, 담당자를 공략하면 돼. 집단은 튼튼하지만 사람은 약하거든.

갑자기, 예전 하급 각성자로 일할 때 저질렀던 더러운 일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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