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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165화 (165/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65화

“이 자식! 그동안 날 속이고 잘도 살아 있었겠다!”

하비가 내 멱살을 쥐었다.

물론 내게는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예전의 그 7급 칭호를 간신히 얻었을 때와 마찬가지인 수준의 육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진정해.”

“진정하긴 뭘 진정해?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그동안 쫓겨 다니느라 고생했던 내 시간은? 네놈 말만 굳게 믿고 형의 뒤통수를 치고서 몰락한 내 인생은?”

“어…… 하아.”

이걸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사실 그때는 정말로 내 한 몸 건사하는 데에만 집중하던 때라 좀 독하게 굴긴 했다.

지금과는 생각해야 할 일들의 스케일과 명분이 달랐던 것이다.

“난 그동안 밖에서 미친 듯이 굴렀는데……. 세상이 마물 천지가 되고 나서도 어디 하나 받아줄 곳이 없어서 계속 밖을 떠돌아다녔는데…….”

하비의 몰골은 정말 말이 아니었다.

이미 아사했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말라비틀어진 몸에.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도 마물들에게 공격을 당했는지 거적때기 아래로는 생생한 상처가 가득했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

‘부활 능력으로 정말 억지로 살아만 있었던 거구나.’

그동안 전혀 능력치의 성장이 없었던 것도 이해가 간다.

밖에서 돌아다니는 흉악한 마물들에 의해 끊임없이 죽임당하는 와중에, 스킬을 배우고 능력을 강화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실은 그가 말하는 걸 들어보니, 그것도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턴가 스탯의 성장도 멈춰 버리고, 스킬도, 권능도, 무엇 하나 새로 얻을 수 있는 게 없었다고!”

모종의 이유로 성장 자체가 강제로 막혀버렸던 모양.

그런 현상 자체는 나도 처음 듣는 일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는 충분히 알 것 같았다.

‘불멸 능력의 대가구나.’

현 세상에서 유일하게 영원히 죽지 않을 수 있는 매우 강력한 힘.

심지어 그 과거의 불멸자인 신들조차, 지금에 와서는 죽어 육체를 잃으면 부활할 때까지 꽤나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하비의 부활에는 어떠한 제약도, 한계도 존재하지 않고 즉각 되살아나는 게 가능하다.

정해진 부활 장소 지정이 필요하긴 하지만, 어디든지 마커를 찍기만 하면 그만이고 그 마커 또한 무려 열 개나 제공된다.

그러니 이 녀석은 따지고 보면 나보다도 훨씬 더 이 세상의 균형을 심각하게 깨뜨리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저런 큰 힘에는 큰 대가가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결국 이런 처량한 신세가 되어야 할 만큼 말이다.

“젠장……. 난 아무것도 더 나아진 것 없이 멈춰 섰는데 세상은 이렇게나 변한 건가…….”

급기야 하비는 좌절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는 나에 대한 분노나 복수심보다, 현재 자기 자신의 상황에 대한 절박함이 더 컸을 것이다.

이대로라면 정말 그냥 죽지 않을 뿐인, 길거리에 버려진 허수아비에 불과한 존재가 될 테니 말이다.

“그러지 말고 내 클랜으로 들어오는 게 어때?”

난 그래서 그 오갈 데 없는 녀석을 거둬들이기로 했다.

“네…… 클랜으로?”

“그래. 이젠 세상이 바뀌었다고. 우리가 싸울 필요는 없어.”

하비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쩌면 이 말을 기다렸던 걸지도 모른다.

아무도 받아주는 이가 없었으니 말이다.

“나도 널 도와줄 수 있고, 너도 날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이건 단순한 호의는 아니었다.

나 역시 그의 능력을 쓸 데가 많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녀석이 백산 클랜의 잔당들에게 넘어가면 어떤 식으로 이용되어 우릴 괴롭힐지 모르는 부분도 있고 말이다.

“……조, 좋아.”

상호 간의 필요에 의한 협력.

{<하비 레이먼> 님이 클랜에 가입했습니다.}

과거는 잊고,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 * *

인간계의 상황이 혼란한 건 일차적으로 백산 클랜의 잔존 간부들 때문이지만.

그걸 더욱 심화시키는 건 역시나 이종족과의 공성전일 것이다.

내부 상황도 좋지 않은데 외부의 적까지 신경 쓰는 이중고를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한 가지 묘책을 쓰기로 했는데.

사실 이건 이 상황을 위한 묘책이라기보다는 전부터 생각해 놓았던 계획을 조금 달라진 환경에서 적용하는 것뿐이었다.

“완성됐나?”

“그래. 네 말대로 최대한 원본과 비슷한 지팡이 형태로 만들었어. 상자 안에 들어 있으니 열어서 확인해 보라고.”

로마노프가 가리킨 상자는 기다란 관 같은 형태의 직사각형 상자였다.

달칵.

그것의 덮개를 들어 올리자, 그 안에는 새까만 금속으로 이루어진 지팡이들이 한가득 들어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엘프들이 사용하는 황금 지팡이와 똑같은 형태의 무기들.

단지 색깔만 금색이 아닐 뿐, 모양은 완벽하게 같은 복제품이었다.

“대체 왜 그런 걸 만들라고 하는 거야? 그럴 거면 차라리 총 형태가 훨씬 더 쓰기 좋지 않아?”

“다 쓸 데가 있어서 그래.”

“어디에 쓰려고?”

“그건 비밀.”

난 로마노프에게 내 계획을 철저히 숨겼다.

왜냐하면 이건 그가 알게 되는 순간 절대 하지 말라고 길길이 날뛸 일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특히 자신의 작품들을 사랑하는 제작자인 그에게, 내가 실행할 계획은 역린을 건드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뭐…… 쓰는 건 자유지만…….”

그도 뭔가 의심스러운 건지, 미간을 좁히며 나를 쳐다봤다.

말은 저렇게 하고 있지만 눈빛에 불안함이 가득하다.

“아무튼, 이제 저것들 전부 금색으로 도금을 해줬으면 해.”

“도금까지? 대체 왜?”

“말했잖아. 난 완벽한 복제품을 원한다고.”

“하……. 알겠어.”

로마노프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별수 없이 내가 요청한 작업에 착수했다.

* * *

바벨탑 1층.

이곳은 매일같이 전쟁이 벌어지는 살육의 현장이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적당한 보상이 떨어지는 장소.

위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또는 4등급 강화 마력석을 얻기 위해서, 또는 그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종족들을 공성전 기간이 아님에도 닥치는 대로 죽이기 위해서.

제각기 다른 이유로 인해, 갈등과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들어오는 자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그 경향은 초창기보다 훨씬 더 격렬해졌다.

“오크들이다! 도망쳐!”

한 무리의 렙틸리언들이 오크를 발견하고서 도망치는 게 보인다.

수호령의 등급이나 규모를 보았을 때, 그리 강한 자들은 아니다.

아마도 저쪽 세계의 군소 클랜이 뭐라도 얻어보려는 목적으로 들어온 모양.

치지지직! 쩌렁!

하지만 오늘은 날을 잘못 잡았다.

하필 이 넓은 공간에서 마주친 적이 다름 아닌 신화급 각성자, 토르 수호령의 오크였기 때문이다.

“으아아! 주, 죽는다!”

도주하던 군소 클랜의 렙틸리언들은 뒤에서 내리치는 벼락에 거의 숨이 멎을 듯이 겁을 집어먹었다.

“지금.”

“네.”

그 순간 나는 옆에 있는 최윤아에게 발포 허가를 내렸다.

그녀는 조준하고 있던 신형 마나건의 방아쇠를 당겨 토르 수호령의 오크를 저격했다.

우리가 숨어 있는 풀숲으로부터, 푸른 광선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간다.

피잉! 퍼억!

광선은 오크의 가슴에 정확히 적중했다.

고속으로 비행하던 그는 광선 사격을 얻어맞고는 공중에서 그대로 몇 바퀴를 회전하며 바닥에 추락했다.

그 특유의 방어력 덕분에 깔끔하게 관통당하진 않았지만, 충격은 꽤나 커 보였다.

저 정도의 실력자가 한 방에 나가떨어질 정도이니 말이다.

“됐어. 이동한다!”

난 그 즉시 최윤아와 함께 자리를 옮겼다.

그 자리에 있으면 당연히 붙잡힐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 녀석들이 지금 당장 나를 공격하러 온다고 하더라도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은 있다.

‘도리어 정면승부에서 도망쳐야 하는 건 저쪽이 될 테지.’

하지만 지금의 내 목적은 저 오크들과 싸워 이기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여기서 저격을 한 게 ‘인간 종족’임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는 것.

부스럭, 부스럭.

최윤아와 함께 후퇴하던 길목에서, 자리를 잡고서 사격진을 구축해 있던 우리 쪽 클랜원들을 만났다.

난 그들에게도 발포 명령을 내렸다.

“쏴!”

피피피핑!

십수 개의 저격총에서 광선이 뻗어 나간다.

그건 곧 토르를 따르던 다른 오크 무리에게도 닿았다.

그들은 이 일제사격에 의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이건 도대체 뭐야?”

“엘프다! 엘프들의 무기야!”

저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무엇에 당하고 있는지 파악했다.

말하는 것으로 보아, 오크 종족 역시 엘프들과는 이미 교류를 했었던 모양.

물론 시간이 이쯤 흘렀으면 모든 종족이 다 바벨탑 2층에 도달했을 테니, 나처럼 엘프들과의 접촉도 이미 이뤄졌을 것이다.

지금 내가 하려는 짓은, 바로 이 시점에 써먹기에 최적의 계략이었다.

“상자 열어! 그리고 튀어!”

덜컥.

클랜원 하나가 관 모양의 상자를 열고서는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나와 최윤아를 비롯해 다른 클랜원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청색파동발산기.’

그리고 떠나기 직전, 난 이곳에 혹시나 남겨졌을 인간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다른 ‘독한 것’으로 이 장소를 뒤덮었다.

‘청룡 제1격, 아르테미스의 활…… 극소 발현.’

마법 화살이 힘없이 날아가다 몇 미터 앞에 떨어졌다.

청룡 역시 거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로 떨어진 화살 주변을 맴돌다 사라졌다.

대신 그동안 이 주변에 부식성 맹독 가루를 흩뿌렸다.

이로써 위장은 끝.

이대로 오크들이 덫에 걸릴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 * *

라르스는 잔뜩 화난 채 풀숲을 뒤졌다.

자신을 저격한 자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분명 이 근처에 마력의 흔적이 남아 있다. 도망친 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어.’

파스슥. 파슥.

망치로 거칠게 수풀을 헤치며 저격수들을 쫓았다.

마음 같아서는 뇌전으로 모조리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흔적까지 사라지게 될 것이므로 참았다.

“찾았습니다! 놈들이 머물던 사격진인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 오크 각성자가 무언가 발견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라르스는 곧장 그쪽으로 달려갔다.

“이건…….”

둥글게 파인 참호 주변으로 몇 가지 생활 물품들이 놓여 있고, 바닥엔 황금 지팡이 두어 개가 나뒹굴었다.

그 가운데에는 길쭉한 관 모양의 상자가 열린 채로 있었는데, 안에는 바닥에 있는 것과 똑같은 황금 지팡이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엘프들의 무기……? 도대체 여기 있던 놈들은 누구지?”

“킁킁.”

라르스가 의문에 빠진 그때, 동행한 오크 중 한 명이 주변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는 추적 특성을 가진 사냥꾼 계열의 각성자라 냄새를 맡는 것으로 여기 있었던 자들인 누구인지 어느 정도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커헉.”

그런데 갑자기 그가 손으로 입과 코를 가리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가린 손 밑으로 피가 흘러나왔다.

“이봐, 왜 그래?”

“도, 독성…… 가루…….”

사냥꾼 오크는 죽어가면서, 절대 공기를 깊게 마셔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하기 위해 짧게 두 단어를 내뱉었다.

“독성 가루……?”

그 말을 들은 라르스는 곧장 입과 코를 가리고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 바로 유추해 냈다.

“렙틸리언이……? 설마…….”

머문 자리에 독기를 뿌려놓는 건 렙틸리언들의 종족 특성.

생각해보면, 아까 자신들이 사냥하던 자들도 렙틸리언이었는데, 때마침 기막힌 순간에 저격이 날아들어 그걸 방해했다.

이 두 가지 단서를 합쳤을 때, 여기서 오크들을 향해 광선을 쏜 존재들은 렙틸리언들이라는 뜻.

그 렙틸리언들이 엘프의 마법무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엘프 놈들……. 역시 그놈들은 믿으면 안 되는 놈들이었어.’

이렇게 되자, 라르스에겐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자기들은 종족 전체가 도덕적으로 우월한 자들인 양, 조건 없이 도와주는 평화주의자처럼 행동하던 그 수상한 귀쟁이들.

그놈들이 지금, 뒤에서 다른 종족에게 무기를 대여해 주고 서로 싸우게 만드는 개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말이다.

‘평화? 엿이나 먹으라고 해.’

이걸 알게 된 이상, 오크들도 절대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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