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64화
‘없다……. 어째서……?’
아후라 마즈다가 죽은 장소 주변을 둘러본 나는 절망했다.
머리와 몸이 분리된 채 쓰러져 있는 백선율.
그리고 그 위에 흩뿌려져 있는 마력의 흔적.
놈과 레아의 마력이 부딪혔다는 게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느껴져야 할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영혼의 흔적이 없어.’
각성자가 죽으면 그 순간 수호령이 몸에서 빠져나오게 되고, 그 흔적은 주변 공간에 남는다.
내게 흡수가 되든지, 아니면 시스템으로 되돌아 가든지, 어찌 됐든 그것이 여기에 ‘존재했다’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을 정도의 흔적이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선 아무리 봐도 아후라 마즈다의 영혼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죽지 않은 건가? 아냐, 그건 아니야. 그 녀석은 이곳에서 확실히 죽었다.’
처음엔 레아가 그를 죽이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 남겨진 자국들은 확실하게 그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육체의 죽음. 그리고 거기서 뻗어나온 힘의 결정체의 소멸.
아후라 마즈다는 그 어떠한 이견의 여지도 없이 이곳에서 죽은 게 확실하다.
‘그럼 대체 왜……. 설마.’
그럼에도 이곳에 영혼의 흔적이 없다는 것의 의미는 단 하나뿐.
‘처음부터 영혼이 없었던 건가……?’
내가 본 아후라 마즈다가, 영혼을 수복하지 못한 껍데기라는 것이다.
마치 바벨탑에서 영혼을 수복하기 전의 나처럼 말이다.
‘그럼 다른 각성자와 다르게 유일하게 그놈의 머리 위에서만 수호령이 보이지 않았던 게 그것 때문이었나?’
이제 와서 떠올려 보니, 그것도 단순히 감추고 있었던 게 아니라 애초에 수호령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아예 백선율이라는 몸 자체가 수호령도 없으면서 각성자와 같은 마법적 능력을 가진 육체였다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자신의 영혼을 수복하지 않고도 그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냈다는 얘기나 마찬가지.
‘흡수하지 못한 게 문제가 아니었어.’
사실 내가 염려하고 있었던 건, 놈이 레아에 의해 죽어서 그 영혼을 내가 봉인하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다른 각성자의 몸에 들어가서 동화율 100%를 달성하고 신격을 각성하려면 긴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어쨌든 수호령은 어떻게든 돌고 돌아 다른 각성자의 몸에서 다시금 부활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고민이 되어버렸다.
애초에 놈의 육신에는 영혼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럼 대체…… 이젠 어떻게 되는 거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후라 마즈다의 육신은 죽어 없어졌다.
반면 영혼은 아직까지도 어딘가에서 건재한 상태.
분명 돌아오긴 할 텐데, 과연 어떤 방식으로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올 것인가.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신들의 전쟁에서 그의 부활은 어떤 역할을 차지할 것인가.
고려해야 할 요소가 훨씬 더 많아졌다.
‘그래……. 어쩌면 아직 기회가 남아 있는 걸지도 모른다.’
차라리 난 오히려 이 모든 상황을 좀 더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이건 야드가르와 재회하기 위한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는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지 않게 해야 해.’
그러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나를 돕는 모두가 어지간한 적을 마주하고서도 희생을 강요받지 않을 만큼 강한 힘.
나는 전보다 훨씬 더 절실하게 힘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 * *
투투퉁!
“대공포다! 산개해!”
울창한 삼림 지대 위를 날아가던 나와 용기사들은 수풀 속에서 난데없이 날아든 대공포 공격에 재빨리 비행 간격을 넓혔다.
퍼펑! 펑!
위협적인 위력의 마력탄들이 비행의 진로 방향대로 날아와 공중에서 폭발한다.
와이번의 강한 방어력이라면 저런 걸 어느 정도 맞아도 버틸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회피할 수 있는 공격을 굳이 맞아줄 이유는 없기 때문에 회피기동으로 모조리 피해냈다.
그리고 그건 아지다하카의 날개를 가진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래쪽에 내려가서 적을 정리하고 가야겠어.’
위치를 드러낸 이상 가만히 내버려둘 수는 없다.
나중에 아군의 다른 비행 부대들이 이곳을 지날 때를 위해서라도 이 지대에 매복 중인 대공포병들을 처리해야 한다.
혹시 생포하는 데 성공한다면 뭔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기도 하고 말이다.
쐐애애액!
머릿속으로 내 의지를 전달받은 용기병들이 산개 도중에 갑자기 비행 방향을 바꿔 지상으로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나는 보랏빛을 형성하고 에테르 큐브를 꺼내 들며 그들과 함께 돌진했다.
‘사라졌다?’
그런데 지상에 가까이 다가가자, 격렬하게 쏴대던 포대의 공격이 멈추고.
순식간에 부대 전체가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자취를 감춰버렸다.
‘텔레포트?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처음엔 마법을 사용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한 곳에 몰려 있었다면 모를까, 이렇게 넓은 범위에 흩어진 병력을 한꺼번에 이동시키는 건 심지어 유메미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건 텔레포테이션 마법의 한계를 한참 초과하는 수준이므로 그걸로 도주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숨은 거겠군.’
다리우스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원거리에서 포격을 행하는 포병 병과는 대개 이동 능력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는데.
그걸 극복하기 위해 도주하거나 땅 속으로 숨는 등의 ‘클래스 어빌리티’가 있다는 이야기.
그의 말에 따르면 이 경우는 땅 속으로 숨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황색파동발산기.’
이런 때에는 자색파동기가 아니라 땅 속성의 황색파동기를 써줘야 한다.
‘기린 제1격, 칼라드볼그.’
후웅.
신수 기린의 형상을 한 거대한 황색의 에너지 덩어리가 하늘로부터 떨어진다.
원래도 범위가 넓은 이 기술에, 용기사들의 마력까지 더해지자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웅장한 광경이 펼쳐졌다.
거의 야구 경기장을 통째로 떼어다 비교하면 사이즈가 맞아떨어질 만한 크기의 신수가 지표면을 덮친 것이다.
투쾅!
기린이 힘차게 땅을 짓밟으며 막대한 충격파를 일으켰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수차례 날뛰면서 여러 번의 충격을 가했다.
쾅! 쾅! 쾅!
적이 저 땅속에 숨어 있다면, 저곳이 바로 그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커헉…….”
아니나 다를까, 땅속에서 사람 하나가 피투성이가 된 채 기어 올라왔다.
머리 위에 수호령 표시가 떠올라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삼림지대의 대공포병대를 이끄는 각성자인 모양이었다.
덥석.
난 그자의 멱살을 붙잡아 땅 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심문을 시작했다.
“이 주변 지역에 대해 알고 있는 걸 전부 말해라.”
“싫……다.”
“정신 차려라. 백선율은 죽었고 백산 클랜은 끝장났어. 거기 붙어봤자 너희한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아후라 마즈다 사망 후 1개월.
백산 클랜은 수장이 사망한 데다 수뇌부는 거의 해체 상태가 되어 클랜의 존속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그 외의 빅클랜들은 모두 나와 연합을 맺은 상태다.
겉으로 보기에, 인간계는 이제 하나의 통합된 세력에 의해 완전히 평정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한 상황일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엔 오히려 전보다 더욱 큰 혼란이 지속되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은 온다……. 인간이 아니라…… 신들이 다스리는 세상이…….”
바로 이런 자들 때문에.
“하, 미치겠군.”
어찌된 일인지 신도 아닌 평범한 인간들이 이상한 사상에 젖어 저항을 계속하고 있었다.
[백선율은 사실 사람이 아니라 신이었다.]
[그리고 신들에 의해 다스려지는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 그가 인간인 다수 클랜들의 연합에 의해 사망했다.]
이런 지극히 사실에 입각한 문장들이 하나로 조합되더니.
[이 절망의 세계를 구원하러 온 백선율은 무지몽매한 인간들에 의해 핍박받아 끝내 승천하고 말았다.]
어느샌가 아후라 마즈다, 그러니까 백선율이 신세계의 메시아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이런 사상을 전파시킨 배후는 그 전투에 휘말리지 않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백산 클랜의 간부들이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곤 해도 저런 황당한 이야기를 인간 입장에서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니.
‘그만큼 사람이 의존적인 존재라는 걸까.’
마물에 의해 지구라는 터전을 잃고 쫓겨난 것도 모자라, 주기적인 스케줄에 따라 이종족과 전쟁을 벌여야 하는 삶.
그나마 빅클랜들의 영토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사정이 조금 낫다지만.
그조차도 현대 문명의 편의를 누리며 살아가던 예전보다는 훨씬 열악하다.
사람들이 저런 말도 안 되는 사상에 빠져드는 건, 어쩌면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신들을 위해.”
내게 붙잡혀 있던 각성자가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자신의 목을 찌르려고 했다.
난 그자의 행동을 막기 위해 손목을 잡아 꺾었지만.
푸확.
칼날이 피부에 닿지도 않았음에도 그의 목이 베어지더니 피를 뿜어냈다.
물리적인 자살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저주가 작동한 것 같은 모양새다.
“……제길.”
결국 그는 내 눈앞에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채 죽고 말았다.
* * *
“인력이 너무 부족해.”
레아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튀어 나왔다.
그녀의 말대로 벨그레이브 클랜은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사실 그건 이곳뿐만 아니라 연합 내의 모든 클랜이 다 마찬가지.
아후라 마즈다와의 충돌로 인해 많은 수의 희생자들이 난 지금의 상황에서.
각 클랜의 영토 안에 위치한 영지들은 백산 클랜의 잔당들이 벌이는 기습적인 테러에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일정이 빈틈 없이 짜여진 이종족과의 공성전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
그야말로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했던 얘긴 검토해봤어?”
“이주?”
“그래.”
이 모든 재난 상황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결국 다름 아닌 나.
그래서 난 살아남은 모든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기로 마음을 먹었고.
연합을 이루고 있는 클랜의 구성원 전부를 영국 섬 안에 위치한 영지 몇 군데에 모두 이주시켜 방어선을 구축하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여기에 드는 모든 비용은 전적으로 내가 부담하고서 말이다.
그렇게 하면 방어면적도 줄어들고 백산 클랜의 잔당들도 바다를 건너와야 하니 적어도 지구의 상황에서만큼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거기에 드는 돈을 네가 혼자서 어떻게 다 부담한다는 거야? 새로운 영지에 기본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만도 골드가 엄청나게 깨질 텐데.”
“그런 건 걱정하지 마.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
물론 겨우 돈 좀 쓰는 걸로 그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희생시킨 책임을 경감시킬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을 지키기엔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신우 너도 너무 무리하지는 마. 일단 준비는 해볼게.”
“알았어.”
레아는 이 일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줬다.
이제 유메미의 아리사카와 해모수의 레이먼 클랜만 끌어들이면 된다.
“당신 누구야!”
그런데 그때,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벨그레이브의 클랜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뭐지?”
나와 레아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히 바깥으로 나갔다.
혹시나 또 테러가 벌어지는 건 아닐까 싶은 우려 때문이었다.
“이거 놔! 놓으라고!”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실랑이를 벌인 사람은 순식간에 제압당했기 때문이다.
“당장 유신우 나오라고 해! 여기 들어오는 걸 봤어!”
한데 그렇게 붙잡힌 채 바닥에 처박혀 있는 사람은 어째서인지 나를 아는 것 같았다.
더벅머리에 수염이 덥수룩한, 다 닳아 해진 옷을 입고서 거지꼴을 하고 있는 남자.
난 그를 전혀 모르는데, 그는 나를 알고 있다.
“잠깐, 저건…….”
다시 한번 자세히 보니, 뭔가 익숙한 생김새가 눈과 코에서 보이는 것 같다.
게다가 목소리마저 익숙하다.
그렇게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 올라가던 도중, 나는 마침내 저 외모에 부합하는 사람을 찾아냈다.
“……하비?”
알고 보니, 그는 예전에 나에게 크게 속아 넘어간 후에 행적을 감춰 버린 바로 그 사람이었다.
염왕 브랜든의 친동생.
그의 몰락을 가속시키고 나의 잠적을 도와준.
‘뭐야, 저 녀석…….’
그동안 뭘 하면서 지내는가 궁금했었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강력하고 완벽에 가까운 불멸 능력을 가진 그라면.
강한 힘을 가졌을 때 누구도 막지 못하는 존재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불멸이라는 측면에서는 각성자의 몸에서 깨어난 신보다도 더 우월한 인간인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건 그만한 힘을 얻었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전혀 성장하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