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63화
대 아후라 마즈다 클랜 연합군을 구축하기 위해 클랜들의 수장이 모였던 날.
유신우는 레아와 유메미를 미리 따로 불러내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성을 잃지 마라. 인간성을 잃는 순간 너희는 너희의 수호령에 의해 육체가 지배당하고,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처음엔 레아와 유메미 둘 다 그게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수호령 동화율이 99.9%에서 100%가 되고, 인격이 뒤바뀐다는 소리는 그저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헛소리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만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유신우가 자신들에게 ‘인간성을 잃지 말라’는 소리를 함으로써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도 없을뿐더러.
더욱이 염왕이라는 천지가 개벽할 만한 예시가 이미 자신들의 눈앞에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해모수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난 필멸자들이 우리에게 몸을 빼앗기길 바라지 않는다.”
브랜든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을 하면서, 유신우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경우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성을 잃은 덕에 더 나은 존재가 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자가 신이건 수호령이건, 전혀 다른 존재가 그 몸을 차지했다는 것만큼은 충분히 사실로 믿어볼 만한 소리였다.
-내게 손을 뻗어라. 나는 마나난 막 리르. 너의 수호령이다.
그리고 지금, 그러한 현상으로 보이는 일이 레아 자신에게도 벌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수호령, 티르 나 노그 또는 아발론이라 불리는 세계의 인간 신 마나난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나를…… 대체하려는 건가?’
레아는 유신우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마나난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나는 너를 대체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너의 곁에서 힘을 줄 뿐이다, 필멸자여.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지금 이 순간에 내 신의를 증명할 증거는 없다. 하지만 믿어라. 믿지 않으면 너는 죽고 네 친구들도 죽을 것이다.
갑자기 나타나서 다짜고짜 자기 말을 믿으라니.
그런 무리한 요구는 자기 말의 신뢰도를 더욱 낮춘다는 걸 모르는 걸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막상 지금 여기서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죽음.
생각과 판단의 시간을 길게 잡을 수 없는 이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맹목적인 신뢰에의 호소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짓말이라면…….’
그런데도 레아는 쉽사리 선택할 수가 없었다.
하필 이런 급박한 상황에 나타나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것도 의심스럽기 짝이 없고.
또 괜히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도리어 아후라 마즈다를 돕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믿는다. 믿지 않는다.’
짧은 시간동안,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녀의 머릿속에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끊임없이 시뮬레이션 되고 있다.
‘결국 거는 수밖에 없나.’
그러다 마침내, 하나의 결론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마나난의 힘을 빌려오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좋아. 당신의 말을 믿겠어.’
-잘 생각했다.
그녀는 눈앞에 보이는, 동물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허리춤과 등에 여러 개의 칼과 창들을 매달고 있는 남자에게 손을 뻗었다.
그 역시 레아의 손을 맞잡았고, 그 순간 마치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둘은 하나가 되었다.
{금제가 해제되었습니다.}
{<육체 강화>특성이 사라지고 스탯이 재조정됩니다.}
{특성으로 인한 추가 스탯이 순수 스탯으로 치환됩니다.}
{권능 <영체 투영>을 습득했습니다.}
레아는 자신의 육체를 매개로 마나난 막 리르의 영체를 투영했다.
그녀의 몸으로부터 흘러나온 마나가, 등 뒤에서 합쳐져 수호령 마나난 막 리르의 형상을 실체화시켰다.
* * *
촤아아악!
절대 베어지지 않을 것 같던 빛의 신, 아후라 마즈다의 팔이 잘려 나갔다.
레아의 등 뒤에서 실체화된 마나난의 영체가 휘두른 검에 의해서 말이다.
그건 단순한 무구 투영의 수준을 넘어, 신의 힘을 직접적으로 투사하는 진짜 수호령의 힘이었다.
‘몸이 더 가볍다. 검은 더 날카롭다.’
레아는 넘쳐 흐르는 힘을 만끽했다.
몸에 채워져 있던 어떤 족쇄 같은 것이 사라지고, 한계를 돌파한 기분이 들었다.
피잉!
아후라 마즈다의 날개에서 다시금 아까와 같은 광선이 뻗어 나왔다.
그녀의 가슴을 꿰뚫었던 공격.
어떠한 전조도 없이 펼쳐지는 그 공격은 매우 간결했지만, 위력은 압도적이었다.
바닥을 훑으며 지나가 지상에 거대한 자국을 남길 정도였으니 말이다.
파앙!
레아는 경쾌한 몸놀림으로 허공을 차면서 광선을 회피했다.
그건 그녀 자신이 의도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회피는 내게 맡겨라. 넌 공격에만 집중해.
마나난 막 리르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조금 전의 그 회피 동작은 다름 아닌 그가 그녀의 몸을 강제로 움직인 것이었다.
‘나를 돕는 건가?’
-그래. 아후라 마즈다는 나에게도 적이다.
마나난이 했던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정말로 레아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저 녀석을 쓰러뜨리는 것만 생각해라.
‘알았어.’
두 개체의 의식이 하나의 몸에서 공존하며 공격과 방어를 분담한다.
레아는 이런 식의 싸움이 오히려 혼란스럽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걱정은 금세 접어두게 되었다.
마나난을 통해 행하는 모든 동작에서, 어떠한 이질감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경험과 지식이 그녀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서로의 생각과 판단이 곧 그녀의 생각이 되었다.
피웅!
아후라 마즈다의 눈에서 빛이 번쩍였다.
아까 전과 같이 대폭발을 일으키는 파괴의 권능.
투확!
레아는 마나난의 영체를 움직여 왼손의 바갈타크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력 덩어리를 하늘로 쳐올렸다.
덕분에 또다시 아까와 같은 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낼 수 있었다.
‘저 공격을 행하고 나면 빈틈이 생긴다. 지금이 공격할 기회!’
뒤이어 그녀는 빈틈을 포착하고서 오른손을 휘둘러, 영체 마나난의 모랄타크로부터 파도와 같은 마력이 뿜어져 나가게 했다.
아까와 같지만 영체로서 투영된 신격의 존재가 직접 내지르는 만큼,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위력.
자신만만하게 레아의 검기를 받아내던 아까와 달리, 이번엔 아후라 마즈다도 날개로 자기 자신을 감싸 방어 자세를 취하는 수밖에 없었다.
‘……프라가라흐!’
쩌렁!
바로 그 순간, 저 뒤에서 프라가라흐가 나타나 눈 깜짝할 사이 그의 등에 꽂혔다.
번쩍하는 불빛과 굉음을 동반해 마치 번개처럼 날아들었다는 점은 아까와 큰 차이가 없었으나,
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전에는 그 빛의 신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한 반면, 이번에는 제대로 먹혀들어갔다는 점이었다.
-마나난…… 레르의 아들….
그 덕분일까.
힘의 결정체로 승화한 이후 계속해서 입을 다물고 있던 아후라 마즈다가 처음으로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육체가 없었기에 육성을 내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의지를 흘려보내는 식으로 말이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냐……?
그는 마나난에게 직접 물었다.
같은 신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편을 들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마나난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굴레를 끊어내기 위해서.
마나난은 그런 그에게 단호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사라져야 할 존재다. 너도, 나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쉬익!
그리고는 양손에 쥔 모랄타크와 바갈타크를 교차시키며 휘둘러 십자 검기를 발산했다.
날카로운 칼날이 아후라 마즈다의 목에 닿았다.
-이해할 수 없군. 스스로의 권위를 포기하는…… 바보 같은 신이라니.
그는 자신의 목이 날아가는 와중에도 담담하게 의지를 전달했다.
-후회하게 될 거다. 한낱 필멸자들을 위한답시고 날 향해 반기를 든 그 아둔한 짓을.
다음 순간, 빛의 신 형상이 허물어지며 먼지처럼 작은 조각으로 쪼개지더니, 곧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온 지구에 아후라 마즈다의 결정체 일부가 흩뿌려졌다.
* * *
“……죽었다고?”
영지 안에서 빠져나오는 동안, 클랜 연합군에 의해 붙잡혔어야 할 아후라 마즈다는 이미 죽어 있었다.
결국, 야드가르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한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완전히 실패해 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었어. 미안해.”
가면을 벗은 레아가 나에게 사과했다.
그녀는 가슴에 구멍이 뚫리는 중상을 입었음에도 끝까지 싸웠다고 했다.
“아니야. 사과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상황에 따라서 처리하기로 한 거였으니까.”
사실 생포를 제1목표로 삼긴 했지만, 나 역시 그걸 고집하느라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킬 생각은 없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포도 실패하고 수많은 아군의 희생까지 일으키고 말았다는 것이다.
“……미안한 건 오히려 이쪽이지.”
이건 전적으로 내 실책이었다.
그 많은 병력을 한곳에 모아 피해 규모를 더 크게 만들어버렸으니 말이다.
물론 그 녀석이 그런 최후의 발악 수단을 가지고 있을 줄은 상상조차 못한 것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생포’라는 계획의 실현을 위해 피해가 늘어난 것이니 책임에 자유로울 수는 없다.
“신우.”
“……응?”
내 사과를 들은 레아가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우린 좀 더 먼 곳을 내다봐야 해.”
“먼 곳이라니?”
“너와 염왕…… 아니, 해모수가 말한 대로 신들은 곧 필멸자의 육신을 토대로 부활하고 있어.”
뭔가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있는 레아.
그녀는 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가면을 벗고 본모습을 드러낸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혹시……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 건가?”
레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에게도 다가왔어. 내 수호령 마나난이.”
“네가?”
의외의 사실을 듣고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에게 대체 당하는 건 인간성을 잃는 것만이 조건인 줄 알았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레아는 그런 조건에 맞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어? 다가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말 그대로야. 내 수호령이 내게 말을 걸었어. 그리고 지금도 내 곁에 있고. 날 도와서 아후라 마즈다를 죽였지.”
생각해 보면, 그녀의 수호령인 마나난 막 리르는 예전 신화 수호령 획득 시나리오에서도 다누 신족의 다른 일원들에 비하면 굉장히 인도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묘사되었다.
그러니 그 역시 해모수처럼 필멸자들에게 우호적인 신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의도’가 아니라 ‘방법’이었다.
“인격을 대체하지 않고도 신의 의지가 발휘가 된다고?”
“응.”
그 뒤로 레아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영체 투영이라는 권능을 얻고, 자신의 몸을 매개로 신의 형상을 구현하는 등.
‘이건…… 이진윤에게 성주신이 투영되었던 것과 같은 현상이잖아.’
나도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는 일이 그녀에게 벌어졌던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신들의 의지가 현재의 세상에 영향을 미칠 방법이 한 가지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해모수처럼 육체가 완벽하게 지배당하는 게 아니더라도, 나처럼 온건한 방법으로 각성자에게 접근하는 신들이 생길 수 있다는 거야.”
“점점 더 신들의 필멸자들에 대한 영향력이 커진다는 건가.”
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마치 누군가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것을 내게 전달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그 ‘누군가’가 어떤 존재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곧 신들의 전쟁이 시작될 거야.”
마나난 막 리르가 레아의 입을 빌려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