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58화
“영국에서는 아직 아무런 연락도 없습니다.”
“레이먼 클랜은?”
“그쪽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성전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아후라 마즈다는 보고를 받고서 미간을 좁혔다.
유신우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해 염왕에게 상당수의 병력을 빌려주고 영국에 보냈는데, 어째선지 아직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오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겼으면 이겼다, 졌으면 졌다.
이제는 결착이 나고도 충분한 시간이 흘렀기에, 어느 쪽이 됐든 결과가 귀에 들어와야 정상이다.
하지만 왜인지 여태껏 알포드 성으로 간 모든 인원들이 감감무소식이었다.
마치 블랙홀에라도 빨려 들어간 것처럼, 염왕도, 백산 클랜원도, 어느 한 사람조차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염왕이 유신우에게 패배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 클랜원 중 하나쯤은 복귀했었어야 정상일 텐데. ……정말로 완전 전멸이라도 당했다는 건가?”
설령 대패를 했다손 치더라도 인원이 소수에 불과한 알포드 클랜이 도주하는 패잔병을 모조리 잡아낸다는 건 너무 비현실적이다.
아니, 그 이전에 알포드 클랜이 그 많은 병력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유신우가 아무리 강하다지만, 지금처럼 병력의 확보가 중요한 환경에서는 그의 개인적인 힘도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후라 마즈다는 드래곤 나이트에 관한 사항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염왕이 우릴 배신했을지도 모르지.”
그때, 붉은 머리칼의 남자, 키안이 나타났다.
“그러면 말이 되잖아? 그놈에겐 많은 수의 병력이 있고, 그것들이 한꺼번에 배신을 해서 우리 병사들을 붙잡아놓는다면…….”
“그럴 리가. 염왕은 누구보다도 유신우에게 원한이 강한 자다. 설령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를 도울 이유가 없어.”
“흠…….”
잠시 생각을 하던 아후라 마즈다는 뭔가 떠오른 듯 키안에게 다시 물었다.
‘……아니면…….’
“혹시, 해모수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어쩌면 전투 도중에 신격이 육체를 지배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의 추측은 꽤나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해모수라는 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 자인지 모른다면 그 추측도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앙? 해 뭐?”
“해모수. 서천꽃밭 신계의 인간 신 말이다.”
“서천꽃밭? 거긴 나도 잘 몰라. 아발론 신들도 다 모르는 마당에.”
키안은 전혀 모르겠다는 투로 말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결국 아후라 마즈다는 현재 유신우와 관련해서 돌아가는 상황을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제가, 직접 확인해 볼까요?”
그런데 이 타이밍에 최윤아가 나타났다.
“네가?”
“네. 그냥 단순히 한 번쯤 보고 오는 거라면…… 금방 갔다 올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생각해 보니, 그녀는 자신의 측근 중에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확실히 알포드 성 근처로 몇 번이나 오간 적도 있고.
그 권능으로 최윤아가 직접 유신우의 동태를 살피고 온다면 금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럼 되겠군.”
그의 긍정적인 반응에 최윤아는 금세 얼굴이 밝아졌다.
또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서였다.
정작 아후라 마즈다는 그런 그녀가 영 탐탁잖았지만 말이다.
“리카…… 아니, 카이르프레와 같이 가면 되겠네.”
“……네?”
“어차피 정찰 수색은 그 녀석의 특기이기도 하고, 기왕이면 더 근접해서 정보를 얻어낼 수도 있으니 그게 나을 거다.”
최윤아는 이 지시에 얼굴이 급격하게 굳었다.
저 말은 곧, 자신은 그저 공간이동 써주는 택시 기사 역할이나 하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결국 이곳에서 자신은 미덥지 못한 존재임을 확인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뒤돌아선 최윤아는 얼굴에서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 * *
쿠구궁.
순식간에 공간을 왜곡되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전혀 다른 장소가 펼쳐졌다.
최윤아와 카이르프레.
그 둘은 유신우의 본거지인 알포드 성에 진입하는 포탈 근처에 도착했다.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카이르프레가 말했다.
최윤아는 어디까지나 순간이동을 해주는 역할.
포탈 안으로 침투해서 정찰을 행하는 건 자신의 몫임을 확실히 한 것이다.
“나한테 명령하지 마.”
그러나 최윤아는 그의 그런 오만한 행동거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이미 다 사전에 그렇게 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는데, 구태여 자신이 상관이라도 되는 듯 명령조로 말하는 그 태도의 저의가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하핫, 있잖아.”
카이르프레가 실소를 흘리며 그녀에게 바짝 다가섰다.
금방이라도 서로에게 손을 뻗기라도 할 것처럼, 둘 사이에 극도의 긴장감이 흘렀다.
“네 주제를 좀 알았으면 좋겠는데.”
“……뭐?”
콱.
그리고 그 일은 실제로 벌어졌다.
카이르프레가 최윤아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한낱 필멸자 주제에 감히 이 몸에게 대드는 걸 봐주는 것도 한도가 있어.”
“컥, 컥.”
그녀는 거기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잘하자. 응?”
압도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일방적인 힘 차이.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면전에서의 전투력은 최윤아가 더 뛰어났다.
물론 그녀는 마법사형 각성자라 신체 능력 자체는 이전에도 그리 높지 않았지만.
어쨌든 마법 능력까지 함께 고려한 직접 전투력은 그녀가 위임이 확실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지금은 어떻게 해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무슨…….’
갑자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스르륵.
최윤아는 뒤늦게 손을 뻗어 카이르프레를 붙잡으려 해봤지만, 그는 이미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허공을 움켜쥔 최윤아는 그대로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그녀는 언젠가부터 자신의 입지가 급격하게 좁아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분명 예전에 비하면 훨씬 더 강해졌고, 나름대로 도움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 들어오는 다른 신화급 각성자들에 비해 클랜 내에서의 존재감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유신우…….’
문득 그런 분위기 변화의 시작점이 유신우와의 재회부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죽었다는 소식만이 들려왔는데, 알고 보니 매튜라는 인물로 변장한 채 신분을 숨기고 있었던 그.
그와의 싸움에서 큰 부상을 입은 아후라 마즈다는, 그때부터 여유가 사라지고 모든 일들을 조급하게 처리하기 시작했다.
최윤아에 대해 은연중에 실망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내게 부족한 건 대체 뭐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복잡하고 억울하다.
스스로가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도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유신우에 관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사람은…….’
그녀는 이미 예전부터 그가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지금은 그 거대한 검제와 마존의 세력까지 동맹으로 끌어들일 만큼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자가 되었기도 하고.
‘……아니, 아니야.’
최윤아는 머릿속에 차오르는 그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려고 노력했다.
‘내가 따라가야 할 사람은…… 백선율이야.’
그러고는 다시 아후라 마즈다에 대한 충성심을 속으로 확인했다.
지금까지 긴 시간에 걸쳐 이뤄진 세뇌는 그녀를 그의 충실한 부하로 만들었다.
이제 와서 돌이키려 해봤자 돌이킬 수도 없고, 지금의 그녀에겐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결국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스스로 더 나은 성과를 내는 것뿐.
‘그래, 내가 직접 해야 돼.’
그런 결론에 다다른 그녀는, 아후라 마즈다의 대기 명령에도 불구하고 카이르프레를 뒤따라 알포드 성안으로 진입하는 포탈로 걸어 들어갔다.
* * *
카이르프레는 그림자 속에 숨은 채 숲을 가로질러 알포드 성의 성벽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작은 클랜이라고 하더니, 성 하나에 모든 돈과 역량을 쏟아부은 건가.’
예상치 못한 성의 위용에 그는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신의 반열에 오른 그가 무슨 외관의 웅장함에 압도되거나 한 건 아니었고.
정찰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해당 지역의 지형지물을 파악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연히 목표 지역이 좁으면 좁을수록 파악은 수월해지고, 넓으면 넓을수록 어렵다.
지금 알포드 성은 바로 그 후자에 속하는 셈인 것이다.
‘찾았다!’
하지만 그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냈다.
건물 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남자.
염왕을 발견한 것이다.
‘역시 키안 말이 맞았군. 이놈은 우릴 배신한 거야.’
그리고 그가 백산 클랜의 뒤통수를 쳤다는 걸 알아냈다.
백산 소속의 병사들은 붙잡혀 있고, 염왕의 레이먼 클랜이 유신우에게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모든 걸 다 알아낸 카이르프레는 그림자 은신 상태에서 유유히 거리를 빠져나와 다시 돌아가려 했다.
‘……음?’
그런데 그는 포탈 입구 근처에서, 익숙한 기척을 느꼈다.
‘뭐야, 밖에서 대기하라고 했더니 여기까지 들어온 거야?’
최윤아가 지시를 무시하고 안쪽까지 들어온 걸 발견한 것이다.
그녀는 수풀 속에 몸을 숨긴 채, 땅에 손바닥을 짚고서 어떤 권능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스르륵.
“이봐.”
바닥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가 다짜고짜 최윤아에게 말을 걸었다.
“읏!”
자신의 권능에 집중하고 있던 그녀는 갑작스러운 카이르프레의 등장에 깜짝 놀라 헛바람을 삼켰다.
“내가 분명히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을 텐데.”
“…….”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아까 전에 비해 기세가 한풀 꺾인 느낌.
카이르프레는 그것이 아까 전에 보여준 압도적인 힘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얼른 나가서 공간이동 마법이나 쓸 준비나 해.”
“……알겠어.”
아무튼 그녀는 고분고분하게 카이르프레의 말을 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포탈 쪽으로 걸어가려던 찰나.
펄럭!
“잡았다.”
그들 앞에 용 날개를 펼친 남자 하나가 난데없이 나타났다.
그는 유신우였다.
“오랜만이야, 최윤아.”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했다.
그를 마주한 두 사람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었다.
“허튼수작 부릴 생각 하지 마. 너흰 이미 포위됐으니까.”
유신우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여덟 마리의 와이번들이 바로 머리 위 상공에서 원을 그리며 선회비행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어느 방향으로든 도주하면 급강하 공격으로 잡아챌 기세.
‘젠장…….’
카이르프레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앞의 남자에겐 절대 힘으로 이길 수 없을 거란 사실을.
‘그렇다면 어떻게든 놈을 방심하게 만들어서라도 도망쳐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주변의 ‘물건’을 활용할 궁리를 했다.
‘……그래, 이 녀석을 희생시키자.’
그 물건은 다름 아닌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최윤아.
그녀는 아직 신으로 각성하지도 못했고, 어차피 한낱 필멸자에 불과한, 무가치한 목숨의 소유자다.
신으로서 강림한 자신을 위해 얼마든지 소모할 수 있는 소모품.
그렇게 생각한 카이르프레는 슬쩍,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카이르프레? 아, 기억나는군. 그 음유시인.”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오늘 처음 본 눈앞의 남자가, 가르쳐 주지도 않은 자신의 이름을 말한 것이다.
그것도 심지어, 자신의 주특기인 음악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는 뉘앙스로 말이다.
“그걸…… 어떻게…….”
“넌 내가 지옥에 떨어질 때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찬성했지. 애초에 아발론에서 머물고 있을 때도 언제나 나와 내 아들을 업신여겼고.”
“……뭐라고?”
그는 그제야 슬슬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판단이 서기 시작했다.
물론 이젠 이미 늦어버렸지만 말이다.
“너 설마…….”
“그러니 달게 받아라.”
카이르프레의 동공이 확장되는 순간.
유신우의 손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그 목으로 부지불식간에 칼날이 날아든다.
“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