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57화
인간성을 잃으면 신이 된다.
참으로 명쾌하고도 그들다운 해답이었다.
‘불멸자들은 유한한 생명을 가진 필멸자들의 기준으로 이해 가능한 ‘인간성’의 소유자가 아니다.’
생명의 소중함.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물론 필멸자들 중에도 그게 부족한 사람들은 넘쳐난다.
멀리 갈 것 없이 나 역시도 감히 ‘인간성’을 공공연히 논할 만큼 착한 놈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변명의 여지 없는 악행도 여러 번 저질렀다.
복수의 대상과 싸우기 위해 그 와중에 생기는 민간인들의 희생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든가.
내게 적개심을 드러낸 자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했다든가.
하지만 적어도 그 모든 일들은 나와 내 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위한 ‘인간적 이기심’에서 행한 일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기적이라고 욕을 할 수 있을지언정, 목적 없이 순수하게 악행을 즐기는 사이코와 같다고는 할 수 없을 거란 말이다.
그런데 만약 그런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버리게 된다면.
그리고 그런 사람이 신화급 각성자라면, 결국 그 사람은 신에 의해 인격을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그 칼리닌스카야의 사냥개였던 강신술사 여자나, 필요 이상으로 사람들을 마구 죽여 대던 브랜든처럼 말이다.
“하지만…… 개중에는 원래 그렇게 될 인간이 아닌 자도 있었는데?”
난 이 가설의 반박 사례인 이진윤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해모수는 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네가 그 사람을 잘못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지.”
“아니야, 이진윤은 아무리 그래도…….”
“아니면 ‘조작’당한 것이거나.”
“조작?”
“아후라 마즈다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암시를 걸어 심리를 조종할 수 있다. 마음을 조작한다면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냐. 그 사람도 그런 케이스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육체가 신격으로 교체될 대상은 더 이상 타고난 악인만이 아니라는 것.
‘그럼 최윤아도…….’
NPC들의 생명을 챙기려고 하던 모습.
신화급 각성자가 된 후 감정이 절제되어 버린 듯한 모습.
내 머릿속에서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을 가진 최윤아가 동시에 교차되며 떠올랐다.
아후라 마즈다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추종자들을 세뇌하고 인간성을 말살시켜 신들을 강림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놈은 일단 전설급 각성자만 확보하면 얼마든지 신을 강림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당장 그놈을 잡으러 가야 해.’
더 내버려 두면 안 된다.
이건 인류를 넘어 모든 필멸자들의 존망이 달린 문제였다.
다시 사람들을 신들의 유희 거리로 전락하게 내버려 둘 순 없다.
‘야드가르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물론 거기엔 내 개인적인 용무도 포함되어 있다.
아후라 마즈다는 곧 온갖 인과관계들이 한 데 엮여서 가리키고 있는 마지막 종착지였다.
* * *
쿠구구궁.
지평선 너머로부터 거대한 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할 정도의 커다란 진동.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낸 건, 마수에 탑승한 기병들이었다.
거의 2천에 달하는 대규모의 기병부대가, 이쪽으로 돌진해 오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다! 인간이 온다! 전투 준비!”
성벽 위에서 전장을 지켜보고 있던 파충류 인간, 렙틸리언들이 그 장면을 보고 화들짝 놀라 급히 방어를 준비했다.
성 전체에 거대한 공성 보호막이 덧씌워지고, 공격해 오는 인간 군대에 대항해 화살들을 쏘기 시작한다.
피피핑!
궁병대를 보유한 각성자들의 일제 사격.
그렇게 날아드는 화살들은 단순한 화살이 아니라 제각기 다른 종류의 마력이 담긴 권능의 일격이었다.
방어막 뒤에서 수비를 굳힌 채 달려오는 기병들을 향해 사격을 행하는 것이다.
상성 상 무조건적으로 기병이 불리한 상황일 수밖에 없는 상황.
“돌격! 한 번에 돌파한다!”
하지만 그 2천에 달하는 기병대는 아랑곳 않고 성벽과 공성 방어막을 향해 무작정 달려들었다.
포병으로 미리 원거리에서 실드를 깨거나 성벽을 무너뜨린 다음 내부에 진입하는 것도 아니고.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정면으로 벽을 향해 돌진한 것이다.
그야말로 무식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무모한 돌격.
화르륵!
가장 선두에서 마수 헬 하운드(Hell hound)를 타고 달리는 남자의 몸에 화염이 둘렸다.
곧이어 그 뒤를 바짝 쫓는 300여 기의 헬하운드 기병대 전체가 불꽃에 휩싸인다.
그들은 거대한 인간 기병대 충각의 첨단이 되어, 렙틸리언 성벽의 공성 방어막에 직접 부딪혔다.
콰아아앙!
파캉!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에 연이어, 날카로운 파열음이 뒤따른다.
그 단 일격에 공성 방어막이 깨진 것이다.
콰르르르!
말할 필요도 없이, 그 뒤에 있던 성벽 역시 함께 무너졌다.
인간들은 어떤 선행 공격도 없이 단지 기병 돌격 한 번으로 성채의 방어벽을 깨고 단숨에 내부로 진입했다.
“괴물 같은 놈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렙틸리언들은 그런 인간의 거침없는 공격을 목도하고서 혀를 내둘렀다.
이곳 영지는 렙틸리언계 안에서도 내로라하는 각성자들이 여럿 동원되어 수비하는, 꽤나 중요한 거점이다.
그렇기에 다른 어떤 종족이 와도 반드시 막아내야 하고, 또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 이 앞에 나타난 인간들은 그 상상을 훨씬 초월하는 존재들이었다.
“하하하하! 오랜만이구나! 이 감각!”
헬 하운드 기병대를 이끌며, 검을 휘둘러 화염을 뿜어대는 남자.
인간의 육체에 강림한 다누 신족의 키안이 성안을 휘저으며 렙틸리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실로 얼마만의 일인가, 직접 내 검으로 필멸자들을 베어 죽이는 게!”
이번 전투는 신격이 육체를 차지한 키안의 데뷔전이나 다름없었다.
아후라 마즈다에 의해 신화급 각성자로서 발굴된 후, 동화율 100%에 도달해 백산 클랜의 기병대 선봉장이 되기까지 겨우 두 달.
극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어느새 완벽하게 신으로서 각성한, 아후라 마즈다의 의도에 가장 충실하게 부합하는 존재가 되었다.
맞지 않는 육체에 신격을 억지로 각성시켜 약해빠진 존재가 되었던 성주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하하하핫!”
키안은 자신의 기병대 전체를 휘감은 불꽃으로 성채 내부를 사정없이 초토화시켰다.
그런 그를 상대하는 렙틸리언들에게도 신화급 각성자는 있었지만, 신격이 각성된 키안에게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도마뱀 인간들은 그 거대한 힘 앞에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
그 모든 광경을 하늘 높은 곳에서 조용히 내려다보는 아후라 마즈다.
자신이 길러낸 완벽한 성공 사례인 키안을 보고 있자면 당연히 만족스러워야 정상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건 키안이 아닌, 지금 저 전장에 있는 또 다른 한 사람 때문이었다.
* * *
촤아아악!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물길이 치솟아 파도를 일으켰다.
그 파도 위로, 마수 바다뱀 기수들이 빠른 속도로 미끄러지듯 흘러갔다.
이 바다뱀 수병대를 이끄는 자는 다름 아닌 최윤아.
그녀는 맨땅에서도 물길을 만드는 권능을 지니고 있어서, 물에서 강력한 마수 바다뱀 수병대를 지상에서도 제약 없이 운용할 수 있었다.
“어, 어엇!”
“꺄악!”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적과 마주친 내성의 NPC 시종들이 잔뜩 겁을 먹고 도망쳤다.
한창 기병대가 렙틸리언 각성자 부대들과 저 먼 곳에서 부딪히고 있는 지금.
그녀는 물길을 이용한 바다뱀의 우월한 기동력으로 성안을 크게 우회해 곧장 내성으로 진격했다.
“저 사람들은 무시해! 우린 곧장 점령 포인트로 이동한다!”
최윤아는 나름대로 전략적인 판단하에 이곳으로 돌파해 왔다.
앞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비어 있는 내성을 습격해 점령 포인트를 차지해 빠르게 끝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손쉽게 공성전 승리를 거둔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이, 이…… 인간 놈들! 죽어라!”
내성에 잔류하고 있던 병사들 몇몇이 그들 앞을 막아섰다.
물론 그들이 최윤아의 바다뱀 부대의 진로를 막을 수는 없다.
숫자 자체도 소수에 불과할뿐더러.
지금과 같은 ‘부대 시스템’의 시대에 각성자에게 배속되지 않은 개별 NPC 병사들은 전투 잠재력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저리 비켜!”
터엉!
최윤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탑승한 바다뱀의 꼬리를 휘두르게 해 진로를 가로막은 병사들을 날려 버렸다.
병사들은 그 한 방에 나가떨어져 기절하고 말았다.
“찾았다!”
그렇게 바다뱀을 타고 내성을 종횡무진 하던 최윤아는, 이윽고 총 네 군데의 점령 포인트를 모두 찾아낼 수 있었다.
이대로 병력을 흩뜨려 그 지점들을 모두 점거하기만 하면 끝.
“점령 포인트로 가!”
여기까지 어떠한 어려움도 없이 작전은 성공했다.
전투는 여전히 바깥에서만 벌어지고 있고, 그들이 되돌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으…….”
“쉿!”
그런데 그때, 점령 포인트를 점거하고 있던 최윤아의 귀에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마력 감응을 높이자, 렙틸리언 여자 두 명이 가구 뒤에 숨어 있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이곳 내성의 NPC 시종들인 모양이었다.
“거기 둘. 이리 나와.”
그녀는 곧바로 두 명의 여자를 불러냈다.
“여기 있지 말고 저리 나가.”
점령 포인트 주변에 적측 인원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점령은 성공할 수 없다.
그래서 최윤아는 두 여자를 바깥으로 내보내려 한 것이다.
“네, 넵!”
다행히 목숨을 건진 그 둘은 재빨리 발걸음을 움직여 달아났다.
퍼퍼퍽.
……고 생각하려던 찰나, 그 둘은 난데없이 사방에 뼈와 살점을 흩뿌리며 죽어버렸다.
그들을 살해한 건 등에 활을 메고 두 자루의 단검을 든 남자.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그가 갑자기 나타나 도망치던 두 여자를 죽인 것이다.
“……무슨 짓이야?”
“무슨 짓이냐고 묻고 싶은 건 난데.”
최윤아는 그런 그를 질책하듯 물었지만, 도리어 그야말로 최윤아를 몰아붙였다.
“그 사람들은 어차피 전투원도 아니었어.”
“아니면? 몰래 기습한 상황에서 도망치는 적을 그대로 내버려 둬도 된다는 건가?”
“밖은 키안이 장악하고 있잖아. 게다가 그 사람들이 소식을 알리러 간다고 한들, 그땐 이미 늦었을 거야.”
“그래서 지금, 너는 적을 동정하기라도 하는 건가? 심지어 인간도 아니고, 저런 파충류들을?”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최윤아는 한껏 비꼬는 투로 말하는 그 남자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관대하게 풀어준 사람들을 네가 바로 코앞에서 죽이면, 내 부대원들 앞에서 내가 뭐가 될 것 같아?”
이건 자존심 싸움이었다.
이전까지 사실상 아후라 마즈다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던 그녀가.
새롭게 나타난 신화급 각성자에게 부대원들 앞에서 대놓고 무시를 당한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아, 그런 거라면 사과하지. 위신은 중요한 거니까.”
그런 이야길 대놓고 꺼내자 남자는 선뜻 사과를 내밀었다.
그 태도가 최윤아를 더욱 화나게 했지만, 여기서 서로 더 충돌해 봤자 득 될 게 없다고 판단한 그녀는 이쯤에서 멈추기로 했다.
{점령 포인트가 모두 점거되었습니다.}
{지금부터 30초 후 공성전이 종료됩니다. 30…….}
어차피 이제 상황은 다 끝나기도 했고 말이다.
“됐어. 다음부터는 조심해. 리하르트.”
그녀는 입술을 깨물면서 애써 조급한 마음을 감춰야 했다.
‘……더 전공을 세워야 해. 이런 일이 없으려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선율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백산 클랜의 명실상부한 이인자였던 최윤아.
어느 때부턴가 조금씩 클랜 내에서 다른 자들이 치고 올라오는가 싶더니.
이젠 이렇게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자신은 더 많은 공을 세우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고.
오늘의 기습적인 점령지 점거 역시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지만.
어째선지 자신은 점점 더 중심에서 멀어져만 가는 느낌이 들 뿐이었다.
“……아 참. 그런데 말이야.”
남자는 그길로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돌아가려다, 다시 멈춰서 뒤돌아 최윤아를 쳐다봤다.
“이제 난 리하르트가 아니야.”
“……뭐?”
“카이르프레. 이제부터는 그렇게 불러줬으면 좋겠군.”
“그건 또 뭔 소리야?”
“아까 전에 바뀌었거든.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이.”
그러고는 도무지 영문 모를 말만 남기고는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대체 무슨…….”
그렇게 남겨진 최윤아의 눈동자엔, 문 너머 건너편 방 안의 모습이 비쳤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마주쳤던, 살려 보냈던 모든 렙틸리언들이 잔혹하게 해부당한 채 전리품처럼 죽 늘어선 광경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