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49화
‘자색파동발산기.’
‘악룡 제4격, 티르빙.’
체내의 모든 마나가 파동으로 전환되고, 그 거대한 힘은 저주받은 마검의 칼날을 타고 흘러 아지다하카의 발톱 참격으로 구현된다.
츄하아악!
공간을 사정없이 찢어발기는 격렬한 발톱 자국이 악마와 언데드 사이를 가로지른다.
“후우우우.”
그 순간 몸속에선 여전히 충만한 마나가 넘쳐흐른다.
지속적인 마나호흡을 통해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파동기를 연속 전개한다.
‘20연격.’
눈 깜짝할 사이, 검이 움직이는 것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공격을 퍼붓는다.
그와 동시에 무수히 많은 발톱 자국들이 내 주변 공간을 한꺼번에 뒤덮었다.
주변 시공간이 마치 정지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서 움직이는 것은 오직 내 칼날과 악룡의 서늘한 발톱뿐.
츄카카카카칵!
마물들은 영문도 모른 채 20회에 달하는 고속 공간참에 휘말려 사지가 뜯겨나갔다.
마치 나를 중심으로 폭발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육편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크아아아!”
곧이어 그 파편 폭풍 너머에서 이 모든 마물들을 소환해 낸 주인이 주먹을 뒤로 잔뜩 젖힌 채 날아왔다.
내게 전력을 다한 일격을 먹이겠다는 염라의 굳은 표정이 고스란히 보였다.
‘맞서면 진다.’
지금의 나는 전보다 1.5배 이상 강화된 무구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저 녀석과 정면으로 부딪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따라서 여기선 회피를 해야 한다.
‘악룡 제2격, 아레스의 검.’
단순히 가벼운 발걸음 정도의 이동 스킬로는 부족하다는 판단하에, 급가속을 할 수 있는 파동기를 사용했다.
아지다하카의 형상으로 짜내어진 검기를 전신에 두른 채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쇄도하는 고속 돌진 찌르기.
이걸 회피기로 사용하기엔 너무 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없잖아 있었지만.
난 이 와중에도 체내의 마나를 최대치로 보전하게 해 주는 지속 마나호흡을 사용했기에 힘의 낭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쾅!
‘악룡 제3격, 루인.’
염라의 공격을 회피하는 데에 성공한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혈마창 루인을 꺼내 휘둘렀다.
그 즉시 창으로부터 세 개의 용머리 형상이 뻗어 나와 내 뒤에 있는 적, 염라를 향해 날아들었다.
루인의 공격은 내가 직접 조준하지 않아도 저 스스로 목표를 찾아가는 공격.
상대를 끝장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뒤를 쫓아오는 저 녀석을 재빨이 잡아두는 견제기로서의 역할은 충분하다.
“도망치는 거냐! 비겁한 쓰레기!”
내 회피와 견제기, 연속기에 자신의 공격이 가로막히자, 놈은 나를 비난하며 도발하는 말을 내뱉었다.
겉보기엔 연약하기 그지없는 알비노 백인 여자의 몸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저 악바리에서 나오는 호전성은 수염이 덥수룩한 염라의 본모습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적색파동발산기.’
물론 난 그런 저급한 심리전에 전혀 말려들지 않는다.
그저 원래 내가 하려던 것을 이어나갈 뿐.
‘주작 제1격, 갈라틴.’
염라를 등진 채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 대검을 쥐고 종으로 내려 베는 동작을 취하며 한 바퀴 회전한다.
화르륵!
주작의 형상을 갖춘 불의 검기가 갈라틴의 종방향 회전을 따라 원 모양의 궤적을 그렸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신수의 화염이 염라를 아래에서부터 위로 치고 오르며 덮쳤다.
“네놈! 이따위 하찮은 술수로……!”
‘청색파동발산기.’
그리고 난 공중에서 거꾸로 떠 있는 채로 염라를 마주 보고서 방금 그 화염 공격에 이어지는 연속기를 사용했다.
‘청룡 제1격, 아르테미스의 활.’
콰아아!
푸른 광선과도 같은 한 발의 화살.
그 선을 중심으로 청룡이 나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그렇게 회전하는 용은 온 사방에 닿는 물질을 부식시켜 녹여버리는 독성 분진을 흩뿌린다.
그 분진의 돌풍이 방금 염라의 몸에 옮겨붙은 주작의 화염에 닿는 순간.
콰콰콰콰콰쾅!
대규모 연쇄 폭발이 일어난다.
거대한 청룡을 단숨에 추락시킨 그 흉악한 공격.
그때의 그 장면이 이곳에서 재현되었다.
* * *
탁.
짧은 시간 동안 공중에서 연이은 파동기의 전개를 마친 후 바닥에 착지했다.
기술사용 중에 마나 호흡을 동시 사용한 대가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느낌.
하지만 아직도 컨디션은 건재하다.
전처럼 도중에 급격한 무리로 신체가 마비되거나 그걸 피하기 위해 공격의 템포를 낮춰야 할 정도는 아니다.
피잉! 피이잉!
사방으로 푸른 광선들이 쏟아진다.
거기에 닿은 마물들은 모두 죽는다.
내 병사들에게 무장시킨 신형 마나건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리사카와 벨그레이브 클랜에서 파견된 병력들도 합세해 망자의 군단을 무찔렀다.
“신우 씨!”
“괜찮으십니까!”
그 가운데서 검제와 유메미가 내 쪽으로 날아왔다.
여기서부터 포탈의 거리를 생각해 보면, 그들은 실로 대단히 빠른 속도로 다가왔음을 알 수 있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 후로 지금까지 흐른 시간은 기껏 해봐야 겨우 5초 이내.
사실상 아군 병력이 쏘아 보내는 투사체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움직인 것이다.
“난 괜찮아.”
“그 적패지란 걸 없애는 건 성공한 건가요?”
“그래. 이제 여기서 강신술사의 목을 따기만 하면 돼.”
유메미의 얼굴이 밝아졌다.
검제 역시 가면에 가려 표정이 보이진 않았지만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개자식들…….”
바로 그때 염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분진 폭발로 사방을 뿌옇게 뒤덮은 흙먼지가 걷혀 나가자, 그 뒤에서 그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아직 지난번 전투에서의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놈의 몸에, 방금 전의 공격으로 화상이 추가되어 몰골은 더욱 처참해진 모습이었다.
“준비해.”
“넵!”
스릉!
검제가 등 뒤의 검을 하늘로 던져 프라가라흐를 투영한 다음, 자신은 허리춤에 찬 두 자루의 칼을 꺼내 쥐었다.
유메미는 마법 막대 끝에 마나를 모아 즉시 주문을 시전할 태세를 취했고.
난 몸속에서 아지다하카의 힘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누구 목을 딴다고……?”
염라는 극도로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인간의 육체를 지배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모습이었다.
이미 지옥에서 불러온 악마들, ‘아수라’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넌 이제 끝이다. 적패지가 사라진 이상, 도망도 칠 수 없어.”
“도망?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런데 완전히 막다른 골목길까지 몰려 있을 그 녀석이 쓰윽 웃기 시작했다.
이미 승기를 잡은 나는 왜인지 소름이 돋았다.
지금 놈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갑자기 이상할 정도로 심상찮게 변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너희 쓰레기들을 한꺼번에 죽일 수 있는 기회인데 말이야.”
염라의 분노는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거기서 나는 확신했다.
지금 저놈이 무언가 상황을 뒤집을 만한 히든카드를 꺼낼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된다.’
불길함을 직감한 나는 곧장 검을 틀어쥐었다.
선수 필승.
저 녀석이 수작을 부리기 전에 끝장내야 한다.
‘자색파동발산기, 악룡 제1격. 미스텔테인.’
악룡의 형상을 한 검기가 내리치는 칼끝에서 뻗어 나와 염라를 향해 돌진했다.
콰아아아!
기습적으로 날려 보낸 빠르고 심플한 일격.
그건 내 옆에 서 있던 검제조차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그녀가 내 공격을 보조하려고 오른손에 쥔 검을 움찔거렸을 때는, 이미 검기가 염라의 몸을 집어삼킨 후였다.
파스슷.
그렇게 염라의 육신은 내 공격에 채 반응하기도 전에 아지다하카에게 덮쳐져 완전한 무(無)로 돌아갔다.
몸 전체가 입자 단위로 분해되어 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광경이 눈앞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뭐, 뭐야……?”
“이렇게 허무하게…….”
단 일격.
그 한 번으로 놈이 허무하게 죽어버리자, 유메미와 검제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미스텔테인은 그저 그 녀석이 행하려는 수작을 막기 위해 날린 견제기였을 뿐이었다.
진짜 공격은 그다음에 이어지는 티르빙 고속 연참격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녀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피하거나 막지도 않은 채 내 검기를 몸으로 받아들였다.
‘의도적인 건가……?’
혹시 이것도 저 녀석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상황인 걸까?
내 머릿속엔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왜냐하면 마지막 순간까지 염라의 표정은 계속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만요. ……그런데 왜 그 망자의 군대는 아직까지 움직이는 거죠?”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유메미가 결정적인 포인트를 지적했다.
“강신술사가 죽으면…… 그 술자가 불러일으킨 모든 소환물의 연결은 해제되어야 하는데.”
염라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군대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우리의 병력과 대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째서 저것들은 아직도…….”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이 어딘가에 살아 있을 염라를 찾아내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찰나.
콰드드득. 콰득.
갑작스레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지옥의 악마들을 내뱉은 그 거대한 살덩어리였다.
쾅!
거기서 뻗어 나온 살점 덩어리로 이뤄진 거대한 주먹이 우리를 덮쳤다.
* * *
살점 덩어리 주먹은 타점에서 맹렬한 마력 폭발을 일으켰다.
나와 검제, 유메미 모두 다 그 한 번의 공격으로 한꺼번에 나가떨어지게 만들 정도였다.
“큭…… 뭐지……?”
난 튕겨 날아가던 도중에 자세를 잡고 바닥에 착지했다.
충격파의 영향으로 머리는 여전히 아팠지만, 어떻게든 상대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전방을 주시했다.
‘여자아이……?’
징그러운 살점 덩어리는 어느샌가 사라져 없어진 상태였고, 하늘에는 자그마한 몸집의 여자아이가 떠 있었다.
그 아이는 새하얀 머리칼을 가졌으며, 등 뒤에는 마치 날개처럼 보이는 거대한 팔 두 개가 달려 있었다.
저 팔이 바로, 방금 우리를 공격했던 주먹.
그로 미루어보건대 그 거대한 살점 덩어리가 저 작은 여자아이로 바뀐 모양이었다.
‘설마…… 염라가 저 몸으로 옮겨 간 건가?’
그 여자아이에게서는 도저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마력이 느껴졌다.
저건 지옥과 지상계의 통로 역할을 하던 시설물이 그 강대한 마력을 고스란히 품은 채 변태한 존재.
즉, 염라가 자신의 권능과 강신술을 집대성해 만들어 낸 막강한 생물병기인 것이다.
바로 저 몸뚱이 안에, 염라의 영혼이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
‘강적이다. ……일대일로는 이길 수 없어.’
마지막까지 최후의 수를 남겨두고 있었다는 사실에 경악하는 것도 잠시.
뭐가 됐든 지금 난 저 녀석을 어떻게든 처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다행히 난 그 방법을 실현시킬 도구를 가지고 있다.
‘포위해서 한꺼번에 화력을 쏟아붓는다.’
레비아탄의 갑각을 일발로 뚫어내는 강력한 화력의 마나건.
그걸로 무장한 수백 명의 병사들이 이곳에 들어와 있다.
그 많은 숫자의 광선이 한꺼번에 저 녀석에게 집중된다면, 방어가 아무리 튼튼하다 하더라도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회를 잡는다……. 놈의 공중에 정지시켜서 아군이 사격하기 좋은 상황을 만들어야 해.’
난 상처 입은 몸을 억지로 추스르며 검을 쥐었다.
파동기를 펼쳐서 아군이 집중 사격을 가하기 좋아지도록 발을 묶는 기술을 쓸 작정이다.
꽈아악.
‘자색파동축적.’
마나를 파동으로 전환하고.
오른손에 에테르 큐브를 쥐었다.
언제든, 상황에 맞는 무기를 꺼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좀 더……. 가까이…….’
그리고는 무너진 잔해 사이에 몸을 낮추고서 여자아이 형태로 변한 염라를 노려보았다.
저 녀석의 성격이라면, 우릴 찾아내 마무리 일격을 가하기 위해 주변을 수색할 것이다.
그러다 내 근처로 온 순간, 단숨에 공격을 가해서 발을 묶는다.
……그런 장면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난 조심스럽게 숨죽인 채 상황을 지켜봤다.
‘……뭐지?’
그런데 놈의 행동이 이상하다.
우리에게 추격타를 먹이기 위해 잔해를 뒤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었다.
처음엔 설마 도주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것도 아닌 것이, 저 녀석이 움직이는 방향은 포탈 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체 왜? ……잠깐, 설마…….’
그런 와중에 주변의 기류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아군 병사들과 접전을 벌이던 언데드 소환물들.
내 공격에서 살아남은 아수라들.
그것들이 전부 한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난 그제야 염라의 의도를 알아챘다.
‘병력을 추스른다……. 놈은 우리에게 전술로 맞설 생각이다!’
단순히 자기 일신의 우월한 힘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망자의 군대를 운용해 본격적인 집단 전투를 벌이려는 의도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