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43화
“바리데기 그년도 웃기는군. 마존? 감히 이 몸 앞에서 ‘유계의 심도’를 논해?”
강신술사, 아니, 염라는 나와 마존 사이에 했던 대화 내용까지 다 알고 있었다.
우리가 이곳에 접근해 온다는 걸 진작부터 다 파악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뭐, 결과적으론 잘 됐지. 지금 이렇게 네놈을 죽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듣자 하니 그 경위는 다름 아닌 유메미가 불러낸 영혼이었던 모양.
우리는 그 불러낸 영혼을 통해 염라의 위치를 파악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것이 우리를 감시하는 도청기 역할을 한 것이다.
“어때? 생각지도 못한 상대에게 얻어맞은 기분이?”
염라는 나를 한껏 조롱했다.
여유와 허술함은 아까 전부터 시종일관 그대로였지만, 그 허술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파고들 틈이 보이질 않았다.
애초에 힘 차이가 너무 커서 방심이라는 게 무의미할 정도인 것이다.
“……하나만 물어보자.”
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상태에서 염라에게 말을 걸었다.
“뭐든지.”
그녀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걸로 시간을 끈다 해도 언제든지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날 끝장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아까부터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 일단 물어봤다.
“내가 유신우라는 걸…… 넌 어떻게 안 거지?”
앙그라 마이뉴라는 이름이야 세계에 강림한 과거의 신이라면 얼마든지 알 수도 있다.
내 능력을 하나라도 본 적 있다면 그를 통해 유추하는 수도 있고.
유메미가 불러낸 영혼을 역으로 이용했듯이 에테르를 사용해 내 존재를 느끼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백선율, 아후라 마즈다와 접촉해 그에게서 직접 들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유신우라는 이름을 저자가 언급한 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왜냐면 ‘유신우’는 인간 신 염라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물은 건 바로 그런 의미의 물음이었다.
“당연히 알아야지.”
그런데 염라는 아주 담백하게 그 질문에 대답했다.
“네가 날 죽였잖아, 유신우. 칼리닌스카야의 사냥개인 날 말이야.”
“칼리닌스카야……?”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이름.
잠시 기억을 더듬어, 그 이름과 관련된 과거의 인연들을 찾아낸다.
‘아……!’
그리고 난 기억해 냈다.
‘저승차사 강림.’
내 앞에서 죽었지만, 나에게 영혼이 흡수되지 않았던 유일한 존재.
그 수호령 강림의 각성자를 말이다.
“하지만 그 여자는…… 너와는 다르게 생겼었는데.”
그때 그 사람은 새까만 흑발에 전형적인 동양인 이목구비를 가진 여자였다.
그러나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염라’는 그와는 전혀 정 반대.
눈에 띌 정도로 새하얀 머리를 가지고 있는 알비노 백인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야 새 육체로 전생했으니까.”
“전생?”
“수호령 강림의 고유 특성이야. 죽으면 딱 한 번 새 육체로 옮겨갈 수 있게 해주는 거지. 목숨 하나를 추가로 얻는 셈이랄까.”
“그런 거였나…….”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대충 적당히 스치고 지나간 인연이 이제 와서 이렇게 내 앞길을 막을 줄이야.
그때 당시에 그녀는 꽤나 상당한 실력을 가진 각성자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가질 만한 인물이 될 그릇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 오크계의 최강자들도 한꺼번에 손발을 묶어버린 광역 디스펠마저 깔끔하게 씹어버리고.
검제를 한 방에 기절시키는 걸로도 모자라.
내 미스텔테인을 맨손으로 받아치고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강해졌다.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할 만한 수준의 능력 상승이 그녀의 몸에 벌어진 것이다.
“그렇게 강한 힘을 가진 건…… 역시 신격의 완전한 육신 장악 덕분이겠지?”
물론 그 이유에 대한 추측은 나도 아까부터 하고 있었다.
패치노트에 의한 스킬 획득이나 꾸준한 스탯 강화 등 각성자로서 제대로 된 성장 절차를 밟지 않은 자가 급격히 강해졌다.
그렇다는 말은, 그 과정을 거쳤던 검제나 마존이 겪지 못한 일을 그녀가 겪었다는 뜻이고.
그게 바로 신격의 육체 지배인 것이다.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다만 그 추측에도 허점이 있긴 하다.
그건 바로 이전에 만났던 성주신이나 아후라 마즈다는 이 정도로 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엔 분명 뭔가 다른 점이 있는 게 분명하다.
‘시간 끌기는 여기까지.’
그러나 이쯤에서 난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애초부터 이 대화 자체가 궁금한 것도 알아낼 겸 시간을 벌기 위한 용도였기 때문.
그리고 이제 난 그 시간을 충분히 벌 만큼 벌었다.
‘업화의 구.’
가슴속에 형성된 보랏빛이 검은 불꽃에 휩싸인다.
‘자색파동발산기.’
내 손엔 저주받은 마검이 칼집에 들어간 채로 쥐어져 있다.
‘악룡 제4격, 티르빙.’
* * *
───
<고통: 업화의 구>
-(3단계)고통의 업화가 너와 아지다하카 사이를 연결한다. 그로써 네가 사용하는 모든 권능의 위력이 배로 강해진다.
───
신계를 파괴할 때 사용했던 연계 공격.
업화의 구를 사용해 아지다하카와 불꽃이 연결되고, 그 상태에서 악의의 전당 무구들을 날려 대지를 조각낸다.
이때 사용된 업화의 구는 단순히 무구에 화염 피해를 추가하는 보조 마법 같은 게 아니다.
파괴 본능을 극대화시켜 주는, 아지다하카의 근원적 본능인 것이다.
화르륵.
가슴 속에서 불꽃이 타오른다.
내 안의 ‘보랏빛’을 휘감는다.
원래 이것은 아지다하카 물리적인 육체와 연결하는 기술이었지만.
난 이 기술을 변형시켜 힘의 원천에 직접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구현했다.
애초에 지금 이 육신으로는 평범하게 사용해도 벅찬 것을, 억지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 시전한 것이다.
스르릉.
하지만 그렇게 한 보람은 충분히 있다.
지금의 내가 쓰기에 가장 실용적인 형태로.
최대 위력의 기술을 구사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츄카카카카칵!
티르빙이 움직인 순간, 염라가 서 있는 주변 공간이 극심하게 왜곡되며 다수의 거대한 손톱자국들이 쇄도했다.
검격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거칠기 짝이 없는 공격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짐승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발톱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큭……!”
그 무차별 촌열의 효과는 확실했다.
미스텔테인 검기에도 꿈쩍 않던 염라에게 드디어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심지어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업화의 구 부가 효과로 상처 부위에 화염까지 들러붙었다.
“뭐야……?”
염라는 이렇게 빠르고 격렬한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아까완 달리 여유 없는 표정으로 물러섰다.
타앗!
‘놓치지 않는다.’
물론 난 이걸로 만족할 생각이 없다.
여세를 몰아 놈을 완전히 끝장낼 것이다.
“후우우우.”
마나 호흡으로 소진한 마나를 빠르게 회복한다.
그와 동시에 또 다른 무구를 꺼내 들었다.
‘악룡 제2격, 아레스의 검.’
파앙!
아레스의 짧은 한손검을 앞으로 내민 채 전방으로 고속 돌진을 시전한다.
그와 동시에 짙은 폭력의 기운이 내 몸 전체를 감쌌다.
그 기운은 곧바로 아지다하카의 형상을 이뤘고.
찌르며 나아가는 길목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깔끔하게 소멸시켰다.
“이 건방진! ……감히 네놈이 이 몸을 이길 수 있을 거란 망상을 하느냐!”
그런 나를 향해 정면으로 주먹을 내지르는 염라.
아까처럼 주먹에서 검은 구체를 뿜어내 기술을 상쇄시킬 작정이다.
물론 지금 업화의 구를 발동시킨 내 공격은 아까처럼 쉽사리 막히진 않을 것이다.
분명 저 녀석에게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히고 받아 쳐지겠지.
하지만 그만큼 나 또한 위험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자살 공격은 당연하지만 절대 사절이다.
‘미스텔테인 연계.’
난 거기서 무구를 미스텔테인으로 바꾼 다음 사용 중인 기술을 비틀었다.
내 몸을 감싼 채 나아가던 아지다하카 검기를, 그대로 원거리 공격 용도로 바꿔 날려버린 것이다.
콰우우우!
저주의 마력으로 이뤄진 드래곤.
그것을 감싸고 있는 고통의 업화.
극히 파괴적인 공격이 염라를 향해 몰아친다.
“흥! 이딴 공격쯤은……!”
콰앙!
예의 주먹 공격이 검기와 맞부딪히면서 상성 작용이 발생했다.
다만 이번에는 아지다하카를 감싸고 있던 화염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그를 덮쳤다.
“젠장!”
염라가 화난다는 듯, 이를 악물었다.
놈의 분노를 끌어냈다는 건, 그만큼 데미지를 입혔단 얘기.
‘티르빙.’
난 거기서 멈추지 않고 추격타를 날렸다.
제자리에서 연달아 행하는 고속 베기.
츄카카칵!
다시금 발톱 참격이 쏟아져 염라를 괴롭혔다.
겉으로 보기엔 연약해 보이지만 어지간한 공격으론 생채기 하나 나지 않던 단단한 피부.
거기에 점점 상처가 쌓여가기 시작한 것이다.
두근. 두근.
그런데 그 와중에 내 몸에도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지난번과 같은 증상이다.
마나 호흡을 하면서 동시에 마나를 소모하는 기술을 사용하다 보니, 부작용이 오려고 했다.
‘지금은 안 돼……. 지금은…….’
그 탓에 나는 연속 공격의 템포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그저 끊어지지 않는 공격을 위해, 속도를 조절하는 수밖에.
“이……! 짜증 나는군!”
그렇게 티르빙 연속 참격에 계속 당하고만 있던 염라가 공격을 막기 위해 들어 올렸던 손을 내리면서 소리쳤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힘이 난 건지는 몰라도…….”
그녀는 자신의 몸에 계속해서 더 큰 상처가 나는 걸 무시하고 내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난 더욱 사정없이 급소가 될 만한 곳을 끊임없이 베었다.
물론 그것만으로 다가오는 적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너 따위가 진짜로 감히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염라가 스텝을 밟으면서 나에게 일격필살의 정권을 날렸다.
장거리에서 뿜어내는 권풍 따위가 아니라, 나를 확실하게 보내버리기 위한 근접 권격.
“너야말로 착각하고 있군.”
그런 그에게 내가 해줄 말은 하나다.
“내가 시간을 번 게 겨우 내 공격의 강화 버전을 쓰기 위해서인 줄 알았나?”
“뭐?”
업화의 구로 강화시킨 파동기는 상당히 강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걸로 근본적인 힘의 격차를 뛰어넘기엔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사람 자체가 아예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다 강한 기술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압도적으로 밀리던 쪽이 갑자기 우세해지는 건 불가능한 것이다.
“잘 있어라.”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대처법은 셋 중 하나다.
도망치거나.
원군을 불러오거나.
아니면 그 둘 다를 동시에 하거나.
파아앗.
내 몸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원격 텔레포테이션.
저 위 언덕 너머에서 유메미가 내게 사용해 준 것이다.
“뭐야? 언제……?”
게다가 나뿐만 아니라 검제는 물론이고 주변의 다른 민간인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미 우리가 피 터지게 싸우는 동안, 유메미는 차근차근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시간을 번 진짜 이유였다.
-유메미, 넌 여기서 대기하는 동안 우리 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있어.
이곳에 오기 전, 난 그녀에게 귓속말로 이쪽 상황을 주시하라고 말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요?
-그땐 네가 알아서 판단해.
지시사항은 그것뿐.
각 상황별로 세세한 신호나 행동체계 같은 걸 만들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무슨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유메미의 판단을 전적으로 믿었다.
그녀 또한 벨그레이브의 두뇌를 담당하는 중심축이었고, 현재도 하나의 거대한 클랜을 운영하는 수장이다.
각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는 이골이 났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에 따라 그녀가 내린 결론이 바로 이것이었다.
슈팟.
마지막 대상자인 나까지,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을 원격 텔레포테이션으로 대피시킨 후.
혼자 남아 있는 염라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수라멸망악심꽃’.
유메미는 언덕 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강의 공격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