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40화
가난한 자들에겐 정보를 얻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수많은 혜택조차, 막상 당사자들은 어떻게 얻는 것인지 알지 못해서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클랜 또한 마찬가지였다.
검제는 벨그레이브를 표면에 드러내 각성자든 비각성자든 모두를 클랜에 소속되게 함으로써, 예견된 미래의 재앙을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피하길 바랐지만.
정작 그런 시기에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상당수의 진짜 취약 계층들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어떻게 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마물이니 각성자니 뭐가 어쨌든 간에 정부가 영원히 자신들을 지켜줄 거라 생각한 것이다.
특히나 미국인들이라면 더더욱 그런 믿음을 가졌을 테고 말이다.
밀리아의 가족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그 결과 돌아온 것은 몰려나오는 무수한 마물들 사이에 버려져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아야만 했던 하루하루.
그로 인해 근근이 연명하던 일상은 파탄 나고 말았고.
결국 자신들에게 손 내밀어줄 구원자를 찾던 끝에 ‘야마’의 추종자가 되고 만 것이다.
“이제 다시 행렬로 돌아가자.”
“응!”
엄마와 만난 후 기분이 다시 들뜬 밀리아는 힘차게 대답하고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제 더 이상 좀비들이 눈독 들이는 ‘그것’이 품에 없기도 했고.
이곳을 지나오는 동안 이런 풍경에 익숙해진 탓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또 며칠이 지나면 익숙함은 금세 사라지고 또 두려워지겠지만 말이다.
찰박. 찰박.
가벼운 발걸음을 내디딘다.
그럴 때마다 좀비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정체불명의 액체로 흥건하게 젖은 바닥이 찰박거린다.
외부인이라면 더러운 악취와 뒤섞인 그 환경에서 역겨움을 버티지 못하겠지만.
야마의 신도가 된 이들에게 이런 지저분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
그렇게 돌아가던 도중, 부녀의 앞에 이곳까지 오는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나타났다.
피부와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세어 있고, 눈동자는 빨간 알비노 백인 여성.
이 망자 군단의 지배자이자.
야마라사의 화신이며.
두 부녀의 팔뚝에 낙인을 찍은 장본인.
나나 리였다.
“야, 야마 님!”
밀리아의 아버지는 곧장 그녀를 알아보고 머리를 숙였다.
옆에서 멀뚱히 서 있는 밀리아의 머리도 눌러서 숙이게 만드는 걸 잊지 않았다.
“흐음…….”
나나는 그들을 보며 잠시 말없이 서 있었다.
그녀의 새 육신인 알비노 백인 여성의 몸은, 그 창백한 외견 때문에 강신술을 사용하는 그녀를 더욱 위험해 보이게 만들었다.
“누구 마음대로 대열을 이탈하라고 했지?”
나나는 망자의 군단과 함께 자신의 추종자들을 데리고 행렬을 꾸려 이동하는 중이었다.
제물들은 나름대로 중요한 자원이었기에, 이동하는 도중에 길목의 미물들에게 죽지 않도록 따로 군집을 만들어 나름대로 보호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밀리아 부녀는 그 대열을 이탈했던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물론 그 부분에서 나나는 딱히 세세한 규율 같은 걸 만들지는 않았다.
추종자들은 그냥 그때그때 리더인 나나가 시키는 대로, 그리고 그녀의 기분에 따라 움직였을 뿐.
“아니지. 아니다. 어차피 필요한 참이었는데 잘됐네.”
그녀는 무서운 표정으로 이들에게 다가온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그리 엄격한 처분을 내리지는 않았다.
그 대신 밀리아 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너희에게 축복을 내려주도록 하지.”
“추, 축복이라면…….”
“군단의 부속품이 되거라.”
“…….”
순간, 세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지금 이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좀비 중 하나가 되라는 나나의 명령.
이곳 사람들에게 있어 야마 신의 그 준엄한 명령은.
“감사합니다! 야마 님!”
축복이었다.
마물들에게는 한없이 무력하기 짝이 없는 비각성자들에게,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초월적인 힘이 주어지는 것이다.
물론 그건 결국 마물과 똑같은 언데드가 되어, 자유의지를 잃은 채 술자인 나나에게 속박당하는 저주나 마찬가지지만.
‘야마’를 광신하는 신도들에게는 그것이 곧 천국으로 가는 일로 여겨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와중에도, 정작 필요할 때 손길 한번 내준 적 없는 클랜들에 비하면.
‘야마 님’이신 나나는 이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구해준 것도 모자라 죽은 가족을 되살려주기까지 했다.
그러니 그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그야말로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 그럼…….”
나나는 지금까지 계속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밀리아 쪽으로 손을 뻗었다.
“네가 좋겠구나.”
“예……?”
“내 새로운 강신술의 매개체.”
그러고는 회색빛을 뿜어내 몸을 휘감았다.
강신의 마력을 주입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나 주변을 떠돌던 에테르들 역시 마찬가지.
그건 방금 주변에서 잡아 죽인 마수들의 영혼이었다.
“아아아아악!”
곧장 밀리아가 극심한 고통에 절규와도 같은 비명을 질렀다.
“사, 살려…… 살려주세요……!”
“큭큭.”
나나는 아이의 반응을 보고서 자신의 마법이 제대로 작동함을 확인한 듯 만족스레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밀리아의 아버지는 급격하게 표정이 굳었다.
“야마 님, 이건…….”
“닥쳐. 집중 방해하지 마.”
“죄, 죄송합니다.”
그건 지금까지의 다른 강신술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보통 같으면 제물로 바쳐지는 사람은 아무런 고통도 느낄 새 없이 죽음과 동시에 움직이는 좀비 병사로 거듭나는 형식인데.
어째선지 이것은 대상에게 필요 이상으로 큰 고통을 가하는 것 같았다.
‘왜 이런 걸 밀리아에게…….’
게다가 건장한 남성인 자신이 아니라 어리고 연약한 딸에게 그런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차라리 이런 고통스러운 과정은 자신이 대신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딸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자, 이 ‘축복’에 대한 의구심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밀리아의 아버지는 애타는 마음을 부여잡은 채 눈앞의 광경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끄…… 아아아…….”
이윽고 밀리아의 비명 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고통스러운 변형의 과정을 거치며, 체력을 소진함과 함께 의식도 잃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마법의 끝에는.
쩌저저적. 쩌적.
신체의 붕괴가 있었다.
밀리아의 몸이, 온갖 마수들의 결합체로 변형되었다.
그저 생기가 좀 사라지고 상처 부위가 회복되지 않는 외형의 좀비와는 너무나도 다른.
말 그대로 괴물이 된 것이다.
“미…… 밀리아.”
소녀의 아버지는 얼굴은 경악스러운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야마의 신도가 되기로 결심한 후, 이날 처음으로 그는 자신의 결정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
우리는 결국 그 쇼핑몰의 생존자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나와야만 했다.
“마존 씨, 차라리 환각 마법 같은 걸로 그 사람들을 회유해서 영지로 데려가는 건 안 되겠습니까?”
“안 돼요. 환각 마법은 지속 시간이 있고, 그 지속 시간이 끝나는 순간 자신이 본 환각이 가짜라는 걸 한꺼번에 느끼면서 감정의 반동이 밀려와요. 그러면 그렇게 영지 안에 억지로 데리고 온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겠어요?”
“폭동이 일어나거나 집단 자살 같은 걸 저지르거나……. 이 ‘야마교’의 신자라면 어느 쪽이든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겠지.”
“맞아요. 오히려 더 상황을 악화시키는 일이 될 뿐이에요. 이 사람들을 진심으로 구하고 싶다면, 차라리 여기 내버려 두는 게 나아요.”
검제가 유메미의 마법을 이용해 사람들을 억지로 데려오자는 의견을 냈지만 기각.
그렇게 우리는 강신술사의 기운을 강하게 풍기는 사람들을 그곳에 내버려 두고 또다시 다른 흔적을 찾아 나가야만 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는데.”
일이 이렇게 되자 난 추적을 하는 데에 있어 막막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북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미끼 흔적.
그 미끼들은 단순히 눈속임용일 뿐만 아니라 언제든 강신술사의 전력으로 변화할 준비가 된 제물들이다.
추적을 방해하는 위장막을 걷어내지 못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언제든 우리의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위험요소까지 등 뒤에 남겨두고서 움직여야 하는 셈이다.
“이러면 끝이 없겠어. 사방에 그 녀석의 냄새가 지독할 정도로 풍기는데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 수도 없고, 그렇다고 냄새를 하나씩 지워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난 그 말을 하면서 검제의 눈치를 살폈다.
이 일은 어디까지나 검제와의 동맹을 얻어내기 위한 부수적인 임무.
그러니 최대한 그녀가 바라는 대로 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녀가 원하는 건, 사람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일 터다.
“만약 필요하다면…….”
그런데 내 말을 듣고 잠자코 있던 그녀가 무언가 결심한 듯이 입을 열었다.
“……뭐라도 해야죠.”
그 짧은 말 한마디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일을 과감하게 저질렀던, 검제의 모습이 다시 이 자리에 나타난 것 같았다.
‘레아…….’
난 저 가면 뒤에 숨겨져 있는 얼굴을 잘 알고 있다.
화려한 외모에 넉살 좋은 인격으로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맨얼굴.
그리고 정의를 관철하기 위해 움직이면서도 이따금 냉혹한 결단을 내리는 가면의 얼굴.
둘 중 어떤 게 그녀의 진짜 면모일까.
“찾았어요!”
그런데 그때, 한참 동안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유메미가 눈을 번쩍 뜨며 느닷없이 소리쳤다.
그녀의 얼굴은 상당히 상기되어 있었다.
“찾았다고? 뭘?”
“강신술사요!”
그 한마디에 나와 검제, 둘 다 동공이 확장됐다.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고민들이 순식간에 다 무용지물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 어떻게?”
“제 권능으로요.”
그녀가 마법 막대를 내밀었다.
그 막대의 끄트머리에는 새하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이게 뭔데?”
“이건 ‘혼살이꽃’이에요.”
“혼살이꽃?”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다.
모든 신들에 대해 알고 있는 앙그라 마이뉴로서.
그리고 한국인 유신우로서.
둘의 기억이 혼합되어 더 자세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오는 꽃이에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온다고?”
“네.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다섯 가지 환생꽃의 한 종류인데, 이걸 사용하면 ‘유계의 심도’에 빠진 망자의 에테르를 끄집어낼 수 있어요.”
뼈살이꽃, 살살이꽃, 피살이꽃, 숨살이꽃, 혼살이꽃.
이 다섯 가지의 꽃을 사용해 육신을 재구성하고, 생기와 혼을 불어넣는다.
바리공주는 그렇게 죽은 자신의 부모를 되살렸다.
이건 단순히 한국인 유신우로서 살면서 언뜻 들었던 한국 신화에 관한 내용일 뿐이었지만.
그 다섯 가지 꽃을 사용하는 인간 신 바리공주의 권능은 앙그라 마이뉴의 머릿속에도 아주 희미하게 들어 있는 것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금 유메미의 입에서 그걸 완벽하게 증명하는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전 그래서 이걸 사용해 강신술사의 주변을 맴돌며 붙잡혀 있을 원혼을 불러냈어요. 그 원혼에게 직접 물어보면 현재 위치를 곧바로 알아낼 수 있으니까.”
“정확히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 영혼을 찾아냈다는 겁니까?”
“그럼요. 거의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수준이긴 했지만, 뭐 그건 원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적어도 저한텐 물질계보다 정신계에서의 추적이 훨씬 쉽거든요.”
“역시 마존……. 정말 마법에 관해서는 통달했다고 할 만하군요.”
“헤헤.”
검제와 유메미의 대화가 이어진다.
도저히 답이 없어 보이는 강신술사 추격의 활로가 열린 듯한 분위기.
“아무튼 둘 다 제 쪽으로 가까이 오세요. 지금 텔레포테이션 마법으로 곧장 그 녀석이 있는 곳으로 날아갈 겁니다.”
그러곤 당장에라도 강신술사를 잡으러 가기 위한 태세를 취한다.
검제는 세 자루의 칼을 꺼내 들었고, 유메미는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마나를 끌어모았다.
“유메미, 잠깐만.”
그런데 나는, 그런 그 둘을 막아섰다.
“네?”
“그 꽃.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했지?”
“어…… 네. 일단은.”
지금 당장 나에겐 강신술사보다 더 중요한.
검제와의 동맹, 엘프 종족과의 협정, 그를 통한 복수 실현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정말 시급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을 다 살릴 수 있는 건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