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33화
“크아아악!”
일순간 두 오크 각성자의 검에서 각각 빛과 화염이 터져 나오는가 싶었으나, 둘 다 현무의 힘에 짓눌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거기에 아델이 쏘아 보낸 사자의 검기까지 뒤이어 몰아치는 것으로 마무리.
두 명의 오크 각성자들은 그대로 전신이 분해되며 죽었다.
{수르트의 영혼을 흡수한다.}
{헤임달의 영혼을 흡수한다.}
{악의의 전당 소환 무구 목록에 <레바테인>이 추가된다.}
{악의의 전당 소환 무구 목록에 <걀라르호른>이 추가된다.}
그리고 얻어낸 무구들.
‘레바테인.’
곧바로 그 중 가장 강력한 무기를 꺼내 든다.
신계 전체를 통틀어 가장 파괴적인 무구 중 하나로 여겨지는 불의 검.
파괴와 말소에 특화된 불 속성 무기 중에서도 눈에 띄게 뛰어난 성능을 가진 그 무기가, 지금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화르륵.
붉은 홍염으로 이뤄진 칼날이 칼자루 위에 형성된다.
가까이 다가오기만 해도 화상을 입을 것 같은 화염 덕분에, 오크들은 지레 겁먹고 뒤로 물러섰다.
물론 그 불꽃은 사용자인 나와 나의 아군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이…… 개자식!”
쉬이익! 카앙!
그때, 요르겐이 나에게 달려들어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내 주먹에 얻어맞은 상처로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그가 휘두르는 검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알비드를 어떻게 한 거냐!”
그 녀석이 방금 죽은 신화급 각성자 중 한 명의 이름을 대며 나를 몰아붙였다.
어차피 난 그들이 누군지 알지도 못하고, 알 필요도 없지만 말이다.
“보면 모르나? 넌 뭘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거지? 전쟁터에서 누군가가 죽는 건 당연한 일이잖나.”
난 그들의 죽음에 그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애초에 종족 자체가 다르기도 하거니와, 이들은 먼저 우리에게 적대적 행동을 취한 적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감정?
그런 건 나도 겪어봤다.
아주 먼 옛날에도, 바로 얼마 전에도.
누군가와 전쟁을 한다는 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상실의 연속선인 것이다.
“닥쳐! 지금 네놈이 쥐고 있는 검……. 그건 알비드의 것이다!”
그런데 요르겐이 분노한 건 내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른 영역의 문제인 것 같다.
“지난번에도 넌 롤프의 검을 휘둘렀다! 난 그게 그저 단순히 우연히 비슷한 무기를 사용한 거라고 생각했건만!”
이건 미스텔테인에 관한 이야기.
“이제 보니 네 녀석, 우리 오크 종족의 고귀한 영혼을 훔쳐 가고 있었구나!”
그리고 오늘 내가 꺼내 든 레바테인까지.
지난번과 오늘의 전투에서 내가 사용한 오크 신들의 무기를 보고서, 그는 내 힘에 관해 무언가를 알아챈 것 같았다.
그 녀석이 진정으로 화난 지점은 바로 그 ‘영혼 흡수’라는 부분.
오크들의 의식 수준은 아직도 먼 옛날 신화시대 속에 머무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네놈의 더러운 손으로 고귀한 전사의 영혼을 모욕하지 마라!”
쉬이이익!
요르겐은 검을 맞대고 있는 자세에서 칼을 재차 휘둘러 검기를 뿜어냈다.
미는 동작과 베는 동작 사이에 그 어떠한 간격도 존재하지 않는, 기적의 참격.
손이 하나밖에 없음에도 그는 마치 두 자루의 검을 동시에 휘두르는 것 같은 고속의 검술을 펼쳐냈다.
‘적색파동발산, 주작 레바테인.’
물론 나 역시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초근접 거리에서 적색파동기를 사용해 그의 공격을 받아친다.
화아악!
맞대고 있는 레바테인의 화염 칼날이 더욱 세차게 휘몰아치며 막대한 양의 홍염을 뿜어내고.
곧 그 불꽃은 신수 주작의 형상이 되어 날개를 펼쳤다.
참격의 궤적을 따라 원을 그리며 휩쓰는 수준에 그치는 갈라틴과는 달리.
레바테인으로 발산되는 주작의 형상은 전방으로 부채꼴을 그리며 날개에서 거대한 화염을 직접 뿜어내는 공격.
주작이 지닌 불의 힘을 훨씬 더 직접적으로 드넓게 흩뿌리는 공격이 된 셈이다.
투쾅!
티르의 검기와 레바테인이 자아낸 주작의 불꽃이 서로 경합한다.
두 거대한 힘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맞부딪친다.
쩌엉! 카가가각!
그로 인해 나와 요르겐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크게 튕겨 나갔고.
그 주변에 서 있던 인간 기사들과 오크들은 충격파에 휩쓸려 상당수가 죽어버렸다.
“뭔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화르륵!
난 그 상태에서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하늘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적색파동을 덧씌운 레바테인을 발동한다.
이번의 공격 목표는 적 오크 병사 다수가 모여 있는 진영 한가운데.
“너희들 영혼 따위는 내 관심사가 아니야. 롤프니 알비드니, 각성자들의 영혼 따위는 어디로 가든지 알 바 아니라고.”
콰우우!
아까보다 크기가 더 큰 주작이 형성되어, 날개로부터 고열의 화염을 전방으로 뿜어냈다.
세계를 불태운다는 검, 레바테인의 불꽃이 신수의 힘과 합쳐져 이 자리에 재현되었다.
이 광역 공격은 받아친다 하더라도 큰 피해를 입을 것이고, 피한다면 저들이 데리고 온 오크 병사 대부분이 휩쓸려 나갈 것이다.
“젠장……! 퇴각이다!”
파아앗.
그러자 요르겐은 더 이상 나와 싸우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는지, 모두에게 퇴각 명령을 내렸다.
이곳 바벨탑 내부는 퀘스트 장소로 취급되어 나가고 싶을 때 언제든 나갈 수 있다.
그저 시스템 메시지의 물음에 ‘나가겠다’라고 대답만 하면, 그 즉시 원래 자신들의 차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난 무슨 수를 쓰더라도 오크계로 되돌아간 그들을 추적하는 게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난번에도 놓쳤고, 이번에도 놈을 죽이지 못했다. 두 번이나 그렇게 내버려 둘 순 없어.’
난 이대로 끝내길 원치 않았다.
마지막 한 놈이라도 더 데려가기 위해, 최후의 일격을 먹인다.
‘요르겐. 티르 수호령의 각성자. 저놈이 오크 종족의 구심점이다.’
목표는 시도 때도 없이 분열되는 오크들을 하나로 모은 오크들의 리더, 요르겐.
“이게 무슨……?”
투콰콰콰콰쾅!
놈이 레바테인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에 신경 쓰고 있는 사이, 전혀 다른 방향에서 20자루의 무기들이 그의 몸으로 날아든다.
악의의 전당 무구 전탄 발사.
파동을 소모하는 발동기술과는 별개로, 집중력만 유지한다면 얼마든지 동시 전개가 가능한 기술.
요르겐이 주작의 화염에 신경을 빼앗긴 사이, 나는 몰래 허공의 다른 지점에 무구를 소환해 발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헉…….”
놈은 결국 내 무구에 의해 전신이 꼬챙이처럼 꿰인 채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죽어라.”
콰우우!
“끄아아악!”
그런 그의 몸 위를 뒤덮으며 몰아치는 주작의 화염.
다른 오크들은 이미 퇴각 명령을 듣고 자신들의 세계로 워프해 버렸지만, 요르겐은 그러지 못했다.
그는 불꽃에 휩싸여 시체조차 남기지 못한 채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티르의 영혼을 흡수한다.}
{악의의 전당 소환 무구 목록에 <티르빙>이 추가된다.}
{신규 특성 <저주받은 검성>을 습득했다.}
이로써 나는, 오크 종족을 통합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중심인물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 오크 종족의 결속은 급격하게 약화될 것이다.
* * *
나와 기사들은 오크들을 격파한 직후, 그대로 열쇠를 사용해 2층에 진입했다.
바벨탑 2층부터는 1층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그저 삭막한 거대 석재건축물의 내부일 뿐이었던 1층과는 달리, 흙바닥과 언덕, 수풀과 나무가 우거진 드넓은 자연경관.
그리고 그 위에 다양한 종류의 마물과 마수들이 거닐고 있다.
이 환경을 구성하고 있는 생물들이 사람을 잡아먹는 흉포한 괴물들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이곳은 완벽하게 조성된 자연 생태공원인 것이다.
“마스터, 이번에도 중앙 지역으로 갑니까?”
“그래. 아까 했던 대로 똑같이. 지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빠르게 5층에 도달하는 게 목적이다.”
“알겠습니다.”
물론 그런 주변 상황 같은 건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
지금 나는 가능하면 빠르게 5층에 도달해 내 영혼을 되찾는 게 1순위 목표였기 때문이다.
이 탑에서 얻을 수 있는 각종 강화 재료와 같은 이권은 그다음 이야기다.
“……쉿. 멈춰.”
그런데 그 과정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 문제가 생겼다.
드넓은 삼림 지대에서 탑의 중앙을 찾아 전진하던 도중,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흔적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두 사람이 아닌,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대규모 집단이 만든 흔적이었다.
‘……우리보다 먼저 2층에 들어온 자들이 있었다고?’
아무리 봐도 이곳의 마물이 만들어 낸 흔적은 아니다.
이동하면서 둘러본 결과, 여기에는 인간이나 오크와 같이 지성을 지닌 마물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건 건축물을 짓기 위해 나무 등의 자재를 베어낸 흔적이었다.
‘여기서 건물까지 짓고 자리를 잡는다…….’
단순히 자연 상태의 마물들이 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이건 확실히, 어떤 지성을 가진 종족이 미리 이곳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흔적이 확실했다.
‘흔적의 상태로 보아 시간은 최소한 일주일 이상 지났다……. 하지만 어떻게?’
문제는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인간, 엘프, 오크, 렙틸리언.
이 네 종족에게 할당된 공성전 스케줄은 모두가 동일한 날짜에 진행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그건 서로 간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알포드 성의 공성전이 1월 1일, 다른 모든 영지 중에서도 첫 번째로 진행이 되었고.
그에 따르는 후속 2차전도 알포드 성의 영주인 우리 클랜이 가장 먼저 치렀다.
따라서 ‘최초의 2차 공성전 승리자’가 되어 바벨탑에 가장 먼저 들어올 권한을 얻은 것도 우리인 것이다.
‘물론 천 명의 병사를 데리고 영국에서 태평양까지 이동하느라 이틀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 탓에 조금 늦긴 했지만…….’
그 이틀 사이 소수의 렙틸리언 종족이 먼저 들어와 있었던 것이나, 오크 족이 바짝 따라온 것?
그건 전부 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그사이에도 또 다른 2차 공성전 스케줄들이 무수히 잡혀 있었고, 급하게 움직이면 하루 이틀 정도의 차이는 얼마든지 좁히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흔적이 말하고 있는 정보는 그런 수준을 한참 뛰어넘었다.
‘일주일 이상 지났다……. 그렇다는 말은, 적어도 이건 알포드 성 2차전이 끝나기도 전에 생겼다는 얘기.’
만약 여기에 흔적을 남긴 자들이 바깥에서 들어온 자들이라면, 그들은 모종의 방법으로 2차전을 치르지 않고 바벨탑에 들어왔다는 뜻이 된다.
설령 공성전을 할 상대 종족이 없다고 하더라도, 최종 승자 결정 자체는 2차전 날짜 이후에 정해진다는 걸 생각하면, 답은 하나뿐이다.
‘설마……. 시스템의 규칙을 거스를 수 있는 존재가 또 있는 건가?’
무슨 수를 썼던지 정해진 세계의 규칙을 우회하는 게 가능한 자가 나 외에도 있다는 것.
‘직접 눈으로 확인해봐야겠어.’
난 그런 존재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흔적을 쫓아 조심스럽게 2층의 중앙지역으로 접근했다.
* * *
‘엘프들인가.’
흔적을 추적한 끝에 찾아낸 건 엘프들.
앞에서 만났던 렙틸리언과 오크들을 생각해 보면, 사실 남은 건 엘프들뿐이었기에 어찌 보면 답은 자명한 것이었다.
‘저들과 마주치는 건 처음이군. 그런데…….’
아무튼 이세계 엘프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이번이 최초였다.
이전에 스킬을 얻기 위한 퀘스트에서 ‘동굴 엘프’를 발견한 적은 있지만, 그건 그 퀘스트에서만 등장하는 NPC에 불과할 뿐.
우리나 요르겐 같은 진짜 지성체는 이곳에서 처음 본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들을 처음 발견하고서, 무척이나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건 다름 아닌 저 엘프들이 가지고 있는 도구들 때문이었다.
‘저런 게…… 시스템에 있었나?’
비현실적인 부유 능력을 가진 소형 비행정.
마나를 발산하는 황금 갑옷.
피웅! 피우웅!
파괴적인 광선을 뿜어내는 양산형 지팡이.
그걸 마치 제식 무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수백 명에 달하는 엘프들이 모두 일관적으로 갖추고 있었다.
분명 제각기 다 다른 수호령을 지닌 각성자들이 중간중간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힘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능력 발현 없이 도구 사용만으로 주변의 마물들을 손쉽게 정리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런 건 절대 시스템상 존재하는 도구 같은 게 아니었다.
‘설마……. 저걸 다 엘프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냈다고?’
그건 시스템과는 관계없이, 이면 세계 속에서 원래의 엘프들이 이룩한 ‘마법 문명’에서 탄생한 도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