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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131화 (131/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31화

바벨탑의 입장 조건은 보유한 영지 중 한 군데에서만이라도 각 종족 간 공성전의 최종 승리자가 되는 것.

내가 소유한 알포드 클랜은 두 번에 걸쳐 벌어진 공성전에서 모두 승리해 그 권한을 얻어냈다.

특히 꽤나 고생해야만 했던 오크 종족과의 1차전과는 달리, 엘프 종족과의 2차전은 사실상 거저 얻은 승리.

엘프계와 렙틸리언계는 알포드 성이라는 영지를 포기한 것인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항복했다.

덕분에 재정비 시간을 거의 가질 필요 없이 곧장 만전 상태의 병력을 이끌고 바벨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바벨탑…….’

위치는 태평양 한가운데의 한 인공 섬.

내가 인공 섬이라고 한 것은, 탑이 세워진 그 땅이 기묘하게 느껴질 만큼 완벽한 원형이었기 때문이다.

그 둥근 땅 위에, 하늘과 맞닿은 거탑이 우뚝 서 있다.

그 커다란 외형적 존재감 덕분에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 최상층에 내 영혼이 숨겨져 있다.’

난 고개를 들어 그 거대한 건축물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와서 보니, 옛날보다 규모가 훨씬 더 커 보인다.

물론 진짜로 실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때의 내가 지나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였던 터라, 심리적으로 다르게 느끼고 있는 것일 뿐.

‘혹시 될까?’

그런 생각이 떠오른 참에, 난 아르테미스의 활을 꺼내 들었다.

‘청색파동축적.’

모든 마나를 소진해 파동을 쌓고서는 바벨탑 상부의 외벽을 향해 시위를 당겼고.

피잉.

콰아아아!

화살을 쏘아냄과 동시에 청룡의 형상을 한 거대한 기운이 나선을 그리며 빠른 속도로 나아간다.

그 거대한 힘은 이내 바벨탑의 외벽을 허물어버릴 듯한 기세로 돌진했지만.

화아악.

무너지기는커녕 먼지조차 일지 않았다.

바벨탑 외벽에 닿은 청룡의 기운이,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역시나, 저걸 힘으로 깨부수고 들어갔던 과거의 내가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것이었다.

“어쩔 수 없나.”

결국 난 그때완 달리 정공법을 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철그럭. 철그럭.

천여 명의 기사들이 진형을 갖추고 내 뒤를 따라왔다.

난 바벨탑 앞에서, 이 모든 기사들과 함께 안에 들어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입장료는 1인당 10,000골드입니다.}

{총 입장료: 11,370,000}

{지금 바벨탑 1층에 입장하시겠습니까?}

‘뭐야, 입장료가 있었어?’

종족 간 공성 토너먼트의 최종 승리자라는 부분에만 신경을 쓰고 있느라 패치노트를 읽었으면서도 간과했던 부분인데.

사실 알고 보니 바벨탑은 입장할 때마다 골드를 내고 들어와야 하는 유료 던전이었다.

물론 유료 던전이라는 개념 자체야 과거에도 기업들이 하던 거라 그 자체로 큰 거부감은 없다.

게다가 지금은 국가 경제가 무너지고 시스템상으로 존재하는 ‘골드’가 기축통화를 대신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더욱 이상할 게 없었지만.

문제는 그 금액.

‘1골드가 예전 한국 원화로 따지면 천 원 정도니까, 1만 골드면 대략 천만 원……. 이 병력을 모두 데려가는 것만 해도 113억이 든다는 소리군.’

던전에 한 번 들어갈 때마다 한 사람당 만 골드를 내야 한다.

심지어 이건 사람과 사람 간의 거래도 아니어서, 만에 하나 한 번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려면 또 그만큼의 돈을 내야 하는 것이다.

{11,370,000골드를 지불하고 바벨탑에 입장합니다.}

물론 남들에겐 손이 떨리는 금액이겠지만, 지금의 내게 있어서 그쯤은 그냥 푼돈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이 던전은 나에게 더 유리한 장소가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여긴 내 영혼을 되찾는 것 말고도 자주 들락거릴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이러면 나야 더 좋지.’

왜냐하면 시스템이 그 정도의 입장료를 책정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마냥 돈만 나가는 던전이라면, 누구도 이곳에 들어오려 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 * *

바벨탑은 보통 던전과는 다르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은, 차원을 넘나들어 여러 종족들이 한곳에 모인다는 점.

즉, 일정한 스케줄의 종족 간 공성전이 아니더라도 항시 타 세계의 이종족들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다!”

비늘 피부로 뒤덮인 파충류 인간, 렙틸리언들이 우릴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 경계를 취했다.

“수가 너무 많아!”

“어떻게 저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온 거지? 그것도 벌써?”

그들이 가장 먼저 놀라워한 점은 다름 아닌 우리의 숫자.

그도 그럴 것이, 저쪽은 우리에 비하면 극히 소규모인, 수십 명의 병력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사실 저쪽의 숫자가 적다기보단, 던전에 진입하면서 사람을 천 명씩이나 데리고 오는 내가 이상한 쪽이겠지만 말이다.

“여기엔 너희들뿐인가?”

“그, 그렇다.”

렙틸리언 중 하나가 내 물음에 순순히 대답했다.

그자의 태도로 보아, 그는 우리와 대립각을 세우고 싶지 않은 것 같은 모양새였다.

애초에 충돌해 봐야 이길 수 있는 규모도 아니거니와, 공간 왜곡으로 인해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넓은.

이 거대한 탑 안에서 구태여 서로 싸울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터다.

어차피 여긴 서로 싸워서 누가 이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안에서 얻는 보상이 더 중요한 것이니 말이다.

‘신화는커녕 전설 수호령 각성자도 없군.’

심지어 저 중에 가장 높은 등급의 각성자가 역사급에 불과하다.

내 입장에선 굳이 저런 녀석들을 이종족이랍시고 족쳐봐야 먹을 것도 없는 셈이다.

그래서 난 그들을 관대하게 대하기로 생각했다.

“우린 너희와 싸우고 싶지 않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괜히 서로 피해 주지 말고, 알아서 잘하자고, 파충류 친구들.”

“아, 알았다.”

렙틸리언들은 살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그들이 그렇게 눈치 있게 빠져준 덕에, 우리 일행은 중앙 자리를 선점할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은 이 공간 안에서 가장 많은 숫자의 마물들이 재생산되는 지역.

일종의 노다지라고 볼 수 있는 장소로, 그런 곳을 우리 클랜이 차지하게 된 것이다.

“모두 사냥 시작해.”

“예!”

그렇다면 이쯤에서 궁금해질 것이다.

이런 지역을 선점해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무엇인가.

이곳 바벨탑 던전에서 다수의 마물을 사냥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

[마력석 강화 시스템]

-신규 아이템 ‘강화 마력석’ 추가

-강화 마력석은 바벨탑에서 등장하는 마물들이 코어 대신 사용하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강화 마력석을 투영무구에 사용 시, 해당 투영무구의 성능이 증가합니다.

───

우선 첫 번째는, 올해의 업데이트로 등장한 새로운 시스템, ‘마력석 강화’였다.

실물 무기가 아니라 각성자의 투영무구를 영구적으로 강화시켜 주는 시스템.

각성자의 능력을 업그레이드시킬 또 다른 수단이다.

즉, 무기나 탈리스만, 수호령과 같이 이미 다들 가지고 있는 것을 ‘좀 더 좋은 것으로’ 교체하는 게 아니라.

그와는 전혀 무관한, 완전한 성장의 새로운 갈래가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앞으로 마력석 강화를 하지 않는 자는 동급의 다른 각성자에 월등히 뒤처지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투콱! 촤아악!

내가 데리고 온 천 명의 기사들이, 중앙에 위치한 탁 트인 장소에서 주변의 모든 마물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이곳 바벨탑 1층에서 등장하는 주요 마물인 늑대인간들이 기사들에 의해 무참히 죽어 나갔다.

그리고 그것들의 가슴에서, 작고 파랗게 빛나는 돌멩이 같은 것들이 튀어나온다.

난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

<4등급 강화 마력석>

-투영무구를 강화하기 위한 재료.

-성공 확률: 95%

-성능 향상치: 2%

───

역시나 가장 낮은 층이라 그런지, 최하급의 강화 마력석이 나타났다.

그래도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기에, 난 그것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사실 나에게 진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두 번째 보상이다.

그건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열쇠였다.

“찾았습니다!”

<바벨탑 2층 진입 열쇠>

이곳 바벨탑에서 다음 층계로 올라가려면, 열쇠가 있어야 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높은 층계로 올라갈수록 위험성은 더욱 높아지고 그에 비례해서 보상도 많아진다.

그러니 그 좋은 보상을 얻기 위해 높은 층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건, 종족을 불문하고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다만 내 경우엔 그 동기가 조금 남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바벨탑 5층……. 거기에 내 영혼이 숨겨져 있다.’

다른 것보다도 내 영혼을 수복하는 게 가장 시급한 문제.

내가 이렇게나 많은 병력을 데리고 온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열쇠를 찾아 가능한 짧은 시간 내에 5층에 도달한다.

지금은 그게 제일 중요했다.

“잘했어. 올라가자.”

난 곧장 그 열쇠를 받아들고 광장 정 중앙에 위치한 큐브 모양의 구조물에 다가갔다.

그 구조물에는 작은 구멍 같은 게 있었는데, 지금 얻은 열쇠와 모양이 꼭 맞아 보였다.

상층으로 진입하는 문임이 확실하다.

스윽.

그렇게 그 구멍에 열쇠를 집어넣으려던 그때.

‘적이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강한 적의.

어딘가 익숙한 듯한 기운이 나를 덮쳐온다.

난 그 짧은 순간 고도의 반사 신경을 발휘해 가벼운 발걸음을 사용했다.

치지지직! 쩌정!

묠니르로부터 뿜어져 나온 뇌격이, 내가 서 있던 자리에 사정없이 떨어졌다.

천둥의 신 토르.

……를 수호령으로 삼고 있는 오크 각성자가 이곳에 나타났다.

“인간! 여기서 또 만나는군!”

* * *

지난번 공성전에서 마주쳤던 토르 수호령의 각성자가 나타났다.

‘뭐야? 이건…….’

그런데 이곳에 나타난 건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그 뒤에는 당장에라도 뛰어들 것처럼 흥분한 수백 명의 오크들이 서 있었다.

물론 천 명이나 되는 기사를 데려온 나에 비하면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문제는 가장 선봉에 서 있는 7명이었다.

{수호령: 티르(신화)}

‘……오딘, 로키, 수르트, 스카디, 헤임달……. 뭐야, 세계 전체에서 다 끌어모으기라도 한 건가?’

신화급 각성자가 토르를 포함해 무려 7명이나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지난번 공성전 때보다 숫자가 오히려 더 늘어났다.

“오랜만이군. 인간.”

티르 수호령을 가진 외팔의 오크가 먼저 나를 아는 체했다.

그래서 나도 그를 아는 체해줬다.

“요르겐이라고 했나?”

“호오, 내 이름을 기억해 준 건가? 이거 영광이로군. 우리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준 인간.”

“지금 날 방해하려고 하는 건가?”

물론 여기서 친목을 다질 생각은 없었다.

난 곧장 직설적으로 용건을 말했다.

“방해?”

“미안하지만 여기선 우리가 싸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 영역에서 알아서 할 일만 하면 되는 거라고.”

지금의 내가 저 녀석들과 싸워서 진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 많은 신화급 각성자들이 한꺼번에 덤벼 온다면, 당연히 우리 쪽은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내 영혼을 되찾는 데에도 괜히 걸림돌이 될 테고.’

여러모로 싸움을 피하는 편이 내게는 이득.

심지어 우린 당장 다음 층으로 올라갈 것이기 때문에 영역 다툼을 할 것도 없다.

그래서 최대한 갈등을 피하고자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 열쇠를 준다면 생각해 보도록 하지.”

“……뭐?”

그런데 요르겐은 내 손에 쥐어진 2층 열쇠를 가리키며 대놓고 내놓으라는 소리를 했다.

일부러 도발을 하려는 건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것이다.

난 그런 그를 침착하게 설득하려 했지만.

“이건 그렇게 얻기 어려운 게 아니야. 너희들도 원한다면 얼마든지 마물들을 사냥하라고.”

“우리가 그러는 동안 너희 인간들은 먼저 위층으로 올라가서 이득을 독식할 거고?”

“하?”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 꼴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지. 여기서 상층에 최초로 올라가는 건 무조건 오크 종족이어야 한다.”

스릉.

요르겐이 칼을 뽑자, 그 뒤에 서 있던 모든 오크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저건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진짜 싸우자는 의지.

결국 애초부터 저놈들은 우리가 뭔가 여기서 이득을 취하는 것 자체를 아니꼽게 여겼던 것이다.

‘이런 거였구나.’

그제야 실감했다.

왜 이런 던전이 공성전과 함께 나타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나는 이곳 ‘바벨탑 던전’의 존재의의를 잘못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긴 각자 알아서 마물을 사냥해가는 던전 따위가 아니다.

공성전보다도 더욱 무자비하고 잔혹한 종족 간 전쟁이 벌어지게끔 만들어 놓은, 살육의 투기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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