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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130화 (130/348)
  •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30화

    시스템.

    그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의지를 가진 지식 그 자체였다.

    육체도, 영혼도 없지만 마치 신처럼 행동하는 존재.

    내가 신계를 모조리 파괴하는 동안, 아후라 마즈다는 그런 괴물 같은 물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시스템 외의 그 어떤 개체도 관리자 권한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는 문자의 권능으로 세상을 휘젓고 다니는 나에게서 그 권한을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전의 솔로몬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게 가능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지식을 깨우친 내게 끝끝내 영향을 주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가 선택한 건 자신의 권한을 포기하면서까지 문자의 권능에 제약을 거는 ‘시스템’이었다.

    세계의 법칙을 관리하며, 법칙에 위배되는 모든 존재를 자신의 영역 밖으로 배척하는 지식 그 자체.

    그 안에 있는 것들은 시스템에게 복종해야 한다.

    설령 신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나에게 굴복하느니, 기계장치나 다름없는 것의 노예가 되겠다는 건가.’

    나를 없애기 위해 자기 자신들을 영원히 시스템 속에 종속시킨 것이다.

    ‘수호령’이라는 형태로 말이다.

    이처럼 과격한 방법이 또 있을까.

    {붕괴된 세계를 수복합니다.}

    {필멸자들은 각 종족별로 ‘이면세계’에서 새로운 문명을 건설합니다.}

    그렇게 ‘수호령 목록’이라는 한낱 활자 아래 종속되어 버린 신들이 원하는 건, 당연히 부활일 것이다.

    붕괴한 세상을 재건하고, 다시 그 세상에서 예전처럼 떠받들어지며 신으로서 살아가는 삶.

    그때를 위해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지상계를 복구하고, 신계 또한 원래대로 되돌린다.

    그 작업이 이루어지는 동안 필멸자들은 종족별로 ‘이면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각자 새로운 문명을 건설.

    그러다 미래의 어느 적당한 시점에, 세상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만드는 작업을 행한다.

    ‘수호령’이라는 형태로 봉인되었던 신과 영웅들이 필멸자의 몸을 빌려 다시 이 세상에 강림하는 것이다.

    {각성자의 육체와 신화 수호령의 동화율이 100%에 도달하면, 해당 수호령은 각성자의 육체를 지배합니다.}

    이것이 아후라 마즈다가 만든 새로운 세상의 규칙이었다.

    {[수호령 목록]에 등록되기 위해서는 인가를 받아야 합니다.}

    {당신은 인가된 불멸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난 그 규칙 안에 들어가 있지 않다.

    {당신은 지옥으로 축출됩니다.}

    원칙대로라면 세상을 지배하는 새로운 관리자인 ‘시스템’에 의해, 영역 밖 세상인 지옥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절대 그럴 순 없어.’

    바로 그때 난 직감했다.

    여기서 벗어나는 순간, 신들에 대한 복수는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 될 것임을.

    지금 지옥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지상으로 올라오지 못하는 채로, 그 안에서 자극이나 쫓으며 살아가는, 솔로몬과 같은 꼴이 될 것임을.

    그래서 나 또한 아후라 마즈다와 같은 선택을 하기로 했다.

    나 자신을 시스템 안에 종속시킨다는 선택을 말이다.

    * * *

    내게 주어진 것은 극히 짧은 찰나의 시간에 불과했다.

    아후라 마즈다가 자신의 목을 찌르며 사망한 순간, 시스템이 발동되며 당장 나를 지옥으로 축출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가 나타난 후부터 지옥에 떨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 기껏 해봐야 겨우 1초? 길어도 2초?

    그것밖에 되지 않는 시간 내에, 지금 내가 가진 문자의 권능 속에서 어떤 새로운 진리를 탐구해 돌파구를 찾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 치밀하게 짜인 ‘자립 지능형 관리자’의 감시망을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낸다는 건, 그만큼 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승자의 사고체계.’

    그래서 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조금 위험한 방법까지 동원해야 했다.

    집중 시간 동안 주변 세상의 시간을 멈추고 고속 사고를 할 수 있는 아테나의 특성.

    ‘심상세계 진입.’

    그걸 발동한 상태에서 내면의 의식 속으로 들어간다.

    이중 사고 가속으로 영원과 다름없는 자각몽을 꾸게 되는 셈이었다.

    다만 부작용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을 심상세계 속에 갇혀 있어야 할지는 완전한 미지수였지만 말이다.

    ‘상관없어. 지금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야 하니까.’

    그렇게 나는 나만의 내면 안에서 아후라 마즈다가 만들어낸 ‘시스템’에 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온갖 규칙, 세상의 지식, 전술했던 신들의 의도.

    그 모든 것들을 다 여기서 밝혀냈다.

    이걸 해내는 데에는 당연히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이 걸렸다.

    실제로는 겨우 0.1초 미만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이 안에서 내 정신은 체감상 수백일 이상을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시스템의 감시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물론 그것도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문제의 해석을 끝냈으니, 지금부터는 그에 대한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내가 떠올린 해답은 아후라 마즈다가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지능 체계를 만들었듯, 나 역시 그처럼 자립할 수 있는 체계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해야 한다.

    지금 이 기회를 놓쳐버리면, 신들에게 복수할 기회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악의가 눈을 뜬다.}

    {시스템의 감시를 피해, 은신처를 찾아낸다.}

    그렇게 또다시 긴 시간이 흘러, 나는 시스템의 지배하에서 나의 의지를 이어갈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시스템의 관리자만큼 크고 강력한 자립 지능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아후라 마즈다가 만들어낸 영역 내에 몰래 침투하는 물건이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기존의 규칙을 뒤틀고 작은 예외를 만들어내는 힘.

    그 예외를 통해 시스템에 종속된 존재들보다 월등히 앞서나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서 저 ‘신화 수호령’들을 내 오른쪽 눈에 봉인시킬 수만 있다면.

    그걸로 내 복수는 완성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건 나 자신의 처분인 건가.’

    이로써 환경은 갖췄다.

    미래를 도모하는 일만이 남았다.

    내 육신과 영혼과 힘을 시스템 안에 숨겨놓고, 신들이 다시 활동을 시작할 때, 그때 다시 찾는 것이다.

    ‘내 영혼은 이곳, 바벨탑에.’

    우선 내 영혼은 지금 이 장소, 바벨탑에 숨겨 둘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온다고 해도, 적합한 존재가 아니면 절대 찾을 수 없도록 잠금장치를 걸어놓은 채로 말이다.

    ‘내 힘은 수호령 목록에.’

    그리고 나의 순수한 힘, 아지다하카는 전설적 존재로서 다른 영웅들과 함께 수호령으로 등록된다.

    수호령 아지다하카는 세상을 움직이고 내 목표를 이뤄낼 기반이다.

    ‘내 육신은 미래에.’

    마지막으로, 그 힘과 영혼을 받아들일 나의 육신은.

    미래의 어느 곳, 어느 시점에 태어나 다른 신들이 강림할 때 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춘 채 복수를 도모한다.

    ‘이면세계…… 제1인간계.’

    그렇게, 차원을 뛰어넘어.

    무수한 시간을 뛰어넘어.

    지구.

    서기 2007년의 어느 날, 대한민국.

    “저 바구니에 담긴 애, 신생아 아니야?”

    “어머! 누가 저렇게 어린 애를 길가에…….”

    그곳에 나, 앙그라 마이뉴의 환생이 태어났다.

    “네 이름은 유신우란다.”

    그 아이에겐 유신우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입양해 주는 양부모도 없이 고아원에서 자라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했다.

    악마의 환생 유신우.

    각성자가 되고서 생계를 위해 위험한 일도 마다치 않으며 살던 그는.

    “응? ……아, 이런!”

    어느 날 서울역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 하나를 발견한다.

    {아지다하카 획득 시나리오 발동}

    {골드-다이아 무한수정 알고리즘 발동}

    그것이 내 힘을 수복하기 위한 트리거였다.

    * * *

    -나는…….

    ‘나는…….’

    -앙그라 마이뉴다.

    ‘앙그라 마이뉴다.’

    모든 진실을 깨달았다.

    아흐리만.

    앙그라 마이뉴.

    유신우.

    그 모든 게 다 나 자신이었다는 진실을.

    과거의 기억 속에서 무수한 상실 끝에 복수심에 집어 삼켜져 세상을 파괴하려던 악마, 앙그라 마이뉴도 나였으며.

    그동안 내 육체의 주도권을 빼앗으려 옥신각신했었던 ‘아흐리만’ 역시 나 자신이었다.

    그것이 마치 또 다른 영혼이 나에게 덧씌워진 것처럼 느껴졌던 건.

    기억을 되찾는 과정에서 현실의 나인 ‘유신우’와 과거의 나인 ‘아흐리만’ 사이에 정체감의 혼란이 나타난 결과.

    내 안에서 두 인격이 공존하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니 어느 한쪽을 완전히 쫓아내는 게 불가능했지.’

    이제야 나에게 나타났던 증상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모나와 닮은 아델을 보며 애틋한 감정을 느꼈던 것.

    위기에 처한 가족들이 아흐리만의 가족과 겹쳐 보였던 것.

    그 외에도 몇 번이고 나와 아흐리만 사이에서 정체성이 흔들리곤 했던 이유는 다 그가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또한 순수한 힘에 대한 갈망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껏 단순히 좀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싶다는 욕망 이상으로, 각성자로서의 정점에 도달하기를 원했다.

    그 역시 앙그라 마이뉴로서 복수를 위해 다른 모든 신들을 압도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본능적 필요성에서 나온 욕구였던 것이다.

    ‘……그래. 복수.’

    이제 수만 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이곳.

    알포드 성에, 나는 유신우로서 살아 있다.

    그리고 내 눈앞엔, 나를 지키기 위해 모든 힘을 소진한 채 눈을 감은 이진윤이 서 있다.

    ‘백선율……. 아후라 마즈다.’

    나는 그의 등을 보며 떠올렸다.

    긴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이 질기고 질긴 증오의 고리는 구태의연한 과거의 유물 따위가 아니다.

    현재의 나를 위협하고, 현재의 내 친구를 죽인,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는 실재하는 적이다.

    ‘반드시 죽인다.’

    난 아후라 마즈다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다.

    그리고 과거의 나 자신인 앙그라 마이뉴의 유지를 잇기로 다짐했다.

    * * *

    3주 후.

    알포드 성 공동묘지.

    이진윤의 시신이 안장된 무덤을 찾았다.

    묘비 앞에는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꽃이 가득했다.

    예전에 나 대신 그가 클랜장으로서 이 성을 관리하는 동안, 사람들에게 꽤나 후한 민심을 얻었던 모양이었다.

    다리우스와 보그단뿐만 아니라, 아델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했다.

    ‘최후는 쓸쓸했지만…… 부디 영혼은 따뜻하기를.’

    물론 누구보다도 슬프고 미안했던 건 나였다.

    과정이 어찌 됐든 간에, 결국 이진윤은 나 때문에 죽은 거였기 때문이다.

    내가 신화 수호령을 얻으러 가자고 말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를 알포드 성으로 데려오지만 않았다면.

    애초에 처음부터 그와 같이 레이드를 진행하지 않았다면.

    죽지 않아도 되었을 사람이 나로 인해 죽은 거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어디선가 다 같이 다시 만날 날이 오겠지.’

    막연히 상상을 해본다.

    사실 영혼과 에테르의 성질에 대해서는 아는 것과는 별개로, 필멸자의 죽음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 긴 시간 동안 세계의 법칙에 대해 탐구했지만, 흩어져 사라지는 필멸자의 영혼에 관해서는 아직 전혀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흔히 생각하는 저승, 천상이라는 것도, 단지 불멸자들이 사는 현실 세계에 불과했을 뿐.

    “마스터.”

    한창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내 뒤에서 아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방해했다면 죄송합니다.”

    “아냐. 이제 돌아가려던 참이었어. ……채비는 모두 마쳤겠지?”

    “예. 모두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마법 검과 마법 갑옷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묘지 바깥에서부터 대기하고 있는 병력들도 마찬가지.

    “가자.”

    “예!”

    내 짧은 말 한마디에 성 전체가 울릴 정도의 우렁찬 대답이 터져 나온다.

    철그럭. 철그럭.

    내가 걸어가는 길을 따라, 천 명의 완전무장한 기사들이 길을 터주고 동시에 내 뒤를 따른다.

    이 대병력을 이끌고 가려는 최종 목적지는 다름 아닌 바벨탑.

    지금 당장 내 영혼을 되찾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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