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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124화 (124/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24화

근육질의 엘프 전사들이 만든 사각 방진은, 겉보기엔 단순하지만 실제로는 빈틈이 없는 진형이었다.

“찔러!”

투하아악!

저들 하나하나가 내지르는 창에서, 맹렬한 풍압이 뿜어져 나온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악마들은 그 한 방에 휩쓸려 갈가리 찢겨 나갔다.

“밀어!”

쾅!

그리고 방패를 내밀어 진로를 가로막는 잔존 병력과 시체들을 밀어낸다.

“전진!”

그 무엇도 저 엘프들의 진형이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그런 방진 수십 개가 일체의 흐트러짐도 없이 아몬의 군단들을 분쇄해 나간 것이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요새 같군.’

근거리, 원거리를 가리지 않고 커버하는 공격범위.

전 방위의 공격을 빈틈없이 막아내는 방어 대형.

그 놀라운 광경을 보고 있자니, 난공불락의 요새에 발이 달려 제 스스로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군대 전체에 신의 축복이 내려진 건가.’

보통은 정해진 한 명의 영웅에게 신의 가호가 내려져, 그자가 대행자로서 신의 권능을 발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금 저들은 저 안에 속해 있는 모든 구성원이 마치 하나의 개체처럼 신의 권능을 발산하고 있다.

평범한 필멸자 엘프들이 과거의 나처럼 일신의 무력을 키워 집단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대를 하나로 묶고 그 전체로서 거대한 권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저 방진에선 그런 힘이 느껴졌다.

‘아레스.’

올림포스 신계, 전쟁과 폭력을 관장하는 투신, 아레스.

그의 권능이 저 엘프 군단 전체에 덧씌워져 있다.

“전하, 아몬 군단의 잔존 병력이 전멸했습니다.”

때마침 대악마 ‘푸르푸르’가 내게 전황을 보고했다.

태도가 공손한 걸 보니, 그는 마르코시아스의 일을 통해 자신의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제대로 판단한 모양이다.

“추격해 올 기미는 보이지 않나?”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올림포스산으로 가기 위한 길목을 방어하는 데에 전념하기로 작정한 것 같습니다.”

엘프 족의 신들은 내 의중을 알아차리고 우리의 발목을 붙잡으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 시간 동안 어떻게든 내가 사용하는 문자의 권능에 ‘제약’을 걸 방법을 찾아내려 할 테지.

사실 꼭 그 제약이 아니더라도, 이미 지상에 나왔을 때부터 확연하게 느껴졌다.

지옥에 있을 때에 비하면 세계의 법칙을 비틀 수 있는 정도가 확연하게 약해졌다는 게 말이다.

수많은 신들의 영향력 하에 있는 지상과 신계에선, 이 권능의 위력 자체가 줄어드는 모양이었다.

‘특히 아후라 마즈다가 처음부터 나를 상대로 그걸 쓰지 않은 것만 봐도…….’

그 첫 발견자조차 마음대로 휘두르지 못하던 것을, 나라는 이질적 존재가 훨씬 더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니 저들 입장에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게서 이 힘의 사용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결국 저 진형을 어떻게든 뚫고 나갈 수밖에 없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정면으로 돌파해 주는 수밖에.”

난 그런 그들의 의도에 맞춰줄 생각이다.

* * *

투하아악!

하늘로 날아드는 악마들에게 엘프 방진의 장창 돌풍이 몰아친다.

대지, 대공. 적은 모든 방면의 공간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하늘로 우회해서 후방이나 상면을 치는 걸로 양동 공세를 취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저 진형 자체를 와해시키는 것밖에 없다.

‘필멸자들을 집단전에 강하게 만들어주는 권능. 방진을 붕괴시킨다면 저 권능의 영향력도 그만큼 약해지겠지.’

그렇게 판단을 내린 나는, 밀집 방진 대형의 약점을 노렸다.

그건 바로 병력 사이 간격이 너무 좁다는 것.

“일제 사격 준비!”

그래서 난 광범위 폭발형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악마들을 끌어모아 저 진형에 쏟아붓기로 했다.

‘악의의 전당.’

“쏴!”

‘전탄 발사.’

사격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나 역시 보유한 모든 무기들을 밀집 대형에 발사했다.

콰콰콰쾅! 콰쾅!

곳곳에서 굉음과 함께 연쇄 폭발이 일어난다.

방진을 구성하고 있는 병사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온갖 종류의 투사체를 막기 위해 방패를 들어 올렸지만.

신에 필적하거나 그 이상에 준하는 화력을 가진 대악마들의 공격까지 다 막아낼 순 없었다.

쿠구궁. 쿠궁.

필멸자 엘프들은 결국 그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진형 곳곳에 구멍이 뚫리며 붕괴하고 말았다.

“돌격!”

그리고 대기시키고 있던 모든 악마들을 진격시켜 여기저기 흩어진 적 병사들을 처리하도록 만들었다.

“전하, 저희는…….”

“기다려라.”

다만 그 와중에도 내 주변에 있는 측근의 엘리트 대악마들은 앞으로 보내지 않고 대기시켰다.

타이밍을 잡기 위함이었다.

“적의 정예 예비대는 반드시 나중에 등장한다. 그때를 맞춰서 우리가 그들을 상대해야 한다.”

진형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정작 저들에게 가호를 내린 아레스 본인은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올림포스의 다른 신들도 마찬가지.

하다못해 자신들의 권능을 직접적으로 부여받은 영웅들이라도 등장할 법한데, 지금 우리를 막아선 건 오직 엘프 전사들뿐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느 순간 결정적 타이밍에 역전을 노리고서 공격해올 거란 징조.

나를 포함한 대악마들은 바로 그 타이밍에 정면 대응하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어야 한다.

‘어디냐? 언제 나올 것이냐?’

난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고서 전장의 상황을 지켜봤다.

어느 방향에서, 언제 진짜 정예 부대가 나타날지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촤악! 투콱!

저 앞에선 엘프 전사들과 악마 군단이 이리저리 뒤엉켜 난전을 벌인다.

아까 전과 같이 일사불란한 집단 전술 체계는 사라진 지 오래.

그저 각자의 전투 능력에 따라, 짧은 검 한 자루와 방패만으로 악마들에게 대적하고 있다.

“카아악!”

“하압!”

붉은 망토.

근육질의 몸이 고스란히 드러날 정도로 가벼운 경무장.

그리고 방패와 한손검.

아레스의 가호를 받은 엘프 필멸자들이, 악마들을 베어 나간다.

절제된 동작으로 군진을 이루던 일사불란한 모습과는 달리 철저히 감각적인 본능으로 압도적인 전투 기술을 뽐낸다.

‘……잠깐.’

그쯤에서 나는 눈치를 챘다.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전하, 적들이 아까보다 더…….”

‘진형이 무너졌는데, 오히려 더 강해졌다.’

우리의 일제 사격 공격으로 군진이 붕괴된 엘프 전사들이, 오히려 더 뛰어난 개별 전투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제는 각자가 붉은 안광까지 내비치고 있고, 아레스의 가호가 빚어내는 신의 기운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성질로 변해 있었다.

‘이건…… 무언가 다르다.’

투쟁과 전투 본능의 가호.

분명 똑같은 군신의 권능임은 틀림이 없는데, 어째선지 추구하는 방향이 급격히 달라진 것이다.

“아군이 밀려나고 있습니다!”

엘프 병사들의 공격이 더욱 거세어지고, 악마 군단은 가면 갈수록 약화된다.

이대로 가다간 저 병력을 모두 잃을지도 모른다.

‘퇴각해야 하나?’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현재 대륙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전황이 한꺼번에 펼쳐졌다.

‘군단장 바알이 이끄는 제1 야전군은 북쪽에서 밀고 내려오는 발할라와 아발론 신계의 적과 대치 중. 아스모데우스의 제3 야전군은 남쪽의 이우누 신계의 공격을 차단하고 있다.’

나는 악마군을 세 개의 야전군으로 쪼개어 대륙 전체에 걸친 전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나는 그중 제2 야전군을 이끌고 올림포스 신계로 진격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런데 만약 핵심 공격부대라고 할 수 있는 제2 야전군이 여기서 물러나게 되면, 우리는 큰 피해를 입은 채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된다.

남쪽과 북쪽에서 몰아치는 공세를 방어하는 가운데, 공격군의 진격이 실패한다면 완전히 발목이 잡히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재정비를 하는 동안 아후라 마즈다에 의해 대책이 세워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퇴각하면 진다……. 무리해서라도 올림포스를 무너뜨려야 한다!’

난 결국 여기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대악마들도 공격에 가세한다. 지금 당장!”

“예!”

올림포스 신계 측의 신들이 아직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눈앞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도박을 해야만 한다.

내 직접적인 무력을 소진해서라도 억지로 기회를 만들어내야 한다.

* * *

쉬이이익!

쾅! 쾅! 콰콰쾅!

루의 창을 휘두를 때마다 번개처럼 뻗어 나가는 창날에 수십, 수백의 엘프들이 한꺼번에 휩쓸려 나간다.

그와 동시에 악의의 전당에 등록된 무구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내려 추가로 수백의 엘프를 찢어발긴다.

저 멀리서는 거대한 마수 형상으로 변형한 대악마들이 마구 난동을 부리고 있다.

아레스의 권능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대악마와 나를 비롯한 정예 용장들이 일선에 나서자, 전세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밀어붙여라! 후퇴하는 적을 놓치지 마라!”

급기야는 기세에 눌린 적 병력들이 도망치기까지 했다.

붉은 안광을 내뿜으며 막강한 전투 기술을 구사하던 그들은 더 이상 이곳에 없었다.

“이대로 올림포스산까지 간다!”

이 병력만 궤멸시키면, 순식간에 신계에 진입할 수 있다.

잔존한 악마 군단의 화력 지원을 받으면서 천천히 엘프 신들을 사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하!”

그런데, 승기를 잡아가던 와중에 푸르푸르가 사슴 마수 형상으로 변한 채 급히 내 쪽으로 뛰어왔다.

“전하! 언덕 너머에 적이…….”

푸확.

그는 무언가 급하게 말하려다, 멀리서 날아온 화살에 목덜미가 관통당했다.

화르륵!

곧이어 화살에서 뻗어 나온 뜨거운 화염이 몸 전체를 순식간에 소각해버렸다.

쉬익!

화살은 그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날아왔다.

나는 그 두 번째 화살을 간신히 피하는 데 성공했지만.

퍽!

거의 간격 없이 날아오는 세 번째 화살은 피하지 못했다.

화르륵!

“크윽!”

예의 화염이 온몸을 뒤덮는다.

이건 평범한 불꽃이 아닌, 신의 불꽃.

그것도 필멸자에게 내려진 가호 같은 게 아니라, 신 그 자체가 사용하는 힘이었다.

피잉! 쉬쉬쉬쉭!

연이어 나에게 무수히 많은 화살비가 쏟아졌다.

그 전부가 신의 불꽃을 머금은 화살이었고, 이윽고 대규모의 화염 폭풍이 천지를 태워버릴 듯 내 주변의 광범위한 영역에 몰아쳤다.

“내 동생을 다시 되돌려내라! 더러운 악마 놈!”

화살을 쏜 자는 여러 사람이 아닌 단 한 사람.

‘아폴론……?’

지옥에 떨어지기 직전, 아발론에서 본 적이 있는.

아르테미스의 친오빠, 아폴론이었다.

화아악!

내 육신은 그 화염 폭풍에 휩싸여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 사라졌다.

실로 압도적인 화력.

그렇게 나는 단숨에 부활 준비 상태인 영체로 변화하고 말았다.

‘우리가 먼저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그 상태에서 주위를 살펴보자,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알 것 같았다.

중앙에서 난전을 벌이고 있는 엘프 보병들과 악마 정예군.

그 주변 언덕 위에 모습을 드러낸 증원군.

아레스의 병력이 방진 주력의 군세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서, 난전이 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그건 아군의 하급 병종이 소모되도록 하게 만들기 위한 함정.

위기를 느낀 우리 쪽 정예 병력이 그 안으로 이끌려 들어가면, 한 박자 늦은 타이밍에 증원군이 나타나 십자 포화를 퍼붓는 것이다.

그 증원군에는 방금 날 죽인 아폴론도 있고.

“싸워라! 살육의 본능을 깨워라!”

후퇴하던 엘프 전사들을 다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전투 병기로 만드는 아레스도 있었으며.

-감히 올림포스를 넘보는 저급한 악마들! 모두 지옥으로 돌아가거라!

콰르릉! 콰릉!

하늘에서 대량의 벼락을 비처럼 쏟아내는 올림포스의 주신, 제우스도 속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다른 수많은 신들까지.

저들 모두가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악마 군단을 일거에 소탕하기 위해, 바로 이 순간을 기다렸다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급 악마들의 숫자를 먼저 줄여라! 대악마들은 죽여도 되살아나는 불멸자라 전력의 변화가 거의 없지만, 필멸자인 하급 악마들의 숫자를 줄이면 그만큼 적의 화력이 줄어든다! 그걸로 교착 우위 상태를 점하면 우리의 승리다!”

황금빛 갑옷을 입고서 하늘에 떠 있는 여신 하나가, 자신이 데리고 온 날개 갑옷의 엘프 여전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녀의 지시는 ‘시간 싸움’이라는 이 전쟁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고, 휘하의 여전사들은 그 핵심을 정확히 이해하고서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아테나}

투신에 가까운 아레스보다도 더 전술가적 면모를 가진 진짜 군신은, 바로 그 아테나라는 이름의 여신이었다.

그리고 아까 전 방진에 내려졌던 집단 전투의 가호도, 아레스가 아닌 바로 그녀의 것이었다.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두 전쟁의 신이 권능을 순차적으로 연계한 것이다.

지금 저 엘프 신들은 단순히 우리와 싸우는 걸 넘어서서, 어떻게 해야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귀쟁이 놈들…….’

결국 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경험의 차이라는 것을 말이다.

불멸자로서 살아온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고, 악마들보다도 훨씬 더 잦은 상호 간 투쟁의 역사 속에서 살아온 지상의 신들은.

불멸자 간의 전쟁을 어떻게 해야 이기는 것인지 제대로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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