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23화
본신이 아닌, 인간의 신체를 통해 지상에 강림하는 신.
그런 형태의 권능 부여는 이전부터 계속 있어왔지만, 지금 이곳에 아후라 마즈다가 그런 방식으로 나타난 건 빤한 이유 때문이다.
“필멸자의 몸에 숨어서 나와 대적할 생각을 하는 거냐?”
“당연하지. 넌 너무 위험하거든.”
촤아악!
그가 하얀 날개를 펼쳐 백색의 빛무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저것들은 하나하나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위험한 폭탄.
주변의 필멸자들이 휩쓸려 나갈 걸 알면서도 저런 공격을 사용했다.
내가 사람들의 죽음에 반응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자신들의 신자를 고기방패로 이용한 것이다.
{공간을 왜곡한다.}
난 거기에 문자의 권능으로 대응했다.
주변의 공간이 비틀리면서, 날아들던 공격이 한꺼번에 갑자기 하늘로 치솟았다.
“아니?”
세계의 법칙을 비틀어 억지로 만들어 낸 빈틈.
여기서 놈에게 피해를 가하는 건 내가 직접 해야 한다.
‘악의의 전당.’
콰콰콰쾅!
아공간에 비축되어 있던 지옥의 무구들이 한꺼번에 아후라 마즈다에게 날아들었다.
주변의 공간 왜곡 현상은 그대로라서, 충격파 또한 굴절되어 오롯이 놈에게만 집중된다.
“윽!”
아후라 마즈다는 날개로 몸을 감싸 공격을 막았지만, 그 날개는 여기저기 찢어져 걸레짝이 되었다.
제자리에 선 채 백수십 가지의 무구에 둘러싸여 있는 그.
코와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온다.
“죽어라.”
마지막으로, 루의 창을 손에 쥐고서 내지르려던 순간.
“잠깐! 나를 죽이면 네 손으로 이 인간을 죽이는 것이다!”
“상관없어.”
그는 나에게 마지막 남은 일말의 인간성에 기대려 했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난 더 이상 예전의 아흐리만이 아니다.
악마들의 군주 앙그라 마이뉴.
만약 내 앞을 가로막는 자가 있다면, 가차 없이 베어나갈 뿐이다.
“젠장!”
투콱!
루의 창이 아후라 마즈다의 날개 사이 빈틈으로 찔러 들어갔다.
연약한 필멸자의 육신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단순히 관통되는 것을 넘어 완전히 분쇄되었다.
다만 그 직전에 아후라 마즈다는 자신의 영혼을 빼돌려 영혼계를 통해 도주하려 했다.
“어딜!”
{영체를 붙잡는다.}
{붙잡은 영체를 네 쪽으로 끌어당긴다.}
난 문자의 권능으로 그 녀석을 붙잡았다.
저걸 끌어당겨 나에게 가져오기만 하면, 놈은 영원히 내 눈 안에 봉인되는 것이다.
-네놈……! 그 권능을 어떻게……!
아후라 마즈다는 또다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까 공간을 왜곡했을 때도 그렇고, 솔로몬의 권능이 내게로 넘어왔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솔로몬이 오래 전 지옥에 떨어진 뒤로 신들에게 대항하지 않았던 점 때문에, 이 문자의 권능에 대한 대응을 간과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넌 끝이다. 아후라 마즈다.”
만약 그런 거라면 나에겐 아주 좋은 상황이다.
여세를 몰아 악마 군단을 이끌고 신계를 박살 낼 절호의 기회.
놈들이 아직 이 권능에 익숙해지지 않았을 때.
솔로몬이 말했던 ‘제약’이 가해지기 전에.
이 힘을 최대한 활용해서 적들을 몰아붙여야 한다.
-흥! 네놈도 착각하고 있군.
그런데 한 가지, 내가 모르고 있던 것이 있었다.
-그 문자의 권능이라는 금단의 지식을 최초로 발견한 자가 누군지 아느냐?
“……뭐?”
-그게 바로 나다!
다름 아닌 아후라 마즈다야말로 이 권능의 원천과도 같은 인물이라는 것.
{실패.}
{권한 부족으로 명령이 취소된다.}
세계의 법칙을 조정해 그의 영혼을 흡수하려는 내 시도는 처음부터 저지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허가되지 않은 접근을 감지했습니다.}
{당신의 권한을 박탈합니다.}
곧이어 그는 나에게서 문자의 권능을 빼앗아가려는 시도를 했다.
{취소.}
{두 최고권한자의 권한 행사 충돌로 인해 세계의 법칙 조정이 일정 시간 동안 중단된다.}
물론 나 또한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아후라 마즈다와 나의 법칙 조정 싸움은 그렇게, 무효로 돌아가게 되었다.
-젠장. ……두고 보자! 아흐리만!
그리고 결국, 그는 도주해 버렸다.
난 영혼계에서마저 자취를 감춰버린 그 녀석을 붙잡을 방법이 더 이상 없었다.
* * *
“빨리 움직여야 한다. 그들이 수작을 부리기 전에 속공으로 최대한 많은 신들을 죽인다.”
그 싸움 이후로 나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원래도 문자의 권능에 대한 제약이 걸리기 전에 속전속결로 신계를 평정해 나갈 생각이었는데.
하필 그 힘의 원전이나 다름없는 존재를 첫 적으로 마주해 버린 것이다.
덕분에 신계 측에서도 대책이 빠르게 취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지정 좌표로 이동한다.}
{법칙 조정 중단으로 인한 실패.}
게다가 아까 전 아후라 마즈다와의 싸움으로 인해 공간이동 또한 불가능해졌다.
대규모 병력을 직접 이동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지리적인 거리를 고려해, 빠르게 대적할 수 있는 적을 찾아 움직여야만 한다.
‘여기서 가장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신계는…… 서쪽의 올림포스.’
지금 상황에서 가장 가까운 신계의 통로는 올림포스 산이다.
바다를 건너야만 하는 아발론이나, 대륙 최북단의 비프로스트까지 먼 거리를 이동해야 갈 수 있는 발할라에 비하면 올림포스 산은 여기서 그나마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서쪽의 올림포스 산으로 간다!”
{모든 악마들에게 계시를 내린다.}
내가 보낸 메시지가 악마 군단에게 떨어졌다.
다행히 세상의 법칙에 직접적 영향을 주지 않는 부분에 관해서는 아직도 유효하게 작동하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대규모 이동을 시작했다.
“악마다! 으아아아!”
가는 도중에 만나는 엘프들의 도시와 마을들은 모조리 초토화되었다.
그들을 향해 직접적으로 공격을 투사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지나가기만 했을 뿐인데도 그랬다.
물론 난 그런 희생 따위를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써 줄 여유도 없었다.
지금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올림포스 산에 가서 신계를 무너뜨려야 했기 때문이다.
“하하하핫! 모두 죽여라!”
그런데 그 와중에, 우리의 진격을 가로막는 존재가 나타났다.
그건 다름 아닌 아군이었다.
“마르코시아스! 여기서 뭘 하는 거냐!”
마르코시아스가 거대한 들개 형상으로 변형해 엘프들을 공격하고 있다.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될 추격까지 행하면서, 살육을 저지르느라 행군의 속도를 늦춘 것이다.
“보면 모르나? 악마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그는 내 다그침에도 뻔뻔하게 대답했다.
“우리가 진정으로 적대해야 할 대상은 신이다. 이런 필멸자들이 아니라!”
“진정? 진짜 마족도 아닌 네가 뭘 안다고 ‘진정’을 논하는 거지? 애초에 이 전쟁도 결국 너의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 아니었나?”
“뭐라고……?”
“진짜 악마들이 원하는 건 그저 세상이 불타는 것. 그뿐이다. 목적성을 가진 전쟁이 아니라.”
나는 바알의 카리스마가 악마들을 지휘하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신들과의 전쟁을 원했고, 나 또한 마찬가지이니 같은 목적을 가진 존재로서 수월하게 일을 진행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똑같다.
“넌 바알이 아니야. 진짜 마족도 아닌 주제에 내게 멋대로 명령 내리지 마라.”
다만 그것이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내 지휘력에 발목을 잡는 요소가 되었을 뿐이다.
마르코시아스는 내가 아닌 바알에게 충성한다.
그리고 지금은 바알이 가까이 있지 않다.
지옥이 아니기 때문에 문자의 권능으로 강압할 수도 없다.
‘여기서 바알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내 위상은 더욱 떨어진다.’
그렇다고 지금 나보다 하급자인 바알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마치 고자질하듯 이 상황에 대한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는 노릇.
이건 내 힘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마르코시아스.”
“왜? 앙그라 마이뉴.”
쾅!
그래서 주먹으로 놈의 주둥이를 후려갈겼다.
“으헉!”
“까불지 마라. 네 군주는 바알이 아니라 나다.”
내가 선택한 방식은 공포 통제.
지금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덕이나 인망 같은 걸로 환심을 사는 건 불가능하다.
더욱이 이 개차반 같은 성질머리의 악마들을 다루는 데는 오직 매가 약이었다.
콱.
“끄……어억.”
난 그놈의 코를 지르밟고 그 위에 올라섰다.
“지금부터 나를 부를 때는, 앙그라 마이뉴가 아니라 ‘전하’라고 불러라. 알겠나?”
“개소리…… 하고 있…….”
뻐억!
“으헉!”
“말투는 공손하게.”
쾅! 쾅! 쾅! 콰직!
끝까지 반항하는 마르코시아스의 주둥이를, 나는 바닥에 처박은 채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내리찍었다.
결국 놈은 얼굴이 엉망이 된 채 마수형에서 인간형으로 모습이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적과 싸우는 것보다도, 네놈의 버릇을 고치는 게 우선인 것 같구나. 이 싸가지없는 똥개 새끼.”
“으……어…….”
이건 본보기였다.
이 녀석과 같은 생각을 가진, 나를 진짜 악마로 인정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경고.
인간 아흐리만 장군은 절대로 이렇게 하지 않았겠지만.
악마 앙그라 마이뉴는 철저한 폭력과 억압으로 다스린다.
지옥의 악마들은 이렇게 해야만 통제할 수 있다.
“앙그라 마이뉴…… 전하!”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내 뒤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예의를 갖춰 불렀다.
“뭐지?”
그자는 커다란 박쥐 모습을 한 전령 악마였다.
“전방에서 진군하던 아몬 님의 군단이 엘프들에 의해 격퇴당했습니다!”
* * *
“아몬? 아몬이 패배를 했다고?”
“그렇습니다!”
아몬은 지옥 내에서 집단전에 가장 강한 군신이라 불리는 악마였다.
일신의 무력으로 따졌을 때에도 서열이 10위 안에 들 정도로 강하지만, 군단을 이끌고 있을 때에는 그걸 뛰어넘어 바알조차 위협할 정도로 뛰어난 전술 능력을 지닌 대악마.
그런 자가 신계에 도달하기도 전에 누군가에 의해 패배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상대는 절대로 필멸자로만 이뤄진 군대가 아닐 것이다.
“적은? 지휘관은 어떤 신이었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상황이 워낙 급박해서 이름을 듣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 군대의 구성원이 엘프로 이뤄져 있고, 하나하나가 악마들을 훨씬 상회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외엔…….”
“개개인이 악마들을 훨씬 상회한다고? 그것도 엘프가?”
사실 하급 악마라고 불리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옥의 기준으로 ‘하급’이다.
악마들은 보통의 필멸자들과 비교하면 월등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날 때부터 전투 기계가 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엘프들이라니.
당장 직접 가서 상황부터 파악해야 할 것 같다.
난 곧장 전투가 이뤄지는 장소로 날아갔다.
* * *
“난 더 싸울 수…… 있다…….”
“안 됩니다! 이젠 퇴각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내 병사들이…….”
아몬이 탈진한 채 소수의 악마들에 의해 부축받고 있다.
여러 번 부활하며 싸운 끝에, 결국 거의 모든 힘을 소진해 버린 것이다.
불멸자라 죽지는 않겠지만, 소진한 힘을 억지로 짜내면서 싸워봤자 아무런 진전도 이뤄낼 수 없다.
“아몬, 어떻게 된 거냐?”
“앙그라 마이뉴……. 드디어 왔구나.”
그는 내 얼굴을 보고 무척이나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너 같은 군단장이 집단 전투에서 패배를 하다니, 상대는 대체 어떤 놈들인 거지?”
“……아레스…….”
“아레스?”
“저들을 지휘하는 신의 이름이다. 나 못지않게…… 아니, 나보다 훨씬 더 뛰어난 용장이다.”
아몬이 저렇게 인정할 정도면, 힘의 격차가 정말로 컸다는 뜻.
쿠구구궁. 쿠궁.
언덕 너머에서 진동이 울린다.
여전히 잔존 악마군이 적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몬. 너는 후방에 빠져서 기력을 회복해라.”
“하지만…….”
“쓸데없이 힘을 빼는 것보다는 그게 더 도움이 된다.”
“……알았다.”
그는 내 말을 단번에 알아들었다.
아몬을 부축하던 악마들은 그를 데리고서 그대로 퇴각했다.
“아레스라고……?”
그리고 난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언덕 너머의 현장으로, 다시 날개를 펼쳐 날아갔다.
그곳에서, 적의 가공할 만한 전투 방식의 실체를 목격했다.
“밀어!”
“전진!”
“찔러!”
지휘자의 간결한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엘프들.
사각 모양의 진을 형성하고서, 방패로 전방을 틀어막고 그 사이로 창을 찌르며 악마군의 진영에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들은 붉은 망토를 두르고서 창과 방패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하나하나가 엘프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강인한 근육질의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군신의 군대라 할 만한 적을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