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17화
한참 동안을 지옥에서 헤맸다.
저 붉은 하늘은 시간이 흘러도 바뀔 줄을 몰랐고,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 또한 지평선 너머로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난 나를 이곳에 떨어뜨린 신들에 대한 증오심만을 곱씹으며 움직일 뿐이었다.
“크하하하! 이게 웬 떡이냐! 처음 보는 먹잇감이로군!”
이따금씩 나타나는 기이하게 뒤틀린 생명체들은 하나같이 나를 보자마자 잡아먹으려 달려들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잡아먹히는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었다.
“크……어헉!”
으적. 으적.
지옥의 악마들.
내가 상대했던 신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놈들을 잡아먹어 봐야 내게 도움이 되는 것도 없고, 그저 갈증과 허기를 채우는 게 다다.
이 광활한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데 필요한 양분이나마 조금 되는 정도.
“살려줘! 제발!”
늑대 형상을 한 악마 한 마리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물론 그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난 묵묵히 다가가 놈을 붙잡아 포식할 뿐.
그런데 그놈의 입에서 내 귀가 솔깃할 만한 말이 튀어나왔다.
“잠깐! 너,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무작정 헤매고 있는 거지? 그렇지?”
“……그렇다면?”
“만약 날 살려준다면 이 근처의 지리를 알려주지!”
“이 근처의 지리? 그게 나한테 쓸모가 있는 건가?”
“그건…….”
놈이 말을 더듬자, 난 그대로 놈의 목덜미를 잡아당겨 내 이빨을 박아 넣으려 했다.
“자, 잠깐만! 지옥의 왕!”
“……응?”
“이 지옥의 왕이 있는 곳을 알아! 날 살려주면 그분이 계시는 곳에 데려다주지!”
“지옥의 왕?”
“그래! 너 정도의 힘이라면 그분께서도 흥미롭게 여기실 거야. 그럼 좋은 자리를 내주실 거라고. 너도 지옥의 영주가 되는 거야! ……그리고 날 네 집사로 임명하는 거지. 어때? 우리, 서로에게 좋은 제안 같지 않나?”
난 그 말에 흥미를 가졌다.
사실 이 녀석이 말하는 ‘지옥의 영주’라느니 하는 그런 자리에는 전혀 관심 없다.
내가 원하는 건 그 왕이라는 존재.
그런 자라면 혹시 이곳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방법만 안다면 빠져나가서 신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좋아. 널 살려주지. 날 그 지옥의 왕이라는 자에게 데려가라.”
“그, 그래……. 그럼. ……응?”
터억.
“가자, 출발.”
난 그놈의 등에 올라탔다.
기괴하게 뒤틀리긴 했지만 형상 자체는 늑대 형태라 딱 올라타기 좋은 네발짐승이었다.
“으으…….”
그놈은 자존심 상한 눈치였지만 별수 없었다.
이곳에서 약자는 무조건 강자의 말을 따라야만 한다.
내가 더 강하니, 자신의 등에 올라탄다고 해도 뭐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 * *
“여기다.”
잠시 후, 이 지옥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그럴듯한 건축물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인간의 성채를 연상케 하는 장소.
물론 진짜 성과 비교하면 전혀 다르긴 했다.
안의 구조는 병력이나 주민들이 생활할 수 있는 시설이라기보다, 좁은 공간에 악마들을 빼곡히 수납시킨 닭장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 수고했다. 그럼 가봐.”
난 그 늑대 악마 녀석의 등에서 내리면서 말했다.
그런데 그 녀석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자리를 뜨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뭐 해?”
“뭘 하긴. 이제 네놈이 우리 대악마님께 잡아먹히는 모습을 구경하려는 거지.”
쿠구구궁.
놈의 비웃음 섞인 말이 끝나자마자, 등 뒤에서 커다란 마력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그건 이곳에 온 이후, 처음으로 신과 마주했던 나를 전율하게 만들 정도의 힘이었다.
“누가 내 식사를 방해하는가.”
“대악마 마르코시아스 님께 바칠 제물을 가져왔습니다!”
뒤를 돌아보자, 두 발로 걸어 다니며 등 뒤에는 날개가 달린 개 인간이 하늘에 떠 있었다.
말했듯이 방금까지 식사를 하고 있기라도 했던 듯 주둥이에는 피와 살점이 가득 묻어 있었다.
“제물? 고작 이깟 먹이 하나를 가져와 바치겠답시고 내 소중한 식사시간을 방해한 것이냐?”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놈은 다른 놈과는 달리…….”
“시끄럽다.”
푸확.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늑대 녀석은 땅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촉수들에 휩싸여 갈기갈기 찢어졌다.
“어리석은 놈. 감히 이 몸에게 말대꾸를 하려 하다니.”
가만 보니 이놈들도 신들과 하등 다를 것 없는 놈들인 것 같다.
자기 아래에 있는 생물들의 생명을 하찮게 본다는 부분이 아주 똑같다.
다만 하나 차이점이 있다면, 적어도 이놈들은 그냥 대놓고 ‘지옥의 악마’라는 것.
적어도 여기 있는 녀석들은 사람들을 현혹해 정의와 진리의 편인 척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네놈은 꽤나 맛있어 보이는 먹이인 것 같구나.”
어쨌든 그놈은 날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다.
“그래? 칭찬해 줘서 고맙군.”
“칭찬이라, 큭큭.”
“너도 그래.”
“……뭐?”
“너도 그렇다고. 맛있어 보인다고.”
물론 나도 그 녀석이 마음에 들었다.
“하, 재밌는 놈이군. 네가 감히?”
“‘감히’? 그딴 단어는 지껄이지 않는 게 좋을 텐데. 별로 좋은 기억이 있는 말은 아니라서.”
마르코시아스의 표정이 급격히 굳는다.
“말을 섞어줬더니 끝을 모르고 기어오르는군. 그냥 죽어라.”
그러더니 방금 전처럼 손을 휘저어 지상에서 촉수들을 튀어나오게 했다.
그 기분 나쁜 오징어 다리 같은 것들이 나를 휘감으려 날아들었다.
촤아아악.
물론 내겐 어림도 없다.
양손의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러 모든 촉수들을 잘랐다.
쿠쿵! 콰릉!
그뿐만 아니라 거기서 뻗어 나온 날카로운 바람이 저 앞에 있는 성까지 휩쓸었다.
주체할 수 없는 내 힘은 지평선 너머까지 초토화시킬 정도로 흘러넘쳤다.
이전에는 야드가르가 다칠까 봐 함부로 발산하지 못했던, 날뛰는 폭력의 극한이었다.
“……너, 지금 무슨 짓을……!”
쿠구궁. 콰르릉.
마르코시아스가 눈이 휘둥그레지며 발밑에서 무너지는 자신의 성을 내려다보았다.
그사이 난 이미 그 녀석의 코앞까지 다가가 있었다.
“말했잖아. 맛있어 보인다고.”
콱.
놈의 목을 붙잡는다.
날카로운 손톱이 가죽과 근육을 파고들어 단단하게 고정된다.
내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붙잡은 다음, 난 그 녀석의 주둥이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이런…… 망할 놈이!”
으드드득. 콰직.
하지만 이 대악마라는 놈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놈의 신체가 갑자기 녹아내리는 액체가 되어 내 손에서 빠져나갔다.
그러더니 곧이어, 체적을 엄청나게 늘려서 거대한 괴물로 변신했다.
인간형 개가 아닌, 네 발로 서 있는 진짜 개.
날개 달린 개X끼가 된 것이다.
“넌 절대 여기서 멀쩡히 걸어 나가지 못할 거다!”
그 거대한 몸뚱이 전체에서 수십 개의 마법진들이 동시에 펼쳐졌다.
그 모든 게 각기 다른 종류의 마법들을 시전하는 술식들이었다.
* * *
“억…….”
“말해.”
물론 결과는 뻔했다.
놈은 다시 원래의 개 인간 모습으로 돌아와 내게 주둥이를 붙잡혀 있었다.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운 채로.
“지옥의 왕이 누구지?”
난 물론 이놈이 진짜 ‘왕’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아까 그 늑대 녀석이 ‘대악마’라는 명칭으로 부른 것도 그렇고.
이따위로 약해 빠진 개 따위가 이 거대한 세상의 왕 같은 걸 하고 있을 리도 없다.
그러니 이놈에게서 그 왕의 존재에 대해 캐내려는 것이었다.
“내가…… 너 따위에게 그분에 대해 알려줄 것 같…….”
콰직.
“으아아아악!”
“아직도 파악이 안 되나 보지? 네가 나를 그딴 식으로 부르면 안 된다는 걸?”
“으으…….”
“주제 파악 좀 하라고, 이 멍청한 개X끼야.”
난 그놈이 헛소리를 지껄일 때마다 사지를 하나씩 뜯어냈다.
오른팔, 오른 다리, 왼 다리, 왼팔.
시계방향으로 돌려 깎듯이 뽑았다.
이 악마란 것들도 고통은 느낄 줄 아는지, 그럴 때마다 비명을 질러댔다.
“다시 한번 묻는다. 지옥의 왕이 누구냐? 어딜 가야 그놈을 만날 수 있지?”
“……퉤.”
그런데 이 마르코시아스라는 녀석은 그렇게나 아파하고도 끝까지 반항이다.
이제 이 몸뚱이에선 사지와 양 날개까지 뽑아내서 남아 있는 건 목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냥 죽고 싶은 거구나.”
“죽여봐, 한번.”
으적.
그래서 난 그놈을 죽였다.
“크악!”
신들을 잡아먹어 흡수했던 것처럼, 하나하나 남기지 않고 정성스럽게 먹어치웠다.
으적. 으적.
이윽고, 마르코시아스의 시체는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으나.
……어째선지 내 눈으로 영혼이 빨려 들어오는 느낌은 없었다.
그저 배부르기만 할 뿐이었다.
“……이것들은 내게 붙잡히지 않는 건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대악마들은 신과는 달리 영혼을 가진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들과는 다른…… 어떤 특수한 방법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규정하는 놈들이었던 것이다.
“……별수 없군.”
결국 난 내 힘으로 ‘지옥의 왕’을 찾아내기로 했다.
물론 그게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단서였다.
‘분명 이 지옥 어딘가에 있기는 있다는 거지?’
마르코시아스 놈도 멍청한 게, 날 엿 먹일 거였으면 그냥 ‘그런 건 없다’고 거짓말을 했으면 되는 거였다.
괜히 ‘그분’이니 어쩌니하며 호들갑을 떨 필요 없이 말이다.
어쨌든 덕분에 그것의 실존이 확인되었으니, 내 입장에선 한 발이나마 앞서나간 것이다.
“지옥의 왕이 누구냐? 그놈은 어디 있지?”
그때부터 난 광활한 황야를 돌아다니며 눈에 보이는 악마들을 족족 잡아 족쳐다 그자에 대한 정보를 캐냈다.
반항하려 들면 죽였지만, 바른대로 말하려는 게 보이면 살려줬다.
내 나름대로는 원칙을 지켜가며 이어간 협박.
어차피 이곳에선 사방의 모두가 적이기에 후환이라는 게 무의미하고, 또 그렇게 잘만 말하면 살아남는다는 걸 인식시켜야 내게 협조하려는 악마도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일까.
“이 방향으로 계속 가다 보면, 이곳 지옥과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할 것이다.”
드디어 제대로 된 단서를 가르쳐 주는 자를 만났다.
“어울리지 않는 풍경?”
“마치 인간계처럼 풀과 나무가 무성한 숲 말이다.”
“여기에 그런 곳이 있단 말이지?”
“그래. 가는 도중에 방향을 잃지 않고 계속 일정하게 갈 수만 있다면, 네가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다.”
“정말로 그놈이 지옥의 왕이라고?”
“정확히는 악마들의 왕. 악마왕이라 불리는 자다.”
“좋아. 고맙다. 성의껏 가르쳐 줘서.”
내 말을 들은 악마가 잠시 멈칫했다.
“……고맙다라.”
그러고는 씁쓸한 듯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이곳에 떨어진 후로 처음 들어보는 말 같군.”
아무튼 그렇게, 난 ‘악마왕’이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을까.
밤낮도 없이 온종일 붉은 하늘이 지속되는 이곳에서, 시간 개념은 없어진 지 오래다.
난 결국 어느 순간부터 날짜 세기를 포기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는 시간 동안, 마주하는 모든 방해물들을 제거하며 한 방향으로 걸어간 끝에.
난 드디어 찾아냈다.
악마왕이 거주하는 곳으로 추정되는, 숲을 말이다.
‘진짜 풀과 나무잖아?’
물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 이런 곳에 풀과 나무라니.
오랜만에 만난 평범한 풍경이라 그런가, 반가운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아무튼 그렇게 그 숲속으로 들어간 나는, 한가운데에 크고 화려한 저택을 발견했다.
‘……사람?’
그 저택 바깥에는, 깔끔하게 조성된 정원을 가꾸는 자가 있었다.
그건 몸이 어딘가 하나씩 뒤틀려 있는 악마들과는 달리, 지극히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간이었다.
엘프나, 오크 같은 이종족도 아닌, 나와 같은 인간.
덥수룩한 수염에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보통의 남자.
“왔군.”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아주 여유로운 태도로 맞이했다.
“얘기는 많이 들었네. 그렇게나 나를 찾아다니는 자가 있다고.”
이 넓은 세계에 벌써 나에 관한 이야기가 알려져 있는 모양.
난 그의 인사를 묵묵히 받아줬다.
남자는 내게, 스스럼없이 자신의 신분과 이름을 밝혔다.
“인사하지. 내가 바로 자네가 찾던 악마왕, ‘솔로몬’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