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16화
이진윤은 어릴 때부터 가족들에게 무시당하며 자라왔다.
유명 재벌그룹의 3세.
촉망받는 미래의 경영자들.
그런 스포트라이트는 전부 형과 동생이 독차지했다.
형은 장남이라서.
동생은 어릴 때부터 특출났던 천재라서.
평범한, 아니 그보다는 조금 모자란, 아들 많은 집 둘째 아들에게는 관심이 갈 수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물론 남들이 듣기에는 너무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재벌가 아들로 태어났는데, 가족의 관심 같은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심지어 가족도 없이 자란 유신우도 잘만 살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그냥 그렇게 의연히 받아들이기에는, 어릴 때부터 이진윤의 머릿속에 주입된 ‘기준’이 너무나도 높았다.
“넌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다.”
“그렇게 머리가 나빠서 뭐라도 하겠니?”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여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에도 입학한 그였다.
남들 같았으면 잘했다고 칭찬받았거나, 적어도 ‘머리 나쁘다’는 소릴 들을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이 집안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모든 게 다 너무나도 높은 기준으로 평가받았다.
‘나도 칭찬받고 싶다.’
가족들은 절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주변에서 이진윤을 띄워주는 사람들은 모두 가면 쓴 사람들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아무런 부족함 없이 풍요롭기만 한 삶을 사는 그에겐, 어딘가에서 결핍을 호소하는 일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건 그저 잘난 부잣집 아드님의 철없는 불평일 뿐이라고.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전설 수호령 우투리가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한창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던 ‘각성자’.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 된 것이었다.
그건 행운이었다.
각성자는 확실히 기업들 사이에서도 큰 화젯거리였고.
친척인 백산 그룹 또한 백선율을 중심으로 그 분야에서 크게 사업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냥 각성자가 된 게 아니라 시작부터 전설 수호령까지 얻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었다.
“아버지. 저…… 각성자 됐습니다.”
그는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그 이야기를 했다.
대학에 합격했다는 말을 할 때보다 더 설레는 마음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때는 별로 반응이 좋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거라 생각하면서 한 말이었다.
“그래서 뭐?”
그런데 아버지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그래서 그런 위험한 데 가서 총칼 들고 쌈박질이나 하겠다는 거냐? 한심한 놈.”
돌아온 건 면박.
그저 ‘설치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는 말뿐이었다.
무엇 하나 특출 난 것 없는 이진윤이, 심지어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뛰어들겠다고 하는 게 마음에 들려야 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난…… 여기서라도 인정받을 거야.’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오로지 ‘인정받겠다’는 일념하에 무작정 이 일에 뛰어들었다.
어찌 보면 참으로 무모한 결정.
더더욱 그게 무모할 수밖에 없는 건, 그는 겁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으앗! 살려주세요!”
혼자 들어갔던 지네 던전에서 웬 흉악범들을 만났던 날.
더 압도적인 장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섭다는 이유만으로 움츠러들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역시 난 뭘 하든 구제 불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그렇게 자신은 그 자리에서 죽는 줄 알았는데.
유신우를 만났다.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린 사람을 말이다.
“형님!”
그 인연은 그날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레이드에서도 다시 만났다.
그곳에서 유신우는 그의 가능성을 발굴해 줬다.
누군가를 지켜내는 수호자로서의 가능성을 말이다.
그저 마물들을 죽이기만 하는 것만이 각성자로서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 남을 지키는 능력 또한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라는 걸.
거기서 절실하게 깨달았다.
“우리 같이 사업 하나 하자.”
“네가 알포드 클랜을 잠시 동안 맡아줘.”
“이제 신화 수호령을 가질 때도 됐잖아?”
“네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지키면 되는 거야.”
그 이후에도 유신우는 계속 자신을 믿어줬고, 온갖 중요한 일들도 서슴없이 맡겼다.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직책도 아낌없이 내줬다.
가족들은 자신을 믿지 않았는데, 유신우는 자신을 인정하고 믿어줬다.
“백산 클랜이야말로 가장 유력한 세력인데, 어딜 가자는 거냐? 애초에 난 너 같은 자식 필요하지도 않았다.”
가족들에게 완전히 버림받은 거나 다름없던 그 날도, 유신우만은 그를 받아줬다.
“네 옆에 가족은 없어도 패밀리가 있잖아.”
‘그래. 패밀리.’
다리우스. 보그단. 그리고 유신우.
이제 이진윤에겐 가족 대신이라고 해도 좋을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힘도 있다.
처음엔 인정받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젠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 지켜야 할 사람이 위험에 빠져 있다면, 자신이 해내야 한다.
그게 설령 목숨을 버리는 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괜찮……으……십니까.”
* * *
“으……윽.”
“서, 선율 오빠…… 쿨럭.”
성주신을 투영한 이진윤의 주먹에 백선율과 최윤아 모두 나가떨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그 둘 다 예상치 못한 불의의 기습에 큰 상처를 입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백선율, 아후라 마즈다는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히 성주신에게 완전 지배당했을 텐데…….’
그는 이진윤에게 암시를 걸어 신화 수호령을 급하게 깨웠다.
그렇게 되면 신화 수호령이 예정된 것보다 빠르게 각성자의 육체를 잠식할 수 있는 대신, 완전한 각성을 이루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성장이 덜 이루어진 각성자의 육체를 이용하는 탓이다.
하지만 아후라 마즈다는 그렇게 해서라도 유신우를 죽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 앙그라 마이뉴의 부활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부활 저지 계획은 분명 방금까지 성공했다고 여겼으나.
뜬금없이 그 성주신의 육체 주인이 되돌아와 버린 것이다.
‘그럴 리가. 평범한 인간이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아후라 마즈다는 애써 현실을 부정하려 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없던 걸로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이진윤은 유신우를 등진 채 자신들을 향해 적의를 뿜고 있다.
그게 현실이다.
콰우우!
그가 이쪽으로 달려들면서 위협적인 주먹을 내질렀다.
목표는 아후라 마즈다.
최윤아는 일단 나중에 처리하겠다는 생각으로 보였다.
“크……!”
투쾅! 피웅! 쩌저정!
둘 사이에서 큰 충돌과 폭발이 연달아 이어졌다.
아후라 마즈다의 하얀 투사체 공격과 이진윤의 성주신 투영체 주먹 공격이 맞붙으며 땅을 뒤흔들었다.
퍼억!
“으컥!”
성주신의 주먹이 아후라 마즈다의 오른쪽 반신을 크게 타격했다.
촤악!
아후라 마즈다가 손가락에서 내뿜은 광선이 이진윤의 배를 관통했다.
서로 한 번씩 주고받은 공격.
펑! 펑! 퍼펑!
하지만 이진윤은 몸이 꿰뚫리는 상처에도 고통 따윈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아랑곳 않고 계속 전진하며 두 주먹을 내질렀다.
아후라 마즈다는 앞뒤 재지 않고 밀어붙이는 그 강한 기세에, 계속해서 뒤로 밀려나야만 했다.
그 와중에도 지금껏 얻어맞은 부위들의 통증은 계속해서 심화되고 있다.
‘젠장…….’
정말 운 좋게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또 이상하게 상황이 반전되어버린 것이다.
‘최윤아?’
그 순간 그의 눈에는 이진윤의 뒤에서 권능 시전을 준비하는 최윤아의 모습이 들어왔다.
지금 자신을 몰아붙이는 이진윤을 막으려는 모양이었다.
‘……이 녀석을 막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녀는 누운 채 무방비 상태가 되어 있는 앙그라 마이뉴가 아니라, 자신을 공격하는 이진윤을 조준하고 있다.
그놈의 ‘선율 오빠’를 구하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이 멍청아! 날 구할 게 아니라 저놈을 죽이라고!”
결국 아후라 마즈다는 직접 소리를 질러 그녀에게 그 사실을 인지시켰다.
흠칫.
이진윤과 최윤아가 동시에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모두의 시선이 쓰러져 있는 ‘매튜’, 유신우, 그리고 앙그라 마이뉴에게 쏟아졌다.
“아!”
최윤아는 곧장 뒤돌아 권능의 사용 대상을 바꾸려 했다.
이진윤도 그것을 알아채고 그녀를 막으려 했다.
“형님은…… 절대……! 못 건드려!”
“어딜! 네 상대는 나다!”
아후라 마즈다는 그런 그를 제지하기 위해 빠른 광선 공격을 행했다.
퍼퍼퍽! 퍽!
이진윤의 몸에 하얀 빛줄기들이 박힌다.
전신에서 피가 솟구쳐 나왔다.
그러나 그는 꿋꿋하게 유신우를 지키려 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최윤아를 방해할 수단.
광역 디스펠 권능 ‘항아리 깨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말이다.
“끄으으으!”
파캉!
이진윤에게 투영되어 있던 성주신의 형상이 조각조각 깨졌다.
그와 동시에 아후라 마즈다가 쏴대던 하얀 빛줄기들은 모두 한꺼번에 소멸.
최윤아가 권능을 시전해 갈라졌던 땅은 다시 원래대로 합쳐졌다.
또한 유신우가 유지 중이던 외형인 ‘매튜’ 또한 변신이 풀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 주변 일대의 모든 마력이 사라지는, ‘마나의 진공상태’가 된 것이다.
“어……?”
매튜에서 유신우로 되돌아온 그의 모습을 본 최윤아가 흠칫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으으…… 바보 같은…….”
아후라 마즈다가 이진윤에게 맨몸으로 달려들었다.
권능을 쓰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맨손 격투.
보아하니 이 구역 안에서는 디스펠의 사용자인 자기 자신도 권능을 쓰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 저 이진윤 역시 무방비한 건 마찬가지라는 뜻.
중상을 입은 그를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니다.
“어차피 스탯으로 따지면 너보다 내가……!”
쾅!
“크헉!”
하지만 이진윤은 아후라 마즈다가 생각한 것만큼 그렇게 약해져 있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압도적으로 강한 신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권능은 쓸 수 없지만, 순수한 스탯만으로 ‘성황’의 칭호를 가진 아후라 마즈다를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어떻게……?”
“죽음을 각오했으니까.”
이진윤은 그렇게 말하고선, 아후라 마즈다에게 계속 주먹을 날렸다.
퍽! 퍼억! 퍽!
“컥! 으헉! 헙!”
“아, 안 돼…….”
결국, 그걸 보던 최윤아가 달려들어 이진윤에게서 그를 떼어 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남아 있는 모든 힘을 짜내 전력으로 도망쳤다.
자신도 아까 전 공격을 당해 입은 데미지를 회복하지 못해 곧 쓰러질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백선율’을 살리기 위해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이진윤도 더 이상 그 둘을 쫓지 않았다.
* * *
“형님…… 조금만 버티십쇼……. 이제 곧 도착할 겁니다.”
이진윤은 마나 역류 때문에 몸이 마비되어 꼼짝도 할 수 없는 나를 둘러업은 채 포탈을 향해 걸어갔다.
방금 전까지 백선율을 두들겨 패던 그 강인한 힘과 신체는 온데간데없이, 마치 평범한 인간처럼.
겨우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내디디며 언덕을 넘었다.
“진윤아……. 너…… 괜찮아……?”
난 그의 몸 상태를 걱정했다.
“괜찮습니다. 전.”
“거짓말하지 마. ……너 지금 꼴이 어떤지 알아?”
이진윤은 절대 정상이 아니었다.
온몸에 구멍이 뚫려 있고, 옆구리는 통째로 뜯겨 나가 갈비뼈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피투성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마치 붉은 물감통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각성자라도 그런 상처가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전 곧 죽습니다.”
너무나도 담담하게 내뱉는 그 말에, 난 잠시 말문이 막혔다.
“에테르 증폭…… 10분째입니다. 이제 저에게 남은 에테르는 거의 없습니다.”
“……진윤아.”
그가 돌아왔을 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백선율과 대등, 아니, 그 이상으로 압도했던 건 그것 때문이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에테르를 영구적으로 잃을 각오로, 증폭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무모한 짓이라는 거……. 하지만 일부러 그랬습니다. 형님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일부러 죽기 위해서이기도 했습니다.”
“일부러 죽는다니? 왜?”
“이 몸에서 제 의식은 곧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성주신…… 수호령이 다시 이 몸을 차지하겠죠. 그건 싫습니다. 그렇게 될 바엔 차라리 죽는 편이 낫습니다.”
이진윤은 마치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것처럼, 무미건조하게 그 절박한 상황들을 설명했다.
거기엔 어떠한 공포도, 슬픔도 없었다.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초연함뿐이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면…….”
“전 괜찮습니다.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벅. 저벅.
무거운 발걸음을 계속해서 내디딘다.
“정말…… 고맙습니다. 저를 가족보다 더 가족처럼 대해주셔서.”
예정된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다리우스, 보그단…… 마지막에 얼굴이라도 봤으면 좋을 텐데……. 그리고 아델도.”
언덕을 넘어, 포탈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평소엔 그냥 조그만 언덕으로만 보였지만, 지금은 마치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다.
“……그러기엔 알포드 성은 너무 넓잖아요. 하하.”
이진윤은 너무나도 약해져 있었다.
그 몇 분 사이, 그의 머리는 하얗게 세었다.
육체는 급격하게 시들어 마치 노인을 연상케 했다.
나아가면 갈수록, 발은 점점 더 느려졌다.
하지만 꿋꿋이 내디뎠다.
한 발 한 발, 어떤 망설임이나 미련도 담지 않은 발걸음 끝에.
마침내, 우린 포탈을 넘어 알포드 성으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정말 고마웠습니다. 신우 형님.”
그는 나를 바닥에 내려두고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곤 하늘을 향해 마력을 발산했다.
이 근처의 누구든, 그걸 감지해 나를 찾아올 수 있도록.
몸에 남아 있는 모든 생명 에너지를 짜내어 쏘아 올린 마지막 신호탄이었다.
“백선율…… 아후라 마즈다에게, 제 안부 전해주십쇼. 꼭.”
그렇게, 이진윤은 제자리에 꿋꿋이 선 채로.
나를 지키는 수문장처럼 등을 내보이고서.
눈을 감았다.
{성주의 영혼을 흡수한다.}
…….
-아후라 마즈다.
“아후라 마즈다.”
신은 인간들이 가진 감정을 교묘하게 파고든다.
아주 잠시, 냉철함을 잃고 주변의 관계를 받아들이려던 찰나에 모든 걸 부숴 놓는다.
누구도 믿지 말았어야 했는데.
누구에게도 믿음을 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간신히 되찾아 온 인간성을, 기어이 다시금 빼앗아 가버린다.
-……반드시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기억이 돌아온다.
지옥에 떨어진 아흐리만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그 이후 세상이 어떤 일들을 겪게 되었는지.
나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지.
모든 전말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