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15화
“진윤이는…… 진윤이는 어떻게 됐지?”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큭큭큭.”
황우양이 비열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아흐리만의 기억 속에 있던 그 신들의 웃음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오만한 얼굴로 내리깔아보면서, ‘너는 되지만 넌 안 돼’, ‘감히 너 따위가?’라는 투의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쓰레기들.
그런 자가 지금 내 눈앞에, 현실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똑바로 대답해. 진윤이는…… 어떻게 된 건지.”
난 억지로 참아가며 그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그건 혹시나 다시 이진윤을 되돌아오게 만들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죽었어.”
“죽었다고?”
그 기대가 깨진다면.
“그래! 죽었어! 이렇게 껍데기만 나한테 남겨두고…….”
“그럼 너도 죽어.”
더 이상 자비심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없애버려라.
‘악의의 전당.’
갈라틴을 제외한 13자루의 무구들을 소환한다.
‘적색파동발산, 태양검 갈라틴.’
그리고 내 손에 쥐어진 대검에선 다시금 주작이 피어오른다.
흡수한 전설의 무구들과 불의 신수가 깃든 참격.
하나라도 스치는 순간 중상을 입는 공격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콰아아아아! 투콰콰쾅!
“이익!”
성주신 황우양은 그 공격들을 투영으로 구현된 자신의 몸으로 받아냈다.
아무래도 방어형 수호령이다 보니, 피하는 것보다는 방어로 쳐내려는 심산인 모양.
펑! 퍼펑!
그가 본격적으로 방어 태세를 취하고 보호막을 전개하자 정말로 단단한 벽을 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유비행 하며 날아든 무구들은 속절없이 튕겨 나갔고.
주작을 휘감아 내려친 갈라틴의 일격은 그를 몇 발자국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백색파동발산, 필중의 활 페일노트.’
그래서 이번엔 금속성의 공격을 행한다.
저 단단한 방어막을 깨려면 똑같이 단단한 것으로 깨부숴야 한다는 발상에서였다.
피잉!
작은 화살이 성주신의 보호막에 틀어박히고, 곧이어 백호의 머리 형상이 나타나 화살이 틀어박힌 부위를 물어뜯는다.
콰드득!
두껍고 날카로운 이빨이 거기에 박혔다.
쩌저적. 쩍.
이번 공격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는지, 보호막에 금이 갔다.
‘이거다. 백색파동발산.’
난 그게 먹힌다는 것을 깨닫고, 연달아 페일노트를 계속해서 쏴댔다.
여러 번에 걸쳐서 마나를 모두 소모할 때까지, 파동을 쌓고 또 쌓으며 사격했다.
그리고 마침내.
콰창!
성주신의 보호막이 깨졌다.
“큭큭.”
그런데, 오히려 그가 웃었다.
파앙!
보호막이 깨짐과 동시에 강력한 지향성 마나 파장이 뿜어 나와 나를 덮쳤다.
난 그 파장에 휘말려 뒤로 튕겨 나갔다.
저 극도로 단단한 보호막은, 깨지면 역으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히는 반격기였던 것이다.
“죽는 건 내가 아니라 너다! 이 더러운 악마 놈!”
그리고 황우양은 다시 나에게 돌진해 추격타를 날린다.
이진윤의 작은 몸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그 몸 위에 덧씌워져 있는 성주신의 커다란 투영체도 함께 나를 공격했다.
콰우웅! 콰웅! 콰웅!
물질계와 영혼계를 가리지 않고 모든 영역을 타격하는 연속 스윙.
그저 공기만 가로지를 뿐인데도 굉음이 들릴 정도로 위협적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저 공기만 가로지를 뿐이었다.
“주먹은…….”
이 녀석은 그저 힘만 무지막지하게 좋을 뿐, 주먹 안에 기술이 전혀 없다.
한때 격투술 스킬을 주력으로 사용해 여전히 그 감각이 몸에 남아 있는 내겐, 저 뻔한 공격의 궤도가 모두 보인다.
“그렇게 쓰는 게 아니다, 이 풋내기 자식아!”
난 그 모든 헛스윙을 위빙과 스웨이로 피한 후, 오른손에 악룡의 발톱을 투영해 턱에 어퍼를 먹였다.
뻐엉!
“억.”
물론 저 맷집에 그런 공격이 제대로 된 데미지를 줄 리가 없다.
그저 실력의 격차를 보여주고 싶었을 뿐.
진짜 공격은 그다음에 있었다.
‘황색파동발산.’
‘파산검 칼라드볼그.’
쉬익.
쿠우웅!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침과 동시에, 하늘에서 기린이 내려오며 땅을 짓밟았다.
쿵! 쿠쿵! 쿵!
그 대지의 신수는 마치 물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제자리에서 몇 번이고 풀쩍풀쩍 뛰었다.
그럴 때마다 일대의 영역이 막대한 압력으로 짓눌렸고, 그 범위 안에 서 있는 것들은 모두 사정없이 파괴당했다.
성주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보호…… 으헉!”
파앙! 콰창! 파앙! 콰창! 파앙!
그는 계속해서 보호막을 전개하고, 깨뜨리고, 전개하고, 깨뜨리고를 반복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다.
하지만 기린의 연속 공격을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고, 오히려 연달아 방어를 하느라 더 크게 체력소모를 해야만 했다.
“젠장…… 내가…… 왜…….”
그렇게 칼라드볼그 공격이 종료된 직후.
성주신은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미스텔테인.’
이제 완전히 끝낼 시간이다.
난 신을 죽이는 나뭇가지를 손에 쥐고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내가…… 풋내기라고?”
황우양은 아까 내가 한 말을 계속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감히…… 한낱 필멸자 출신 따위가 이 몸에게 풋내기라고?”
대답할 가치도 없는 얘기.
괜히 저 말에 대꾸하려 시간을 벌어줄 필요는 없다.
당장 여기서 끝낸다.
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에게 미스텔테인을 휘두르며, 동시에 모든 악의의 전당 무구들을 날려 보냈다.
“감히…… 날 모욕하지 마라!”
화아악.
그 순간, 마치 시간이 정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나의 행동과 주변의 모든 풍경이 멈췄다.
미스텔테인.
성주신.
그 사이의 좁은 간격.
거기에.
백선율이 나타났다.
“찾았다.”
* * *
퍼엉!
그는 신성 속성의 힘을 발산해 나를 성주신에게서 튕겨냈다.
나는 그대로 하늘로 솟아올랐지만, 도중에 날개를 펼쳐 공중에서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백선율과 최윤아가 함께 와 있었다.
공간이동으로 나를 쫓아온 것이다.
“늦어버렸군. 조금 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 텐데.”
“백선율!”
그를 보자마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건 분명 저놈의 짓이다.
진윤이를 저렇게 만들어버린 건 다름 아닌 저놈이다.
지금 이 자리에 저 녀석이 나타났다는 건, 그 생각이 맞다는 증거였다.
죽여야 한다.
백선율을.
‘적색파동발산, 태양검 갈라틴.’
화아아악!
난 곧장 주작의 기운을 담은 갈라틴을 놈에게 휘둘렀다.
담을 수 있는 모든 마력을 담아, 시체조차 남기지 않고 불태워버릴 생각으로 내지른 일참.
쿠구궁!
초고열의 신수 화염이 충돌 지점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더 이상 태울 것도 남아 있지 않아 황폐화되어 있던 주변 대지는, 급기야 완전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주작의 불꽃이 암반을 마그마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미쳐 날뛰는군.”
백선율은 내 공격을 피해 하늘로 날아올라 있었다.
날지 못하는 최윤아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네놈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구나.”
그러고는 나에 대해 잘 안다는 듯이 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니라 아흐리만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역시 이진윤과 마찬가지로 어떤 종류의 신인 모양이었다.
“닥쳐!”
“분노에 이끌려 주변이 어떻게 되든 되는대로 파괴하다 세상을 멸망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은 악마.”
난 그놈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계속해서 돌진하며 갈라틴을 휘둘렀다.
마나 호흡으로 마나를 채우는 족족 그 모든 에너지를 파동에 몰아넣었다.
물론 마나 호흡을 하는 도중에 기술을 사용하는 건 상당히 위험한 행위였다.
잘못하면 스스로 마나의 역류를 일으키는 행위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백선율을 죽인다는 일념하에 파괴적인 화염 베기를 연달아 시전했다.
하얀 날개로 도망 다니는 백선율을 검은 날개로 쫓았다.
“앙그라 마이뉴. 도대체 어떻게 다시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거냐? 지옥에 영원히 봉인되었어야 할 네놈이 어떻게 되돌아온 거냐?”
그가 계속 도망치며 입을 나불거렸다.
미안하지만 내게 물어봐도 나는 모른다.
-…….
아흐리만 또한 아까 전부터 어찌 된 일인지 계속 입을 다물고 있다.
놈이 대체 어떤 존재인지, 과거의 아흐리만과 백선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나라고 해서 알 턱이 없다.
단지 내게 중요한 사실은 하나.
‘저놈이 이진윤을 죽게 만들었다는 것.’
콰아아아!
백선율이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내 공격을 피해내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 품에 안겨 있는 최윤아가 뭔가 수작을 부리려고 한다.
바로 지금.
이때가 기회다.
‘에테르 증폭.’
적이 내 연속 공격의 리듬에 익숙해졌을 즈음에, 갑자기 끌어올리는 힘.
변화된 스피드에 적응하지 못하고, 피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깊게 파고드는 공격에 죽는다.
‘업화의 구. 악의의 전당 전탄 발사. 적색파동발산 태양검 갈라틴.’
그리고 여기서 내가 가진 모든 카드를 내지른다.
무구들이 일제히 날아가고, 갈라틴에선 주작의 화염이 치솟는다.
그 모든 공격에 악룡의 검은 화염이 휘감긴다.
‘죽어라. 백선율.’
“으읏!”
아니나 다를까, 놈은 변화된 템포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략은 먹혔다.
이대로 휘두르기만 하면, 놈은 그걸로…….
“쿨럭.”
그런데 그때,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밀려왔다.
그로 인해 공격과 동시에 계속해서 유지하던 마나 호흡의 들숨이 꼬였다.
따라서 생성과 소모의 밸런스가 깨져 마나가 역류한다.
“크헙!”
그때부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에테르 증폭으로 힘을 강화시킨 만큼, 반동 효과는 더 강렬했다.
스르륵.
“……으음?”
난 그대로 행하던 공격을 멈추고 저 백선율의 낯짝 바로 앞에서 힘없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내 통제를 받던 악의의 전당 무구들과 함께.
‘왜 하필……!’
이 가슴의 통증.
떠올려 보니 처음 성주신에게 얻어맞았던 주먹의 영향이었다.
그걸 지금껏 참아오다가, 마나 호흡과 기술 사용을 병행하는 덕에 몸에 무리가 온 것이다.
위험을 예측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전의 페이크 공격에선 아무렇지도 않다가, 에테르 증폭까지 발동한 이제 와서 문제가 생기다니.
정말 운도 지지리도 없다.
“……하, 하하! 하하하!”
내 검에 의해 잿가루가 될 뻔한 백선율은 예상치 못하게 상황이 역전되자 나를 비웃기 시작했다.
놈도 자신이 겨우 살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 악이 선을 이길 수는 없는 법. 운명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거다!”
그러고는 기세등등하게 ‘선악’, ‘운명’ 따위를 거론하며 내게 다가온다.
신이라고 하기엔 참으로 하잘것없는 말과 행동.
자신의 미래조차 스스로 결정할 줄 몰라서 운명 같은 거나 믿다니.
무슨 신인지는 몰라도 저딴 것에게 신이랍시고 기도를 올렸을 자들이 참으로 불쌍하다.
“윤아. 놈의 처리는 네가 해라.”
“예. 알겠습니다.”
결국 최윤아가 사용하려던 권능이 발동된다.
쿠구구궁.
주변의 땅이 갈라지고 물길이 치솟았다.
치이이익!
고열의 암반 사이에서 튀어나온 물들이 순간적으로 증발하며 수증기를 사방에 가득 흩뿌렸다.
물론 그녀의 권능이 수행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다.
그저 주변이 조금 뿌옇게 변했을 뿐.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물길은 저 안개 속에서 나를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앙그라 마이뉴. 네놈은 절대 날 이길 수 없다. 과거에도. 지금도.”
개 같은 자식.
갈 땐 가더라도 저 재수 없는 얼굴에 주먹 한번 먹이고 가고 싶다.
진윤이의 복수를 떠나 어떻게든 한 대 패고 싶다.
그런 생각이 간절했다.
“큭큭큭…….”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더니.
콰앙!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형님.”
이진윤이 돌아왔다.
“……괜찮……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