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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114화 (114/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14화

이진윤의 회복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알포드 성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다음 달에 있을 2차 공성전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매튜.”

복귀를 준비하고 있던 도중, 백선율이 나를 찾아왔다.

그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처음으로 내게 다가온 것이었다.

난 경계심을 바짝 높이고 그를 마주했다.

언제든 무구를 꺼낼 수 있도록, 에테르 큐브를 몰래 손바닥 안에 감춘 상태였다.

“무슨 일이지?”

“이대로 가는 건가?”

“그래. 뭐, 굳이 더 여기서 머물 이유는 없지.”

지난번 그의 도움을 받은 후, 난 반대로 그가 치를 공성전을 도와주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하지만 백산 클랜 소유 영지의 공성전은 아직 일정이 좀 많이 남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돌아간다고 해도, 그가 나를 잡을 명목이 없는 셈이다.

“그렇군.”

“왜, 부탁할 거라도 있나?”

물론 여전히 나는 그에게 신세를 진 상태였다.

이진윤이 신화 수호령을 얻은 것만 해도,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수상한 낌새를 보인 이상, 순순히 그에게 당해줄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아니, 그런 건 없어.”

“그럼 용건은 없는 거군.”

난 은근슬쩍 나가라는 의미로 말을 던졌다.

그러나 백선율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반대로 내게 제안을 했다.

“그보다는 돌아가는 길이 멀 텐데, 혹시 이동 마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이동 마법?”

“그래. 네가 원한다면 윤아에게 시켜서 너를 영국까지 데려다줄 수 있어.”

이곳 일본에서 영국까지, 비행으로 복귀하는 건 꽤나 긴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최윤아를 통해 공간이동 마법을 써주겠다는 것이다.

원래 같았으면 그 호의를 고맙게 받아들였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난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니, 괜찮아.”

적어도 지금은 백선율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메미가 도와주기로 했거든.”

게다가 이미 마존에게 먼저 도움을 받기로 한 것도 있었으므로, 굳이 그 말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백선율이 못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인사했다.

“다음에 보자고.”

“그러길 바라지.”

말 한마디 한마디, 언제 어떻게 상대가 돌변할지 모르는 상태에서의 숨 막히는 대화.

그 짧지만 길게 느껴졌던 긴장이, 백선율의 등을 보는 것으로 끝났다.

* * *

그 길로 난 곧장 이진윤과 유메미가 기다리는 포탈 밖 야지로 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 일이 좀 있어서.”

“괜찮아요. 저도 이제 막 마법 준비 끝냈거든요.”

바닥에는 원과 함께 복잡한 문양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최윤아가 사용하던 공간이동 권능과 유사한 형태.

둘 다 포탈을 연상케 하는 걸 보면, 공간이동 마법은 대부분 이런 형식인 듯하다.

“그동안 고마웠어. 덕분에 큰 신세를 졌군.”

난 유메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도 내 손을 맞잡았다.

“아녜요. 저도 매튜 씨에게 그만큼 큰 도움을 얻었으니까요. 그리고 진윤 씨도…….”

“…….”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 둘의 시선은 이진윤에게로 넘어갔다.

그런데, 어째선지 그의 표정이 상당히 좋지 않아 보였다.

“……고마……워요?”

“진윤아?”

나와 유메미는 동시에 그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야, 어디 아픈 데라도 있어?”

마치 체하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이 노랗게 질려서는, 매우 불편해 보이는 기색.

분명 오늘 아침까지는 밝고 활기차 보이던 그가, 어째선지 갑자기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그럴 리가요. 분명히 완전 회복 상태가 된 걸 제가 직접 확인했었는데.”

유메미도 그것을 의아해했다.

“설마, 각성자가 밥 먹다 체했을 리도 없고.”

급체나 감기, 몸살 같은 건 각성자의 육체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특히나 전사형은 더더욱 그렇고.

즉, 각성자가 몸이 좋지 않다는 건, 어떤 외부로부터의 힘이 작용했다는 뜻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혹시, 독이나 저주 같은 것에 걸린 게 아닐까요?”

“독? 저주? 그럴 리가……. 우린 계속 네 영지 안에 있었다고.”

“영지 안에 있는 누군가가 한 거라면…….”

유메미가 한 말에, 난 곧장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백선율.

그자가 이진윤에게 뭔가 한 게 틀림없다.

난 주먹을 움켜쥐었다.

“……제가 한번 살펴볼게요.”

하지만 다행히 여기는 유메미가 있다.

온갖 종류의 마법에 능통한 그녀가 이진윤의 상태를 살핀다면, 금세 문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대체…….”

그런데 그의 손목을 잡고 상태를 살피던 그녀의 안색이 덩달아 어두워졌다.

무언가 곤란한 문제라도 발견한 것일까.

“뭔가 있는 건가?”

“아뇨.”

“응?”

“없어요. 아무것도. 아무런 이상도 없어요.”

돌아온 대답은 허무했다.

저렇게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이진윤이 멀쩡하다는 것이다.

“몸은 말할 것도 없고, 영혼의 상태도 깨끗해요. 누군가 저주를 건 것도, 진윤 씨가 아픈 것도 아니에요.”

“그럼 뭐야? 왜 이렇게 된 거지?”

“그건 저도 잘…….”

바로 그때, 다 죽어가던 이진윤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형님…… 전…… 괜찮습니다…….”

그는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애써 자신의 좋지 않은 몸 상태를 부정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너처럼 튼튼한 놈이 이 지경인데.”

“정말입니다……. 어차피…… 여기서 계속 머물고 있을 수만도…… 없지 않습니까…….”

사실 이진윤의 말대로, 이제는 알포드 성으로 돌아가야 했다.

더 늦으면 2차 공성전 준비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예전처럼 전화나 인터넷으로 통신이 가능한 것도 아니라서, 우릴 기다리고 있을 다리우스나 아델에게 늦는다고 알릴 방법도 없다.

“하아.”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렇다고 이진윤을 여기 혼자 둘 수도 없고.’

혼자 내버려 두는 것도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닌 상황.

“……차라리…… 돌아가서…… 치료받겠습니다.”

어쩌면 그 말대로 알포드 성에 돌아가서 치료를 받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이동할 때 충격이 있을 텐데, 괜찮겠어요?”

“……괜찮……습니다. ……저 튼튼한 거…… 아시잖아요.”

“……그래, 그렇게 하자.”

결국 그의 의사에 따르기로 했다.

오히려 클랜으로 돌아가서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다.

거기선 골드와 다이아를 사용해 자유롭게 영지의 기능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유메미에게 당장 우릴 보내 달라고 했다.

그녀는 그래도 찝찝하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서 쉬게 해주는 게 더 나은 길일 거라는 생각에, 이동을 재촉했다.

* * *

“허억…… 허억…….”

“진윤아. 조금만 참아. 저 언덕만 넘으면 곧장 알포드 성으로 가는 포탈이니까.”

공간이동으로 영국에 도착한 난 이진윤을 들쳐 메고 포탈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그의 숨은 점점 더 가빠졌다.

“잠깐…… 잠깐만……. 여기서…… 멈춰…….”

“왜 그래? 힘들어?”

이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보다 상태가 더욱 안 좋아졌다.

이젠 얼굴이 노란 게 아니라 파랗게 보일 정도였다.

“대체 왜…….”

난 일단 그를 바닥에 눕혀놓고 치유 마법을 사용했다.

어디가 아픈 건지는 몰라도, 일단은 치유 마법을 써서 그의 몸을 회복시키려 했다.

물론 통하지는 않았다.

회복의 기운은 그저 그의 몸 주위를 겉돌기만 할 뿐.

상처가 없으니 먹힐 리가 없다.

“이…… 끈질긴…… 놈…….”

그러더니 뭔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내면의 뭔가와 싸우고 있기라도 하는 듯, 누군가에게 증오심을 쏟아내고 있었다.

“왜 그러는 거야? 대체 뭘 보는 거야?”

“제발……. 저리 좀 꺼져…….”

그는 내 말은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그런 말들을 뇌까렸다.

-상태가 이상한데. 느낌이 안 좋아. 녀석에게서 떨어지는 게 좋을 것 같다.

아흐리만이 그렇게 말했다.

물론 근거는 없다.

그도 그냥 감에 의존해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내 경고를 무시하지 마라. 이건 진심이다. 네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말하는 거다.

“으그극…….”

“진윤아. 정신 차려!”

하지만 난 그를 놓을 수가 없었다.

눈이 뒤집히며 흰자위를 보이고, 입에선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상태가 더욱 나빠지기 시작한 이진윤을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그그극…… 큭…….”

급기야는 경련을 일으키고.

그렇게 한참 동안 몸을 부들거리다, 어느 순간.

번쩍.

눈빛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죽어!”

내게 주먹을 날렸다.

쾅!

맨손으로 공간을 찢고 왜곡하던 성주신의 주먹.

다행히 맞기 직전에 손을 들어 올려 심장 직격은 피했지만.

팔뚝 위로 전해져 오는 파괴력은 결코 무시할 만한 게 아니었다.

신수의 힘을 얻은 나로서도 견디기 버거울 정도로 말이다.

“컥, 끅.”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폐를 압박하는 격통이 한참을 뒤로 튕겨 날아가고서도 계속 남아 있다.

-내가 뭐라고 했나! 떨어지라고 했잖아!

‘어째서……?’

아흐리만의 호통을 듣고서, 고개를 들어 올려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등 뒤에 거대한 수호령, 분노한 성주신 그 자체를 자신의 몸에 투영시킨 이진윤이 서 있었다.

‘수호령을…… 투영한?’

그런 건 처음 봤다.

악룡의 발톱처럼 신체 일부를 구현하는 것도 아니고, 수호령 전체의 형상 그대로를 드러내고 있다.

물론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지만.

“죽어라!”

콰아아!

그는 또다시 나에게 달려들며 주먹을 휘둘렀다.

진심으로 나를 죽이려는 의도가 그 안에 담겨 있다.

“이진윤! 정신 차려!”

난 어떻게든 그를 원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도저히 내 말을 들을 생각을 하질 않았다.

-저건 더 이상 이진윤이 아니다! 그러니 제대로 상대해라!

아흐리만은 내게 그런 그를 상대로 무구를 꺼내라고 했다.

“젠장…….”

-방어를 위해서라도 칼을 쥐어라!

카아앙!

난 결국 갈라틴을 꺼내 그의 주먹에 맞섰다.

미스텔테인을 꺼내지 않은 건, 그의 몸에 역행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였기 때문이다.

“이진윤! 다시 돌아와라! 넌 내 클랜원이다!”

난 그걸로 그에게 맞서 힘겨루기를 하며 계속해서 암시를 걸었다.

만약 다른 누군가에게 몸을 지배당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주도권을 찾을 수 있게끔, 계속해서 자극을 줬다.

그런데.

“닥쳐! 난 그깟 하등한 필멸자가 아니다!”

-뭐?

‘……필멸자?’

그가 이상한 말을 했다.

마치 아흐리만의 기억 속에 등장하던, 신들이 할 법한 말을 했다.

그 신의 힘과 권능을 빌려 쓰는 각성자가 아니라.

신 그 자체 말이다.

그리고.

“나는 네놈, 앙그라 마이뉴를 죽이러 온 세계의 수호신이다!”

누구에게도 알린 적 없는.

이 세상 누구도 알 수 있을 리가 없는.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크아아아아!”

콰우우웅!

이진윤의 등 뒤에서, 마나로 이루어진 거대한 성주신의 형상이 주먹을 내질렀다.

위협적인 파공음이 피부로 느껴질 만큼 빠르고 강렬하게, 내 앞으로 날아든다.

난 그 주먹을 똑바로 쳐다보며 두 손으로 칼자루를 힘껏 움켜쥐었다.

그리고 신수의 힘이 담긴 파동을 형성했다.

‘적색파동발산.’

‘태양검 갈라틴.’

대검은 주먹을 가르고.

칼날에선 화염이 뻗어 나와 주작의 형상을 이룬다.

참격 궤적을 따라 활공하는 화염의 신수가, 성주신의 주먹에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화르륵!

쩌렁!

두 맹렬한 공격이 서로 부딪히며 사방으로 충돌 에너지가 퍼져나갔다.

쿠구구궁!

지축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뽑혀나가고.

숲이 불타 잿더미가 된다.

그 한 방으로 주변 일대가 화산 지대를 연상케 하는 폐허가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겨우 1초 이내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큭…….”

나는 제자리에 서 있었다.

이진윤, 아니, 그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정체 모를 존재만이, 그 충격파에 휩쓸려 나가떨어졌다.

“너. 누구냐.”

더 이상 호소가 통하지 않을 상대에게 찌르듯이 던지는 추궁.

그리고 거기에 대한 대답.

“나는…… 황우양. ……가택신 성주다.”

그 대답으로 난 처음 알게 되었다.

각성자의 몸에 깃든 신화 수호령.

신의 영혼이, 각성자의 육체를 빼앗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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