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13화
백선율.
그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영혼의 진짜 정체는 아후라 마즈다다.
그는 먼 옛날 같은 시대를 살았던 신들의 생김새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누아다와 아르테미스였어.’
‘매튜’가 소환한 소환물들.
그가 백호와 싸우던 도중에 갑자기 멈춰서 무방비 상태로 공격을 받았던 이유는 바로 그 소환물들 때문이었다.
아발론 신들의 왕인 누아다 아르게틀람과.
올림포스의 사냥과 순결의 여신인 아르테미스.
그 둘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곳에 나타나 매튜의 말을 따르는 장면이, 그에겐 너무나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던 것이다.
‘절대 가짜가 아니다.’
단순히 외모만 동일한 복제품이라거나, 본래 신의 힘을 그대로 끌어오는 기믹의 마법 같은 거라면 그렇게 충격받지도 않았다.
아후라 마즈다는 그 신들이 가진 영혼의 성질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분명, 그 어떤 반론의 여지도 없이 누아다와 아르테미스 그 자체였다.
‘도대체 그자는 누구지?’
그러니 그의 머릿속엔 의문만이 가득할 수밖에.
‘그냥 조금 능력이 뛰어난 녀석인 줄로만 알았는데…….’
처음엔 다이아 동원능력을 이용해볼 생각으로 접근했다.
그걸로 많은 신화급 각성자들을 양산해내서 인간계 신들의 부활을 더욱 빠르게 앞당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 매튜라는 자의 진짜 정체는 신들을 마치 자신의 수하처럼 부리는 존재.
시스템의 법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예측범위 밖의 변칙 개체였던 것이다.
‘신은 이 세계의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가장 우월한 존재다. 동시에 영원히 서로를 죽일 수도 없는 상호불가침의 관계……. 그 관계를 깨뜨릴 수 있는 건 없…….’
한참 동안 혼란스러운 생각을 이어가던 아후라 마즈다는, 이윽고 잠들어 있던 과거의 어떤 기억에 도달한다.
‘……설마.’
그의 머릿속에는 어떤 인간의 모습이 그려졌다.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근육질의 남자.
그 피부 위로 칠흑같이 검은 비늘이 뒤덮이고, 날개와 꼬리가 돋아난다. 흉악한 손톱과 이빨을 드러낸다.
그걸로 신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잡아먹던.
모든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악마보다도 더욱 악마 같은 존재.
앙그라 마이뉴의 모습이, 다시금 그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어졌다.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놈이 여기에 있을 순 없어.’
아후라 마즈다는 몇 번이고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앙그라 마이뉴는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에 봉인되었다.
그것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신들이 존재의 영멸을 각오하고서 만들어 낸, 시스템이 규정한 사건이었다.
그걸 깨고 다시 현세에 되돌아오는 건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놈이 가진 힘은 분명…….’
그럼에도 불안감은 도저히 가시질 않았다.
아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오히려 확신은 더욱 커졌다.
수많은 무구들을 소환해 날려대는 특유의 공격법이야 유사한 마법들이 많으니 넘어간다고 치더라도.
그 검은 날개, 신수들을 포식하던 검은 용머리, 심지어 진짜 신들을 노예처럼 만들어 조종하는 말도 안 되는 능력까지.
아무리 봐도 앙그라 마이뉴로 특정할 수밖에 없는 이 모든 요소들을 한꺼번에 갖춘 존재가 때마침 나타났다?
우연이라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억지다.
‘죽여야 돼. 지금이라도.’
아후라 마즈다는 결국 결론을 내렸다.
그가 더 성장하기 전에 죽여야 한다고 말이다.
물론 죽인다고 해서 끝나는 건 아니다.
‘만약 그자가 앙그라 마이뉴의 수호령을 가지고 있는 거라면,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가 다시 그의 수호령을 가지게 된다.’
시스템상, 각성자가 죽으면 수호령은 영혼계로 돌아가 있다가, 누군가가 처음 각성자가 되거나 다이아로 불러냈을 때 임의의 확률로 현세에 강림한다.
그러니 언제든 다시 제2의 ‘매튜’, 그러니까 유신우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그 제2의 유신우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자가 성장하고 힘을 되찾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이 들 것이다.
그사이 앙그라 마이뉴를 처리할 대책을 찾으면 된다.
아후라 마즈다는 그렇게 시간을 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그 녀석은 너무 위험해. 더 크기 전에 없애야 해.’
그는 오방신을 포식하면서 힘이 급격하게 강해지던 유신우를 떠올리며 위협을 느꼈다.
마지막 적을 없애고 시련을 끝냈을 때는, 더 이상 자신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압도적인 무력을 갖게 된 그.
여기서 가만히 내버려 두면, 정말로 손 쓸 도리가 없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죽여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 * *
“신화 수호령이라니, 제가 이런 걸 갖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흐흑.”
이진윤은 감동하다 못해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각성자로서 살겠다고 한 후에 가족들에게도 외면받고, 겁은 많은데 어떻게든 인정받고자 이것저것 많은 노력을 해왔던 그.
그동안 성격적인 부분도 전과는 180도 달라졌고, 실력은 그에 걸맞게, 아니, 그 이상으로 성장했다.
몇 번이나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 이젠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을 때가 된 것이다.
“제가 이런 걸 가져도 되는 걸까요?”
“당연하지. 심지어 넌 그 시련 안에서도 네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을 살렸잖아.”
‘물론 그건 백선율이 멍청하게 얻어맞아서 그런 거지만.’
“그러니 너야말로 사람을 지키는 신화 수호령을 가지는 게 당연한 거야.”
“하……. 정말 감사합니다. 으흑.”
“감사하기는. 그걸로 네가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지키면 돼.”
“알겠습니다! 꼭……! 지키겠습니다!”
이진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당장에라도 뛰쳐나가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지켜낼 듯한 기세였다.
“저희 다음 공성전은 언제 또 있습니까?”
“다음 달 8일.”
한편, 우리에겐 아직 치러야 할 공성전이 더 남아 있다.
다음 달 8일에 진행되는 알포드 성 2차전이었다.
패치노트에서 봤듯, 이종족 간 공성전은 해당 영지의 최후 승자가 남을 때까지 전쟁을 치른다고 했다.
패치노트에 언급된 종족들의 수가 네 종족이니, 쉽게 말하자면 결국 4강 토너먼트로 최대 2차전까지 벌인다는 뜻이다.
지난번 우린 오크 족과의 1차전을 이겼으니, 최종 승자를 정하는 2차전만이 남은 상태였다.
“그것만 승리하면 적어도 알포드 성만큼은 당분간 걱정할 일이 없겠네요.”
“같은 인간에게 공격당하지 않는 한은.”
“……네? 에이, 설마요.”
이진윤이 그럴 리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모르는 일이지. 동맹이 영원한 거 봤어?”
“아무리 그래도 타 종족들이 있는데 우리끼리 싸우는 건……. 그럴 리가 있을까요?”
난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런 제스처를 취하면서 내 뇌리를 스치는 건, 역시나 내게 경계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던 백선율의 모습이었다.
그때의 그는 ‘인류를 위한다’라는 자신만의 대의를 가지고 행동하던 합리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마치 내게 개인적인 원한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강한 악의를 내뿜고 있었다.
-나도 그 녀석을 좋게 봤었는데. 아무래도 조심해야 할 것 같군. 그렇게 속내를 예측할 수 없는 녀석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놈이니 말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와 아흐리만은 그런 그를 다시금 경계 대상 목록에 올려놓기로 했다.
“역시, 현명하시군요. 매튜 씨.”
그때, 유메미가 다가왔다.
그녀는 어느샌가 새 드레스로 갈아입은 모습이었다.
“방심하면 안 되죠. 아무리 방금 전까지 같은 편이었다고 해도요.”
“그래. 그건 우리도 피차 마찬가지고.”
“하핫. 그런가요?”
난 대놓고 경계심을 드러냈지만 유메미는 빙긋 웃어넘겼다.
저런 여유도 자기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덕분일 터다.
“그래도 저는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한 사람이니까요. 매튜 씨에게 받은 것, 그리고 진윤 씨에게 도움받은 것. 거기에 대한 보답은 할 겁니다.”
그러고는 이진윤을 보며 물었다.
“어떠신가요? 몸 상태는.”
“아…… 네. 덕분에 잘 치료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유메미의 영역인 ‘아리사카 클랜’의 영지에서 머무는 중이었다.
신수들과 싸우는 동안 큰 부상을 입은 이진윤은 물론이고 자잘한 부상을 입은 나도 몸을 회복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메미는 그런 우리에게 선뜻 치유사들을 붙여주고, 융숭하게 대접해주었다.
“다행이네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정말 고마워요. 진윤 씨. 그때 절 지켜주셔서.”
그녀가 환한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치맛자락을 잡고서 숙녀 인사를 했다.
작고 귀여운 얼굴에 우아한 태도.
싱그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
매혹 마법이라도 부린 것 같은 달콤함에 한순간 넘어갈 뻔했다.
옆에 있는 나조차도 그렇게 느낄 정도인데, 저 인사를 받는 당사자인 이진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얼굴이 잔뜩 빨개져서 말을 더듬을 정도였다.
“아, 네, ……네.”
“후훗. 다음엔 우리 다 같이 좋은 풍경이라도 보러 가요. 사람이 없는 지구 환경은 예전하고도 많이 달라졌을 테니, 볼거리도 더 많겠죠.”
“……넵!”
“그럼 다음에 또 봐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시구요.”
그렇게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유메미는 자리를 떠났다.
이 와중에 풍경 보러 간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렇고.
그녀는 정말 여러 가지 의미로 독특한 것 같다.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지게 만드는…… 그런 여자였다.
“야.”
“네, 넵?”
“내가 나중에 자리 한번 만들어줘?”
“무슨 소립니까, 그게?”
“쟤가 너 맘에 들어 하는 것 같은데.”
“에이. 말도 안 되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난 이진윤의 옆구리를 툭툭 찌르며 놀렸다.
평범한 상황에서 이 사람들을 만났다면 분명 이런 장난이 아무렇지도 않았겠지.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이 적인지, 아군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경계할 일도 없었겠지.
그리 생각하니 왠지 다시 마음이 무거워진다.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넌 저 여자는 물론이고 이진윤과도 만날 일조차 없었겠지. 사는 계층이 다르니까.
‘그런가. 그렇겠네.’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이 사람들과 대등하게 있을 수 있는 것도 다 상황이 이렇게 암울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시스템, 각성자, 수호령.
이런 것들이 없었다면 난 그저 평범한 서민이었을 테고.
이진윤이나 백선율, 유메미 같은 사람들은 재벌가 자제로서 나와는 한참 거리가 먼 삶을 살았을 것이다.
또 이렇게 생각하니, 그것도 결코 가볍지는 않다.
결국 어느 쪽이 되었든 내 인생이 마냥 핑크빛이지만은 않을 거란 결론.
‘그냥 지금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게 사는 게 최선이겠지.’
이런 생각은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했다.
더 파고들어 봐야 암울해지기만 할 뿐일 테니 말이다.
* * *
아리사카 클랜의 영지에는 이진윤과 유신우뿐만 아니라, 최윤아와 백선율도 머물고 있었다.
회복이 필요한 건 그들 역시 마찬가지.
……라는 명목상의 이유 때문이었다.
“야. 이진윤.”
그런데 최윤아가 혼자 있는 이진윤을 대뜸 불러냈다.
무서운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
그녀는 보통 때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싸늘함을 풍기고 있다.
단순히 이진윤을 무시하는 냉담함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적의였다.
“……왜 그래?”
덕분에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이진윤이 곧바로 그녀에게 물었다.
“좋냐?”
“으, 으응? 뭐가?”
“그 여자한테 칭찬 들으니까 기분 좋아?”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최윤아가 이런 말을 하는 걸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럴 리가…….”
“입이 귀에 걸렸던데, 아주?”
-……나라…….
“아니야! 정말 그 사람하고는 아무 관계도 아니야.”
이진윤은 이런 상황이 난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이건 마치, 그녀가 자신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상황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유메미라는 사람, 오히려 매튜 형님한테 관심 있는 거일걸?”
-……너는…… 자다…….
그는 다급하게 해명하는 와중에도, 절대 유신우란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
실수로라도 유신우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함이었다.
“넌 어떤데?”
-……깨어나라…….
“응?”
“넌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 여자.”
“그거야…… 그냥 좋은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좋은 사람?”
-……너는 불멸자다…….
“아니,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우릴 잘 대해주니까 좋은 사람이라는 거지.”
“정말 그것뿐이야?”
-……너는 황우양…….
“그럼! 당연하지.”
-……가택신 성주…….
“그럼 됐어. 가봐.”
-……나와 함께하라…….
최윤아와의 대화가 끝나는 순간.
이진윤의 심상세계 속에는 어떤 형상이 자리 잡아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건 하얀 날개를 가진 인간.
아후라 마즈다의 심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