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11화
그렇게 만족스러운 포식을 완료하자, 뒤에서 백선율이 나에게 말했다.
“그 마물을 잡아먹는 기술…… 꽤나 좋아 보이는데.”
그의 표정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감정, 경계하는 감정, 또는 어떻게 이런 권능이 존재할 수 있는 건지 의문스러워하는 감정 등.
그동안 시종일관 내게 우호적이고 대인배스러운 모습만 보여주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거? ……뭐, 그렇지. 운 좋게 좋은 수호령을 얻어서.”
그의 반응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각성자라면 누구나 강해지고 싶게 마련.
그리고 거기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무엇보다도, 스탯을 키우는 것일 터다.
남들이 여러 번의 전투를 거쳐 조금씩 스탯을 쌓고 있을 때, 난 포식 한 번으로 그 마물을 잡아 얻을 수 있는 스탯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
백선율은 내가 청룡 포식을 완료하자마자 갑자기 힘이 강해진 것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대뜸 저런 말을 한 것이다.
“무슨 수호령을 얻은 건지는 몰라도, 축복받은 게 틀림없군.”
“너도 마찬가지야.”
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쳤다.
그는 내 수호령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듯한 눈치였지만, 그걸 가르쳐 줄 생각은 전혀 없다.
이 세상에 내 수호령이 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다리우스와 보그단, 이진윤에게조차도 밝히지 않았다.
의도된 것이라기보다는 나도 모르는 새 숨겼던 본능이었다.
아지다하카와 앙그라 마이뉴.
그 진실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퍼지는 것만은 막고 싶다는 본능 말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확실히 숨긴 게 잘한 행동이었다.
가장 최근의 아흐리만의 기억을 들여다보고 난 후,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았기 때문이다.
-그 ‘신’이란 것들이 언제 어디서 너를 지켜보고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거지.
‘맞아.’
결국 그의 복수는 내 생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나와 아흐리만은 이미 하나의 운명공동체가 되어 있었다.
* * *
오방신은 동, 서, 남, 북, 중앙을 수호하는 신을 의미한다.
즉, 청룡 말고도 네 마리가 더 있다는 뜻이다.
{소진랑이 오방신 두 번째 신수, 백호를 불러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거대한 신수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설마…… 그 다섯 신수를 다 불러내려는 건 아니겠죠?”
“재수 없는 소리는 하지 마.”
……라고 말은 했지만, 그게 정말 사실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굳이 메시지에 ‘첫 번째’, ‘두 번째’라는 단어를 집어넣은 걸 보면, ‘다섯 번째’까지 나오지 말란 법은 없었으니까.
크허어엉!
거대한 백호가 믿을 수 없으리만치 날렵한 움직임으로 날뛰었다.
이제 와 생각하는 거지만, 청룡은 처음 봤을 때에 위압감에 비해 그렇게 크게 위험한 공격은 펼치지 않았다.
독성 가루나 분진폭발도 대처 가능한 해답이 있는 조건부 공격에 불과할 뿐.
그러나 저 백호는 정반대다.
그 어떠한 속임수도 없이, 오로지 빠르고 강한 육체로 밀어붙이는, 진짜 괴수 타입의 마물.
쾅!
“피해야 한다! 제자리에서 하는 방어만으로는 놈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
백선율이 하얀 날개를 펼친 채 급상승으로 백호의 공격을 피하며 외쳤다.
“놈의 시선을 분산시켜!”
나와 유메미 또한 그의 말을 따라 동시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최윤아와 이진윤은 비행 능력이 없는 각성자들.
“우리가 주의를 끌 테니 두 사람은 멀리 떨어져요!”
유메미가 이진윤 쪽을 보면서 말했다.
아까 전처럼 타인을 부양시키는 마법으로 저 빠른 백호의 공격을 피해 움직이는 건 불가능.
그녀는 차라리 비행 능력이 있는 세 사람이 백호의 시선을 끄는 사이, 그 둘은 지상으로 도망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텅! 텅! 텅! 투쾅!
그리고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저 백호는 허공을 밟으면서 뛰어올라 유메미를 덮쳤다.
“으아앙!”
그녀 역시 만만치 않은 속도로 비행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날지도 못하는 백호가 그걸 따라잡은 것이다.
어중간한 속도로 도주하는 건 정면으로 맞서는 것만 못한 일이라는 얘기다.
“흐아아아압!”
콰앙!
그런데 허공에서 무방비로 노출된 유메미와 백호 사이에, 누군가가 괴성을 지르며 뛰어들었다.
이진윤.
날거나 허공 밟기 같은 기술도 쓸 줄 모르는 그 녀석이, 그저 무식한 각력으로 땅을 박차고 저 높은 곳까지 뛰어올라 유메미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막을 펼친 것이다.
터어엉!
“크악!”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백호의 앞발 휘두르기 한 번에 저 멀리 날아 가버렸지만.
다행히 보호막은 깨지지 않아서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고, 그 뒤에 있던 유메미는 그 찰나의 틈 덕에 백호로부터 멀리 떨어질 수 있었다.
“고마워요!”
그녀는 자신을 지켜준 이진윤에게 짤막한 감사 인사를 했다.
이진윤은 날아가는 도중에 엄지손가락을 펴서 그 감사를 받았다.
‘누아다. 아르테미스.’
그사이 나는 백호를 잡기에 가장 적합한 정령인 누아다와 아르테미스를 소환해냈다.
큰 호랑이를 잡는 데는 큰 칼과 큰 활.
테크니컬한 기술이나 마력 붕괴 같은 게 통하지 않는 적에게는, 그만큼 무식한 물리력을 가할 수 있는 무기를 써야 하는 것이다.
콰우우우!
그 두 정령의 대검과 활에서 맹렬한 공격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건 신화급 각성자에 준하는 전력이 둘이나 더 늘어난 거나 마찬가지.
백호가 정석적인 괴수형 마물인 만큼, 서로 공방을 주고받으며 피해를 축적시켜 쓰러뜨려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얼마든지 다시 꺼내 들 수 있는 정령들은 특히 유용한 셈이다.
그런데.
“뭐 해! 백선율!”
한참 싸움이 벌어지는 와중에, 백선율이 멍하니 제자리에 부유한 채로 내 정령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행동을 하는 그가 쉬운 먹잇감으로 보이게 한 것일까.
백호가 대뜸 자신을 정면에서 공격하던 정령들을 무시하고 그에게 달려들어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민 것이다.
퍼엉!
다행히 백선율은 피격 직전에 손에서 광선을 쏘아 잡아먹히는 일은 면했지만.
너무 근접한 탓에 이빨을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큰 피해를 입은 채 지상으로 추락했다.
“선율 형니이이임!”
이진윤이 피투성이가 된 그쪽으로 달려가 보호막으로 그를 감쌌다.
백호가 연이어 추격타를 내밀었고, 이진윤은 그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투쾅!
“커헉!”
공중에서 공격을 막았던 것과는 달리, 충격이 흩어지지 않고 고스란히 그의 몸에 전해진다.
몸에 가해지는 강한 압력에 코피가 흐른다.
“뒤를 공격해! 당장!”
이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저 백호의 뒤를 쳐서 주의를 되돌리는 것뿐.
나와 유메미, 최윤아, 그리고 두 정령이 일제히 각자의 마법과 권능을 사용해 적을 공격했다.
갈라진 땅에서 물이 솟구치고, 혹독한 한기가 몰아친다.
그 얼어붙은 금속의 신수의 몸 위로 검풍과 화살, 그리고 수없이 많은 무구들이 쏟아진다.
쾅! 콰콰콰쾅! 콰우우우!
그러나 그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끝끝내 자기 몸이 망가뜨려 가며 이진윤만을 집중 공격 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을 희생해 그 뒤의 신수들에게 더 유리한 전투 국면을 만들려는 의도라도 가진 것처럼 말이다.
* * *
쓰러진 빌딩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백호의 사체.
그 앞에 이진윤이 숨을 헐떡이며 겨우 서 있다.
“헉…… 허억…….”
“진윤아!”
그는 또다시 지난번, 미스텔테인에 맞섰을 때와 비슷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눈은 붉게 충혈되고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린다.
“형님……. 이겼습니다……. 헥.”
다행히 그때보다는 사정이 조금 나은지 정신을 놓지는 않았다.
“말하지 마. 누워 있어.”
난 그에게 인벤토리에서 체력 포션을 꺼내주고, 동시에 치유 마법을 사용했다.
“형님……. 치유 마법도 쓸 줄 아셨습니까?”
“그래.”
“오…… 아무튼 감사합니다.”
나는 여태껏 간단한 치유 마법 하나도 배우지 않았었다.
어차피 치유 마법으론 자기 자신을 치료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기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그 한계가 분명한 회복 효과에 대한 불신도 있었고.
하지만 지난번 공성전 이후로, 한 명이라도 치유 마법을 더 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
“으으…….”
그때, 피투성이가 된 백선율이 간신히 깨어났다.
그는 유메미에게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괜찮아요?”
“…….”
백선율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대신 바닥에 누운 채로 흘끗, 내 쪽을 바라봤다.
짧은 순간, 그의 눈빛에서 묘한 경계심이 드러났다.
그건 아까 전 악룡 포식을 목격하고 드러냈던 감정과도 비슷했다.
아니, 그때보다 더욱 노골적이었다.
‘대체 뭐야……?’
나는 저 녀석에게 적대적이라고 할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험에 노출된 걸 알려줬고, 심지어는 내 측근인 이진윤이 목숨을 걸고 보호까지 해 줬다.
만약 처음부터 나를 적대할 인물이었다면, 이제 와서 저런 눈빛을 드러낼 이유도 없다.
차라리 그럴 거라면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까지 계속 자기감정을 감추고 있는 게 낫겠지.
아무튼 그는 내 눈을 한 번 마주치고, 다시 고개를 돌려 바닥에 누운 채로 눈을 감았다.
“많이…… 아프세요?”
최윤아가 그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하, 이러면 안 되는데.”
유메미 또한 그의 상태에 대해 우려했다.
다만 그녀의 우려는 시나리오 진행이라는 이유가 더 컸지만 말이다.
“도대체 왜 갑자기 멈춘 거예요? 공격도 잘만 피해 다니던 사람이.”
“……미안하다.”
“저한테 사과하지 마시고, 저기 누워 있는 진윤 씨한테나 고맙다고 하세요. 목숨 걸고 당신 지킨 사람이니까.”
“…….”
백선율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저 복잡한 심경이 가득 담긴 눈으로 하늘을 쳐다볼 뿐이었다.
‘왜 저러는 거야?’
난 그런 그의 생각이 도대체 무엇인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 * *
그 후로도 신수들은 계속해서 차례대로 나타났다.
주작, 현무, 기린.
주요 전력인 두 사람이 크게 다친 상황에서, 우리의 싸움은 매우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모든 신수들을 어떻게든 잡아내고야 말았다.
쐐애애액!
거대한 성검, 클리브 솔리쉬를 앞으로 내민 채 날개를 펼쳐 기린의 거대한 입속으로 돌진했다.
이 신수들은 기본적인 덩치 자체가 레비아탄보다 더 컸기 때문에 체내로 들어가는 것 자체는 일도 아니었다.
푸확!
악의의 전당 무구 발사 속도에 아지다하카 날개 비행 속도를 더한, 이중 가속 돌진 찌르기.
목표 지점은 입안의 천장 중에서 육질이 연해 보이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검을 찔러 넣은 상태에서 클리브 솔리쉬 고유의 발동 기술을 전개했다.
쾅!
상처 부위 내부로부터 신성 폭발이 일어났다.
카아아악!
기린이 고통에 몸부림친다.
흔들리는 입안에서, 난 상처에 틀어박힌 칼자루를 더욱 세게 붙잡고 안으로 밀어 넣었다.
덕분에 기린이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칼날에 의해 입천장의 상처는 더욱 벌어졌다.
‘무구 발사.’
그 벌어진 상처 안으로 클리브 솔리쉬를 제외한 나머지 12자루의 무구들을 전부 쏘아 보낸다.
콰콰콰콰쾅!
멈추지 않고 계속.
입안의 뼈와 살을 찢고.
기린의 머리를 통째로 꿰뚫을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쏘아댔다.
그리고 마치 드릴을 쑤셔 넣듯, 칼날을 더욱더 위쪽으로 찔러 올렸다.
푸확. 철퍽. 투콰콱.
뭔지 모를 끈적하고 질퍽한 물질들이 몸에 닿는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끝까지 밀고 나아갔다.
이 깜깜한 두개골 안에서, 바깥의 빛이 보일 때까지!
콰아아악!
마침내 나는 기린의 머리를 내부에서부터 관통해 밖으로 나오는 데 성공했고.
쿠구구구궁. 쿠쿵!
그 거대한 몸집의 신수는 그대로 지상에 고꾸라졌다.
“허억……. 헉…….”
“매튜 씨……. 수고하셨어요…….”
지쳐 보이는 최윤아와 유메미.
그중 유메미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난 손을 들어 그녀의 인사를 받아줬다.
‘끝났다.’
마침내, 마지막 신수인 기린까지 잡는 데에 성공했다.
전투 불능 상태인 백선율과 이진윤을 빼놓고, 세 사람만으로 이뤄낸 전과.
사실상 불가능해 보이는 일처럼 보였다.
아니, 원래라면 불가능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난 해냈다.
‘악룡 포식.’
그건 다름 아닌, 쓰러뜨린 적의 정수를 흡수하는 이 기술 덕분이었다.
콰직. 콰지직. 콰직.
{신수 기린의 정수를 흡수한다.}
{근력이 187 증가했습니다.}
{활력이 199 증가했습니다.}
{반사 신경이 156 증가했습니다.}
{집중력이 113 증가했습니다.}
{의지력이 192 증가했습니다.}
처음 청룡을 잡아먹었을 때에 비해 상당히 줄어든 스탯 증가량.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지금 내가 바로 이 신수에 거의 근접한 능력치를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미 인간 각성자의 한계를 뛰어넘은 거나 마찬가지.
바로 그 마존, 유메미가 내 힘에 의존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럼 이제 시나리오를 완료하기만 하면 되겠군.’
-아직.
‘음?’
그렇게 바깥의 상황을 정리하고 초가집 안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아흐리만이 뜬금없는 말을 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뭐? 무슨……. 설마 아직도 적이 더 남았다는 거야?’
-아니. 한계를 뛰어넘는 것.
대체 그게 무슨 소린가 했는데, 다음 순간 나타난 메시지를 보자마자 납득했다.
{오방신의 정수를 모두 흡수했다.}
{네 안에 오행의 기운이 충만해진다.}
{특성 <오방신수의 힘>을 습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