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109화 (109/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09화

“그럼 시작합니다.”

유메미가 손에서 마법 막대를 꺼냈다.

신화 수호령을 얻기 위한 관문, 신계 ‘서천꽃밭’으로의 진입을 위해서였다.

“잠깐, 그런데 그 복장으로 가는 거야?”

난 그녀의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른 게 아니라, 지금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움직이기에 너무나도 불편해 보이는 드레스였기 때문이다.

유메미가 단순히 우리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는 역할만 한다면 모를까.

시련의 진행까지 도와준다고 한 마당에 활동용 복장으로 갈아입는 게 낫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 것이다.

‘분명 지난번 누아다의 시련 때처럼 전투가 동반될 텐데.’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전혀 문제없다는 투였다.

“제 옷은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굳이 급하게 움직일 필요도 없을 정도의 마법사라는 건가.’

본인이 그렇다고 하니, 난 더 이상 거기에 대해 꼬투리를 잡지 않았다.

치지직. 치직.

곧바로 유메미가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막대가 가리킨 허공에서, 전류가 방출되는 듯한 현상이 벌어지더니 공간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거기, 진윤 씨? 지금 바로 무구 꺼내세요.”

“아…… 네.”

그러더니 이진윤에게 투영무구를 준비시켰다.

그의 손에서 보호막의 뼈대 물질인 마나 알갱이들, 즉 콩들이 생성되었다.

파지지직.

이윽고 왜곡되어 가던 공간에 균열이 생겼고, 이진윤은 유메미의 인도에 따라 투영한 콩들을 날려 그 균열 안으로 집어넣었다.

끄덕.

그와 동시에 메시지가 나타난 것인지, 그가 허공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내 눈앞에도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파티장이 시나리오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신화 수호령 ‘성주신’ 획득 시나리오}

{수락하시겠습니까?}

난 망설일 것 없이 마음속으로 ‘수락’을 떠올렸다.

잠시간의 정적.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받는 과정을 거친 다음.

파아앗.

나를 포함한 이진윤, 백선율, 최윤아, 유메미 일행은 모두 함께 어딘가로 순간이동 되었다.

* * *

탁.

발을 디딘 곳은 어느 산골.

눈에 익은 집 한 채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외진 곳이었다.

집은 전형적인 옛날 한국식 초가집이었다.

“여기가…… 서천꽃밭?”

“아뇨. 여기가 서천꽃밭은 아니에요. 그냥 이 공간을 만들어낸 신의 기억 속일 뿐이죠.”

이진윤의 의문에 유메미가 답했다.

신의 기억.

확실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지난번에 갔던 누아다의 시련 세계 또한 진짜 신들이 사는 세계인 ‘아발론’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계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여긴 성주신의 기억이라는 거겠군.’

사람들이 사는 집의 수호신.

성주신의 기억은 과연 어떤 형태일까.

“꺄아악!”

그때, 초가집 안에서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걸 듣자마자 감각을 극대화해 집안 내부 상황을 파악했다.

‘어떤 남자가 여자를 덮치려 하고 있다.’

급박한 상황.

난 곧바로 그 초가집으로 뛰어들어 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런데 이진윤이 나보다 더 빨랐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비명 소리를 듣자마자 달려 나갔기 때문이다.

쾅!

그가 잠겨 있는 초가집 문을 거칠게 뜯어냈다.

그러자 그 안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고스란히 바깥에 드러났다.

“사, 살려…… 살려주세요!”

“넌 뭐야!”

역시, 내가 파악했던 그대로의 상황이다.

“당장 그 손 놔!”

집 안으로 들어간 이진윤은 버럭 화를 내며 남자의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어지간해서는 보기 힘든 이진윤의 분노가 작렬한다.

쾅! 으드득!

“커헉!”

살벌한 소리와 함께 남자가 집 벽을 뚫고 바깥으로 날아가 한참 동안 바닥을 굴렀다.

방어 역할만 해온 탓에 두드러지지 않은 부분이었는데, 이진윤의 근력 스탯은 전설급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다.

그런 녀석의 주먹에 맞았으니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 것이다.

“……앗! 죄, 죄송합니다! 집을 부술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진윤은 집에 구멍이 뚫린 것을 보고 곧바로 여자에게 사과부터 했다.

“커헉…… 헉…….”

그 와중에 그에게 얻어맞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너희들…… 대체…… 뭐야! 쿨럭. 뭔데 다짜고짜 주먹질이야! 쿨럭!”

그자는 피를 토하면서도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이진윤과 우리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거기엔 내가 대신 대답을 했다.

“남을 괴롭힐 땐 내가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야지.”

“……뭐?”

“죄지으면서 그런 것도 생각을 안 했나?”

그러자 그가 더 화를 냈다.

“죄라니! 누가 죄를 지었다는 거야? 난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잘못이 없어?”

“저 여자는 내 부인이야! 내 부인을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니들이 무슨 상관이야!”

“하.”

“미쳤군.”

그의 헛소리에 우리 일행은 전부 할 말을 잃었다.

유메미와 최윤아는 당연히 어이없어 했고, 이진윤은 분노하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진짜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건, 그다음에 나온 여자의 말이었다.

“아니야……. 아니에요……. 저 사람은 내 남편이 아니에요.”

애초에 부부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냥 웬 모르는 남자가 집에 혼자 있는 여자를 덮치려고 한 범죄현장이었을 뿐.

“……무, 무슨! 여보! 그게 무슨 소리야? 난 당신 남편이야! 이 옷을 보라고! 당신이 지어준 옷이잖아!”

그 남자는 자신이 입은 옷을 보여주면서 여자의 말을 부인했다.

하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당신은 제 남편처럼 위장하고 옷도 빼앗아 입었지만, 전 느낌으로 알 수 있어요. 당신은 제 남편이 아니에요.”

“여…… 여보!”

바로 그다음 순간, 우리 모두는 지금 벌어지는 상황의 전말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메인 시나리오 발동}

───

<메인 시나리오>

황우양이 집을 비운 사이, 소진랑이 황우양의 아내를 범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를 막으십시오.

클리어 조건: 황우양이 돌아올 때까지 소진랑으로부터 황우양의 아내를 보호

패배 조건: 황우양의 아내 보호에 실패

───

그걸 본 순간, 머릿속에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저놈이 소진랑이다.’

이 시나리오에서 말하는 ‘소진랑’이 바로 저 쓰레기라는 것.

그리고.

-죽이자.

‘어.’

저 쓰레기를 죽이면 이 시나리오는 그대로 끝이라는 것.

문제의 원인을 제거해서 대상을 보호한다.

나와 아흐리만은 동시에 그 생각을 했다.

슈슈슉.

“어어……? 어……?”

투콰콰콰콰쾅!

“으아아악!”

아무런 사전 징조도 없이 되는대로 날아드는 무구들.

난 앞뒤 볼 것도 없이 ‘소진랑’에게 악의의 전당 무구를 모조리 쏟아냈다.

그렇게 그자는 그대로 내 공격을 얻어맞고 흔적도 없이 소멸해 버리고 말았다.

“됐다!”

놈은 핏자국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너무 과한 수준의 화력을 퍼부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괜히 어중간하게 해서 놓치는 것보단 낫다.

‘땅속으로 들어갔거나 한 것도 아니고……. 확실히 죽었군.’

이제 이 상태로 시나리오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끝.

……이라고 생각했는데.

뒤를 돌아보니, 유메미가 고개를 젓고 있다.

“그게 다가 아닐걸요.”

“뭐?”

그러더니 작은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맨눈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정령마술을 습득하면서 얻은, 영혼계를 감지하는 눈으로 보자, 그곳에 작은 영체가 떠 있는 게 보였다.

그건 소진랑의 영체였다.

-으으으……! 네놈들! 감히 날 방해하다니! 죗값을 치르게 해주마!

놈이 머릿속으로 자신의 음성을 전하더니, 곧장 저 멀리 시야에도 닿지 않는 곳으로 불쑥 사라졌다.

전형적인 삼류 악당 같은 대사를 내뱉으면서 말이다.

* * *

황우양의 아내에게 말을 들어보니, 역시나 시나리오 설명에 나와 있는 그대로였다.

“그러니까, 지금 저 소진랑이라는 놈이 남의 아내를 어떻게 해보려고 개지랄을 떨고 있다, 이거잖아?”

“그런 것 같습니다, 형님.”

들으면 들을수록 어이없는 일이었다.

대뜸 혼자 살고 있는 여자를 범하려고 남편으로 위장해서 집에 들이닥쳤다는 얘기.

이딴 게 신화 수호령을 획득하는 시련이라니.

‘누아다의 시련과 비교하면 스케일이 참 초라하군.’

누아다의 시련은 온갖 인간군상이 이리저리 얽혀서 정치적인 계산과 세력의 이합집산이 이뤄지는 가운데, 하나의 종족을 통솔해 다른 종족을 멸망시키는, 상당히 큰 스케일의 시나리오였다.

거기에 비해 이번 시나리오는 웬 뻔뻔한 파렴치한을 퇴치하는 내용.

비교가 안 될 수가 없다.

물론 전자 쪽이 너무 과하게 어렵고 복잡한 내용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선악의 구분이 확실하니 좋지 않은가? 그 루 라바다처럼 교활한 놈을 다뤄야 했던 걸 생각하면…….

‘그건 그렇지.’

뭐, 어찌 됐든 깨는 입장에선 시나리오가 쉽고 간단할수록 좋을 수밖에 없다.

적으로부터 아군을 지킨다.

시간제한이 끝날 때까지.

생각할 만한 다른 조건도 없고, 보호할 대상의 규모도 작다.

오직 이곳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순수한 힘을 시험받는 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마존, 성황. 최윤아도 신화급이고.’

그리고 지금 이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나저나, 그래서 그 ‘소진랑’이라는 녀석은 어디로 간 걸까요?”

이진윤이 내게 물었다.

“글쎄. 보아하니 마법에 능한 것 같던데.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고, 육체를 버리고 영체 상태로 돌아다니면서 말도 하고.”

한편, 그 소진랑이라는 녀석은 여러 가지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공격을 받고 피떡이 되어서 육체까지 버린 걸 보면 그 자체가 강하지 않은 건 확실하다.

게다가 그 녀석에게선 특별한 잠재력도 느껴지지 않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나리오의 메인 빌런인 걸 보면, 어쩌면 그 녀석은 힘 싸움이 아닌 뭔가 독특한 요소.

그러니까 기만이나 속임수로 공격해 오는 타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느낌이 좀 안 좋네요.”

그런데 이 상황에서 대뜸 유메미가 불길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대단한 마법을 사용하던 마존이 말이다.

“왜지? 혹시 뭔가 대단한 힘 같은 게 숨겨져 있었나? 그 녀석에게?”

내가 느끼지 못한 걸 감지한 걸까?

마법 능력 면에서 나보다 확실히 우월한 그녀가 저렇게 말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아니요. 안 느껴졌어요.”

“그럼 왜…….”

“그게 이상하다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느껴진 게.”

유메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그 녀석에게서 아무런 잠재력도 느끼지 못한 것이다.

“다른 인물로 변신하는 능력은 그렇다 치고, 육체를 버리고 자신을 영체화하는 능력을 쓸 정도면 상당한 수준의 마법사라는 의미예요.”

“……그런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마나조차.”

“맞아요. 마나 역류로 영체를 공격하려고 해봤는데, 전혀 먹히지도 않았고.”

“그렇다는 말은…….”

“오늘 우리가 봤던 게 다 환영이거나, 아니면 그자가 마법을 쓸 수 있게 도와주는 다른 어떤 주체가 있다는 뜻이죠.”

그 둘 중 어느 쪽이어도 문제는 심각하다.

적이 이 다섯 명에게 동시에 환각 마법을 걸 수 있을 정도의 말도 안 되는 능력자여도 골치 아프고.

마법 지원의 주체가 따로 있다면 그 주체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그런 거라면 차라리 후자였으면 좋겠군.”

그나마 후자라면 대항할 가능성이라도 있겠지만, 전자면 그건 진짜 답이 없다.

아예 싸움이 성립조차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저도요.”

유메미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마존에게 환상을 걸 수 있는 마법사라면 나도 피하고 싶군.”

백선율도 마찬가지.

이진윤과 최윤아마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했다.

“상대가 적어도 상대할 수 있는 적이라면…… 좋겠네요.”

그렇게 우리는 환각술사 같은 게 나오지 않기를 기도하며, 적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

쿠구궁. 쏴아아아.

이윽고, 스산한 바람과 함께 바깥에서 어떤 존재의 기척을 느꼈다.

“왔다.”

이곳에 들어온 다섯 명의 각성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존재를 맞이하기 위해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벌써 무구를 꺼내 든 자도 있었고, 맨손으로 나간 자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망할.”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다들 표정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바라던 대로 되긴 됐네.”

다행히 위험해 보이는 마법사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해 보이는 게 나타나서 문제지.

{소진랑이 오방신(五方神) 첫 번째 신수-}

런던을 깔아뭉개던 레비아탄 따위는 그냥 실뱀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하늘 전체를 가득 채운 거대한 푸른 용.

{청룡을 불러냈습니다.}

청룡이 바로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