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00화
백선율은 벨그레이브로부터 갈라져 나와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서, 유니폼도 원래의 것과는 다르게 만들었다.
원래 벨그레이브의 유니폼이 검은 정장 코트 풍의, 멋을 살렸으면서도 심플한 옷이었다면.
백선율의 백산 클랜 유니폼은 그야말로 눈에 확 띄는 새하얀 제복이었다.
게다가 거기에 르네상스 시대 귀족들이 두를 것 같은 케이프까지 두르고 있었는데, 솔직히 처음 보고는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복장이 지금의 최윤아에게는 찰떡 같다는 표현이 맞아떨어질 정도로 어울렸다.
레이드에서의 그 악에 받친 듯한 모습도, 벨그레이브에서의 순한 모습도 아닌.
위엄이 넘치는 여왕 같은 모습에 말이다.
“윤아야, 여기.”
“고마워.”
그런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며 수발을 들고 있는 이진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들 수밖에 없었다.
“헤헤.”
이젠 아예 헤벌레한 표정을 짓기까지 한다.
정말 제대로 꽂혔나 보다.
최윤아의 달라진 모습에.
‘저 자식…….’
실은 이진윤만 저런 상태가 된 게 아니었다.
그녀가 이곳 알포드 성에 온 지 겨우 하루, 온 성안 남자들 사이에는 파다한 소문이 퍼진 상태였다.
엄청나게 매력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의문의 여성이 나타났다면서 말이다.
“어이, 저 여잔 도대체 누구야?”
다리우스가 내게 물었다.
“왜, 너도 관심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진윤이가 정신을 못 차리길래. 도대체 누구인가 싶어서 물어본 거야.”
“어릴 때부터 친구라고 하든가.”
“허. 그럼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건가?”
“모르지, 뭐. 아직은 아니지만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사실 여러 번 그녀가 바뀐 모습을 봐왔던 나로서는, 지금의 저 모습이 지극히 수상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래. 네놈은 이성적인 놈이라 다행이군. 저 모습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
아흐리만은 그것이 최윤아 본인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했다.
본인의 모습이 아니라는 건, 지금 그녀에게서 풍겨 나오는 아우라가 그녀의 수호령인 ‘다누’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누는 신들의 어머니 여신이다. 그 신들로부터 태어난 필멸자 인간에겐 더더욱 강력한 매력과 위엄이 느껴질 수밖에 없지. 그런 당연한 감정들을 마치 저 여자 자신의 매력으로 착각한 것뿐이다.
결국 지금의 저 현상 역시도 그녀가 가진 신화 수호령 덕분이라는 얘기.
‘대체 저걸 어떻게 얻은 거지?’
그런데 난 최윤아가 신화 수호령을 얻게 된 경위가 매우 궁금했다.
‘다누……. 패치노트에도 그런 건 없었어.’
지금 난 최근 7년 차까지의 모든 패치노트 내역을 전부 가지고 있다.
그 안에는 검제의 수호령인 마나난 막 리르부터 시작해서, 염왕의 수호령인 해모수 등, 모든 신화 수호령의 획득 기회가 쓰여 있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다누라는 이름의 수호령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게다가 올해 초에 최윤아를 만났을 때는 역사 수호령이었던 걸 생각해 보면, 그녀가 신화 수호령을 가진 건 그 이후의 일이라는 건데.’
패치노트에도 누아다 이후로는 그 어떤 신화 수호령 획득 이벤트도 없었다.
-그건 확실히 이상하군.
뭔가를 계속 놓치는 기분이다.
백선율의 수호령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그렇고…….
그 녀석 주변에 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다 의심스럽다.
-그놈을 네 본진에 들여놓은 게 잘한 일일까?
아흐리만은 백선율이 이곳 알포드 성에 들어온 것을 우려했다.
위험한 녀석을 안방에 끌어들인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역으로 말하자면, 놈이 내 손아귀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놈이 내 본진에 들어온 게 잘한 일일지를 고민해야 할걸.’
* * *
2034년의 1월 1일이 되기 일주일 전.
알포드 클랜의 클랜장인 나에게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당신은 <알포드 성>의 소유자입니다. 당신의 클랜은 1월 1일 오전 9시에 시작되는 공성전에 참여하게 됩니다.}
공성전 시작 사전 알림이었다.
{당신의 상대는…….}
그리고 매칭이 시작되었다.
오크, 엘프, 인간, 렙틸리언.
네 종족 중 두 종족이 맞붙는 전투.
{<오크계>의 <도끼> 클랜입니다.}
첫 상대는 오크였다.
‘아니? 젠장.’
그런데, 종족이 누구인지는 둘째 치고, 클랜 이름이 너무 불길하다.
‘오크 종족의 ‘도끼’ 클랜이라니. ……이런 레어한 클랜명을 가진 상대가 적이라고?’
그야말로 고인물 중에 고인물만 모였을 것 같은 이름.
물론 이건 게임이 아니기에 진짜 그럴지는 알 수 없지만.
저런 이름을 선점했으면서 영지까지 소유하고 있다면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공수만이라도……. 제발.’
이제 난 기도해야 한다.
공수만이라도 유리한, 수비 측이 될 수 있도록.
그러나 신은 그런 기도마저 외면하고 말았다.
{<오크계>의 <도끼> 클랜은 수비 측을 맡습니다.}
{<제1 인간계>의 <알포드> 클랜은 공격 측을 맡습니다.}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그러게 왜 신한테 기도를 한 거냐? 그놈들한테 뭔가를 바라서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걸 본 적이 없다.
‘시끄러, 젠장.’
결국 믿을 건 우리가 가진 순수한 전력뿐.
남은 시간은 7일.
지금부터 전쟁 준비를 시작한다.
* * *
일주일 후.
일정대로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시간은 아침 9시.
{<오크계>의 <도끼> 클랜 소유 <알포드 성>으로 이동합니다.}
파아앗.
이번 공성전의 공격 측을 맡은 우리는, 상대측의 성으로 공간이동 했다.
“여기가…… 알포드 성?”
시스템에 의해 강제 순간이동 되어 도착한 이곳은, 원래 우리가 있던 알포드 성과 완전히 똑같은 환경을 가진 장소였다.
지난번 내가 지하 통로를 통해 넘어왔던, 바로 그 거울처럼 똑같은 세계.
“지형은 완전히 똑같다, 브로.”
보그단이 바닥에 손을 대더니 그렇게 말했다.
수호령 ‘로그’의 권능인 지형지물 파악 능력을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성이 확실히 초라하군. 우리가 옛날에 처음 여기 들어왔을 때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그때보다 더 낡아빠졌다.”
다리우스와 보그단의 말대로, 오크 계의 알포드 성은 상당히 낙후되어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규격 외의 자금력 동원이 가능한 내 성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등급이 그리 높지 않은 이 영지를 그만큼이나 발전시킨 내가 특별한 케이스.
“그래도 방심하지는 마. 겉보기가 저렇다고 해서 안에 지키는 사람들까지 약하리란 법은 없으니까.”
어쨌거나 난 클랜원들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상대 쪽이 범상치 않은 이름을 가진 클랜인 만큼,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기 때문이다.
“…….”
그렇게 말을 하다가, 난 백선율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보다 훨씬 큰 집단의 수장이다 보니, 명령을 내리기도 뭣한 관계다.
어차피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움직이겠지만…….
“주저할 것 없다. 지금은 매튜 당신이 대장이니, 당신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겠다.”
그는 의외로 상식적인 반응을 보였다.
워낙 기분 나쁜 포인트로 가득한 인간이라 그런가, 이런 겸손한 모습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래, 그럼…… 원거리 화력지원 부탁할게. 결계 파괴 용도로.”
“문제없지.”
난 그에게 화력지원을 부탁했다.
예전 그가 러시아에 퍼부었던 대규모 폭격을 생각하면, 그게 가장 알맞은 역할일 것이다.
“막시모. 너는 지상 병력을 이끌고 정면을 공격해라. 가렌. 너는 비행 병력과 함께 백선율을 보조하고.”
“알겠습니다.”
내가 열심히 육성해 놓은 NPC 병력들은 백선율과 함께 정면공격을 담당한다.
“최윤아. 당신은 나와 같이 움직인다. 아델, 이진윤. 다리우스. 보그단. 너희들 모두 나를 따라와.”
그리고 나머지 중 가장 믿음직한 인물들로 특공대를 꾸렸다.
성 내부에 몰래 침투해서 적을 흔들어놓기 위한 역할이다.
이곳은 알포드 성과 구조가 똑같기 때문에, 내외부를 연결하는 비밀통로 역시 같은 위치에 있을 터.
난 그곳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물론 적들도 그걸 알고서 대비를 해뒀겠지만, 그런 상황도 이미 다 고려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내가 왜 너를 따라가야 하지?”
그런데 여기서 최윤아가 내 지시에 반감을 보였다.
“유, 윤아야…….”
“난 선율 오빠랑 같이 움직일 거야. 너희랑은 안 가.”
쿠궁.
하는 소리가, 왠지 이진윤 쪽에서 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너. 나한테 명령하지 마.”
그녀는 지금 ‘매튜’로 위장해 있는 나에게 상당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었다.
“윤아.”
“네?”
“지금은 매튜 말에 따르도록 해. 여기서 지휘관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니까.”
“……알겠습니다.”
하지만 백선율의 말 한마디에 이내 고분고분해졌다.
마치 주인과 시종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철저한 상하 관계가 형성된 듯한 기분.
“으으…….”
그런 모습을 본 진윤은 더더욱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툭툭.
난 말 없이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 * *
아르테미스.
수목 속성의 마나로 이뤄진 초록빛 여성형 엘프 정령.
그것이 힘껏 당겼던 활시위를 놓자, 두 줄의 광선이 전방으로 뻗어 나가 저 멀리에 서 있던 보초병 둘을 동시에 사살했다.
피잉. 퍼퍽.
한 번 사격으로 여러 명의 조준된 적을 사살하는 다중 사격.
정령 아르테미스만이 구사할 수 있는 고유 기술이었다.
“여기서 기다려.”
유신우는 동행한 다섯 사람을 제자리에 대기시켜 두고 아르테미스를 소환 해제시킨 뒤 쓰러진 오크 보초병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악룡 포식을 사용해 시체들을 집어삼켰다.
{오크(남)의 형상을 기억한다.}
{기억된 형상: 3/3}
지금 그는 악룡 포식으로 잡아먹은 생물의 형상을 최대 세 종류까지 기억할 수 있다.
덕분에 유신우는 위장 외형인 뱀파이어의 형상을 저장해 둔 채, 오크 보초병의 형상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비밀통로 안쪽에 진입하더니.
잠시 후,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매튜’가 다시 밖으로 나와서는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진짜 무서운 사람이다, 브로.”
“저 친구랑 적으로 만나지 않은 걸 천만다행으로 여겨야지.”
그렇게 특공대는 단숨에 비밀통로 안으로 진입했다.
쿵. 쿠쿵.
때마침 밖에서는 백선율을 포함한 공격대가 정면 타격을 시작했다.
지상과 하늘, 양쪽에서 펼쳐지는 화력 전개.
적의 시선이 그쪽에 쏠려 있는 사이, 지하에서는 유신우를 필두로 한 침투조가 내부를 잠식해 나간다.
“목표는 후위에 남아 있는 마법사들이다. 빠르게 제거하고 탈출한다.”
그들은 곧장 지하 감옥을 지나 내성으로 진입했다.
그러자 유신우의 예상대로, 대부분의 오크 측 병력들은 바깥의 공격대를 상대하고 있었고.
성안 쪽에는 원거리에서 그들을 지원하는 마법사들과 소수의 수비병력만이 배치되어 있었다.
‘정령 소환, 누아다 아르게틀람. 루 라바다.’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두 체의 정령들을 불러내는 유신우.
그의 마법 시전을 필두로, 나머지 다른 각성자들 역시 공격에 가담했다.
그런데.
쿵!
“이놈들! 이 안으로는 절대 못 들어간다!”
유신우가 한 가지, 간과하고 있던 것이 있었다.
마법사들이 전사들보다는 폐쇄 공간에서의 근접 난전이 상대적으로 약할 거라는 일반적 상식.
“오크의 명예를 걸고, 침입자들을 분쇄하자!”
“우오오오오!”
그런 상식은 인간계에서만 통용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