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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98화 (98/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98화

지금 인류는 밖으로 튀어나온 마물들을 피해, 클랜들이 소유하고 있는 ‘영지’ 내부에 생활권을 구축해 살고 있다.

덕분에 문명은 전근대 시절 수준으로 후퇴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안전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인류가 멸망하거나 하는, 아주 극단적인 현상은 벌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겨우 새 살길을 찾은 사람들에게,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난 패치노트는 말하고 있다.

-이제 너희가 구축한 그 새로운 보금자리를 두고 다른 세상의 다른 종족들과 경쟁해라.

예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이 시스템이란 건 정말로 악랄하기 그지없는 존재인 것 같다.

‘사람을 영지 안에 다 몰아넣고, 이제 그 영지를 두고 전쟁을 하라는 건가. 하.’

-이건 아무리 봐도 그 신이란 족속들이 하는 짓과 똑같군그래.

아흐리만은 이에 대해 시스템이 자신의 시대에 존재하던 신의 성향과 매우 닮았다고 했다.

‘그럼 이 시스템도 그 신들이 만든 거라는 건가?’

-그렇게 봐야겠지.

‘아니, 그래.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이거야.’

하지만 지금 진짜 문제는 시스템의 의도 같은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이 안에 쓰인 내용.

‘제1 인간계는 뭐고, 오크계, 엘프계, 렙틸리언계는 또 뭐야?’

패치노트에 따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제1 인간계’라는 곳이고, 저 ‘오크계’라느니 ‘제2 엘프계’라느니 하는 다른 세상과 공성전을 벌일 거라고 한다.

-난 뭔지 알 것 같은데.

추측하자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인간이 주축이 된 세상.

이 세상과 마찬가지로 오크, 엘프들이 주축이 되어 살고 있는 세상이 또 있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

-잘 아네. 그리고 거기에도 너와 같은 각성자들이 있을 것이다. 검제, 성황, 염왕 같은 강자들도 있겠지.

‘그리고 그 녀석들의 신을 수호령으로 삼고 있고.’

-그렇겠지.

이제 슬슬 그동안 나에게 나타나던 ‘신화시대의 기억’이라는 환영에서 보인 세상과 이 현실 세계의 접점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그 시대에 존재하던 오크 종족과 엘프 종족이 어느 순간 한꺼번에 멸망하고 인간만 남은 게 아니라.

이 패치노트에서 말하는 수없이 많은 ‘이면세계’로 흩어진 거라면?

그렇게 생각하면, 이 지구에 이종족의 문명은커녕 화석조차 남아 있지 않은 이유가 설명이 된다.

‘아무튼, 그래서 그 공성전이란 게…….’

계속해서 이 패치노트가 말하는 ‘공성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그 아래에 나와 있는 내용을 읽어보았다.

───

공성전은 각 영지별로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스케줄대로 진행됩니다.

정해진 날짜에 맞붙게 되는 두 종족 중 승리한 종족은 해당 영지를 계속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패배한 종족의 세계에서는 해당 영지에 입장하는 포탈을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며, 또한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 비생물은 소멸합니다.

이 공성전은 해당 영지에 대한 접근 권한을 가지는 종족이 단 한 종족만 남을 때까지 진행됩니다.

───

영지의 소유권을 걸고 진행되는, 말 그대로 토너먼트 전쟁.

‘생물 및 비생물 소멸’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패배하는 쪽은 전원 몰살당하는 것 같다.

‘정말 미친 게임이군.’

탄식이 절로 나온다.

보금자리를 걸고 싸우는 데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지면 전원 사망이라니.

아무튼 그 아래에는 계속해서 세부 규칙들이 죽 길게 이어져 있다.

공격과 수비는 어떻게 정하고, 승패는 어떻게 가름하고, 어떤 상황에는 어떤 룰을 적용하는지.

하지만 일단 그런 건 다 넘어가고, 제일 중요한 것부터 찾아본다.

‘날짜……. 날짜…….’

내 소유의 성인 알포드 성.

알포드 성에 예정된 공성전은 언제인가.

그걸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제1 인간계 <알포드 성>: 2034년 1월 1일}

왜냐하면 제일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씨X.”

오랜만에 쌍욕이 튀어나왔다.

새해 벽두부터 한바탕 혈전을 치르게 생겼다.

* * *

“다리우스.”

“엉?”

난 가장 먼저 다리우스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나와 패치노트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으면서도 또한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이번 패치노트 말인데.”

“아아, 그래. 그 다이아 경매 끝났었지? 거기서 뭐래?”

“이거 봐.”

난 그에게 손을 내밀어 패치노트 내역을 시스템 메시지로 보여주었다.

그는 그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이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오크계, 엘프계, 렙틸리언계……. 이게 다 뭐지?”

그는 역시나 그 부분에서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난 이미 아흐리만의 기억을 통해 문명화된 이종족과 그들만의 신이 존재함을 두 눈으로 봤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에겐 그야말로 뜬금없는 소리일 수밖에 없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곧 전쟁을 할 거라는 거야. 다른 종족들이랑.”

“마물들이랑 전쟁을 한다고?”

“그래. 근데 그 마물들이 우리처럼 각성자이고 권능과 마법을 쓰는 높은 지성의 집단이라는 사실이 조금 특별한 점이라는 것 정도.”

“그건 그냥 좀 특별한 수준이 아닌데. 나 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하아.”

다리우스는 끝끝내 내 말을 부인하려다, 결국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이 온갖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자아내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좋아. 네 말이 다 옳다고 치자고. 그럼 이제부터 우리가 전쟁을 해야 한다는 거잖아?”

“그래. 그것도 이종족들과.”

“여기 패치노트에 따르면, 우리는……. 오, 젠장. 바로 내년 첫날이네.”

그는 내가 일정을 확인했을 때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맞아. 당장 열흘 뒤야. 준비고 뭐고 할 여유조차도 없지.”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성의 수비가 단단하다는 건데…….”

지금 알포드 성은 처음 7급 영지였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성장해 있었다.

방어능력만으로 따지면 1급 영지였던 코홀리테 요새에 버금갈 정도.

그때 염왕도 하루 만에 뚫지 못했던 그 단단한 보호막과 그런 그와 치열한 싸움을 벌일 만큼 강한 수비병들이 지금 이곳에 있다는 것이다.

이건 모두 무한한 골드와 다이아로 발전에 아낌없는 투자를 쏟아부은 결과물이었다.

“문제는 이 공성전에서, 우리가 공격 측이 되어버리면 다 말짱 도루묵이라는 거지.”

하지만 문제는 이 공성전의 공수가 랜덤하게 결정된다는 것이다.

“‘어느 종족과 공성을 하게 될지는 전투 개시 당일로부터 일주일 전에 결정됩니다. 공수 또한 그날 지정됩니다’……라는군.”

“쉣, 그럼 우리가 만들어놓은 이 엄청난 방어시설을 하나도 못 쓰게 될 수도 있다는 거야?”

“그래.”

“제기랄! 이거 완전 엿 같은 상황이잖아? ……잠깐, 그럼 설마 이 성을 적이 이용하는 건…….”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다리우스가 순간 불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가 걱정한 건, 내 돈으로 쌓은 이 성을 다른 종족이 수비 용도로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패치노트엔 수비 역할을 할 때는 그 종족 자신이 구축한 성을 수비하는 거라고 적혀 있었다.

‘그때 그 오크 세계의 알포드 성……. 그게 적 진영이 될 수도 있다는 거군.’

지난번 마르코시아스와 싸움을 벌였을 때, 모종의 차원 왜곡 현상으로 인해 나는 오크들이 가득한 알포드 성에 갔었고, 그곳을 점령했었다.

그땐 그게 그냥 이상 현상의 일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거기가 바로 이 패치노트에서 말하는 ‘오크계’의 알포드 성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우리 성이 적에게 넘어가는 일 같은 건 벌어질 일이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야 다행이구만.”

“확실한 건, 우린 지금부터 열흘 뒤에 벌어질 공성전을 준비해야 된다는 거야. 우리가 공격 측이 되건, 수비 측이 되건, 그 걱정은 공수가 결정이 되고 나서 해도 늦지 않을 거고.”

“그래. 네 말이 맞아.”

다리우스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근데 말이야.”

“음?”

“내가 보기엔 이거…… 단순히 우리 문제로 끝날 일이 아닐 것 같은데.”

그건 지금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이야기였다.

“이 패치노트, 너만 알고 있을 거야?”

“아…….”

이와 비슷한 고민은 전에도 한 적이 있었다.

포탈이 양방향으로 변한다는 이야길 세상에 알리느냐 마느냐.

그런데 그건 굳이 알리지 않았어도 이미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현상이었고, 또 사람들은 경고 없이도 잘만 알아서 영지 안으로 피신해 들어갔었다.

하지만 이번 문제는 다르다.

미리 안다 하더라도 피할 수 있는 종류의 것도 아니거니와, 모르면 영문도 모른 채로 공성전에 맞닥뜨려야 하게 된다.

그리고 저항할 새도 없이 적 종족에게 패배하고 인간들은 몰살당하고 말겠지.

게다가 더 중요한 건, 지금의 구도는 단순히 ‘재앙을 마주한 인류’ 같은 게 아니라는 거다.

“알려야지. 전부 다.”

이건 이종족과의 생존 경쟁이다.

인류의 세력이 약해질수록 나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신화시대의 아흐리만이 처했었던 상황과 같이 말이다.

“그래, 그거지. 나도 그게 맞다고 생각했어, 친구.”

다리우스 덕분에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상기할 수 있었다.

* * *

사실 공성전 시작 전까지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미 클랜 내에 소속되어 있는 병사들은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고.

병기나 탄약, 소모품 같은 건 항상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다.

내 인벤토리 안에만 해도 일개 대대 정도 규모의 부대는 너끈히 굴릴 수 있는 군수물자가 들어 있으니 말이다.

그보다 현재 당면한 문제 중 가장 중한 것은 역시, 패치노트 내용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당장 알포드 성뿐만 아니라 다른 영지들도 그다음 날부터 연달아 공성전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이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

왜냐하면, 지금은 기존 지구 문명이 무너지면서 전파 통신도 케이블 통신도 다 사라진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결국 전근대 사회에서 행했던 것처럼 사람들과 직접 대면하는 수밖에 없었다.

“선율이 형님을요?”

“그래. 지금 그 벨그레이브 4인방 중에 그나마 연락이 닿을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너밖에 없어.”

현재 세상은 예전 벨그레이브의 1급 각성자 4인방을 중심으로 한 4개 세력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

난 그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패치노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작정이었다.

가장 큰 세력의 수장들이라,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대비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백선율은 이진윤과 친척 관계이니,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말이 잘 통할 것이다.

“하지만 형님, 선율이 형님도 형님을 그렇게 추적하던 벨그레이브였는데……. 패치노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물론 그건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던 행동이었다.

여태껏 내 정체를 숨기고 몰래 움직인 이유가 그들로부터 패치노트의 소유를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염왕은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안 순간 지구 끝까지 쫓아와 죽이려 들 터.

“괜찮아.”

하지만 나도 마냥 무모한 짓을 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중요한 건 ‘유신우’임을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것.

난 그걸 위한 비술을 가지고 있다.

“그냥 백선율이 있는 곳을 알려주기만 하면 돼.”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백선율.

나와는 큰 접점이 없는 인물.

그렇기에 만약 이야기가 잘만 흘러간다면, 어쩌면 지원을 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잘만 흘러간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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