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97화
쿠쿵. 콰르릉.
런던이 무너진다.
오랫동안 인간이 공들여 쌓은 도시가, 거대한 몸집을 가진 뱀 형상의 마수, 레비아탄의 배에 깔려 잿더미가 된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이곳에 죽어 나가는 무고한 민간인이 없다는 것.
이미 11월 1일이 되기 전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살 곳을 찾아 영지로, 던전으로 떠났다.
그리고 11월 1일이 되자 세상의 모든 포탈에서 마물들이 바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은 던전 안으로, 마물은 던전 밖으로.
바야흐로 지구의 주인이 뒤바뀐 날이 오게 된 것이다.
“신호하면 움직여.”
우린 그렇게 폐허가 된 세상 위에서, 인간의 도시를 짓밟아 파괴하는 마수들을 사냥한다.
딱히 무슨 사명감 같은 걸로 하는 건 아니고, 저 레비아탄을 잡아서 나오는 보상을 얻기 위해서였다.
각성자들의 삶은 세상이 이렇게 무너지기 전이나 후나 여전히 같았다.
“형님, 저는…….”
“너는 앞에 나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 미끼 역할은 저 정령들이 다 해줄 테니까.”
“아, 넵.”
이진윤이 나에게 앞에 나서도 되는지 물었다.
항상 해오던 전위 포지션.
후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 대신 마물들의 공격을 받아내는 위험한 역할이다.
이제 그는 예전처럼 겁먹고 도망치거나 하지는 않게 됐지만.
더 이상 굳이 그런 위험한 일을 무릅쓸 필요는 없다.
그걸 대신해 줄 정령들이 있기 때문이다.
투쾅!
전신에 전류가 흐르는 인간 남성 형태의 마나 덩어리가 손바닥에서 포탄을 발사했다.
저건 루 라바다의 정령이다.
콰우우!
그리고 새하얗게 빛나는 신성 속성의 남성형 정령이 대검을 휘둘러 거센 풍압을 일으켰다.
저건 누아다 아르게틀람의 정령이다.
-하하하! 싸워라, 노예들아!
그리고 아흐리만은 그걸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나는 그동안 정령술 스킬을 ‘심화 정령마술’까지 업그레이드시켰다.
덕분에 단순한 마나 덩어리의 모습으로 소환되던 수호령들이, 이제는 어느 정도 사람 모습을 갖춘 정령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지난번 시련에서 옹구스가 브리이드를 소환했던 것과 같은 형태.
거기에 더해 ‘이중 소환’과 ‘1단계 제어거리 증가’ 스킬까지 얻어냈다.
덕분에 나는 정령을 한 번에 두 체를 불러내고, 그것들을 최대 30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까지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리우스, 보그단. 너희는 뭉쳐 다니면서 원거리 공격으로 레비아탄의 머리를 공격해.”
“알았다.”
“오케이, 브로.”
“그리고 진윤이 너는 이 두 사람이 다치지 않게 보호하고, 결전기 차단에 대비해.”
“넵!”
“레비아탄의 주의가 정령한테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머지 인원들에게 후위 공격을 맡겼다.
이진윤이 방어막을 펼쳐 안전 공간을 만들었다.
그 안에서 다리우스와 보그단은 각각 마법 막대와 활로 공격을 펼친다.
쾅! 타타타탕!
다리우스의 수호령, 나폴레옹에 의해 소환된 전열보병과 포병들이 레비아탄에게 일제 사격을 가하고.
보그단은 로그 수호령의 두 번째 주 무기인 활로 속사를 날린다.
이로써 레비아탄의 표피를 지속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공격진이 완성되었다.
“아델.”
“네!”
“넌 날 따라와.”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임무.
저 괴물의 뱃속에 들어가 핵을 파괴하는 건 나와 아델이 할 것이다.
“곧 있으면 레비아탄이 입을 벌릴 거다. 우린 그 안에 침투해서 놈의 핵을 파괴할 거야.”
“네.”
아델은 내 계획을 듣고도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같은 되물음이 한 번쯤 나올 법하지만, 그녀는 전적으로 나를 믿고 따랐다.
그래도 속으로는 불안해할지도 모르니, 난 그녀를 안심시켰다.
“레비아탄은 여기 바깥에 있는 정령들에게 공격을 집중하느라 체내에 침투한 우리를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대신 우리가 침투한 걸 눈치채면 더 위험하겠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끝내야 하니, 짧은 시간 안에 화력을 집중해야겠지.”
“일순에 최대화력. 알겠습니다.”
아델은 내가 한 말을 되새기며 계획을 머릿속에 확고히 했다.
고오오오! 콰쾅!
때마침 레비아탄의 공격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최전방에서 몸을 갈아 넣고 있는 두 정령들이 지상에서 치솟아 오르는 물기둥에 큰 피해를 입었다.
루와 누아다. 둘 다 몸이 거의 걸레짝이 된 상황.
‘재소환. 루 라바다, 누아다 아르게틀람.’
물론 난 그것들을 다시 불러내면 그만이다.
내 몸에는 흘러넘치는 대량의 마나가 있고, 이걸 본격적으로 쓸 만한 곳은 정령 소환 마법뿐이다.
목숨이 하나뿐인 사람 대신 몇 번이고 죽어줄 수 있는 정령들.
이걸 계속해서 소환할 여력이 있는 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다치지 않는다.
크허어엉!
그렇게 다시 투입된 정령들과 이진윤 일행에 맞서 사투를 벌이던 레비아탄은.
‘열렸다!’
마침내 그 거대한 입을 벌려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결전기인 유수속성 파괴 광선을 전방위로 조사하려는 것이다.
“진윤아! 디스펠!”
“예!”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이진윤은 지금까지 적의 마법 시전을 방해할 수 있는 디스펠 권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오른손으로는 방어막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왼손으로는 작은 갈댓잎 조각을 구현한 상태였다.
그것을 레비아탄을 향해 휘둘렀다.
위이이잉.
그러자 레비아탄의 입안에 모여들고 있던 기운들이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최상위 마수의 결전기를 단 한 번의 권능 시전으로 막아버린 것이다.
어지간한 마법사계 각성자들이 배우는 공통마법으로는 어림도 없을 만큼 높은 수준의 디스펠.
우투리라는 수호령이 처음에는 좀 귀엽고 우스워 보이긴 했는데, 결코 무시할 만한 수호령은 아니었다.
물리 피해 방어, 마법 차단. 방어 측면에 한해서는 최강이라 단언할 수 있을 정도다.
“가자! 아델!”
“네!”
이진윤의 능력에 대한 감탄은 거기까지.
레비아탄은 이제 입을 벌린 채 공격이 차단당한 상태가 되었다.
이건 놈의 몸속으로 들어가기에 절호의 기회다.
쐐애액!
쩌엉!
나는 날개를 펼쳐 그 안으로 날아갔고, 아델은 허공을 밟으면서 뛰어들었다.
그렇게 레비아탄의 거대한 몸속에 들어가는 데 성공.
더럽고 끈적한 체액이 사방에서 튀는 좁은 공간에 진입했다.
나와 아델은 그 환경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그 안으로 미끄러지듯 흘러들어 갔다.
코어가 나올 때까지.
“찾았다! 저기!”
난 어느 지점에 이르러, 강렬한 마나의 파장이 느껴지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델 역시 뭔가를 느꼈는지, 그 부근에 멈춰 서서 참격 자세를 취했다.
‘에테르 증폭.’
일순간에 모든 화력을 쏟기 위해 에테르를 폭주시켰다.
그리고 악의의 전당에 등록된 모든 무기들을 소환했다.
총 13자루의 각기 다른 무구들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낸다.
꿀렁. 꿀렁.
그때, 체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식도 벽 전체가 움직이며 변형하더니, 촉수가 뻗어 나왔다.
레비아탄이 자신의 몸 안에서 무언가 위험한 게 벌어짐을 눈치챈 것이다.
‘이미 늦었어.’
그러나 나와 아델의 화력 전개 준비는 그 촉수들이 겨우 모양을 잡기도 전에 벌써 마친 상태였다.
“지금이다!”
“네!”
내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으로 13자루의 무구들이 일제히 발사된다.
그리고 아델이 휘두른 검 끝에서 사자의 형상을 한 맹렬한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아아!
최대치까지 집중된 두 사람의 화력이.
레비아탄의 코어에 무자비하게 꽂힌다.
* * *
쩌걱. 쩌걱.
아지다하카의 머리가 쓰러진 레비아탄의 시체를 뜯어먹었다.
크기가 워낙 크다 보니, 포식을 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을 소모해야만 했다.
{레비아탄의 정수를 흡수한다.}
{근력이 386 증가했습니다.}
{활력이 354 증가했습니다.}
{반사 신경이 311 증가했습니다.}
{집중력이 430 증가했습니다.}
{의지력이 427 증가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시간을 들인 보람은 충분했다.
한 번에 얻어낸 스탯의 양이 굉장했으니까.
‘그런데 베히모스를 포식했을 때는 대략 700 내외의 수치가 상승했던 것 같은데……. 레비아탄이 급이 떨어지는 건가?’
다만 한 가지 의문이 있다면, 지난번 베히모스를 잡아먹었을 때보다는 현저히 상승량이 낮다는 점이었다.
내가 알기론 분명 레비아탄과 베히모스는 동급의 마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탯 상승량이 확실히 눈에 띄게 차이가 난 것이다.
-그만큼 네가 강해졌다는 뜻이다.
‘음?’
-포식으로 얻는 스탯량은 네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체감한다. 아마 다음에 레비아탄을 또 포식하면 이것보다 증가량이 더 낮겠지.
이론상 한계가 존재한다는 건가.
같은 수준의 적을 계속 잡아먹는 걸로 성장하지는 못한다는 뜻 같았다.
-그럴 땐 계속해서 너보다 더 강한 적을 잡아먹으면 된다.
‘말이야 쉽지. ……뭐, 그렇게 될 수밖에 없긴 하겠지만.’
아흐리만이 말한 것처럼, 난 앞으로 계속 나보다 더 강한 적을 잡아먹는 환경에 노출될 것이다.
세상은 계속해서 더욱 위험하고 거칠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지구의 주인이 바뀌었다.
내년엔 그에 상응하는, 아니, 그보다 더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다이아 경매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은 패치노트에 적혀 있을 것이다.
난 작년과 다름없이 그걸 확보해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비해 놓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당연히 다이아 경매에서 이기기 위한 돈 확보.
{보유 골드: 108,450,794,259,852,100,263,542,224}
{보유 다이아: 1,000,000,000,000}
이 세상의 마지막 은행 전산 거래가 정지되는 날까지, 붕괴하는 경제 속에서 모든 초인플레이션 통화를 긁어모아 골드를 확보했다.
단위로는 ‘자’.
조, 경, 해, 다음 단위의 숫자.
어느 정도 크기인지를 느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무한하구나’ 하면서 적당히 넘어가도 될 정도다.
그리고 난 그 골드를 100 대 1 비율로 얼마든지 다이아로 바꿀 수 있다.
즉, 앞으로 세상이 멸망하는 날까지, 어느 누구도 다이아 경매에서 나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이아 경매가 종료됩니다.}
그리고 며칠 후, 당연하게도 패치노트는 내 손에 들어왔다.
당연히 어느 누구도 나보다 더 많은 다이아를 확보할 수는 없다.
심지어 올해는 예년보다 경쟁이 더 느슨했다.
벨그레이브가 넷으로 쪼개진 탓에 다이아 동원력이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
아무튼 그렇게 얻은 패치노트에는, 또다시 세상을 격변하게 만들만 한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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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4년 1월 1일부터, 세상의 경계 붕괴를 대비하기 위한 ‘공성 토너먼트’가 시작됩니다.
여러분이 소속된 <제1 인간계>는, 동쪽 대륙의 이면세계입니다.
동쪽 대륙에 소속된 다른 이면세계는 <오크계>, <제2 엘프계>, <제1 렙틸리언계>로, 이들이 여러분과 공성전을 치를 상대 종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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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 토너먼트?
제1 인간계?
이면세계?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내용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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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던전 <바벨탑>이 등장합니다.
바벨탑은 본세계와 이면세계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곳에서 관측할 수 있으며, 이후로 모든 필멸자들은 제약 없는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바벨탑 입장권은 각 영지 공성전의 최종 승리자에게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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