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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93화 (93/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93화

나는 야드가르를 데리고 올림포스 신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신계 아발론으로 갔다.

신계 아발론으로 가는 방법은, 오크와 엘프들이 세운 거대한 영토를 지나, 서쪽 끝 대륙의 해안가에 살고 있는 인간 영토에서 배를 타는 것이었다.

‘이런 곳에도 인간이 있었구나.’

그리고 난 그곳에서 처음으로 나 외의 다른 인간 종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엘프들처럼 흰 피부를 가진 사람들.

난 이 사람들과 우리 왕국이 하나로 힘을 합쳤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상상을 해봐야, 이미 때는 늦었다.

아니, 앞으로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헤쳐나가야 했다.

“아빠…….”

야드가르가 불안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괜찮아. 걱정할 거 없어. 아빠가 널 지켜줄 테니까.”

“나 버리지 마. 응?”

“당연하지. 아빠가 널 왜 버려?”

아이는 지난번의 일로 더더욱 불안감에 시달렸고, 내게서 조금이라도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엄마도, 모나도, 자신이 마음을 열었던 모든 사람들이 다 눈앞에서 죽었다.

이제 야드가르에게 남은 건 나뿐이었다.

나에게 남은 것도 야드가르뿐이었다.

“아.”

“미, 미안해. 미안하다.”

아이를 껴안으려다 날카로운 손톱 때문에 그만 몸에 상처를 내고 말았다.

흉악하게 변해버린 몸이, 이젠 야드가르를 마음껏 안지도 못하게 했다.

“괜찮아. 난 괜찮아.”

아이는 팔뚝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그렇게 말하며 차갑고 딱딱한 비늘 피부의 나를 껴안았다.

이제 한창 들판을 뛰어다니며 친구들과 놀러 다닐 시기인데.

나 때문에 쫓겨 다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그래도 상처를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난 야드가르를 선실 안에 앉혀 놓고 밖에서 치료약 같은 걸 구해오려고 했다.

아발론으로 건너가는 배 안.

이곳에는 온갖 귀한 물건들이 넘쳐나니, 이 정도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것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달칵.

선실 문을 열었다.

문 바로 앞에는 아후라 마즈다가 서 있었다.

“뭐지?”

“네 아이가 아파하는 것 같아서. 내가 치료해 주려고 하는데. ……괜찮겠지?”

그러더니 그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손에서 빛을 뿜었다.

파아앗.

이내 야드가르의 팔에 났던 상처가 아물었다.

“애가 아프면 안 되지.”

“……고맙다.”

난 그에게 우선 감사를 표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 괘씸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날 도와주고 있으니까.

적어도 야드가르를 치료해 줬으니까.

“그 무시무시한 악마인 앙그라 마이뉴라 불리는 것치고는 굉장히 처량한 모습이군.”

“…….”

“너무 그렇게 축 처져 있지 말라고. 너도 우리와 같은 불멸자의 반열에 올랐으니까.”

“……내가?”

“그래. 지금은 이렇게 숨어야 하는 신세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귀쟁이들이 잠잠해지고 나면, 너도 나처럼 수많은 신자들을 보유한 신이 될 수 있을 거야.”

예언이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벌이게 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필멸자의 소중한 사람을 단순한 호기심과 재미 때문에 빼앗아 가는 미친 존재.

나더러 그런 걸 하라고?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난 단호히 거절했다.

하지만 아후라 마즈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뭐, 너도 곧 이해하게 될 거야. 우리가 왜 이렇게 됐는지 말이야.”

물론 그가 뭐라고 생각하는지는 상관없다.

난 야드가르만 지킬 수 있으면 그만이다.

* * *

신계 아발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프리드웬’이라 불리는, 이 세상에 단 한 척만이 존재하는 특수한 배뿐이었다.

이 배를 타고 서쪽으로 한참을 항해하다 보면, 어느 순간 거대한 용오름을 만나게 되는데.

그 용오름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세상에 도달하게 된다.

그곳이 바로 아발론이었다.

“아, 아후라 마즈다! 오랜만이로군!”

프리드웬에서 내리자마자 우릴 반긴 것은, 긴 머리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중년 남자였다.

“그래, 정말로 오랜만이군.”

“같이 오신 이분은 누구지? 용모가 범상치 않은데.”

“인사해. 아흐리만이다.”

“아흐리만. 반갑다.”

그자는 내 몰골을 보고도 전혀 개의치 않고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후라 마즈다는 그 역시 나에게 소개해 줬다.

“이쪽은 루 라바다. 아발론 신들 중에 가장 명망이 높은 신이다.”

“하하! 그런 소리 말라고. 우리 중 가장 존경받는 분은 따로 있으니까.”

“누아다를 말하는 건가?”

“물론이지.”

“요즘 어때? 잘 지내고 있나?”

“그럼. 언제나 그렇듯이 평화롭지. 우린 올림포스나 발할라 녀석들처럼 헛되이 인간들에게 경쟁을 시키지도 않으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다행이고.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음?”

“누아다를 만나게 해줄 수 있나? 지금. ……모두가 모인 자리면 더 좋고.”

아후라 마즈다는 인사치레를 끝낸 뒤, 나를 데리고 아발론의 신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갑작스레 여러분을 이렇게 모이게 해서 미안합니다. 제가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그는 거기서 지금 내 상황에 대해 모두 설명했다.

내가 아르테미스를 죽여서 올림포스 신들이 격노했고, 그것 때문에 잘못하면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당분간 나를 이곳에 숨겨달라고.

이런 식의 막무가내 요청에, 난 당연히 그들이 반대부터 할 줄 알았다.

듣도 보도 못한 놈이 사고를 쳤는데, 그런 사람을 다짜고짜 숨겨달라니, 누구라도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 일.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아발론 신들의 반응은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그런 일이 있다면 당연히 우리가 도와야지!”

“같은 인간 신끼리 서로 돕고 사는 게 도리 아니겠나?”

아후라 마즈다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거기엔 이들도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긴 있었다.

“우리가 거절하면, 아흐리만과 아후라 마즈다는 올림포스의 신들과 끝없는 전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그 영향은 우리에게 미치지 않을 수가 없을 터. 따라서 나 누아다 아르게틀람은 아흐리만의 아발론 체류에 정식으로 동의하는 바다.”

어쨌든 불멸자가 되어버린 내가 전쟁을 하기 시작하면 모두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이유.

정말 다행스럽게도, 나와 야드가르는 결국 아무런 반대 없이 이곳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아빠, 우리 이제…… 안 떨어져도 되는 거야?”

“그럼. 여기서 조금만 지내다가, 밖이 잠잠해지면…… 아빠랑 같이 좋은 곳에 가서 살자.”

“아니야.”

내 말에 야드가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나에게 안기면서 말했다.

“난 좋은 곳이 아니어도 괜찮아. 아빠랑 같이 있을 수 있으면 어디든 좋아.”

“……고맙다. 그렇게 말해줘서.”

어른스러워진 아이를 보며 든 감정에는, 대견함보다는 미안함이 더 크게 들어 있었다.

* * *

모든 걸 버리고 이곳에 온 게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난 내가 구해낸 수많은 사람들을 모두 버리고, 오직 아들을 위해 여기까지 건너왔다.

이젠 내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그들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직접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잖아.’

물론 내가 그곳에 남는다 하더라도 상황이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올림포스의 엘프 신들에게 공격받기 시작하면 난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들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야드가르 또한 그 과정에서 휘말릴 테고.

‘신을 죽일 수 있는 힘이 있으니, 그냥 싸워 이기면 되잖아?’

그런 생각도 해봤다.

아르테미스를 잡아먹은 것처럼, 다른 신들도 모두 잡아먹어서 다시는 부활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방법을 쓰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

‘그렇게 이긴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사이 전화에 휩쓸려 죽어 나갈 사람들은?

그리고 야드가르는?

맞서서 이기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길 수 있겠지만,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것은 그와는 다른 차원의 개념이었다.

나는 불멸자라 죽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 아들은 너무나 연약한 필멸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계 어딘가에 의탁하지 않고서는 신들의 시선을 피할 수가 없어서 숨으려야 숨을 수도 없는 신세.

‘그래……. 결국 이것밖에 없어.’

그러니 이게 최선이자 최고의 선택이다.

이게 내가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 * *

그렇게 이곳 아발론에서 여러 나날들이 흘렀다.

우리가 사는 곳은 다른 신들이 사는 곳과도 한참 동떨어진, 아발론 내에서도 시골에 해당하는 작은 거처.

이곳에서 하루하루 땅에서 자라나는 먹을 것들을 수확하며, 나름대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때.

그 어느 때에.

비극은 떼어놓을 수 없는 그림자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왔다.

“아, 아빠……!”

“안 돼! 야드가르!”

화아악!

야드가르는 작은 거울 속에 갇혔다.

분명 내 손을 잡고 있던, 내 곁에 있던 아이가.

그냥 아무런 예고도 없이, 눈앞의 루 라바다가 들고 있는 작은 손거울 안에 들어가고 만 것이다.

“안 돼……. 이럴 수는…….”

어떻게 돌아왔는데.

어떻게 쟁취해 낸 작은 평화였는데.

마치 신기루처럼.

눈앞에서 스르륵 하고 사라진다.

“이……! 이 개자식!”

난 곧바로 손톱을 세우고 공격 자세를 취했지만,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그가 자신의 창으로 거울을 겨눴기 때문이다.

“진정해. 네 아이는 아직 살아 있으니까.”

“……도대체 뭐냐? 왜 이제 와서 갑자기 이러는 거냐?”

“이제 와서? 아니지. 원래부터 이럴 생각이었어. 네가 하도 애랑 꼭 붙어 다닌 탓에, 이 아티팩트를 만드느라 시간이 좀 걸렸을 뿐.”

“그러니까 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난 이 인간 신들과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여기 와서 딱히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애초에 여기서 머물게 해주겠다고 한 것도 이들이었다.

그런데 왜?

“왜냐고? 넌 아르테미스를 죽였으니까.”

“아르테미스는 엘프 신이잖아? 그게 너희랑 무슨 상관이지?”

“상관있지. 우리랑 같은 불멸자니까.”

“그게 무슨……!”

“아아, 됐고.”

난 항변하려 했지만, 루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움직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가라는 대로 가기나 해. 허튼짓은 하지 말고.”

그는 나를 앞장세우고 등 뒤에 창을 들이밀었다.

반대쪽 손에는 손거울을 쥔 채로.

거울은 악력만으로도 언제든지 깨뜨려버릴 수 있으니 뒤 돌지 말라는 협박 또한 빼놓지 않았다.

난 결국 그 창날에 떠밀려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웅성웅성.

그렇게 내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아발론의 중앙 광장.

이곳에 온 첫날, 나의 처분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이쪽 세계의 모든 신들이 모였던 장소다.

그런데 오늘은 그날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왔군!”

“저자인가? 내 동생을 소멸시켰다는 자가?”

“아폴론! 진정해라! 일을 망칠 셈이냐!”

뾰족한 귀를 가진 신들이 한껏 적대적인 태도로 내게 달려들 기세를 취했다.

인간이 아닌 이종족 신.

올림포스에서 온 엘프 신들.

“호오, 저놈은 얼마 전에 내 영웅 시구르드에게 패배했던 놈이었는데, 어느새 저리도 흉악한 괴물이 되어 있구나!”

뿐만 아니라 발할라에서 온 오크 신도 있었고.

아예 생전 처음 보는 종족들도 잔뜩 있었다.

오크보다 훨씬 덩치 큰 거인족, 키가 작은 난쟁이들, 피부가 털로 뒤덮인 수인, 파충류 인간.

저들 모두가 불멸의 생명력을 가진 초월자들이었다.

바로 이곳 아발론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들이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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